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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빚진 자들의 교회 (행 11:1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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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 여러분이 누군가에게 빚을 져본 경험이 있다면, ‘빚진 자’란 말이 얼마나 부담스럽고 떳떳치 못한 것인지 잘 알고 있을 것 입니다. 그런데 바울 사도는 자기 자신을 ‘빚진 자’라고 서슴없이 말할 뿐만 아니라(롬 1:14), 그리스도인인 우리 모두가 다 ‘빚진 자’라고 말하고 있습니다.(롬 8:12) 대체 우리가 무슨 빚을 졌다는 말입니까 그것은 ‘복음의 빚’ 입니다. 오래 전 죽을 수 밖에 없는 우리들을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심으로써 값없는 은혜를 베푸신 예수님께 ‘생명의 빚’을 진, 그래서 그 빚을 우리처럼 죄로 죽어 가는 이웃들에게 갚아야하는 ‘빚진 자들’이 바로 ‘당신과 나’인 것 입니다.
이러한 ‘거룩한 부담감’으로 가득차서 열심히 일하던 교회가 있었습니다. 그 교회가 바로 오늘 본문 말씀에 소개된 ‘세계 선교 본부’로 세움 받은 ‘안디옥 교회’입니다. 이 ‘빚진 자들의 교회’는 과연 어떤 모습이었을까요
첫째로, 안디옥 교회는 순교자의 정신을 가진 성도들이 세운 교회였습니다.(19-21절)
이 교회는 스데반의 순교로 인하여 흩어진 그리스도인들이 세운 교회 입니다. 이들은 예수를 믿고 축복은 커녕 도리어 돌로 맞아 죽은 스데반의 운명을 보고 들었던 사람들 이었습니다. 이들은 예수를 믿고 부자는 커녕 가지고 있던 가산과 정든 고향 마저도 잃고 피난 길에 올라야만 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예수를 전해야만 했던 이유는 무엇 이었을까요 나 같은 죄인 살리신 그 은혜를 보답하기 위해서 였을 것 입니다! ‘나는 주님께 빚진 자다.’‘이 은혜를 보답하는 길은 주님의 십자가 위의 남은 고통을 덜어 드리기 위해 이 한 목숨 걸고 영혼을 구하는 것이다.’‘나는 참으로 빚진 자다!’
둘째로, 안디옥 교회는 평신도 중심의 교회 였습니다.(20-21절)
안디옥 교회의 설립자들은 이름도 없는 평신도들 이었습니다. 후에 예루살렘 교회에서 바나바를 파송하였으나, 그 역시 ‘평신도 선교사’ 였습니다. 아마 이 교회가 오늘 날처럼 몇몇 안수 받은 지도자나, 전문적인 교역자들에게만 모든 책임을 맡겼다면 세계 선교의 중심지로써의 안디옥 교회는 존재하지 않았을 것 입니다. 교회가 힘써야 할 것은 ‘빚진 자’의 자세를 가진 평신도들의 ‘작은 목자화 훈련, 입니다.
셋째로, 안디옥 교회는 합심하여 실천하는 교회 였습니다.(29-30절)
사실 사도행전 13장 1절에 의하면 안디옥교회의 구성원은 천태만상 이었습니다. 바나바는 유대인, 시므온은 니게르-흑인, 루기오는 구레네인-아프리카 사람, 그리고 마나엔은 왕족 등, 이렇게 각기 다른 인종, 다른 계층의 사람들로 구성 되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하나’가 되어 선교 계획을 수립하고, 또 실행하였던 것 입니다.

사랑하는 벧엘의 성도 여러분! 오늘 이 벧엘은 ‘빚진 자들의 교회’ 입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빚을 갚아야겠다’는 ‘거룩한 부담감’에 사로잡혀 우리 모두 멀리 있는, 그리고 가까이 있는 이웃들에게 그리스도의 생명의 복음을 전합시다. ‘나는 빚진 자라!’ 이것은 우리 모두의 고백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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