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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그 아홉은 어디에 있느냐 (눅 17: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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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은 성경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로마서 1장 16-17절에서 "내가 복음 을 부끄러워 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첫째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헬라인에게로다 복음에 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기독교 신앙의 핵심을 가장 일목요연하게 보여주는 말씀으로서 성경전체를 통해 하나의 요절로 삼을 수 있는 중요한 말씀입니다.

이 말씀이 강조하는 것은 인간의 구원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기독교 신앙의 핵심적인 진리로서 예수님께 서 성육신하셔서 우리의 죄를 대속하시기 전인 구약시대에서도 동일하게 적 용되었습니다. 바울은 로마서 4장에서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을 통해 이 사실을 우리에게 증거하고 있습니다.

"저가 할례의 표를 받은 것은 무할례시에 믿음으로 된 의를 인친 것이니 이는 무할례자로서 믿는 모든 자의 조상이 되어 저희로 의로 여기심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롬 4:11) 이 말씀은 아브라함이 할례라는 율법을 행하므로 서 의롭다함을 얻고 구원을 얻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믿음 을 보시고 이미 의로 여기신 것을 인침이 할례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 다. 다시말해 아브라함은 율법의 행위로가 아니라 하나님을 믿음으로 의롭 다하심을 얻은 것입니다.

창세기 15장 6절은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의라고 하는 말은 구원을 말합 니다. 즉 하나님께서 장차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어 인류의 죄를 대 속하심을 믿는 믿음이었습니다.

사람이 구원을 받는 것은 공로에 의해서가 아닙니다. 바울은 에베소서 2장 8-9절에서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나 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니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구원의 믿음 또한 우리에게서 나온 것이 아니라 성령을 통하여 우리의 마음 을 이끌어 주시는 하나님의 선물이라는 것입니다.

구원의 신앙은 예수를 그리스도를 만남으로써 시작됩니다.

오늘 본문인 누가복음 17장 말씀은 이러한 구원신앙이 예수 그리스도를 만 남으로써 시작됨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가실 때에 사마리아와 갈릴리 사이로 지나가시다 가 한 촌에 들어가시니 문둥병자 열 명이 예수를 만나 멀리 서서"(눅 17:11-12) 이 말씀이 우리에게 강조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이 말씀은 예수 님께서 예루살렘으로 가시다가 어느 한 촌을 스스로 찾아 가셨다는 사실, 즉 예수님께서 능동적으로 동작하신 그 행위를 통해 열명의 문둥병자가 예 수님을 만날 수 있었다는 사실을 강조합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만나주신 그 문둥병자들은 어떤 사람들이었습니까 그 당시 문둥병이라는 것은 어떠한 의술로도 고칠 수 없는 불치의 병이었습니 다. 또한 그들은 유대사회로부터 완전히 격리된 사람들이었습니다. 문둥병 살면서 머리를 밀고 손으로 입술을 가리며 부정하다 부정하다라고 소리지르 면서 다른 사람이 가까이 오지 못하도록 이른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소리를 질러야 했습니다.

이 얼마나 절망적이고 고독한 상황입니까 바로 이러한 절망적인 자리에 빠져있는 사람,고독한 사람에게 예수님께서 찾아오셔서 만나 주시고 그들의 병을 치료해 주시는 사건이 오늘 본문 말씀에 기록되어 있는 것입니다.

사람이 병에 걸려있을 때는 육체적인 고통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고통도 이 루말할 수 없는 고통스러운 때입니다. 이런 육체의 고통과 정신적 고통이 우리를 에워쌀 때에, 우리가 그러한 고통속에서 헤어나지 못할 때에 예수님 은 그 병마의 장벽을 뚫고 우리에게 찾아오십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건 강한 자에게는 의원이 쓸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데 있느니라 너희는 가 서 내가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하노라 하신 뜻이 무엇인지 배우라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마 9:12-13)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육체의 고통 가운데에, 사람들로 부터 철 저히 외면당한 고독 가운데에 주님은 찾아오셔서 위로해 주시고 치료해 주 시고 우리를 책임져 주십니다. 또한 주님은 우리가 당하는 질병과 고독까지 도 우리를 주님께로 달려가도록 매개적 수단으로 기꺼이 사용해 주십니다.

구원의 신앙은 순종함으로 나타납니다.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영접하여 구원을 받은 사람의 신앙은 순종으로 나타 납니다. 본문 14절의 "가서 제사장들에게 너희 몸을 보이라 하셨더니 저희 가 가다가 깨끗함을 받은지라"에서 보면 열명의 문둥병자들은 가다가, 다시 말해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순종하다가 불치의 문둥병이 났는 기적을 체험했습니다. 이 말씀은 또한 순종없는 신앙은 기적의 역사와 구원의 역사 를 완성할 수 없다는 것을 암시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가서 제사장들에게 너희 몸을 보이라"는 예수님의 말씀은 무엇을 뜻합니 까 그 당시 제사장들은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는 영적사역만 감당한 것이 아니라 피부병 환자들을 검진하여 문둥병자와 피부병환자들을 검진하여 문 둥병자와 피부병환자을 구분하고 피부병환자는 집으로 돌려 보내고 문둥병 자는 격리시키도록 조치했습니다.문둥병자들은 병으로 고생을 하다가도 고 침을 받으면 제사장에게 가서 병이 나았는가를 진찰하여 고침을 받은 것으 로 판명이 나면 가정으로 돌아갈 수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말씀으 니 '너희가 이미 고침을 받았다'고 하는 약속이요, 축복의 말씀인 것입니 다.

그런데 문둥병이 여전한 상태에서 그들에게 하신 예수님의 말씀은 현실과 맞지않는 너무나 모순된 말씀인 것입니다. 성경말씀에는 이처럼 현실과 맞 지 않는 모순된 말씀처럼 보이는 구절이 많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사 람의 생각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고 도저히 납득이 가지 않는 말씀일지라도 우리가 주님의 말씀을 그대로 순종할 때에 이적의 역사가 일어나고 하나님 의 능력을 체험하는 축복이 있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사람의 지혜로 다 이해가 간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아닌 것입니다.

하나님은 인간과 타협하지 않으시고 역사를 초월하여 영원부터 영원까지 말 씀대로 이루어지는 축복의 말씀을 우리에게 주셨지만 우리는 죄인이기 때문 에 하나님의 진리가 깨달아지지 않을때 '모손이다','이율배반이다','잘못됐 다'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이해가 되지 않고 내 생각에는 모순된 것 같아도 그대로 믿고 순종하면 그 순종으로 말미암아 여러분의 생활에 기적적인 역사가 살 아 움직일 것입니다.

구원의 신앙은 감사하는 생활로 나타납니다.

감사생활은 신앙의 최고봉이라고도 말할 수 있습니다. 본문 15-16절 말씀 은 "그 중에 하나가 자기의 나은 것을 보고 큰 소리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 리며 돌아와 예수의 발 아래 엎드리어 사례하니 저는 사마리아인이라"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느김을 통해서 감사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을 아시기 때문에 우리가 마음 속에 참 감사하다고 느끼는 것으 로도 감사를 표현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마음을 입술로 고백하고 물질 로 감사하는 것은 더 귀한 일입니다. 예수님께서 보리떡 다섯개와 물고기 두마리를 가지고 하늘을 향하여 축사하시며 감사하셨을 때에 오천명이 족히 넘는 무리를 다 배불리는 오병이어의 기적이 일어났듯이 감사의 생활에는 축복이 있고 은혜가 더욱 충만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 세상을 바라보면 은혜를 많이 받은 사람은 많지만 감사하는 사 람들은 적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서도 은혜를 입은 사람은 열명이지만 다 한 사람만이 그것도 유대인들에게 멸시와 천대를 받던 사마리아인만이 감사 를 드린 것입니다. 이처럼 오늘날에도 하나님의 은혜는 갈구하지만 받은 은 혜를 감사할 줄 모르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로마서 1장 21절은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으로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 치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알기는 알지만, 예수를 믿기는 믿지만, 교회는 나오지만, 예배는 드리지만 감사생활이 없는 것이 말세의 신자들의 사고바익이요, 해동양식인 것입니다. 본문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이 이방인 외에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러 돌아온 자가 없느냐"라고 탄색하셨습니다.

헬라의 유명한 법학자인 라이피콥스라는 사람은 말하기를 감사할 줄 모르 는 자들에 대하여 벌을 주는 법을 만들지 아니한 까닭은 하나님께서 감사할 줄 모르는 사람에게 지금 벌을 내리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습니다. 이 세 상의 어떤 법도 감사하지 않는다고 벌을 주지는 않습니다. 성경에도 범사에 감사라라고 말씀하고 있지만 감사하지 않는다고 하여 지옥에 가지는 않습니 다.그러나 하나님게서는 가정에, 자녀에, 사업에, 건강에 하나님의 방법으 로 감사를 모르는 사람을 향해 징계하고 계십니다. 감사에 메마른 사람은 신앙이 없는 사람이빈다.

여러분 무엇을 감사해야 할까요 우리 성도들은 먼저 예수 그리스도께서 날 위하여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심으로써 우리를 죄와 사망에서 해방시켜 하나님의 백성삼으신 것을 감사해야 합니다. 감사할 제목이 없는 사람은 없 습니다. 감사할 제목을 찾아 보십시오.

미국의 로버트 슐러 목사는 그의 여비서가 암진단을 받고 절망에 빠져있을 때 여비서와 함께 하나님의 능력으로 고쳐달라고 절망하지 않게 해달라고, 일어서게 해달라고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그때 여비서의 마음 속에 놀라운 변화가 일어났스빈다. 절망에 빠져있던 그녀가 "하나님! 감사하빈다"라고 고백하게 된 것입니다. 그녀는 비록 암에 걸렸지만 말기암에 걸리지 않은 것을 감사했고, 세계에서 암의학이 가장 발 달한 미국에 살고 있는 것을 감사했습니다. 또한 자신의 주변에 자신을 위 로해 주고, 힘을 주고, 기도해주고, 용기를 주는 남편과 이웃이 많은 것을 감사했습니다. 그녀는 거기에서 감사의 조건을 찾은 것입니다.

본문 13절에 보면 열명의 문둥병자들은 소리 높여 기도했습니다. 문둥병이 심하면 성대가 상하여 소리를 내기도 힘들어지는데 이들은 그럼에도 불구하 고 열정적으로 기도하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제사장들에게 가라고 하는 말 씀대로 순종하며 갔습니다. 기도는 열심히 하고 순종한다고 했는데 그들 중 에 아홉사람은 감사할 줄 몰랐스빈다.

이처럼 우리들 중에도 기도자리엔 안 빠집니다. 순종합니다. 그러나 생왈 에 전혀 감사가 없는 사람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그 아홉은 어디에 있느 냐"라고 질몬하십니다. 여러분 범사에 감사하십시오. 어떤 사람은 은혜를 받으면 감사하겠다고 하면서 은혜를 기다립니다. 그러나 감사함으로 오는 은혜를 받으십시오. 이것이 참된 신앙입니다. 범사에 잘되나 안되나, 망하 나 흥하나, 죽음이 있거나 삶이 있거나 감사할 수 있는 믿음의 여러분이 되 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을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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