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끝이 아닌 시작 (요 19:28-30)

첨부 1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실 때 십자가에 달린 채 하신 일곱 마디 말씀들을 가리켜 가상칠언이라고 부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 상에 6시간, 구체적으로 말씀드리면 오전 9시부터 오후 3시까지 달려 계셨는데, 오전에 3 마디, 오후에 4 마디 말씀하셨습니다. 그중에서 본문은 오후에 말씀하신 제5언 “내가 목마르다”라는 말씀과 제6언 “다 이루었다”라는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두 말씀은 가상 칠언 중 가장 짧은 특징도 갖고 있습니다. 헬라어로 보면 내가 목마르다는 ‘딥쏘’, 다 이루었다는 ‘테텔레스타이’(It has been finished) 등 각각 한 단어로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이 짧은 말씀 중에 얼마나 중요한 뜻이 함축되어 있는지 음미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오늘은 “다 이루었다!”는 말씀을 살펴봅니다. 30절 보면 예수님이 마지막 고통 중에 괴로워하시다가 입을 열어 “다 이루었다!”고 외치셨습니다. 본문에는 기록이 안 되었습니다만, 그 직후 “아버지여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라고 말씀하시고 운명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운명하시기 직전 마지막에 한 말씀으로 봐도 무방할 것입니다.
예수님은 당신이 지상에서 맡은 사명을 다 성취하셨음을 확인하고 승리의 기쁨으로 환희로 외치신 겁니다. 비록 극한 고통 중이어서 그 외침이 우렁차지 않았을지 모르지만 주위의 어두컴컴한 분위기(정오부터 사방이 칠흑같이 어두워지는 이적이 있었음)와 더불어 장엄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소리였음에 틀림이 없습니다. 아마 예수님은 고통 중에라도 흡족한 마음으로 평안하게 운명하셨으리라 짐작됩니다. 이따금 운명하시는 성도들을 보면, 중병의 고통 중에 괴로워하다가 마지막 운명의 순간에 거짓말처럼 편안해지면서 돌아가시는 모습을 확인하게 되는 것과 비교해 볼 수 있을 겁니다.
그러면 이 말씀은 구체적으로 어떤 의미를 담고 있을까요 문자적으로 보면, 어떤 일을 성취 혹은 완성한 것을 의미합니다. 맞는 말입니다. 그러나 이 말씀은 단순한 완성, 성취 그 이상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 완성과 성취로 말미암아 새로운 것이 시작되었음을 함축합니다. 즉 완성의 선언인 동시에 새로운 시작의 선언인 것입니다.
이해를 돕기 위해 이런 예를 들어보죠. 졸업! 대학을 졸업한다고 하면 우선은 지난 4년 동안 주어진 학업을 다 성취했음을 의미합니다. 얼른 생각하면 ‘끝’입니다. 그러나 진정한 의미에서 졸업은 ‘새로운 시작’입니다. 학교라는 곳에서 일정한 학업을 마치고, 사회에 첫발을 디뎌 놓는 출발점인 것입니다. 말하자면 이미 성취한 것을 기초로 그 기반 위에 새로운 것을 시작하는 의미가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졸업이란 우리 말은 ‘끝’이란 의미를 강조하지만, 영어로 졸업을 의미하는 commencement라는 말은 ‘시작, 출발’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은 완성인 동시에 새로운 시작이라는 사실
입니다. 그러면 과연 무엇이 완성되었고, 무엇을 시작해야 될까 함께 살펴봅니다.
1 완성된 것(예수님이 성취해 주신 것)
예수님은 모든 인류의 죄를 짊어지고 죽었습니다. 요1:2

9. 십자가 죽음은 죄값을 치루는 대속의 죽음입니다.
만일 예수님이 이 일을 하지 않으셨다면 인간은 죄 가운데 멸망합니다. 모든 인간은 죄인이고, 죄의 대가는 영원한 사망이기 때문입니다.
렘17:9-10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이 인간의 마음이라 누가 능히 이를 일리요마는 나 여호와는 심장을 살피며 폐부를 시험하고 각각 그 행위와 그 행실대로 보응하리니 ...”
롬3:23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
롬6:23 “죄의 삯은 사망이요 ...”
이러한 죄를 사하기 위해서는 필히 피흘림이 있어야 합니다. 히9:22 “피흘림이 없이는 사함이 없으니라” 피는 생명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구약 시대에는 성전에서 제사장이 하나님께 짐승의 피를 제물로 바쳤습니다. 이것은 불완전한 예고편에 불과합니다. 그래서 계속 반복되어야 했습니다.
히9:12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아니하고 오직 자기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once for all)
히9:26 “ ... 이제 자기를 단번에 제사로 드려 죄를 없이 하시려고 세상 끝에 나타나셨느니라”
예> 구약의 성막에 제사장용 의자가 없었음. 반면 예수님은 영원한 속죄의 제사를 십자가 죽음으로 단번에 완성하셨기에 부활 승천하셔서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아 계심.
그러니까 예수님은 십자가 죽음을 통해 모든 인류의 죄를 담당하시고, 이제 구원의 길, 영생의 길, 천국 가는 길을 만들어 놓으신 것입니다. 이것은 조금도 불완전한 게 아닙니다. 취소되지도 않습니다. 다른 대안도 없습니다. 유일한 구원의 길인 것입니다. (요14:6, 행4:12)
그러나 아무리 이렇게 구원의 길, 영생의 길, 천국 가는 길을 만들어 놓았다 하더라도 이것에 기초해서 새로운 시작을 하지 않으면 아무런 효과도 보지 못합니다. 그래서 새로운 시작이 필요한 것입니다.
2 새로운 시작(우리가 할 일)
① 믿음으로 구원받는 일
사실 이것은 일도 아닌 일입니다. 그저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받아들임은 대단히 중요한 것입니다. 예수님이 이루어 놓으신 대속의 은혜를 받고 죄사함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느냐, 아니면 여전히 죄 가운데 살다가 지옥의 형벌을 당하느냐가 좌우되는 것입니다. 요1:12, 요3:16,18
요3:18 “저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라”
따라서 믿음이란 가장 단순하면서도 가장 큰 일입니다. 인생 최고의 선은 바로 믿음입니다. 믿음 이상의 일은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도 믿음이 하나님의 일이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요6:29 “하나님의 보내신 자(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니라”
그러므로 여러분, 우리가 만일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의 의미를 그대로 믿고 받아들이지 않으면 그 어떤 일을 한다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심지어 교회에 출석한다 해도, 봉사한다 해도, 헌금을 많이 한다 해도 , ... 모든 것은 믿음 이후에 비로소 의미가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다 이루었다!” 이 말씀은 믿음을 촉구하는 초청의 메세지입니다. 이 초청에 개인적으로 확실하게 응답하는 여러분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② 새 사람의 삶을 사는 일
갈5:24 그리스도인은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박은 사람입니다.
롬6:10-12 우리는 이제 불의의 병기가 아니고, 의의 병기입니다.
엡4:22-24 옛사람을 벗어버리고 새 사람을 입어야 합니다.
고전6:19-20 우리 몸은 주의 것이므로 하나님께 영광을 볼려야 합니다.
이제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로서 과거 옛 사람의 죄악된 삶을 벗어버리고 새로운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이제는 죄와 관계가 없는 그리스도의 종이요, 의의 종이 된 것입니다.
예> 어거스틴-회심 이후 과거 방탕하던 시절 사귀던 여자를 길에서 만남.
그냥 지나침. 여자가 붙들고 “당신 어거스틴 아니요 나 몰라 요 나란 말이요.” “나는 더 이상 옛날의 어거스틴이 아니요.”
우리도 이처럼 예수님의 십자가에 합당한 새 삶을 실천하시기 바랍니다.
③ 구원의 복음을 전파하는 일
예수님은 십자가 죽음 이후 부활하셨습니다. 약 40일 동안 지상에 머물러 계셨습니다. 그때에 하신 일은 무엇이었습니까 두 가지입니다. 하나님 나라에 관해 말씀하셨고, 구원의 복음을 전파할 것을 명령하셨습니다. 특히 복음 전파의 명령을 강조하셨습니다. 행1:8, 막16:15
여러분 예수님이 복음 전파를 이토록 강력하게 명령하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예수님의 십자가는 모든 인류를 위한 구원의 길을 완성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 사실을 믿지 아니하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그런데 믿음이 있기 위해서는 복음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듣기 위해서는 누군가가 전해주어야 합니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예수님 십자가 대속의 죽음을 믿고 구원받은 것도 다 이런 과정을 거친 것입니다. 예외가 없습니다. 아무리 모태 신앙이라도 따지고 보면 부모님을 통해 복음을 전도 받은 것입니다. 저절로 구원 받는 사람, 저절로 믿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습니다. 이렇게 먼저 믿은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전도하는 것이 하나님이 정해 놓으신 구원의 방법입니다.
고전1:21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알지 못하는고로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
롬10:13-15
그러므로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복음의 빚을 지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다 이루었다! 말씀하신 것은 “이제 구원의 길은 열어 놓았으니 너희가 열심히 전도하고, 열심히 선교해서 온 세계 만민이 구원받도록 해라!” 이런 의미를 포함하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에 순종한 사람들 때문에 오늘 우리가 예수 믿고 구원받았다는 사실을 결코 잊지 말아야 합니다.
예> 양화진 선교자 묘지(사순절 행사로 방문 예정)-수많은 선교사들이 낯선 이방 땅 한국에 와서 복음 전하다가 일생을 마친 곳. 숱한 사연들 ... 심지어는 부모 따라 왔다가 묻힌 어린 아이들마저 ... 이것은 우리를 위해 흘린 피! 예수님이 흘린 것과 같은 대속의 피는 아니지만 복음 전파를 위한 수고와 헌신의 피였다! 우리는 예수님에게, 그리고 복음을 전해 준 이들에게 빚을 지고 있는 셈입니다. 선교와 전도를 부정하는 자는 자신의 구원을 부정하는 사람임.
이런 복음의 빚을 갚으러 오늘 또 한 자매가 선교지를 향해 나아갑니다. 그러나 이 자매만 혼자 가는 게 아닙니다. 우리 모두가 가야 합니다. 마음으로, 기도로, 편지로, 물질로, ... 그리고 우리 주변에 아직 예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이것이 “다 이루었다!”고 승리의 개가를 부르신 주님의 음성에 응답하는 방법입니다.
우리가 인생을 마치고 장차 주님 앞에 설 때에 이것들로 평가를 받을 것입니다. 고후5:10 “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드러나 각각 선악 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니라” 어차피 우리 인생은 흘러갈 것입니다. 아주 신속하게! 그때 지나온 인생에 대해 후회하지 않도록 우리는 예수님이 완성한 것을 새로운 시작으로 이어가야 할 것입니다.
예> 쉰들러 리스트 영화(스필버그 감독, 나치의 유대인 학살 만행을 그린 영화) 중 마지막 장면-처음에는 나치에 붙어 치부하고 유대인을 학대하던 쉰들러. 그후 회개하고 자기 공장에 유대인을 취업시켜 독가스 학살을 모면케 해 줌. 그 명단이 쉰들러 리스트. 그러던 중 종전. 자신의 과거 親 나치의 전력 때문에 도피해야 되는 상황. 유대인들에게 반지 선물 받으며 눈물 흘리며 흐느낌. 오스카 쉰들러의 절규! “이 자동차를 팔았으면 10명은 더 구하는 건데, 이 넥타이 핀으로는 2명 더, ...” 그는 이때에 비로소 자신이 한 일의 가치를 절실히 깨달은 것입니다. 우리도 우리 인생을 마치고 주님 앞에 설 때에야 신앙의 귀중성, 주의 일의 가치를 절실히 느끼게 될 겁니다. 그러나 그때는 늦습니다.
따라서 바로 지금 말씀 듣고 아멘으로 응답하고 행하는 자가 가장 복된 자입니다!
이제 말씀을 마칩니다. 다 이루었다! 이 말씀은 완성인 동시에 새로운 시작입니다. 끝이 아닙니다. 주님 오실 때까지 끊임없이 새로운 시작을 촉구하는 외침으로 들으십시오! 저와 여러분은 과연 어떤 시작을 하시렵니까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