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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삶의 풍랑을 잔잔케 하시는 하나님 (요 06:1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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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예수님께서 기적을 베푸심은 믿고 생명을 얻게 하려 하심이었다.

2,예수님은 삶의 풍랑도 잔잔케 하시는 분이시다.

3,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관심을 항상 갖고 계신다.

"(요6:16) 저물매 제자들이 바다에 내려가서 (요6:17) 배 를 타고 바다를 건너 가버나움으로 가는데 이미 어두웠고 예수는 아직 저희에게 오시지 아니하셨더니 (요6:18) 큰 바 람이 불어 파도가 일어나더라 (요6:19) 제자들이 노를 저어 십여리쯤 가다가 예수께서 바다 위로 걸어 배에 가까이 오 심을 보고 두려워하거늘 (요6:20) 가라사대 내니 두려워 말 라 하신대 (요6:21) 이에 기뻐서 배로 영접하니 배는 곧 저 희의 가려던 땅에 이르렀더라." 성경의 기적을 믿지 않는 여선생님이 학생들에게 말했습니다.

"성경에 있는 기적은 진짜로 있었던 것이 아니란 말이예요.

예를 들어 우리가 알다시피 모세가 백성들을 이끌고 홍 해 바다를 건너 갔을 때 바다의 깊이가 6인치 밖에 안 되는 갈대밭을 건너간 것이지 어떤 기적이 있었던 것이 아니거든요." 선생님의 말이 끝나자 뒤에 앉은 학생 한명이, "기적을 인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시다!"라고 말했습니다.

좀 기분이 좋지않은 선생님은, "무슨 기적이란 말이예요"라고 묻자 학생은 다음과 같 이 대답했습니다.

"하나님이,모세와 이스라엘 백성을 따라오던 애굽의 큰 군대를 모두 홍해 바다물에 빠져 죽게 했는데 6인치 깊이의 물에다 애굽의 그 많은 군대를 다 빠뜨려 죽게 하신 하나님 의 일이 진짜 기적이 아니겠습니까" 오늘 본문은 예수님께서 물 위로 걸어가신 표적으로서 주님께서 '자연법의 주'(the master over natural law)가 되 심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요20:30) 예수께서 제자들 앞에서 이책에 기록되지 아 니한 다른 표적도 많이 행하셨으나 (요20:31)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예수님께서 여러가지 표적을 행하심은 인간들로 하여금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고 생명을 얻게 하기 위함인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불신앙 가운데 빠져 생명을 잃어 가고 있습니다.삶의 풍랑은 신앙인이나 불 신앙이나 다 같이 맞게 되는 것이나 신앙인은 '예수를 배에 영접하여 인생의 진정한 목적지에 안전히 도착하게 되는 것 입니다.' 모든 인간은 일엽편주(一葉片舟)를 타고 언제 끝날지 전 혀 예측할 수 없는 넓은 바다를 쉬임없이 항해하고 있는 것 입니다.진정 세상은 바다며 인간은 항해자이며 인생은 항해 입니다.항해를 하다보면 뜻하지 않는 시기에, 예기치 않는 장소에서 이유도 알 수 없는 폭풍과 거센 파도에 휩쓸려 고 생할 때가 참으로 많이 있습니다.

일찌기 헤밍웨이는 그의 작품 <노인과 바다>에서 인생 의 적나라한 모습을 보여 주었습니다.

석양이 물드는 잔잔한 저녁 바다,혹은 힘차게 태양이 솟구쳐 올라오는 고요한 아침 바다는 참으로 멋있습니다만 별안간,그것도 한밤중에 몰아닥치는 폭풍과 파도는 정말 무 서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인간은 개인생활이나 가정생활 혹은 신앙생활에서 순풍의 돛을 달고 평탄하게 달릴 때도 있지만 때로는 예기치 않게 감당할 수 없는 삶의 풍랑을 만 날 때도 있습니다.

성경에는 풍랑 만난 이야기가 세 번 기록되어 있습니다.

첫째, 구약에 나오는 요나가 만난 풍랑입니다.

이 풍랑은 내 자신의 잘못과 죄로 인하여 만나는 풍랑 입니다.요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고 하나님이 지시하시 는 곳과 정반대되는 곳으로 가다가 풍랑을 만났습니다(요나 서 1:11-15).하나님의 뜻과 상반되는 죄악의 길로 가는 인생 에게 거센 풍랑이 일어납니다.

둘째, 사도행전 27장에 나오는 풍랑으로서 사도 바울이 탔던 배가 풍랑을 만난 이야기입니다.

이 풍랑은 하나님 보다 인간의 경험을,진리의 말씀보다 재물을 더 의지할 때 찾아오는 풍랑입니다.

하나님의 종 바울은 계시를 통하여 항해 도중 큰 고난 이 있을 것을 미리 알고 항해를 지연할 것을 건의하였습니 다.그러나 선장과 선주는 항해를 늦추게 될 경우 입게 될 경 제적 손실을 염려한 결과 자신들의 경험과 실력을 믿고 항 해를 강행하였습니다.

그러나 바울의 말대로 그들은 도중에 큰 풍랑을 만나 많은 재산의 손실을 입고 생명의 위협까지 겪게 됩니다.

셋째, 마가복음 4장에 나오는 것으로서 제자들이 예수 님과 함께 배를 타고 가다가 갈릴리 바다에서 만난 풍랑입 니다.

이 풍랑은 인간의 잘못과 아무 관계가 없는 풍랑입니다.

인간이라면 누구나가 당할 수 밖에 없는 숙명적인 풍랑과 같은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대부분이 갈릴리 바다에서 잔뼈가 굵은,그리하여 바다생활에는 전문가들이었습니다.그러나 그 들도 점점 거칠어져가는 거센 풍랑을 어찌할 수 없어 심히 두려워했습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험한 세상 속을 살아가면서 삶의 전문 가들이 되어가는 것입니다.그러나 어부들도 큰 풍랑 앞에서 는 속수무책이었듯이 아무리 풍부한 경험이 있어도 아무리 많은 지식이 있어도 아무리 높은 권세와 넘치는 재물이 있 어도 어찌할 수 없는 격렬한 풍랑을 만날 때가 있습니다.

풍랑을 만나서 생명의 위협을 당하고 두려워하던 제자 들은 배에서 주무시던 예수님을 깨우면서 부르짖었습니다.

"우리의 죽게 된 것을 돌아보지 아니하시나이까" 이에 예수께서 일어나 바람을 꾸짖으시며 바다를 향해 명령하셨습니다.

"잠잠하라,고요하라." 예수님의 말씀대로 풍랑이 그치고 아주 잔잔해졌습니다.

만유의 주이신 예수님은 모든 인생의 풍랑을 잔잔케 하시는 능력이 있습니다.죄값으로 오는 풍랑이든 세상을 의지하다 만난 풍랑이든 어떤 풍랑도 예수님은 잔잔케 하십니다.

인생의 거센 풍랑이 여러분을 위협할 때 예수님을 찾으 시고 그 분을 인생의 배에 영접하시기 바랍니다.

"(마11:28)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 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비록 두려움의 밤에 신앙과 형식이 나누인다 할지라도

폭풍우가 아무리 노호하더라도

그 폭풍우를 가르며 들려오는 보다 굵직한 음성을 듣는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아름답도다"

<테니슨> 오병이어의 기적을 베풀고 나신 후 예수님께서는 무리 들을 집으로 돌아가라고 설득하신 반면 제자들을 미리 가버 나움으로 보내셨습니다.그리고 제자들은 배를 타고 출발했습 니다.갈릴리 호수를 항해하는 중 큰 바람이 불어 풍랑를 만 나 제자들이 큰 역경에 처하게 되었습니다.무리들을 피하여 산에 가셔서 먼저 제자들을 보내신 예수님께서는 바로 이들 의 모습을 지켜 보고 계셨던 것입니다.예수님은 한시도 제자 들의 일거수일투족을 놓치지 않으시고 지켜 보고 계시는 것 입니다.

광풍노도에 시달리던 그 자초지종을 예수님의 사랑의 눈초리는 떠나지 않으시고 항상 함께 하고 계셨기 때문에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향해 물 위로 걸어 가셨던 것입니다.

우리가 그런 시련에 부딪칠 때도 예수께서는 지켜 보고 계시는 것을 믿으시길 축원합니다.예수님의 이름은 임마누 엘,즉 '우리와 함께 하신다.'(God with us)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서 모든 것을 너무 편안하게만 해 주시지 않으십니다.예수님은 우리로 하여금 우리 스스로가 싸워서 우리 자신의 승리를 거두게 하십니다.예수님은 어떤 운동경기에서 훌륭한 노력을 다하는 자녀를 보시며 자랑스 럽게 여기시는 부모와 같으며 비극적으로 낙망하여 옆으로 빠지는 것을 보고 슬퍼하는 부모와 같습니다.인생은 우리들 위에 내려 비치는 예수님의 사랑의 눈빛으로 말미암아 활기 를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로 하여금 안전하게 마른 육지에 상륙할 최후의 노를 젓게 하시려고 산에서 내려오셨던 것입 니다.그는 담담하고 무감동적인 거리를 둔 태도로 우리를 지 켜 보시는 것이 아닙니다.말하자면 그가 우리를 관람석이나 울타리 밖에서 보고 계시는 것이 아닙니다.힘이 모자라고 우 리 스스로 감당하기에는 너무 벅찬 때에 예수님은 사랑의 눈빛으로 오시는 것입니다.그리고 그와 더불어 승리와 성공 으로 이끄는 최후의 분발과 최후의 노력을 불어 넣어 주는 힘과 능력이 임하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홀로 하도록 내버려 두시는 일이 란 하나도 없다는 것이 신앙생활의 위대함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피난처로 인도하십니다.

"(요6:21) 이에 기뻐서 배로 영접하니 배는 곧 저희의 가려던 땅에 이르렀더라." 아무튼 예수가 임재(臨在)하시는 곳에서는 아무리 긴 여 행일지라도 짧으며 아무리 어려운 싸움일지라도 안이하게 될 것입니다.

"(시107:30) 저희가 평온함을 인하여 기뻐하는 중에 여 호와께서 저희를 소원의 항구로 인도하시는도다." 예수께서 어찌 제자들을 잊으시겠습니까 예수께서 어찌 제자들에게 무관심하시겠습니까 결코 아닙니다.

성도 여러분,예수께서는 여러분의 고난에 결코 무관심 하지 않으십니다.예수께서는 볼 수 있으셨습니다.

어두웠을 때에 조차도,예수께서는 볼 수 있으셨습니다.

예수께서는 심지어 우리의 생각도 아십니다.

예수께서는 우리의 슬픔도 모두 아십니다.

예수께서는 우리가 직면해야 하는 모든 어려움을 다 아 십니다.

예수께서는 거기에서 기도하고 계셨으며,그들은 바다에 서 풍랑에 시달리고 있었습니다.따라서 예수의 마음은 그들 을 걱정하고 계셨으며,그래서 마침내 예수께서는 그들에게로 오셨던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지금도 우리가 곤경에 처해 있을 때 우리가 필요로 하는 도움을 틀림없이 우리에게 베푸시려고 사랑으 로 우리를 살피시는 가운데 우리에게로 오십니다.

"(요6:19) 제자들이 노를 저어 십여리쯤 가다가 예수께 서 바다 위로 걸어 배에 가까이 오심을 보고 두려워하거늘." 이 본문에서 분명히 제자들은 예수께서 바다 위로 걸어 오심을 보았다고 했습니다.

오늘날도 그와같이 예수를 보려면 믿음이 필요합니다.

그들은 눈으로 예수를 볼 수 있었습니다.우리는 자연적인 눈 으로 예수를 볼 수 없지만,봄으로 행치 아니하고 믿음으로 행합니다.

삶의 풍랑이 어떠하든지 간에,파도가 얼마나 높든지 간 에,소동이 얼마나 심하든지 간에,예수를 신뢰하고,예수를 의 지하고,믿음으로 앞을 보시기를 축원합니다.그러면 여러분은 예수께서 파도 위로 걸어 오시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사26:3) 주께서 심지가 견고한 자를 평강에 평강으로 지키시리니 이는 그가 주를 의뢰함이니이다." 우리가 땅에 것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에 예수께서 우리 를 도우러 오실 때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 다.우리는 우리 자신의 일과 우리 자신의 환경에 얽매여 있 어서 예수께서 우리를 구원하러 오실 때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하고 영접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골3:1)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 을 받았으면 위엣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골3:2) 위엣 것을 생각하고 땅엣 것을 생각지 말라 (골3:3) 이는 너희가 죽었고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취었음이니라 (골3:4) 우리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그 때에 너희도 그와 함께 영광 중에 나타나리라." 바다 한 가운데서 풍랑을 만난 제자들의 모습은 마치 우리가 사는 현대 사회의 정황과 다를 바 전혀 없습니다.

세계가 경제적으로 풍랑을 겪고 있습니다.

세계가 정치적으로 풍랑을 겪고 있습니다.

세계가 사회적으로 풍랑을 겪고 있습니다.

세계가 종교적으로 풍랑을 겪고 있습니다.

문민정부를 만난 기독교가 풍랑을 겪고 있습니다. 그러 나 이러한 현대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있 습니다.

"(요14:6)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 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 라." 정치,경제와 사회가 사는 길은 '길과 진리,그리고 생명 이신 예수님'을 영접하는 것입니다.오늘 본문 21절에도 그 해결책이 무엇인가를 분명히 깨우쳐 주고 있습니다.

"(요6:21) 이에 기뻐서 배로 영접하니 배는 곧 저희의 가려던 땅에 이르렀더라." 다시말해서 예수님을 배에 영접하자 제자들은 가려던 항구에 속히 도달했다는 말씀입니다.이 말씀은 현대가 당면 한 모든 문제점을 해결해 주는 열쇠가 되는 말씀인것입니다.

먼저 예수님을 배로 영접하는 것입니다.그가 없었을 때 에는 위험했으나 일단 그를 배 안에 영접하자 풍랑이 잔잔 해졌다는 것입니다.

여기 '배'는 작게는 '나 자신'을 뜻하며,크게는 '가정' '교 회' '국가'라고 볼 수 있습니다.다시말해서 나의 문제나, 가정 의 문제나, 교회의 문제나, 국가의 문제는 오직 예수님을 영 접할 때만이 근본적으로 해결될 수 있다는 말씀인것입니다.

예수님을 영접하니 "배는 곧 저희의 가려던 땅에 이르 렀더라."고 했습니다.

배는 항구에 정박하기까지는 언제 어떤 풍랑에 밀리고 요동할지 모릅니다.그러나 바다와 바람을 창조하시고 자연법 의 주가 되시는 주님을 모시면 목적한 항구까지 안전하게 도착할 수 있는 것입니다.

삶의 풍랑을 잔잔케하실 뿐만 아니라 삶의 참된 목적지 까지 우리를 평안하게 이르게 하시는 예수님을 진실로 진실 로 영접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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