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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거룩한 삶 (벧전 01:1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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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절에서 공부한 산 소망의 삶에 이어서 본문을 통해 사도 베드로는 거룩한 삶을 우리에게 가르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고난 샥서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산 소망의 삶을 살 아야 합니다. 그리고 고난 속에서도 거룩한 삶을 추구해야 합니다. 본문에서 사 도 베드로가 강조하고 있는 것이 바로 거룩한 삶을 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 리가 거룩해야 할 이유는 무엇일까요

거룩한 삶이 요구되는 이유

15절을 보십시오 "오직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자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 이 거룩하다는 말은 "따로 놓다,구별되다,분리되다"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구별된 삶을,분리된 삶을 요구하십니다. 즉, 이방인들과 다른 종류의 삶을 요구하십니다. 그것이 거룩한 삶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이라면 분명히 이방인들과 다른 삶을 살아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가 참으로 예수님을 모시고 있고,우리 안에 영원한 생명이 있고,우리 안에 하나님의 성품이 있다면 우리의 삶이 이방인의 삶과 똑같을 수 없습니다.

 벧전 4장 4절을 보십시오 "이러므로 너희 가 저희와 함께 그런 극한 방탕에 달음질하지 아니하는 것 을 저희가 이상히 여겨 비방하나." 여기에서 구별되는 두 사람은 누구입니까 "너희" 와 "저희" 입니다. "너희"와 "저희"는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와 믿지 않는 사람들의 삶이 결코 같을 수없 습니다. 우리 안에 참으로 주님이 계신다면,우리가 참으로 거듭났다면,어떻게 같 을 수 있겠습니까

그러면 여러분의 삶 속에는 세상과 다른 특성의 삶이 있습니까 똑 같구나, 너나 나나 둘 다 별 수 없구나." 이것이 여러분을 바라보는 주변의 믿지 않는 사 람들의 시선입니까 아니면 여러분의 삶이 확실히 다르다는 사실을 사람들이 인 정하고 있습니까 그것이 거룩한 삶의 본질입니다. 본질적으로 그리스도인이 아 닌 사람과 다른 삶을 살라는 명령입니다. 자, 그러면 이처럼 이방인과 달리 거 룩해야 할 다섯 가지 이유는 무엇일까요

첫째로, 복음으로 구원받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구원받았다면 달라야 한다는 것입니다. 13절을 보십시오 "그러므로12절은 어떤 말씀이었습니까 우리가 구원받은 사실에 대한 말씀이었습니다.

이제 복음을 통해서 우리가 구원을 받았으므로 다른 삶을 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므로 이제 거룩한 삶을 살라는 명령을 합니다.

여러분이 이 복음을 통해서 참으로 구원받은 사람이라면 가짜 그리스도인이 아니라면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오늘날 가짜 그리스도인들이 얼마나 많은지요! 교회에 다닌다고 해서 진정한 그리스도인이 아닙니다. 속지 마십시오.집사님이라고 해서 다 구원받은 것은 아 닙니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진정한 신앙 고백이 없는 사람들이 오늘날 얼 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가 참으로 복음으로 구원받은 사람이라면 거 룩하게 살라고 주께서 명령하셨습니다.

 둘째로, 주님이 다시 오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너희 마음의 허리를 동이고 근신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너희에게 가져올 은혜를 온전히 바랄지어다"<13절> 주님이 앞으로 다시 오실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이 말씀을 통하여 세가지 권면을 받습니다. "너희 마음의 허리를 동이고," "근신하면서," "재림하실 그 분을 온전히 바라라"는 것입니다.

 <마음의 허리를 동이라> "허리를 동이라"는 말은 무슨 뜻일까요 이것은 마음의 집중을 의미할 수도 있고 또 마음의 훈련된 상태를 의미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활동의 태세입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삶을 살 준비 태세를 갖추라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허리띠가 없다면 어떨까요 다들 편하게 활동하지 못해 쩔쩔맬 것입니다. 특히 옛날 옷들은 얼마나 길었습니까 땅에까지 치렁 치렁 매야 했습니다. 또 사람들이 운동을 할 때나 뛰어야 할 때, 혹은 먼 길을 여행하려 할 때는 이 옷의 끝을 잔뜩 끌어 올려서 띠를 단단히 매야 했습니다. 활동 태세, 준비 완료의 태세를 갖춘 것입니다.

예수님이 다시 오실 것이기 때문에 주님이 오실 것을 기다리면서 마음의 허리를 동이고 살라는 것입니다. 주님이 참으로 원하시는 삶을 살려는 준비 태세를 갖 추면서 살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이런 멧세지가 더 실감이 났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출12장 의 유월절 사건에서 그들이 유월절 식사를 할 때, 허리에 띠를 띠고 급히 양 고기 를 먹고 밤중에 떠날 준비를 했습니다. 이처럼 허리에 띠를 맨다는 것은 중요한 일을 할 때, 위대한 과제를 앞에 두고 삶을 준비하는 태도입니다.

이러한 태도로써 삶을 살라고 성경이 외칩니다. "너희는 마음의 허리를 동이라" 우리의 삶의 태도가 우리의 행동 양식을 결정합니다. 우리의 삶의 모습을 결정합니다. "어떤 태도를 갖고 사느냐" 는 것은 참으로 중요한 문제입니다. 그 태도에 따라서 삶의 모습이 상당히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과 롯의 삶의 태도를 비교해 보십시오.

아브라함의 소망은 어디에 있었습니까 히 11장에서 아브라함의 소망이 하늘에 있었다고 말합니다.

"이는 하나님이 경영하시고 지으실 터가 있는 성을 바랐음이니라"<히11:10> 그는 하늘에 소망이 있었기 때문에 이 땅의 것을 별로 연연해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서로의 땅을 택해야 했을 때 아브라함은 조카 롯에게 먼저 선택권을 주었습니다.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나는 좌하리라"<창13:9> 그에게는 이 세상에 대한 욕심이 없었습니다. 그의 소망이 하늘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그의 삶의 태도가 아브라함의 삶의 양식을 얼마나 분명하게 결정했습니까 반면에 롯은 그의 소망을 하늘이 아니라 이 땅에 두었습니다. 그래서 이 땅에서 좋은 것을 차지하고자 혈안이 되었습니다. 그에게는 이 땅이 전부였습니다.

이땅의 삶이 전부였습니다. 그리하여 눈에 보기에 좋은 푸르고 물이 많고 숲이 우거진 소돔 땅을 선택했습니다. 그러다가 무서운 유황불의 심판 앞에 직면한 장면을 우리는 성경에서 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삶의 태도가 얼마나 중요한 모릅니다. 우리의 가치관과 삶의 태도 여하에 따라서 우리의 삶의 양식이 크게 달라집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이 다시 오신다는 사실을 잊지 말고 삶의 태도를 가다듬읍시다.

 <근신하라> 여기에서 "근신하라"는 말은 본래 "술 취하지 말라" 는 뜻입니다. 술에 취하면 떠들썩합니다. 술에 취하면 자제력을 잃어버립니다. 술에 취하면 절제력을 잃어버립니다. 술에 취하면 균형을 잃습니다.그러므로 근신하라는 말을 세 가지 낱말로 다시 번역할 수 있습니다. "조용하라,절제하라,균형을 맞추라." 근신하며 살아가는 삶은 어떤 삶입니까 그것은 조용한 삶입니다.

중언부언하며 떠들어대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삶의 양식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조용합니다. 그리고 절제할 줄 압니다. 또한 생활에 균형이 있습니다. 그러나 술에 취하면 이 세 가지를 다 잃습니다. 술에 취하면 요란스럽습니다. 통제력을 잃습니다. 그리고 균형이 없어지고 맙니다. 삶의 모든 균형이 파괴됩니다. 근신하는 삶은 이와 반대입니다.

 <은혜를 온전히 바라라> 예수께서 오실 때에 우리에게 베풀어 주실 은혜를 "온전히" 계속해서 끝까지 일관성있게 인내심을 가지고 온전히 바라라고 성경은 권면합니다.

이처럼 우리는 예수께서 다시 오실 것이기 때문에 마음의 허리를 동이고, 근신하며 주님이 주실 은혜를 온전히 바라면서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셋째로, 하나님 아버지의 자녀이기 때문입니다.

-"너희가 순종하는 자식처럼 이전 알지 못할 때에 좇던 너희 사욕을 본삼지 말고 오직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자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14-15절> 자녀는 마땅히 아버지를 닮습니다. 부모를 닮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가 거듭나면 하나님의 자녀가 되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자신의 성품을 심어주십니다.아버지 하나님의 성품을 심어주십니다.

"이로써 그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우리에게 주사 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너희로 정욕을 인하여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의 성품에 참예하는 자녀된 자가 되게 하려 하셨으니"<벧후1:4> 이처럼 하나님의 자녀된 우리는 하나님의 성품에 참예하게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이므로 거룩한 하나님 아버지의 성품을 드러내야 합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하나님의 자녀된 우리가 특별히 드러내야 할 두 가지 속성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순종하는 마음>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면 아버지께 순종하는 마음이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참 그리스도인이라면 하나님께 순종하고자 할 것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 보시기에 순종하고 계십니까 "곧 하나님 아버지의 미리 아심을 따라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으로 순종함과 예수 그리스도의 피 뿌림을 얻기 위하여 택하심을 입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니-<벧전 1:2>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순종하며 죄사함을 받도록 우리를 선택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하나님 아버지의 자녀라는 구체적인 증거는 하나님 아버지께 순종하고자 하는 마음입니다. 곧 순종이 내가 그 아버지의 자녀임을 나타내는 속성입니다.

<거룩성>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자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15절> 삶 전체에서 거룩함을 나타내는 자가 되라는 것입니다. 우리 주님의 속성 가운데서 가장 중요한 한 가지 속성은 이 거룩함의 속성입니다.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하나님은 거룩하십니다. 따라서 하나님은 하나님 자신을 닮은 모든 자녀들에게 거룩함요구하십니다.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 넷째로, 말씀의 명령이기 때문입니다.

 16절을 봅시다.

"기록하였으되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하셨느니라"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는 말씀은 구약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명령임을 이 구절이 밝히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에게 거룩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의 삶과 향동과 윤리를 결정하는 최고의 궁극적인 권위는 말씀입니다. 로마 카톨릭은 자기 향동의 양식을 결정하는 데에 는 성경뿐 아니라 교회의 제도도 동등한 권위를 지닌다고 생각합니다. 교회의 교황이나 사제가 성경과 같은 권위를 지닌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복음적 그리스도인들은 성경 말씀에만 규제를 받습니다. 말씀만이 행동의 양식을 결정하는 최후의 권위입니다. 말씀에 기록되어 있으면 그것으로 족했습니다. 거기에서 우리의 모든 이론이 끝나는 것입니다. 이것이 성경을 믿는 그리스도인들의 고백입니다.

그런데 바로 이 성경이 우리에게 명령합니다. "거룩하라" 그러면 거룩해야 합니다. 다른 이론이 있을 수 없습니다. 말씀이 최고의 권위이기 때문입니다.

교회의 법령이나 어떤 규약,교회의 신조, 등도 모두 하나님의 말씀 앞에 심판을 받아야 합니다. 말씀 외에는,말씀을 능가할 수 있는 다른 권위가 있을 수 없습니다. "기록하였으되" 거기에서 우리의 이론은 끝납니다. 사람들의 온갖 주장과 철학은 모두 끝납니다. "기록하였으되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하셨느니라." 그러면 우리는 거룩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거룩해질 수 있습니까 바로 이 말씀이 우리를 거룩하게 할 수 있습니다. "저희를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요 17:17> 우리가 거룩해질 수 있는 방법은 말씀을 통해서입니다.

"청년이 무엇으로 그 행실을 깨끗케 하리이까 주의 말씀을 따라 삼갈 것이니이다.<시 119:9> 다섯째로, 하나님의 심판이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17절을 봅시다.

"외모로 보시지 않고 각 사람의 행위대로 판단하시는 자를 너희가 아버지라 부른즉 너희의 나그네로 있을 때를 두려움으로 지내라" 우리 아버지는 "판단하는" 분이십니다. 우리의 외모로가 아니라 우리의 행위를 따라 정확하고 진실하게 분명하게 판단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인생에서 나그네로 살아갈 동안 두려움으로 지내라고 말씀합니다.

우리의 삶은 정말 나그네의 삶입니다. 주변에 그렇게도 사랑했던 사람들이 훌쩍 떠나가는 광경을 보십시오.이 얼마나 나그네된 삶입니까 여기서 "두려움"이라는 말은 공포를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경건한 두려움입니다. "경건한 두려움으로 지내라. 경건한 두려움의 태도로써 살라" 는 뜻입니다. 왜냐하면 거룩하신 하나님 아버지,의로우신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모든 것을 계산하고 모든 것을 셈해야 할 판단의 날이 반드시 찾아오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의 외모로 판단하시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당신에게 어떤 칭찬을 했을지도 모릅니다. 당신의 외모가 사람들에게 상당한 호평을 받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또한 당신의 삶의 부분이 사람들의 눈에 굉장히 아름답게 나타났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의 외모를 보시지 않습니다.

그분은 나의 내면 깊숙히 자리잡은 숨은 동기와 질을 보십시오 "외모로 보시지 않고 각 사람의 행위대로 판단하시는 자를 너희가 아버지라 부른즉 너희의 나그네로 있을 때를 두려움으로 지내라" 결 론

성도는 어떤 삶을 살아야 합니까 산 소망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여러분의 마음에는 살아 있는 소망이 있습니까 또한 여러분은 거룩한 삶을 살고 있습니까 우리는 왜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합니까 복음으로 구원받았기 때문입니다. 주님이 다시 오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아버지의 자녀라면 또한 마땅히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분이 나에게 말씀으로 명령하셨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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