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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당신의 유일한 위로는 (고전 06: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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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들어가는 말
우리 각자에게 닥칠 수 있는 최대의 어려움을 한번 상상해 보십시다. 어떤 일이 여러분 자신에게 일어날 수 있는 소위 최대의 불행 이겠습니까 여러분 자신의 건강이나 사업에 관련될 문제일까요 아니면 여러분의 가족들에게 일어날 수 있는 어떤 일일까요 물론, 각 사람마다 다 다른 어떤 것을 생각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의 어릴때부터 사고방식중의 하나는 이런 생각을 하는 것 자체가 그런 불행을 가져올 수 있다고 생각하기도 하고, 또 우리가 이런 방정맞은 생각을 하는 것이 혹시 우리에게 어려움을 주지나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할 수도 있습니다마는 그런것은 다 하나님의 전능과 그의 보호하심을 믿지 않는 불신앙에서 오는 미신적인 생각이니까 걱정하지 마시고 제가 요구하는 생각을 한번 해보십시오.(이는 결국 여러분의 신앙을 더 확실히 해주는 일을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여하튼 여러분 각자에게 있을 수 있는 최대의 어려움을 하나씩 생각해 보십시요.
그리고 이번에는 그런 상황에서 우리에게 무엇이 최대의 위로가 될 수 있는지를 생각해 보십시요. 우리가 처한 그 구체적인 어려운 상황 가운데서 우리에게는 무엇이 최대의 위로가 될 수 있겠습니까 이 세상에 살고 있는 일반적인 사람들은 대부분이 이런 구체적인 상황에서 그 불행의 원인이 된 것을 제거헤 주는 것이 최대의 위로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예를 들어서 자신의 건강이나 자녀들의 건강에 문제가 생긴 경우에는 그건강을 회복시켜 주는 것이 최대의 위로라고 생각할 것이고, 사업이 아주 큰 어려움에 빠진 경우에는 그 사업이 다시 잘 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최대의 위로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또한 본인이나 가족의 구성원 중 하나가 사경을 헤매고 있을때는 그 사람이 다시 온전해져서 일상적인 생활을 하는 것이 최대의 위로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이런것은 이 세상에 사는 대부분의 사람들의 일반적인 생각일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이런 상황에서 무엇을 최대의 위로라고 여깁니까 아마도 우리들 대부분도 이 세상의 일반적인 사람들과 비슷한 생각을 하지 않을까요 아마 그러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어떤 그리스도인들과 기독교 지도자들은 한술 더 떠서 바로 이런 문제의 해결에 있어서 유일한 해결책은 전능하신 하나님의 능력을 얻거나, 사용하는 것이라고 용감하게 말하고 외치는 일을 흔히 볼 수 있습니다. 그들은 과연 신앙이 분명하고 좋은 것일까요, 아니면 전능하신 하나님의 능력을 빌어서 그저 이 세상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바라고 고대하는 바를 이루어 보려고 하는 이들일까요
우리 자신은 그런 구체적인 문제 앞에서 과연 무엇을 최대의 위로라고 여깁니까
여기서 저는 지금부터 약 432년 전인 1563년에 독일 파라티네이트(Palatinate)지역에 살던 우리의 선배 그리스도인들이 고백했던 바를 소개할까 합니다. 하이델베르그 요리문제 제 1문에서 "생사간(生死間)에 당신의 유일한 위로는 무엇입니까 라고 물은 우리의 선배 그리스도인들은 다른 어떤것 (위에서 우리가 우리에게 있어서 최대의 위로라고 생각했던 바들)을 우리의 유일한 위로라고 하지 않고 다음과 같이 대답했습니다.
"생사간에 나의 유일한 위로는 내가 나 자신의 것이 아니라, 사나 죽으나 나의 몸과 영혼이 모두 다 신실하신 나의 구주 예수 그리스도에게 속한다는 것입니다."
우리 선배 그리스도인들의 이 고백은 우리가 흔히 우리들의 최대의 위로라고 생각하는 것과 얼마나 다릅니까 이 고백은 그리스도인들의 바르고 정상적인 고백이라고 여겨집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의 말씀도 결국 이런 태도를 우리가 가져야 할 것이라고 말하고 있지 않습니까 "너의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서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전6:19-20). 이런 태도와 고백이 옳은 것이라면, 우리는 이를 잘 배워서 우리도 이와같은 고백을 마음속 깊은 곳으로부터 하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이제 이 고백의 내용을 천천히 배워 가기로 합시다.

2. 나의 유일한 위로는 내가 그리스도께 속한다는 것입니다.
먼저 이 내용은 부정적으로 "내가 나 자신의 것이 아니다"라고 고백하는데서 시작하고 있습니다. 사실 근원적으로 생각해 보면, 이 세상의 어떤 사람도 그들 자신의 것이 아닙니다. 사람들은 마치 자신이 자신의 것인 양하고 뽐내며, 그 힘을 자랑하고, 으시대면서 살아가고 있지만 그 누구도 자기자신의 것이 아닌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모두가 마치 토기장이가 자신의 기쁜 뜻대로 토기를 만들듯이, 하나님께서 그분의 기쁘신 뜻대로 창조하신 하나님의 창조의 산물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마치 자신이 자신의 것인 양하며 사는 것은 긍극적으로는 하나님의 창조를 무시하며 살아가는 오만한 것입니다.
하늘을 향하여 손을 흔들며 하나님을 저주하는 자만이 아니라, 그 마음 속에 하나님의 존재와 그의 창조 사실을 염두에 두지 않고, 하나님께 대해 무관심한 채 살아가는 이들도 하나님을 무시하며, 하나님을 모독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나님에게 대해 전혀 관심없는 듯이 살아가는 것도 하나님의 영예를 손상하는 것이니, 이는 그가 하나님의 피조물로서 그 자신을 지으신 분께 마땅히 돌려 드려야만 하는 영예와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는 "하나님으로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치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진" 것입니다(롬1:21).
그래서 스스로는 지혜 있다고 하나 하나님을 다른 것으로 바꾸어서 혹은 다른 것을 하나님이라고 섬기며, 혹은 자신이나 인류 일반이 하나님의 자리에 있는 듯이 생각하고 행하는 죄를 짓습니다. 결국 이들은 "그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는"것입니다(롬1:28)입니다. 그런 태도에서 사람들은 창조하신 하나님이 없는 듯이, 마치 자신이 자기의 주인인 듯이 행합니다.
이런 자기주장 또는 이런 자기주장의 오만이 가장 현저하게 드러나는 일의 하나로 인간의 "자살행위"가 있습니다. 자살은 연약해 보이지만 (그래서 어떤 이는 이를 "여성적 형태의 절망"이라고 하였지만), 이 자살도 사실은 자기의 생명과 삶이 자기 자신에게 속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살행위도 인간의 자기 주장이라는 오만의 한 표현입니다. 비록 자살이 아니라도 주어진 삶을 자포자기해 버려서 되는대로 살아가겠다는 태도도 사실은 자기 주장의 표현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런것에 반하여 그리스도인들은 자신들이 자신들의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인정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의 이 인정은 사실 이중적 근거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즉, 그들은 (1)하나님의 창조 때문에 자신들이 하나님에게 속하므로 자신의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인정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또한 (2) 그리스도의 구원하여 주심 때문에 자신들이 자신들의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창조와 구원이라는 이 이중의 근거에서 그리스도인들은 자신들이 자신들의 것이 아니라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그 중에서 두번째 근거인 구원이 어떤 의미에서는 더 근원적인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을 통해서 자신들이 본래 하나님의 창조에 의해서 하나님의 소유된 존재들임을 제대로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들의 "우리는 우리의 것이 아닙니다."는 이 고백은 적극적으로는 "우리는 그리스도에게 속한 존재들입니다"라는 표현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정체를 잘 표현하는 말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에게 속한 존재란 말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소유라는 말입니다.

3. 그리스도께 속한 것이 왜 위로가 되는가
우리가 그리스도에게 속한다는 이것이 왜 우리에게 유일한 위로가 됩니까 어떻게 해서 이 단순한 말이 모든 상황 가운데서 우리의 최대 위로가 될 수 있다는 말입니까 그 이유는 우리가 그리스도의 것이니, 우리의 존재와 그 모든 것에 대해서 그 소유주 되시는 그리스도께서 책임져 주신다는 점에 있습니다.
만일 우리가 우리의 것이고 우리가 우리 자신에게만 속한다면, 우리는 우리들에게 있는 모든 문제에 대해서 스스로 책임을 져야만 할 것입니다. 문제가 발생해도 그 모든것을 나 혼자서 알아서 처리해야 할 것입니다. 자신의 지혜와 힘에 의존해서, 그것으로 안되면 주위 사람들의 힘에 의존해서 모든 것을 해결해야 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이 얼마나 힘겹고 어두운 삶을 살아가야 합니까 이런 삶의 결국은 절망일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우리의 것이 아니고 그리스도의 것이어서 그리스도께서 모든 문제를 책임져 주신다면 이 얼마나 큰 위로가 되겠습니까 스스로 노심초사하고, 동분서주하지 아니하고, 또 실상은 도울 힘이 없는 인생을 의지하고 않고, 그저 주께서 주신 삶을 사용해서 주께서 하기를 원하시는 일들을 이루어 가면서 여유있는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길이 여기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처럼 그리스도에게 속한 사람들에게는 이 세상의 염려와 걱정이 있을 수 없을 것입니다. 이런 뜻에서 그에게 속한 우리에게 그리스도께서는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마6:25)고 말씀하십니다. 그는 덧붙여 말씀하시기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천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마6:32)고 하십니다.
이런 일들에 대한 염려와 걱정은 그리스도에게 속하여 있지 않아서 그들 스스로 모든 문제를 해결하고, 그 해결을 위해 노력해야 하는 이들이나 하는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리스도에게 속해 있는 이들은 그리스도께서 책임져 주시니 그들에게는 이런 문제에 대한 염려와 걱정이 전혀 없다는 것입니다. 그들에게는 "이 모든 것이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는 천부가"계시기 때문입니다. 이 얼마나 든든한 말씀입니까 그러므로 우리 모두는 이 든든한 말씀에 의지해서 우리의 삶을 살아가야만 합니다.
그것이 성도의 마땅히 행할 바이고, 여기에 우리의 참된 삶의 길이 있습니다. 부디 바라기는 이 말씀을 듣고, 읽으시는 분들 모두가 다른 것을 바라볼 것이 아니라, 바로 우리들 자신이 그리스도에게 속한 것만을 우리의 유일한 위로로 삼고 살아갈 수 있기를 원합니다. 그 어떤 불행 중에서도 우리에게는 우리가 주 예수 그리스도에게 속한다는 사실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다음과 같이 말한 것입니다.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일이나 장래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롬8:3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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