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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인자의 온 것은 (눅 19: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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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께서 이제 마지막으로 예루살렘에 올라가시는 길이었습니다. 도중에 여리고 성을 지나가시게 되었습니다. 여리고는 팔레 스타인 안에서 가장 아름다운 거리 중의 하나입니다. 요단강 서편에 있습니다.
예루살렘에서는 70리 거리가 됩니다. 갈릴리 베뢰 아 지방에서 예루살렘으로 갈 때 꼭 여리고를 지나가는 것이대략이었고 거기서 유숙하는 것이 보통이었습니다. 교통 통상이 좋은 곳입니다. 특히 종려 나무, 감람 나무가 우거진 곳으로서 향기로운 거리라고 하는 별명이 있었습니다. 농업, 상업이 번창한 곳입니다. 옛날 한국에서 평양 감사 자리를 다투었듯이 이러한 여건에 있는 여리고 세관장의 자리는 전 팔레스타인의 총 책임자 의 자리일 뿐만 아니라, 가장 돈을 모으기 좋은 자리가 되어서 경쟁 대상이었다고 합니다.
누가 복음 19장 1절 이하를 보면 예수님께서 마지막으로 예루살렘에 올라가시는 길에 여리고 성에 들리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 의 최후 여행 길에 가장 놀라운 혁명적인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여리고 성의 세리 장(長) 삭개오가 구원을 얻었다고 하는 사실입니다. 당시 유대인들로서는 도저히 생각조차 할 수가 없는 사건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나 심지어 삭개오 자신마저도 미리 측도 못했던 일입니다. 누가복음 19장 이 본문에 보니까 "삭개오는 세리 장이요 또한 부자"라고 기록되었습니다. 당시 여리고를 포함한 팔레 스타인 전역이 모두 로마 제국의 통치 하에 있었습니다. 로마 제국은 지중해를 중심해서 서쪽으로는 불란서, 스페인, 남쪽으로는 아프리카 대륙 연안 지방까지를 영토로 하는 초(超) 대제국이었습니다. 로마 황제는 세금을 받아내기 위해서 그 지방 사람을 택해서 청부를 주어 징수를 했습니다.
청부 맡은 사람은 또 많은 사람을 고용하여 백성들에게서 세를 받아냈습니다. 삭개오가 세 리 장이었다고 하는 것은 로마 제국으로부터 청부 맡은 사람으로서 많은 부하를 두고 세를 거둬들이는 사람이었다고 하는 뜻입니다. 여리고 성은 교통이 좋은 도시였습니다. 경제적으로 풍부한 도시이고 또 수출입 품이 많은 상업 중심처였습니다. 그리고 요단강 가에 위치한 피서(避暑), 피한(避寒)의 유흥지이기도 했습니다. 여리고 성은 팔레스타인 최고의 세액을 취급하는 곳이어서 세무 행정 상으로는 전 팔레스타인 총 책임을 겸하였습니다.
대부분의 유대인들은 로마 제국의 통치 하에서 아무런 혜택을 입지 못하고 도리어 착취를 당하였기 때문에 가난하게 살았습니다 . 그런데 같은 유대인이면서 삭개오는 가장 중심 도시 여리고에 큰 집을 가지고 있고 또 로마 제국의 권세로 돈을 가장 많이 만 지는 여리고 세리 장의 자리에까지 올라간 것입니다. 세속적인 입장에서 말하면 삭개오는 돈도, 지위도, 권세도 가지고 있는 성공자였습니다. 그런데 본문 7절에 삭개오의 집을 "죄인의 집"이라고 불렀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삭개오의 집을 " 죄인의 집"으로 다시 말하면 존경과 부러움이 아니라 싸늘한 멸시의 눈으로 보았던 것입니다. 로마 제국이 그 지방 사람을 택해서 청부를 주되 높은 액수의 세를 부과했습니다. 그 지방 사람이라야 그 지방 사람들의 생활 내면을 자세히 알게 되고 또 받아내는 일이 가능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당시 세리라고 하면
원수의 나라에 자기를 팔아서 이 웃, 동족의 기름을 짜듯이 지나친 세금을 거둬 바치는 그런 일을 했습니다.자기만 판 것이 아니라 조국까지 팔아서 명예, 권세 를 누리며 이(利)를 탐하는 이기적인 인생인 것입니다.더욱이 법률적 세액 이상으로 과중하게 착취해서 사복(私腹)을 채우는 방 법을 썼습니다. 모든 세리들이 다 그렇게 했다고 하면 세리 장이니 말하자면 "죄인의 괴수"인 셈입니다.또 종교적으로도 이렇게 남을 괴롭히고 욕심에 끌리는 생활을 하였기 때문에 용납할 수가 없었고 또 안식일에도 일하는 생활을 하였고 종교적 율법을 지킬 수 없었기 때문에 배교자(背敎子) 취급을 당했습니다.
당시 모든 사람들은 "세리와 창기" 라고 말할 정도로 세리는 창기와 같은 죄인으로 멸시했습니다. 어떤 주석가의 말대로 여리고에서 제일 큰 도적놈, 죄인은 세리 장 삭개오였을 것입니다. 그런데 본문 3절에 보니까 "저가 예수께서 어떠한 사람인가 하여 보고자" 하였다고 했습니다. 삭개오가 예수님을 보 고자 했던 것입니다. 먼저는 호기심에서 예수님을 보고 싶어했을 것입니다. 이미 팔레스타인 전체, 모든 유대인 뿐만 아니라 헬 라 사람, 로마 사람들에게까지 예수님에 대한 소문이 퍼져 있었습니다.
위대한 선지자, 종교 지도자, 이스라엘의 해방자, 정의의 사람, 사랑의 사람 등 온갖 칭호가 붙어서 여론이 퍼져 있었을 것입니다. 한번 꼭 뵙고 싶은 마음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 중 에서 북쪽 가버나움 지역의 세리였던 마태가 예수님의 제자가 되었다고 하는 사실이 삭개오에게는 좀 더 호기심이 갔을 것입니다 . 다른 종교인들은 세리와는 상대조차 아니하는데 세리를 직접 제자로 삼기까지 하셨다는 것에 놀라기도 하였고 마음이 끌려 한번 만나 보고 싶기도 하였을 것입니다. 또, 한 가지는 자기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영적인 목마름이 있었던 것이 사실일 것입니다. 겉으로는 큰 집에 살고, 돈 많고, 권 세를 누리지마는 하나님을 멀리 떠난 고독감, 죄를 지은 죄책감, 사람들과의 단절에서 오는 적막감이 삭개오의 심령을 한없이 괴 롭혔을 것입니다. 한밤중에 혼자서 영혼의 신음을 내었을 것입니다.
양심의 아픔을 견디지 못해서 고민하며 통곡하고 울었을는지 도 모릅니다. 구체적으로 그런 지경에까지 못 갔다고 하더라도 무엇인가 나에게는 근본적 변화가 와야 한다고 하는 강한 충동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지나가신다는 말을 듣자마자 달려나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예수님 앞에 나아갔는데 직접 뵈올 수가 없었습니다. 두 가지 이유 때문입니다. 하나는 사람들이 많아서 예수님 앞에 나아가기 어려웠습니다. 오늘날도 예수님 앞에 나아가는 데 사람이 방해되는 일이 많습니다. 예수 믿는 목사가 거짓말을 한다, 예수 믿는 장로가 돈을 떼먹는다, 예수 믿는 집사가 싸움만 한다, 예수 믿는 사람들이 더욱 인색하다..... 사람들을 보고 예수님 앞으로 나 아가는 것을 꺼려하는 수가 많이 있습니다. 이런 경우에 사람들이 방해가 되는 것입니다. 혹은 세상의 철학, 사상, 유행, 주위 풍습 이런 것들이 예수님 앞에 나아가는 데 방해가 되기도 합니다. 이 모두가 사람들 때문에 방해를 입는 것입니다.
또 다른 하나는 키가 작았습니다. 오늘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께서 모든 문제 해결자이시라는 확신의 키가 작은 사람은 적 극적으로 그 앞에 나아가는 데 주저합니다. 만사를 제외하고 예수님께로 나아가리라고 하는 열심의 키가 작은 사람은 중도에 어 려움이 있으면 그만 두게 되는 것입니다. 대부분 큰 은혜를 받지 못하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이 부족해서가 아닙니다. 그리스도의 은혜가 모자라서가 아닙니다. 받아야 할 나 자신의 간절함과 열심의 키가 작아서 받지 못하는 것입니다.
삭개오는 낙심하지 않았습니다. 뽕나무에 올라갔습니다. 이 뽕나무라는 것은 팔레스타인이면 어디에나 있는 나무로 잎은 뽕나무 와 같고 나무는 무화과와 같이 키가 상당히 큽니다. 정확하게 이름을 붙인다면 "무화과 뽕나무"라고 해야 맞을 것입니다. 잎이 무성하며 밑에서부터 굵은 가지가 옆으로 많이 뻗어있어 올라가기가 쉬운 나무입니다. 키 작은 삭개오가 올라가기에는 아마 더욱 편리했을 것입니다. 나무에 올라 가면 밑에서는 잎이 가리워서 잘 올려다 보이지 아니하고 위에서는 잘 내려다 볼 수 가 있는 나무입니다. 삭개오는 예수님을 뵈올 마음은 간절했지마는 자기 모습을 여러 사람 앞에 드러내는 것은 좀 꺼려하는 마음 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바로 그 앞에 오시더니 "삭개오야, 속히 내려 오라.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한 번도 만난 일이 없었는데 이름을 분명하게 부르셨습니다. 그 순간 삭개오는 내 이름뿐만 아니라 과거 나의 생활 전체를 하나도 모르시는 것 없이 다 알고 계시는 분이시구나 하는 것을 직감할 수가 있었습니다. 예수님을 직접 대면하는 사람은 누구나 "내가 주님을 떠났을 뿐이지 예수님께서는 언제 어디서나 곁에 계셔서 지켜보시는구나. 모르시는 것이 없으 신 주님이시구나" 하는 것을 강하게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오늘 내가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 하는 이 말씀의 원어의 뜻을 살려 좀 더 가까이 번역하면 "내가 네 집에 유하러 왔노라"하는 뜻의 말씀이 됩니다. 삭개오가 더욱 놀라지 아니할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미리 계획하시고 내 집에 오 시기 위해서 여리고에 들리셨구나 하는 것을 확인할 수가 있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또 놀라운 것은 "삭개오야, 네가 회개하 고 마음을 고쳐먹고 생활을 깨끗이 하면 네 집에 가도록 하겠다. 어떻게 하겠느냐 결단을 내려라" 그렇게 말씀하시지 아니하였습니다. "이미 네 생활을 알고 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너를 사랑하신다. 너는 구원 얻을 수 있는 사람이다" 그런 뜻으로 말씀해 주신 것입니다.삭개오는 더 지체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속히 내려와서 예수님을 자기의 집에, 자기의 마음에 영접했습니다.그리고 예수님 앞에 "주여, 보시옵소서.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어 주겠사오며 만일 뉘 것을 토색한 것이 있으면 사배 씩 갚 겠나이다." 그렇게 말했습니다. 근본적으로 회개한 것입니다. 삭개오는 변화되었습니다. 사랑이라고는 도무지 없던 생활이었는데 사랑이 생겼습니다. 감사가 없 는 생활이었는데 감사가 생겼습니다. 기쁨이 하나도 없었는데 기쁨이 생겼습니다.
생명이 없는 생활을 했었는데 생명의 힘이 솟 구쳐 올랐습니다. 하나님을 의식하지 못하고 살아왔었는데 하나님 앞에서 솔직하게 다 털어놓고 회개하게 됐습니다. 이웃이 없는 생활을 해 왔었는데 모든 것을 나누어주고 해친 것을 싸매어 주려고 하는, 이웃을 의식하는 생활이 된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찾아오시자 모든 것이 회복된 것입니다.
우리가 명심해야 할 것이 하나 있습니다. 삭개오가 구제하고 사 배씩 갚게 되니까 구원이 오게 되었다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오히려 그 반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회개하고 구원 얻게 되니까 베풀어주게 되고 남을 위해서 도와주 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선언하셨습니다. "오늘 이 집에 구원이 이르렀도다" 다시 말하면, 오늘 이 집이 모두 완 전하게 구원을 얻었다는 것입니다. 여리고 성은 물론 이스라엘 전체에서 단 한 사람도 삭개오가 구원을 얻으리라고는 생각해 본 일이 없습니다. 도리어 구원을 받아서는 안되는 사람이라고 생각해 왔을 것입니다. 그런데 완전히 구원 얻은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완전히 희망이 없는 죄인을 완전히 구원해 주시는 분이십니다. 남편을 다섯씩 얻어서 아주
타락된 생활을 하던 사 마리아 여인, 또 현장에서 간음하다 잡혀온 간음녀, 귀신 일곱이나 걸려 아주 속된 생활을 하던 막달라 마리아, 살인 강도나 일 삼던 죄인까지 마지막 십자가 상에서 구원해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완전한 죄인을 완전히 구원해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아시고, 찾아 주시고,부르실 때 응답하고, 영접하며 회개하면 됩니다. 그렇게 했을 때 우리들의 과거가 아무리 완 전 구원 얻기 힘든 완전 죄인일지라도 완전 구원 얻게 해 주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왜 삭개오를 위해 찾아와 주셨는가 하는 점입니다.
한마디로 "잃어버린 자"이기 때문에 찾아와 주셨다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인간들 창조해 주시고 또 우리 인간을 다스리시는 주인이십니다. 우리 인간들이 범죄로 인해서 하나님의 품을 떠났을 뿐입니다.하나님께서는 잃어버려진 인간을 그대로 두실 수가 없어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 주신 것입니다. 인간은 하나님 아버지 품으로 돌아 가여야만 비로소 인간의 가치가 생기고 또 사는 보람이 있게 되는 것입니다. 성 어거스틴(St. Augustinus), 회개하고 돌아와서 당신의 품에 돌아오기 전에는 위로가 없었다고 고백합니다.
그렇습니다. 하나 님의 품을 떠난 인간은 아무런 위로도 있을 수가 없고 보람도 있을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집을 나간 둘 째 아들을 찾으시는 아버지의 심정으로 기다리시고 또 기다리시는 것입니다. 죄로 고민하는 심령이 있습니까 생의 고통을 느끼고 피곤해졌습니까 고독과 실패로 슬퍼졌습니까 모두 하나님께로부터 잃어 버려진 상태라고 하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잃어버린 자"를 찾으러 오셨습니다. 우리들도 잃어버려 진 자리에서 일어나서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그리스도를 말미암은 사죄 구원을 경험하도록 하십시다. 삭개오의 구원이 오늘 우리 들의 구원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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