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고난 중에 얻은 자각 (욥 19:23-29)

첨부 1


우리는 가끔씩 위대한 신앙에 대하여 말합니다. 대개 위대한 신앙이란 도 저히 믿어질 수 없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기어코 믿는 것을 말합니 다. 이렇게 보면 아브라함이 독자 이삭을 드렸던 믿음이나, 예수님의 매정 하리만치 차거운 박대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자기 딸을 살려달라고 애걸했던 가나안 여인의 믿음은 놀라운 것이었습니다. 욥은 (욥9:32-33)에서 하나님 과 자기 사이에 중재할 판결자(중보자)가 없음을 탄식했습니다.

(16:18-22)에서는 점점 영안이 열려 "지금 나의 증인의 하늘에 계시고 나 의 보인이 높은 데 계시니라"는 고백을 하며 자기의 슬픔과 억울함을 변호 하여 달라고 애원했습니다. 욥은 이 이해할 수 없는 고통을 하나님 만이라 도 알아 달라고, 자기의 말이 기록되고 책에 씌여지기를 소원했습니다. 까 닭없는 고통을 당하고 있었던 욥이 극도의 고난을 격으면서 놀라운 영적 통 찰에 이르게 되기까지를 살펴보면서 욥의 신앙을 배웁시다.

 1.구속자가 살아 계신 것을 믿었습니다.

 욥은 지금까지의 고통이 얼마나 힘들었던지 '철필과 연으로 영영히 돌에 새겼으면'(24절)이라고 했습니다. 사실 그런 처지에서는 누구도 하 나님께 대한 신앙을 유지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욥은 구워 해 주실 분이 분명히 계신 것을 믿었습니다. '내가 알기에는 나의 구속자 가 살아 계시니'(25절) 여기서 구속자(求贖者)라고 옮겨진 히브리어 <고엘> 은 가장 가까운 친척을 위하여 복수를 해 주거나 기업을 이을 책임이 있 는 자, 혹은 그 미망인과 결혼하여 후손을 이어주는 자를 가리킵니다.

욥이 여기서 '살아 계신 구속자'라고 했을 때는 그 정도의 분이 아니라 그 야말로 메시야적인 분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욥은 아직은 희미하게 밖에 계시되지 않았으나 구속자가 살아 계신 것을 믿었고 그리스도를 만나지 못 했지만 벌써 그분을 바라다 보았습니다.

우리는 메시야를 알지 못하던 시대와는 달리 주님이 이 땅에 계셨음을 알고 있으며 십자가가 어떻게 구속의 도리를 이루는가를 잘 아는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욥의 신앙을 본 받아서 어떤 곤경이 부딪 쳐 오더라도 더욱 구속자가 살아 계신 것을 굳게 믿어야 할 것입니다. 아무 리 폭우가 쏟아져 내려도 태양은 여전히 중천에 떠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사 단이 우리를 넘어뜨려 정죄하려하더라도 구속주이신 예수님께서 우리를 지 키시고 인도해 주시는 한 우리는 어떤 곤경도 극복할 수 있습니다.

 2.후일에 그가 땅에 서실 것을 믿었습니다.

 욥은 엄청난 고통에 짖눌려 있었으나 '후일에 그가 땅 위에 서실 것이라 '(25절) 는 신앙고백을 했습니다. 욥은 살아 계신 구속자가 훗날, 분명히 이 세상에 나타나리라는 믿음을 가졌습니다. 메시야가 오셔서, 죄 없으시 면서도 고통을 당하시는 것은 우리의 죄를 대속하시려는 고통이심을 깨닫 게 하실 것을 믿었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지금 그리스도께서 영으로 우리와 함께 계시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그리고 다시 오셔서 선악간의 상벌을 주실 심판주 그리스 도를 기다리며 살아가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신부가 신랑 맞을 준 비를 하듯이 항상 영적 매무새를 단정히 하고 깨어 있어야 하겠습니다. 욥 은 자신을 공격하는 친구들에게 심판을 경고하면서 자신의 정직을 부르짖고 공의로우신 하나님의 심판을 기대합니다. 모든 일의 뿌리가 하나님에게 있 다는 사실을 안다면 하나님의 분노의 칼도 두려워 할 줄 알아야 합니다. 신 앙이 성숙하면 할수록 창조주 하나님, 심판주 하나님에 대한 경외심은 커 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가 절망 속에서도 소망을 가질 수 있는 이유 는 바로 구속주요 심판주이신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는 것 때문이라는 사실 과 하나님은 그 백성들에게 고난과 아픔을 허락하시지만 결국에는 그를 향하여 더 나은 인격과 신앙을 소유케 하신다는 사실을 배우게 되기 때문 입니다. 구원에 대한 확신과 현재의 고난과 역경을 인내할 줄 알며 심판의 주님 앞에 설때를 바라보는 신앙인이어야겠습니다.

 3.육체 밖에서 하나님 볼 것을 믿었습니다.

 이러한 신앙은 욥으로 하여금 "나의 이 가죽 이것이 썩은 후에 내가 육 체 밖에서 하나님을 보리라(26절)"는 부활의 소망까지 갖게 하였습니다.

욥의 신앙은 환난 중에서 받은 위대한 계시입니다. 욥이 고대하는 것은 육 체적인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함만이 아니라 중보자를 기다리는 열망과 기대 감 때문입니다. 욥은 하나님과 자기 사이에 중보자이신 구속자를 사모하는 마음이 갈급하게 된 것입니다.(시 84:2, 119:82)<예화> 감리교 창시자 요 한 웨슬레는 사업 중, 큰 장벽에 부딪혀 실의에 빠진 어떤 사업가와 산책 을 했습니다. 사업가는 웨슬레에게 자신의 문제를 호소했습니다.

"지금 나의 심정은 돌아갈 길도 없는 큰 산 앞에 서 있는 느낌입니 다. 앞으로 나아갈 방법이 전혀 없습니다. 너무나도 막막합니다....."웨슬 레는 그 소리를 묵묵히 들어주며 걸었습니다. 얼마를 걷어서 소들이 한가로 이 풀을 뜯고 있는 목장에 갔습니다. 목장 한편에는 긴 돌담이 쌓여 있었 는데 소들이 그 돌담 곁에 와서는 모두 고개를 쳐들고 담장 밖을 쳐다보려 합니다. 그 모습을 보고 웨슬레가 입을 열었습니다.

"저 소들을 보십시오. 저 소들이 담장 곁에서는 왜 고개를 들고 하늘을 쳐다보겠습니까" "담장 밖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겠죠" "그래요. 사람들도 앞을 볼 수 없을 때는 위를 바라보아야 합니다."엎친 데 덮친 격의 절망과 역경에도 불구하고 욥은 '하나님을 보리라'(26절)는 강한 소망을 토로하고 있습니다. 누구나 당할 수 있는 막힘, 장벽, 방 해....... 그러나 그리스도인에는 소망이 있습니다. 모든 것의 해결책이 되 시는 그리스도가 계시기 때문입니다.

욥은 설령 이 세상에서 육체를 지니고있는 동안에는 하나님을 뵙지 못하 더라도 죽음 저편에서는 기어코 그분을 만나 볼 수 있을 것을 믿었습니다.

고대 사람들은 죽음을 가리켜 대체적으로 소멸 상태로 이해하였습니다. 그 렇다면 욥이 자기가 육체를 벗어나서 하나님을 볼 것이라 했던 것은 정말 큰 믿음이었습니까 여기에는 물론 '죽어도 살겠고'(요11:25)라는 신앙 고 백과 마지막 날에는 그리스도 안에서 모두가 부활한다는 구체적인 신앙이 나타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욥은 그때 멀리서 그런 일들을 바라다 보고 있었던 것입니다. 사람이 일단 죽기를 결심하면 불가능한 일이 없게 됩니다. 하물며 목숨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기에 이른다면 그 어떤 시련이 하나님과의 대면을 막을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죽으면 도 리어 그리스도와 함께 있게 된다는 신앙을 가져야 하는 것입니다.(빌1:23) 교우 여러분! 여건이 어려우면 신앙을 가지기도 어렵지만 좋은 신앙은 어려울수록 더욱 영롱한 빛을 뿜어 냅니다. 이는 마치 캄캄한 밤 하늘에 별이 더 빛나는 것 과 같습니다. 욥은 죽음에 직면한 것 같은 절망의 순간에도 구속자가 살아 계신 것과 땅에 오셔서 우뚝 서실 것과 육체를 벗는 날, 하나님을 볼 것을 믿었습니다. 좋은 신앙인은 고난을 당할 때에 더욱 신앙의 옷깃을 여미고 다듬는 기회로 삼게 합니다.

당신이 괴로워하고 싶거든, 안을 바라보십시오.

당신이 실패하거든, 뒤를 바라보십시요.

당신이 어수선해지고 싶거든, 주위를 바라보십시오.

당신이 놀라고 싶거든, 앞을 바라보시오.

당신이 구원받고 싶거든, 위를 바라보십시오.

당신이 기뻐하고 싶거든, 그리스도를 바라보십시오.

주님은 항상 당신의 옆에 계십니다. 당신을 사랑하고 계십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