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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긴 여정의 종착점 (창 45:1-28)

첨부 1


요셉의 슬프고 지루하고 영화로운 여정의 길은 이제 그 종착점에 도달하였습니다.
자신의 정체를 밝히려는 순간에 그는 가슴에서 치솟은 눈물을 억제할 수 없었습니다.
요셉이 소리질러 “모든 사람을 내게서 물러가게 하라” 고 한 말에도 묘미가 있습니다.
그는 형제들에게 정체가 당장 드러나기를 원치 아니하였으며 시종 하는 자들이 알아듣지 못하도록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나서 자기의 정체를 밝히고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 앞서 보내셨나이다” 라고 했습니다.
이렇게 말함은 그들의 후회와 슬픔을 달래려는 행위이기만 한 것은 아닙니다.
요셉은 이모든 일들은 하나님의 섭리 속에 이루어진 사실이라는 것을 말하며, 또 자기의 삶의 여정을 돌아보는 방법이기도 했습니다.

1.요셉은 언제나 하나님께로부터 일이 시작되고 끝이 난다는 것을 고백합니다.
요셉은 그의 지위가, 감옥에 있든지, 꿈을 해석하는 자리에 있든지, 오늘의 극적인 순간에 있든지, 그에게는 하나님의 섭리의 시각으로 모든 것을 살피는 귀한 믿음이 살았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인간의 간악함과 배반 중에도 섭리로 역사 하시는 하나님의 행적을 살펴보는 것이 그의 습관이었습니다(창50:22)
(창50:21) 당신들은 두려워 마소서 내가 당신들과 당신들의 자녀를 기르리이다 하고 그들을 간곡한 말로 위로하였더라
(창50:22) 요셉이 그 아비의 가족과 함께 애굽에 거하여 일백 십세를 살며
(삼하12:10) 이제 네가 나를 업신여기고 헷 사람 우리아의 처를 빼앗아 네 처를 삼았은즉 칼이 네 집에 영영히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셨고
(삼하12:11) 여호와께서 또 이처럼 이르시기를 내가 네 집에 재화를 일으키고 내가 네 처들을 가져 네 눈 앞에서 다른 사람에게 주리니 그 사람이 네 처들로 더불어 백주에 동침하리라
(삼하12:12) 너는 은밀히 행하였으나 나는 이스라엘 무리 앞 백주에 이 일을 행하리라 하셨나이다
(삼하16:21) 아히도벨이 압살롬에게 이르되 왕의 아버지가 머물러 두어 궁을 지키게 한 후궁들로 더불어 동침하소서 그리하면 왕께서 왕의 부친의 미워하는바 됨을 온 이스라엘이 들으리니 왕과 함께 있는 모든 사람의 힘이 더욱 강하여지리이다 (삼하16:22) 이에 사람들이 압살롬을 위하여 지붕에 장막을 치니 압살롬이 온 이스라엘 무리의 눈앞에서 그 부친의 후궁들로 더불어 동침 하니라
(삼하19:21) 스루야의 아들 아비새가 대답하여 가로되 시므이가 여호와의 기름 부으신 자를 저주하였으니 그로 인하여 죽어야 마땅치 아니하니이까
(삼하19:22) 다윗이 가로되 스루야의 아들들아 내가 너희와 무슨 상관이 있기로 너희가 오늘 나의 대적이 되느냐 오늘 어찌하여 이스라엘 가운데서 사람을 죽이겠느냐 내가 오늘날 이스라엘의 왕이 된 것을 내가 알지 못하리요 하고
(삼하19:23) 시므이에게 이르되 네가 죽지 아니하리라 하고 저에게 맹세하니라
다윗도 시므이의 저주와, 압살롬의 반란 중에도 하나님의 목적이 끊임없이 이루어지는 것을 보았습니다.
예수님도 유다의 배반이 가까움을 보시고
(막14:21)“인자는 자기에게 대하여 기록된 대로 가거니와 인자를 파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으리로다 그 사람은 차라리 나지 아니하였더면 제게 좋을뻔하였느니라 하시니라 ” 라는 말씀을 남기셨습니다.
그리고 아버지의 원대로 그 잔을 마셔야 함을 밝히십니다.
(막14:36)“가라사대 아바 아버지여 아버지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오니 이 잔을 내게서 옮기 시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시고”
그러므로 우리도 어떤 고통과 기쁨도 하나님의 섭리로 매듭짓는 신앙을 소유하는 것이 시급한 우리들의 과제입니다.
요셉의 고백은 언제나 조용하면서도 질서 있게 하나님의 섭리를 표시합니다.

2.하나님께서는 악인을 통해서도 역사 하십니다.
하나님의 역사가 이 땅에 펼쳐지는 데 의인만이 사용되는 것은 아닙니다.
때로는 너무나 뜻밖의 악인들이 등장되고 그들의 행동에서 상처를 받고 괴로워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악인을 통해서도 목적을 이루시고 계심을 봅니다.
인간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하나님께서 자신의 계획을 수행하는 것은 설명할 수 없는 하나님의 신비입니다.
우리가 이것을 설명할 의무는 없습니다.
그러나 솔직히 우리가, 숨겨진 하나님의 거룩한 목적을 이루기 위하여 악인의 손에 고통받는 것은 당황스럽고 어려운 일임에 틀림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거기에 하나님의 섭리가 있는 경우가 적지 아니하다는 것입니다.
요셉이 잔인한 인간성의 소유자들이었던 형들의 손에 의하여 팔려 갈 때 누가 그들을 하나님이 사용한다고 생각을 했겠는가

3.바울의 로마 전도의 출발도 하나님의 섭리라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바울이 로마에 복음을 전하게 된 것은 유대인들의 증오 때문이었습니다.
결국 그들의 살해 결의로, 바울은 왕의 경비로 로마까지 복음 전도 여행을 하게 되었음을 볼 수 있습니다.
풍랑이 거셀 때 우리는 하나님이 방향키를 잡고 게시니 우리는 안전합니다.
사람이 진노하더라도 하나님은 찬양을 받으십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요셉을 구덩이와 감옥에 던짐을 받도록 허락하셨으나 빛 가운데로 나올 길을 열어 두셨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정하시고 섭리하시는 하나님을 찬양하며 주어진 현실 속에서 감사하는 참된 생활이 되시길 바랍니다.
“적 용”1).나의 영광스러운 순간에 우리는 그 공로와 원동력을 누구의 것으로 고백하는가를 생각 해보아야 합니다.
우리는 대부분 나를 끌어주고 밀어준 사람만을 생각하게 되고,
2).나는 나에게 해와 괴로움을 주는 사람을 증오하고 있을 수 있을 가능성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를 하나님이 사용하시어 나를 연단 시키시고 그 연단을 통하여 앞으로의 큰 사명을 감당하게 하신다는 사실을 생각해 보시길 바랍니다.
3).우리 주님의 가시밭길도 바울의 장엄한 전도의 결실도 모두가 괴롭게 생각하는 사람들의 등장에 의하여 이룩되었다는 기록을 우리는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를 생각해 보셔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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