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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기적을 낳는 교회 (행 02:3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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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순절 성령 강림 이후 세워진 예루살렘 교회는 열심히 기도하는 교회요,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신령한 교제가 이루어지는 한편 성도와 성도 사이에 교제가 이루어져서 교회 천국이 이루어졌던 것입니다.
우리가 예배마다 고백하는 사도신경에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과 라는 부분을 특별히 명심하고 고립적 신앙을 고집하기 보다 신앙적으로도 상부상조하여 하나님께 영광 돌리고 교회 부흥에 공헌합시다.
교제와 대화가 없음으로 미혹과 낙심에 빠지기 쉬우며 독선과 아첨에 빠지기 쉬우니 초대 교회의 성도 교제를 귀감삼아 기적을 낳는 교회가 되도록 합시다.

1.기적을 낳는 교회는 사도들의 가르침을 잘 받습니다.
본문 42절에 “저희가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며” 초대교회는 먼저 사도의 가르침을 배우는 교회였습니다. 열심히 배우는 교회였습니다. 교회에 출석하는 이들이 어찌해서 이따금 사교나 이단에 미혹되어 그릇된 사상에 빠지고 타락하는 경우가 있습니까 기독교의 진리와 사상에 대한 튼튼한 지적 기도가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초대 교회는 무엇보다도 사도의 가르치는 말씀에 열심히 따랐습니다. (렘25:4) “여호와께서 그 모든 종 선지자들을 너희에게 보냈으나 너희가 듣지 아니하였으며 귀를 기울여 들으려고도 아니하였도다”라고 하였습니다. 사실 교회의 위기와 난제를 극복하는 길은 어디 있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고 계속 전진하는데 있습니다. 말씀에 깊이가 없고 늘 과거에 은혜받았던 것에만 집착한다면 서산낙조 떨어지는 해를 바라보는 것과 같습니다. 사도 바울은 앞을 바라보고 푯대를 향해 달려가라고 했습니다.
모세는 이스라엘 장로와 제사장들에게 자자손손 율법을 가르치며 지키라고 했습니다. 바울도 디모데에게 “너는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딤후3:14)고 권고한 것입니다. 성도들이여, 성경을 많이 보고 많이 배워야 하겠습니다.

2.기적을 낳는 교회는 성도의 교제를 잘합니다.
사람들이 서로 교제하기를 힘썼던 것입니다. 성도들간에는 교제가 필요합니다. 신앙과 사상이 같은 사람이 서로 교제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요, 또한 신앙생활에 매우 필요한 일입니다.
교제라는 말은 (헬라어로 코이노니아)입니다. 이것은 사귄다는 말의 뜻보다 한걸음 더 나아가 서로 나눈다고 하는 뜻이었습니다. 신령한 은혜를 서로 먼저 나누는 가운데 은혜가 더 있습니다. 우리가 받은 은혜는 각각 다른데 그 은혜를 서로 나눔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더 많은 은혜를 받게 되는 것입니다.
인간은 서로 교제하는 과정을 통해서 사회 생활을 하게 됩니다. 사람과 사람이 서로 교제가 없으면서 사회생활이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이런 세계는 생존조차 있을 수 없습니다.
서로 어울리고 사귀며 교제하는 가운데 생을 같이 나누게 됩니다. 그러므로 교회에 출석하는 사람들이 서로 서로 형제와 자매 부모와 자녀의 감정으로 또 그리스도의 제자된 감정으로 사귀며 교제할 때 신령한 생이 유지 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서로 만날 때 누가 나를 먼저 찾아보지 않나 하기 전에 내가 먼저 인사하고 누가 나에게 먼저 말을 걸어 주지 않나 하기 전에 내가 먼저 형제에게 말을 걸고 서로가 서로를 알아야 하겠습니다. 이것이 곧 성령 받은 자의 일면입니다.
본문 42절에 “떡을 떼며 기도하기를 전혀 힘쓰니라”고 했습니다. 초대 교우들은 음식을 나누어 먹기를 잘 한 것입니다. 이는 곧 은혜를 받은 예표요, 교우간의 서로의 사랑의 표시입니다.
여기에 두가지의 형식이 있었습니다. 하나님 애찬이 라는 것이었습니다. “아가페 잔치”라고 해서 믿는 사람들이 다 함께 모여 애찬을 가졌던 것입니다. 그러다가 매일 저녁 모일 수가 없게 되자 한 주일에 한번씩 모이게 된 것 같습니다. 이렇게 애찬을 먹고 난 다음에 계속해서 성찬식을 베푸는 것입니다.
은혜받은 초대 교회는 이렇게 애찬을 나누어 먹고 또 성찬을 자주했던 것입니다. 우리 성도들이 종종 모여서 음식을 나누어 먹는 것은 대단히 좋은 풍습인 줄 압니다. 교회 애찬은 큰 잔치하는 것이 아닙니다.
큰 잔치를 계속할 수는 없는 것이고 간단한 친목회를 하는 것은 성도간에 우정의 표시가 되기 때문에 좋은 일입니다. 생활에 짐이 되지 아니하는 범위내에서 친목을 위한 일이 많을 수록 교우간 사랑은 더욱 두터워질 것입니다.

3.기적을 낳는 교회는 기도하기를 힘씁니다.
본문 42절에 “기도하기를 전혀 힘쓰니라” 초대 교우들은 모이면 기도하기를 힘썼던 것입니다. 사람에게 말하기 전에 하나님께 말했고 사람과 의논하기 전에 하나님과 의논했습니다.
어려운 일이 있을 때 자신의 힘이 약할 때 기도하는 일이 슬기로운 일입니다. 이들은 양심에 찔림을 받고 회개한 후에는 기도에 힘쓰는 생활을 했습니다. 그들은 어느 곳에서든지 기도를 하였습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매일 일을 시작하기에 앞서 늘 하나님 앞에 기도했습니다.
오늘날의 새벽 기도하는 성도들의 심정과 같다고 할 것입니다. 하루에 첫시간을 하나님께 드려서 하나님과 대화하고 하나님과 교통하는 것입니다. 새벽 기도회에서 얻은 힘과 일과를 힘차고 담대하게 살아 가는 것입니다.
사실 기도는 기도해 본 사람만이 그 참 맛을 압니다. 기도는 광풍이 이는 바다 위에서의 항구요, 물에 빠진자의 생명줄이요, 소경의 지팡이요, 가난한 자가 발견한 금광입니다. 기도는 병든 자에게 손을 얹어 주는 의원이요, 건강을 지켜주는 보약이요, 축복을 담보해 주는 창교요, 환란의 구름을 제거해 주는 동풍입니다.
주님께서는 말세에 있는 성도들에게 기도할 것을 명령하셨으니 더욱더 기도하는 성도 교회가 되도록 노력하고 힘써야 하겠습니다. 이것이 내가 복을 받은 기름길입니다.

4.기적을 낳는 교회는 성전에 모이기를 힘씁니다.
본문 46절에 “날마다 마음을 같이 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복받은 노아 가정은 마음을 같이 하여 여덟식구가 구원을 받았으나 가룟 유다는 제자들과 마음을 같이 하지 아니하여 멸망 받고 그 대신 마음을 같이 한 맛디아는 유다 대신 주님의 제자가 된 것입니다.
“롯”의 가정을 보더라도 마음을 같이 하지 않았던 롯의 처는 소금 기둥이 되었지만 마음을 같이 한 식구는 환란을 면하였던 것입니다.
(빌2:2-4)에 “마음을 같이 하여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여 한 마음을 품어 아무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각각 자기일을 돌아 볼 뿐만 아니라 또한 다른 사람의 일을 돌아보아 나의 기쁨을 충만케 하라”고 하신대로 행하여야 합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한마음으로 모여 기도하고 성령을 충만히 받아 부흥한 교회로 발전하게 하였던 것입니다. 이 때의 일들이 교회마다 재연되어야 하겠으며 무엇보다도 각자의 성도들이 이 초대교회 성도들의 신앙으로 돌아가는 역사가 일어나야 하겠습니다.

5.기적을 낳는 교회는 온 백성으로 칭찬을 받습니다.
본문 47절에 “하나님을 찬미하여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고 했습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을 뿐만 아니라 주변에 있는 모든 불신자들에게도 인정을 받았습니다. 더욱이 당시 성도들의 이런 경건한 삶으로 인해 복음을 듣고 구원을 얻는 사람들이 갈수록 늘어났던 것입니다.
우리가 불신자에게 전도하는 방법이 여러가지가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효과적이고 실질적인 방법은 생활로써 전도하는 방법입니다. 우리의 생활이 불신자들의 본이 되지 못하면 우리의 말이 훌륭해도 그들의 마음은 움직여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말은 없을지라도 우리의 생활이 불신자들에게 본이 되고 빛이 되어질 때 그들의 마음은 “나도 예수를 믿어야겠다”는 충동이 생기는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날 신자 중에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는 핑계로 주위에 있는 사람들에게 많은 불편과 부덕을 끼치는 자들이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못하는 일일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파하는데도 오히려 방해가 됩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정상적이고 올바른 신앙관과 삶의 태도를 가지고서 하나님게 찬양드리며 또 주위에 있는 자들에게도 덕을 끼쳐서 많은 자들을 구원의 길로 인도하는 자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살전1:8) “주의 말씀이 너희에게로부터 마게도냐와 아가야에만 들릴 뿐 아니라 하나님을 향하는 너희 믿음의 소문이 각처에 퍼진고로 우리는 아무말도 할 것이 없노라”고 했습니다. 데살로니가 교회는 소문이 각처에 퍼지므로 사도들이 그 교회에 대해서 구지 설명할 필요조차 없다는 것입니다.
이에 이 교회에 부언한다면 3절에서 전하는 것과 같이 믿음의 역사 사랑의 수고 소망의 인내가 있던 교회입니다. 오늘날도 각 교회들이 초대교회나 이 데살로니가 교회처럼 좋은 소문이 나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므로써 부흥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각자의 노력이 무엇보다도 요망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 성도들은 이 점을 유념하여 교회 부흥을 하는 일에 노력을 해야 할 것입니다.
앉은뱅이를 일으킨 기적(행 3: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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