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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역설의 진리 (고후 04: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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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설이란 이치에 벗어난 말, 곧 합리적이지 못하고 비상식적인 말을 뜻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이 역설적인 말들로 되어 있습니다. "사방으로 우겨 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핍박을 받아도 버린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고후4:8-9), "속이는 자 같으나 참되고, 무명한 자 같으나 유명한 자요, 죽는 자 같으나 보라 우리가 살고, 징계를 받는 자 같으나 죽임을 당하지 아니하고,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유하게 하고, 아무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고후6:8-10) 바울 사도를 통하여 하신 이 말씀이 바로 역설의 진리이기에 기독교를 역설의 진리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을 세 가지 종류로 나눌 수 있는데, 첫째는 피해 의식속에 사는 사람입니다. 내가 오늘날 이런 형편이 되어 있는 것은 나라 탓이고 사회와 환경 탓이며, 부모 형제 혹은 배우자를 잘못 만난 탓이라고 생각하기에 항상 불만이 가득 차 있는 사람입니다. 긍정적인 말보다는 불평과 원망이 가득하며 매사에 시비조로 말을 합니다. 둘째, 세상 모든 것을 갖추고도 감사할 줄 모르는 사람입니다. 재물과 권세와 명예를 가진 것은 내가 잘나서, 내가 노력했기 때문에, 내 수단이 좋고 머리가 좋아서 얻은 것이기에 나만 누리면서 살면 된다는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감사가 없습니다. 이런 사람에게는 불평과 원망은 없어도 교만으로 가득차 있습니다. 셋째, 감사함과 만족함으로 사는 사람입니다. 가난하거나 부하거나, 병들었거나 건강하거나, 상황에 관계없이 만족하며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바울 사도가 우리에게 알려 주는 삶이 바로 이러한 삶입니다. 우겨 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고, 가난한 것 같아도 부하게 사는 삶, 이러한 삶이 바울 사도의 삶이었고, 오늘 우리 기독교인들이 살아야 할 삶입니다. 그는 인생을 살면서 어떠한 형편에 있든지 모든 것에 적응하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습니다(빌4:11-12).
바울은 세 가지 진리를 발견했는데,

1. 인생은 질그릇이란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간을 흙으로 만드셨습니다. 흙으로 만든 그릇이 바로 질그릇입니다. 우리는 모두 질그릇입니다. 질그릇은 가치가 없습니다. 흙이 가치가 없기 때문입니다. 인간을 다이아몬드로 만들었다면 사람들은 교만하여 봐 줄 수가 없을 것입니다. 우리 체질을 아시는 하나님께서는 가치없는 흙으로 우리를 만드셨습니다.
어느 학자가 우리 몸을 전부 분해하여 그 값을 따졌더니 3불 50센트의 값어치 밖에 안되었다고 합니다.

2. 질그릇은 떨어뜨리면 깨어진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질그릇은 떨어뜨리면 깨어집니다. 그것도 아주 쓸모없이 깨어져 버립니다. 우리 인생도 깨어질 수 밖에 없는 질그릇 같은 존재이지만 깨어지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인은 깨어지지 않습니다. 많은 인생들이 깨어지고, 가정들이 깨어지고 있지만 예수 안에 있는 사람들은 깨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바울 사도는 깨달아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습니다.
집어 던져도 깨어지지 않고 에워싸임을 당해도 에워싸이지 않고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답답하지 않는 삶, 이것이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삶입니다.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면서 얼마나 많이 답답한 일을 당하고, 궁핍하고, 환란을 당하고 어려운 일을 당합니까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넘어지지 않는 비결을 우리 성도들이 배워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 민족이 깨어지지 않고, 가정과 개인이 깨어지지 않습니다. 그 비결이 바로 바울이 깨달은 세 번째의 진리입니다.

3. 보화를 질그릇에 가져 능력의 심히 큰 것이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깨달았습니다(7절).
나는 능력도 없고, 연약하고 부족한 질그릇 같은 존재이지만 보배인 주님이 내 안에 계시기에 능력이 있고 강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세상에 잘 난 사람이 없습니다. 대통령이라고, 박사라고, 부자라고 잘난 사람 인가요, 약하고 깨지기 쉬운 질그릇일 뿐입니다. 깨어지지 않는 비결은 내 속에 보화인 예수 그리스도를 담는 것입니다. 자기 속에 보배를 가졌다는 사실을 깨달은 바울은 세상의 어떠한 것도 문제가 되지 않았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마태복음 13장 44절에 땅에 묻힌 보화에 대해 비유로 말씀하셨습니다. 농부가 밭을 갈다가 쟁기에 무엇인가 부딪혀 쨍그렁하며 깨어지는 소리를 듣고 그곳을 파 보았더니 항아리 속에 보화가 가득 들어 있어서 그 농부는 자기의 모든 소유를 팔아서 그 밭을 샀다고 했습니다. 질그릇이 부딪히면 깨어지듯이 우리 몸도 부딪히면 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 속에 예수 그리스도라는 보화가 담겨 있으면 우리는 깨어지지 않습니다.
바울 사도는 처음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귀한 보화인 줄 몰랐지만, 예수 그리스도가 엄청난 보화임을 깨달은 바울은 예수님 외에는 모든 것을 배설물로 여길 정도로 오직 예수님만 증거 했습니다.
알래스카는 처음에 러시아의 영토로서 일년 내내 얼음으로 덮여 있는 쓸모없는 땅이였습니다. 그래서 러시아 사람들은 그 땅을 미국에 720만불이라는 거금()을 받고 팔았습니다. 그러나 그 땅에는 지금 금광과 석유와 가스 등 자원이 4조억 달러 어치가 묻혀 있다고 미국의 지질 학자들이 밝히고 있습니다. 그 속에 엄청난 보화가 숨겨져 있었음을 보지 못하고 얼음 덩어리의 쓸모없는 땅으로만 생각되어 싼값에 팔아 버렸던 그들은 지금 얼마나 후회를 하고 있겠습니까
저는 가끔 명절 때 TV에서 춘향전을 방영하면 재미있게 봅니다. 특히 암행어사 출두 장면이 나오면 재미있다 못해 통쾌할 정도입니다.
춘향이는 옥에 갇혀 내일이면 죽게 되는데 거지 차림으로 찾아온 이 몽룡이 그 장모의 눈에는 한심하기 짝이 없습니다. 그런데도 이 몽룡은 걱정하지 말라고 큰 소리를 칩니다. 옥에 갇힌 춘향이를 찾아가서도 울고 있는 춘향이에게 걱정 말라며 큰 소리를 칩니다. 왜냐하면 그의 다 떨어진 옷속에 마패가 있기 때문입니다. 다음날 암행어사 출두를 외치자 사또도 삼천 초목도 다 벌벌 떱니다. 그 마패는 임금이 준 것인데, 바로 임금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그의 행색이 아무리 남루해도 그 속에 마패가 있으므로 그는 당당할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의 겉모습은 보잘 것없습니다. 놓치면 깨어질 수밖에 없는 연약한 질그릇입니다. 그러나 바울 사도는 거꾸러 뜨림을 당하지 않는다고 우리에게 말합니다. 그것은 우리 속에 마패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만 내어놓으면 마귀가 벌벌 떨고 어둠의 권세가 물러갑니다. 이 마패가 곧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 중심으로 사는 삶을 의미합니다.
저는 미국에 갈 때마다 그들이 잘 사는 비결이 무엇인가 생각을 해봅니다. 이번에도 집회 중에 해군 사관학교를 갔는데 학교 제일 중심에 교회가 서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해군 사관학교가 굉장히 넓은데 그 어느 장소에서든지 교회가 보이게 해 놓았습니다. 그리고 그 도시에 길이 열 두 갈래가 있는데 그 길이 모두 교회로 통하고 있어 어느 곳에서든지 교회로 올 수 있게 해 놓았습니다. 생활 중심에, 마을 중심에, 사관 학교 중심에 교회를 세운 나라가 복을 받지 않겠습니까
우리 성도들은 속에 그리스도의 보화를 담고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담고 살아야 하며, 찬송과 말씀으로 가득 차야 합니다. 질그릇 속에 보화를 담았으니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는 이 역설의 진리가 여러분과 나의 것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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