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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온전히 충성된 사람 (고전 0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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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 여러분께 소개한 책 중에 Jesus CEO, Chief Executive Officer라고 하는 책이 있었습니다.

지금도 몇 년 동안 세계적으로 비소 설계에서 베스트셀러에 올라있는 책 이고 경영을 하시는 분들이라면은 한번 꼭 권하고 싶은 책입니다. 우 리말로 "최고 경영자 예수" 라고 하 는 책입니다. 저자 존스 여사는 광 고대행 마케팅 비즈니스 개발 회사 인 존스 그룹의 창업자이면서 또 동 시에 신앙이 아주 좋은 그러한 사역 자입니다. 로리 베스 존스라고 하 는 이 분은 자기 스스로 경험하면서 그가 간증하기를 "인류역사상 예수 만큼 완벽한 리더쉽을 보여준 사람 은 없다"라고 전제합니다. 예수님 이 모든 분 가운데 가장 위대한 지 도력을 발휘한 분이다, 라고 전제하 고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로부터 지도력을 배워야 한다고 역설합니 다. 예수로부터 배울 수 있는 그 리더쉽 기법에 가장 기본적인 것이 있습니다. 이 책의 내용을 다 말씀 드릴 수 없습니다 만은 이 점에서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제가 이 책 을 읽으면서 제일 감동되었던 부분 이 바로 이 점입니다. 예수님 자신 이 일을 시작하기 전에 40일 동안 광야에 나가서 기도합니다. 금식합 니다. 그리고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모든 문제를 해결해 놓고 그리고 사 업을 시작합니다. 바로 그 점이 가 장 위대한 것이라는 것이죠. 또 이 존스여사 자신도 사업을 위해서 먼 저 하나님 앞에 나아가서 긴 기도의 시간을 갖고 그리고 일을 시작합니 다. 이러한 점에서 우리는 깊이 생 각해야될 부분이 있습니다. 이렇게 먼저 하나님과의 관계, 하나님 앞에 깊은 명상과 기도의 시간을 가지고 생각하고 세워야 될 것이 있습니다.

첫째가 자신의 정체성 파악입니다.

내가 누구냐는 겁니다. 자신이 무 엇이냐 하는 겁니다. 나의 존재에 대한 정체성이 확실해지고 이것이 크게 느껴지면은 그 다음에 하는 사 업이라는 것은 그리 중요한 게 아닙 니다. 이것이 시원치 않기 때문에 별로 크지도 못한 사업을 하면서 휘 청거립니다. 사느니, 죽느니. 조금 뭘 됐다고 해서 교만했다가 좀 안 된다고 해서 자살한다고 야단이고, 이게 뭡니까 왜요 정체성이 없 기 때문이에요. 하나님 앞에서 "내 가 누구냐" 하는 것이 아직도 확실 치 않기 때문이죠. 이것이 먼저예 요. 두 번째는 자신의 위치파악입 니다. 내가 어느 위치에 있느냐 하나님 앞에, 사람 앞에, 이웃 앞에, 모든 관계 속에서 내 위치가 어디냐 는 거죠. 이것을 바로 기도 중에 깨달아야하고. 세 번째는 사명파악 입니다. 내게 맡겨진 사명이 뭐냐 는 거죠. 하나님은 왜 세상에 나를 냈으며 내 일생을 통해서 무엇을 이 루기를 원하시는가 사명, 이 절대 적 사명, 그러면서도 특별히 개인적 인 사명, 이것을 알고 여기에 내 충 성을 다하되 생명을 바칠만한, 목숨 을 바쳐도 아깝지 않은 그런 확실한 사명의식을 가지고 출발해야한다 하 는 것이죠. 여러분 행복한 사람이 누구입니까 저는 세 가지를 늘 생 각합니다. 첫째는 하고싶은 일을 하는 사람. 이제는 좀 나이가 드니 까 가는 곳마다 종종 그런 질문을 받습니다. "목사님 대단히 건강하 시네요. 비결이 뭡니까 또 보니 까 여러 가지 일을 행하시는데 그걸 다 감당해 낼 수 있는 그 능력의 비 결이 뭡니까" 그때마다 저는 준비 된 대답을 합니다. 즐거운 마음으 로 하라고, 무슨 일이든지 기쁜 마 음으로 하라고, 억지고 하는 일은 피곤해서 못쓴다고. 모든 능력을 다 소진시킨다. 자기 능력을 극대 화 할 수 있는 길은 기쁨으로 감사 한 마음으로 하는 거다. 감사와 기 쁨, 그것이 건강과 능력의 근본이라 고 늘 그렇게 후배들에게 얘기합니 다. 두 번째는 해야할 일을 하는 사람입니다. 해서는 아니 될 일을 즐겨서는 안됩니다. 해야할 일을 즐기는 겁니다. 마땅히 내가 해야 할 일,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할 때에 후회가 없 습니다. 피곤도 없습니다. 유명한 임마누엘 칸트의 말을 저는 늘 생각 합니다. "You can do it because you should do it.", 너는 그것을 할 수 있다 왜냐하면 마땅히 해야 할 일이기 때문에. 마땅히 해야 할 일 을 하게 되면 할 수 있게 됩니다.

그걸 알아야 합니다. 또 한 가지는 마지막 일을 하는 자가 행복합니다.

준비하는 것도 많고 이제 앞으로 무 슨 일을 하게 될지 잘 모르겠죠.

그러나 이제는 확실히 정해졌습니 다. 이 일을 위해서 일하다가 여기 서 끝낼 겁니다. 이 마지막 일, 이 종말론적인 일을 하면서 이제 마지 막 길을 밀어 부치는 바로 그 일은 절대로 피곤하질 않습니다. 그가 행복합니다, 이제 후회가 없으니까.

여기가지 달려왔습니다. 이제 마지 막 코스를 뛰고 있습니다. 그가 행 복한 거예요. 여러분 잘 아시잖아 요. 마라톤 선수가 뛰다가 맨 마지 막이 저만큼 가까웠을 때, 저 골인 지점이 가까웠을 때, 마지막으로 열 심히 뛰지 않습니까. 그때 그 시간 만은 아무 피곤도 없는 것이죠. 인 생을 그렇게 살아가는 사람이 행복 한 것이다, 라고 늘 생각합니다.

사도바울은 그의 편지 서두에서 늘 자신을 이렇게 소개하고 있습니 다. 파울로스 아포스톨로소 툴로스 예수 그리스도, 헬라 말입니다. 바 울, 사도, 종, 예수 그리스도. 이게 뭡니까 사도라는 것은 높은 이름 입니다. 종, 낮은 이름입니다. 사 도는 영광된 이름입니다. 노예라고 하는 것은 비참한 이름입니다. 이 두 이미지를 그대로 한 몸에 지니고 삽니다. 사도인 동시에 노예요, 노 예인 동시에 사도란 말입니다. 이 것이 그의 정체성입니다. 여기에 이방인의 사도로서의 사명이 있습니 다. 주님의 뜻만을 전적으로 순종 하는 노예 됨이 있습니다. 이것이 바울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사도바 울은 자기의 정체에 대하여 두 가지 비사를 써서 우리에게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나는 그리스도의 일꾼 이요 비밀을 맡은 자로 여길 지어 다" 이게 정체성입니다. 자 이제 "일꾼" 이라는 말, 좀 생각해보겠습 니다. 마침 이 말은 특별한 의미를 가진 말입니다. 슈페리티스 라고 하는 이 헬라 말의 뜻은 "노를 젓는 자다" 하는 뜻입니다. 그것도 밑에 서 노를 젓는 자 그런 뜻입니다.

여러분 거북선을 좀 생각해 보시면 되겠어요. 그리고 영화에 나오는 거 같은 옛날에 2000년 전에 있었던 배, 그 배에는 2층으로 3층으로 내 려가면서 노가 있습니다. 긴 노가 있어서 이걸 젓게되고 노 하나마다 한 사람이 붙들고 있습니다, 그 배 안에서. 그리고 선장이 명할 때 노 를 젓습니다. 일제히 젓습니다. 빨 리 저으라면 빨리 젓고 멎으라면 멎 습니다. 노 젓는, 저 밑에서 노 젓 는 사람은 이 배가 어디고 가는지를 모릅니다. 알 바도 없습니다. 다만 선장이 저어라, 젓고 빨리 저어라, 빨리 젓고 멎어라, 하면 멎습니다.

여기에는 아무 아무 질문도 없습니 다. 물론 "이 노를 저어서 내게 주 어진 보상이 무엇입니까" 라고 물 을 권리도 없습니다. 노를 젓는 사 람, 상상해 보세요. 이 배가 어디로 가는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노를 젓습니다. 이것이 일꾼입니다. 이 것을 요새 현대적인 말로 말하면 Three Totality 라고 합니다. Total Acceptance 모든 지식과 판단을 다 그에게 바쳐버립니다. 그가 하는 말은 다 옳습니다, 그가 하는 것을 의롭습니다, 그대로 수용합니다. 전 적인 수용. Total Discipline 그가 어디로 인도하든지 순종합니다. 그 속에 깊은 경륜과 뜻이 있는 줄 알 기에 무슨 커리큘럼으로 가르치던 지, 어떤 시련을 주시든지 아무 군 소리가 없습니다. 믿고 그대로 순 종합니다. Total Commitment 전적 으로 위탁합니다. 생명도, 운명도, 명예도 다 그에게 위탁해 버립니다.

이것이 Three Totality 입니다. 자 보세요. 노를 젓는 일꾼, 이렇게 충 성하는 것이올시다. 또한 여기에 비밀을 맡은 자라 하는 말은, '오이 코노모스'라는 말은 '오이코스'란 집 이라는 말이고, '오이코노모스'라는 것은 집을 맡은 사람, 옛날 우리말 로 말하면 집사올시다. 자 이제 여 기서 생각하게 됩니다. 일꾼이라고 하게되면 타율적 충성을 필요로 하 는 사람입니다. 자기 의견은 전혀 고려돼지 않습니다. 무조건, 아무 것도 모르고 그저 무조건 복종해야 합니다. 그것이 일꾼이요 또 집사 라고 하게 되면 자율적 복종을 말합 니다. 자율적 충성. 그에게 권리도 있고, 능력도 주어지고 상당한 권한 이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일 을 시키기도 하고, 자기가 일을 만 들면서 해야합니다. 자발적으로 자 율적으로 그러나 주인은 주인입니 다. 오직 주인을 위하여 일할 것입 니다. 주님이 주장하는 대로, 주님 의 뜻을 알아가면서 주의 뜻을 받들 어 충성을 다합니다. 이것이 집사 의 할 일입니다. 그러나 항상 잊지 말 것은 나는 어디까지나 주인을 위 하여 일하는 사람입니다. 자 충성 은 기본입니다. "맡은 자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 기본 자세올시다.

깊이 생각해야겠죠. 어느 병원에, 아프리카 어느 병원에 입원한 아주 머니가 있었는데 어느 날 창문 밖으 로 이렇게 내려다보니까 밀밭에, 그 보리를 밀을 발로 밟고 열심히 밟고 있는 노인이 있습니다. 그래 누군 가 자세히 보았더니, 그 병원 원장 입니다. 그는 슈바이처 박사입니다.

그는 철학자요, 신학자요, 음악가요, 또 목사요, 의사요. 아 이런 어른이 아침부터 계속 보리를 밟고 있는 겁 니다. 누가 물었습니다. "왜 이런 일을 하십니까 궂은일을" "내게 맡겨진 일이니까,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일이니까, 또 해야할 일이니까 하고 있을 뿐입니다." 다른 사람이 물었습니다 "선생님은 왜 이 아프리 카에 오셔서, 이렇게 어려운 곳에 오셔서 의사가 되셨습니까" 그는 아주 평이하게 쉽게 대답합니다.

"말로는 감동할 수가 없기 때문에, 말로는 누구도 감동시킬 수가 없기 때문에, 행동으로 그리스도의 사랑 을 나타내고 있는 것뿐이다." 이게 충성입니다. 충성은 지식이 아니요, 말이 아닙니다. 행동이요, 생명 자 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충성의 평가 척도가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이 세 방면으로 평가를 하고 있습니다. 먼저는 다 른 사람에게 판단 받는 것이라고 하 는 말을 하고 있습니다. 평판, 남들 이 나에게 뭐라고 하나 뭐 그런 거 말입니다. 그러니까 사람들이 신경 많이 쓰죠. 그래서 내가 불행해서 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 잘 살아서 내가 불행한 거예요. 이렇게 다른 사람에 대해서 많은 신경을 쓰는 타 율적인, 타인 주도적 체질이 있습니 다. 참으로 유감스러운 일입니다.

또 요새 와서는 뭐 여론조사란 말이 있습니다. 나 그거 좀 못 마땅하게 여깁니다. 여론이라는 것은 오히려 만들어 가는 것이고 현실의 말대로 말하면 2년 후에, 저 만큼 가서 평 가를 받아야지, 오늘 당장 일도 하 기 전에 "어떻게 할까요" 백성에게 물어가면서 할 것입니까. 난 이런 지도자를 싫어합니다. 지도자가 당 당한 철학과 주견을 가지고, 원칙을 가지고 밀고 나가면서 백성더러 따 라 오라고 그래야지 이걸 일일이 물 어가면서 다리 놓을까요 말까요 자 이거 되겠습니까 이래가지고.

이것이 바로 여론이, 사람들의 평판.

이거 중요합니다. 여론이 중요하고 평가가 중요하지만은 여기에 신경을 쓰면은 기회주의자가 됩니다, 자기 상실을 하게 됩니다, 마지막에는 위 선자가 됩니다. 남의 눈치나 보고, 살다보면 이게 아무 것도 아닙니다.

원칙이 없는 정치, 원칙이 없는 행 정, 원칙이 없는 삶이란 언제나 이 렇게 남의 여론에 휩쓸리는 거예요.

이게 문제지요. 그 옛날에 왜 초등 학교 교과서에 있던 말 여러분이 기 억하십니까 아버지하고 아들하고 둘이서 나귀를 타고 가는데 아버지 가 타고 아들이 나귀 고삐를 잡고 가니까 동네사람들이 "아이고, 아니 어린아이를 저렇게 고삐를 잡게 하 고 자기가 떡 타고 가면 되나", '아 그런가보다', 그 다음에는 또 애를 태우고 자기가 고삐를 잡았더니 "저 런 불효자가 있나, 제가 타고 아버 지를 저렇게 고삐를 잡게 하다니"했 어요. 그 다음에는 할 수 없이 둘 이가 다 나귀를 탔더니 "저런 나쁜 놈들이 있나, 저 어린 나귀를 두 사 람이 타고 가다니" 할 수 없이 나귀 를 둘러메고 갔다잖아요. 남의 소 문에 놀면 이 꼴이 되는 거요. 안 그렇습니까 그런고로 "다른 사람 의 평판 중요하지만은 내게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바울이 그렇게 말합 니다. 또 하나는 "내가 나를 판단 한다. 그러나 자책할 아무 것도 깨 닫지 못하노라" 대단한 사람입니다.

내가 가진 기준이 있다. 그러나 나 는 여기에 가책이 없다. 최선을 다 하고 있기 때문에. 자, 내가 나를 판단합니다. 그러나 자기 충실을 힘쓰고 있습니다만은 그러나 나도 나를 판단하지 아니하노니. 왜요 내 판단, 내 고집, 내 주견에 빠지는 순간 독선에 빠지거든요. 내 판단 이 옳은 게 아니니까요. 여러분 최 선을 다했다고 해서 의가 된다고 생 각하지 마세요. 최선은 내 마음 뿐 이요. 나의 최선의 성격은 하나님 이 분석하실 거예요. 자 그래서 하 는 말입니다. "오직 나를 판단하실 이는 주시니라" 하나님이 판단하시 는 대로 그것만이 옳다, 거기에 기 준을 두고 충성을 다한다고 사도바 울은 말하고 있습니다. 마태복음 20장에 보면은 포도원 비유가 있지 요. 포도원에 일꾼들이 일하러 가 는데 새벽에 가고, 아홉시에 가고, 열두시에 가고, 세시에 가고, 다섯시 에 가고. 한 사람마다 한 데나리온 을 주겠다고 약속을 합니다. 이제 저녁에 임금을 줄 때, 삯을 줄 때 다 한 데나리온씩 주는데 맨 마지막 에 와서 한 시간밖에 일하지 않은 사람에게도 한 데나리온을 주었습니 다. 아침에 온 사람들은 아마 내 차례가 오면 좀 더 주겠지, 했는데 역시 한 데나리온이에요. 그래서 불평이 있어요. "하루종일 일했는 데 우리에게도 왜 한 데나리온을 주 는 겁니까" 그때 주인의 말이 아 주 냉정합니다. "네 것이나 가지고 가라. 너와 약속한 게 한 데나리온 이 아니더냐. 다른 사람 더 주든 말든 네가 왜 신경을 쓰느냐." 여 러분 여기에서 충성을 생각해야 합 니다. 여러분 혹 남편에게 이런 남 편, 저런 남편 돼 달라고 부탁합니 까 그럴 것 없어요. 당신만 좋은 아내가 되면 됩니다. 아내더러 이 래라 저래라 합니까 지금 나이가 얼만데 고치게 됐습니까 그냥 두 세요. 당신만 좋은 남편이 되세요.

자녀교육 문제 삼습니까 문제될 거 아무 것도 없습니다. 당신만 똑 똑한 부모가 되세요. 바른 신앙생 활 하세요. 아이들은 저절로 따라 갈 테니까요. 남의 일에 이래라 저 래라, 뭐 마음에 든다 안 든다, 거 골치 아프게 생각부터 하지 마세요.

나만, 하나님과 나 사이에 내가 해 야할 일만 내가 하는 거요. 그것이 충성이요. 또한 요한복음 21장에 보면 똑같은 맥락의 말씀이 있습니 다. 아시는 대로 베드로가 예수님 재판 받으실 때, 저 문밖에서 예수 를 세 번이나 모른다고 했지요. 그 런데 요한은 재판정 앞에 가 있었거 든요. 예수님 십자가 지실 때에도 베드로는 어디에 있었는데 성경에 없습니다, 어디 멀리 도망갔는지.

그러나 요한은 십자가 밑에 딱 서서 예수님 돌아가시는 장면을 지켜봅니 다. 이제 예수님께서 다시 부활하 신 다음에 저들을 만나실 때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고 베드로에게 묻고 "내 양을 먹이라. 너는 나를 위해서 앞으로 큰 고생을 많이 해야 겠다"하고 미리 말씀하십니다. 이 때 베드로가 궁금하게 생각해요.

'나는 예수를 모른다고 했으니까 고 생을 좀 해야되는 거 같고, 저 요한 은 어떨까'해서 그거 참, 고 인간의 고 마음이 거기 나타나요. "이 사 람은 어떻게 될까요"하고 묻거든 요. 그 베드로가 이렇게 물을 때에 예수님 또 한번 냉정합니다. "내가 다시 올 때까지 머무르게 할 지라고 너와 무슨 상관이냐." 아 대단한 말씀, 너와 무슨 상관이냐 이겁니다.

"너는 나를 좇으라" 이것이 충성입 니다. 다른 사람에게 얼마나 상이 주어지는지 벌이 주어지는, 다른 사 람이 어떻게 되는지 알 바 아니요.

당신만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충성을 다할 것이요. 이건 직선적인 것입 니다. 오직 주님 앞에. 탈무드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복은 검소함 에서 생기고, 덕은 겸양함에서 생기 고, 지혜는 고요한 생각에서 생기고, 근심은 애욕에서 생기고, 재앙은 물 욕에서 생기고, 허물은 경망한 행동 에서 생기고, 죄는 참지 못함에서 생기고, 절망은 불신앙에서 생긴다" 고. 옳은 말씀입니다. 미국에 유명 한 실업가이자 자선 사업가였던 록 펠러가 어느 날 시골에 가서 작은 호텔에서 며칠을 유하게 됐습니다.

이런 큰 재벌이 호텔에 온다 하니까 호텔에 비상이 걸렸어요. 친절하게 해야 되겠고, 깨끗하게 해야 되겠고, 불편 없이 해 드려야겠다고. 해서 아주 잘 생긴 청년을 특별히 맡겨서 "네가 좀 잘 모셔라." 이 청년이 시간, 시간 불편 없이 록펠러에게 봉사를 했습니다. 이제 며칠이 지 난 다음에 호텔에서 나갈 때 체크아 웃 하면서 정식으로 지불해야될 돈 을 지불하고 또 미국사람들이 흔히 하는 정규적인 팁이 있죠. 그 팁은 10-15% 정도 되는 팁을 또 주었습 니다, 수고한 사람에게. 그리고 돌 아섰더니 이 청년이 그만, 그 분이 멀리 가지도 못했는데 뒤에서 불평 을 했습니다. "아니 세계적인 재벌 이 쩨쩨하게 요게 뭐람." 팁이 적 다고 불평을 했습니다. 록펠러가 이것을 들었습니다. 다시 돌아와서 청년의 어깨를 두드리면서 하는 말 이 "이 사람아, 네가 정당한 팁을 받으면 너는 당당한 호텔 직원이다.

내가 네게 팁을 더 많이 주면 너는 구제 받는 거지가 되는 거다. 나는 너를 거지로 대할 수 없었노라" 했 습니다. 그리고 한 마디 더 했습니 다. "네가 하도 정직하고 진실해서 내가 회사에 가서 너를 특채해서 데 려올까 했는데 그만 두노라" 그러고 말했대요. 이거 충성이라는 건요 아무 것도 바라는 마음이 없어야지 요. 잉나지우스의 유명한 기도가 있습니다. 교부 잉나지우스의 기도 입니다. "영원한 말씀이신 독생자 예수님이시여, 참 관대와 고결을 가 르쳐주옵소서. 당신에게 합당하게 당신을 섬기도록 가르쳐주옵소서.

계산 없이 주는 것을 가르쳐주옵소 서. 상처 입는 일에 구애됨이 없이 싸우는 것을 가르쳐주옵소서. 휴식 을 구하지 않고 일하는 것을 가르쳐 주옵소서. 대가를 구하지 않고 희 생하는 것을 가르쳐주옵소서. 그리 하여 충성하는 자에게 주시는 큰 기 쁨을 알게 하여주옵소서." 여러분 충성이 무엇입니까 곧 믿음입니 다. 헬라 말에는 피스티스랑 같은 말입니다. 내가 하나님을 믿을 때 구원에 이르고, 하나님이 우리를 믿 을 때, 우리의 충성을 믿을 수 있을 때 그에게 복을 주시는 겁니다. 작 은 일에 충성했을 큰 일을 맡기십니 다. 순순한 마음으로 진실한 온전 한 충성을 다할 때 충성함에서 오는 큰 기쁨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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