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그리스도의 참된 제자 (요 21:15-23)

첨부 1


우리 한국교회가 언제부터인지 제자 훈련이 유행화 되었습니다. 마치 새로운 유행 물결을 타지 않으면 촌스러워 지는 듯 교회간에 경쟁하다시피 제자훈련을 시도하고 있는 것입니다. 제자 훈련을 통하여 수많은 사람들이 배출되면서 그 수는 헤아리기 어려울 만큼 방방곡곡에 산재해 있음을 짐작해 봅니다.
그렇다면 진정한 주님의 제자란 어떤 사람을 말하는 것일까요 혹시 교회에서 유행처럼 번진 교육 프로그램에 소속되어 어쩌다 보니 라이센스 하나 정도 마련한 것이 아닌지요.
주님의 제자가 되려면 자신을 부인하고 날마다 자기 십자가를 지며 주를 따라야 합니다. 이러한 삶은 한마디로 고난의 삶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헬라어 마데테스는 ‘배우는 사람’을 의미합니다. 어근 마데는 ‘노력으로 얻어진 생각’ ‘훈련’이라는 의미를 갖습니다. 즉 어떤 사람의 사상을 따르는 자들을 가리키는 것으로서 이는 제자로서의 삶을 말합니다. 제자가 되는 것은 훈련 속에 고난, 수고를 의미합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제자의 삶을 명하셨습니다.
오늘날 주님 제자가 되는 길이 한 장의 자격증서로 대체되어 가는 현 실정을 통감해 보면서 이와 같이 난무하며 무감각해져 가는 신앙의 황폐화를 막기 위해 한 신학생으로서 진정한 제자 되는 길을 심각하게 고민해 봅니다. 오늘 본문 내용은 제자로서 실패의 삶을 살았던 베드로를 주님은 다시 찾아 오셔서 그의 사명을 회복시켜 주시며 주님의 참된 제자로 거듭나게 하시는 과정이 전개됩니다. 이 과정을 조명해 봄으로 저와 여러분이 참된 주님의 제자로 거듭 나야 하겠으며 또한 그 일을 감당해야 하겠습니다. 그렇다면 참된 주님의 제자의 길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요

1.주님을 더 사랑해야 합니다(요21:15).1) 본문 설명
불쬐는 현장에서 예수를 저주하며 맹세까지 한 베드로가 예수님과 함께 조반을 나누고 있습니다. 십자가에 달리시고 무덤에까지 장사된 것을 확인한 제자들은 다시 사신 주님을 보면서 긴장하는 장면이 전개되고 있습니다. 더구나 베드로는 남다른 감정을 느끼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는 지금 자신의 어리석음을 알고 있으며 다른 사람들과 비교할 때 그 자신이 어떤 사람인가에 대해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았을 것입니다.
본문 15절에 예수님께서 ‘요한의 아들 시몬아’ 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베드로가 부름 받기 이전에 사용했던 이름을 부르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도 주님을 세 번씩이나 모른다고 했던 숯불 앞에서 부르고 있습니다. 그동안 예수님을 따라 다니며 주를 사랑한다고 했던 고 백들이 거짓으로 나타나 마음을 괴롭히고 있는데 주님이 이렇게 물으셨습니다 ‘네가 이 사람들 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나를 사랑하느냐,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고 세 번 질문하셨습니다. 베드로는 주님을 사랑한다고 대답을 하지만 세 번째 질문 앞에서 그의 마음은 무너져 내렸습니다. 주님을 위하며 살아왔던 날들이, 그 열정이 얼마나 힘이 없었고 무가치했던가를 깨닫게 합니다. 그 아픔 속에 찾아오신 주님의 사랑은 베드로에게 진정한 사랑의 의미를 깨닫게 합니다. 그리고는 세 번씩 주님을 부인했던 자신의 실패를 치유하시고 용기를 주시는 것입니다.
주님의 일은 인간적인 열심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용서하시고 부르시는 주님의 심정으로 사랑하라는 메시지입니다. 베드로는 자신의 삶을 회복시켜 주신 주님의 은혜를 깨닫게 됩니다. 이것은 그 누구도 주님의 은혜를 모르면 주의 일을 할 수가 없음을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아무것도 자랑할 것이 없는 존재입니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가 있을 때만이 우리는 비로소 주님의 일에 동참할 수 있습니다. 신앙 생활은 내 의지나 노력의 산물이 아닙니다.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한다고 했습니다. 주님의 사랑이 우리를 이끌어 간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 하나님의 자녀이며 그분의 사랑을 체험한 사람입니다. 이 사랑을 아는 자만이 주님을 사랑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2) 성경적 연결
예수님께서는 자기를 따르는 자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마16:24). 이사야는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자요 입술이 부정한 백성 중에 거하면서 왕을 뵈었음이로다(사6:5). 사도 바울은 내가 죄인 중의 괴수라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주님 앞에 아무것도 자랑할 것이 없는 존재입니다.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습니다. 그래서 오직 은혜의 자리로 돌아갈 때만이 주님을 사랑할 수 있으며 그의 일을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3) 적용
지금 베드로는 모든 자신감을 상실하고 낙심가운데 빠져 있습니다. 그는 주님의 죽으심과 사심을 목도하고 자신이 행한 일에 대하여 허탈감과 낙심에 빠져서 다시 바다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와 같은 베드로가 있는 그 자리에 주님이 찾아와 주셨습니다. 그리고 주님은 단 한가지만을 확인하고 계셨습니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주님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 아십니다. 지금 베드로의 사랑 고백은 주님을 사랑하는 일에 성공했다는 것보다는 실패했다는 사실을 전제로 하고 있는 것입니다. 베드로에게는 가장 부끄러운 장소입니다. 가장 비참한 장소가 바로 여기 이 질문에 대답하는 자리입니다.
베드로는 지금까지 주를 사랑한 사람임에 틀림없습니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네 그렇습니다. 그것은 분명한 베드로의 진심입니다. 그러나 내가 주님을 사랑한다고 했던 그 사랑은 주님이 원하시는 사랑이 아니었습니다. 내가 주님을 사랑한다고 열심과 정성을 다해 보았지만 결국 결정적인 순간에는 주님을 부인하고 마는 그런 사랑이었습니다. 이제 주님을 사랑하는 것을 어떻게 해야 될지 스스로가 믿어지지가 않습니다. 이것이 베드로의 진정한 고백일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님께서 베드로에게 ‘네가 이 사람들 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고 물으신 물음을 오늘 우리에게 하신다면 어떻게 대답하시겠습니까 사도 요한의 제자로 알려진 폴리캅이 총독 앞에서 재판을 받을 때 총독은 폴리캅이 노령이기에 황제를 두고 맹세하면서 그리스도를 저주하면 석방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이때 폴리캅은 ‘내가 86년동안 그를 섬겼으나 그 분은 한번도 나를 저버리신 일이 없다. 어떻게 나를 구원하신 나의 왕을 저주 할 수 있겠는가 라고 응답한 후 기쁘게 화형을 당했습니다. 이것이야말로 주님을 가장 사랑한 제자의 본이 아니겠습니까
베드로는 그 후의 그의 삶의 진로와, 그리스도께서 그에게 맡긴 책임에 대한 그의 헌신을 통해 주님에 대한 그의 사랑의 진실성을 입증하였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도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맡기신 의무에 대한 우리의 헌신을 통해 주님에 대한 우리의 사랑을 입증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신앙의 풍토안에서 살아야 합니다. 신앙의 정신은 우리의 모든 생각과 말과 행위 속에 침투해 들어가야만 하는 것입니다.

2.주님의 어린양을 먹여야 합니다(요 21:15).1) 본문 설명
베드로는 이제 주님의 그 사랑을 알았습니다. 주님에 대한 사랑 고백도 합니다. 주님은 네가 나를 사랑한다면 이라는 조건적인 것이 아니라 그냥 묻기만 하시고 내 어린양을 먹이라고 합니다. 조건적이 아니다라는 말을 하는 이유는 주님이 찾아와 주신 그 사랑이 우선이지 내 열심, 정성에서 나온 사랑이 아니다라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하기 위해서입니다. 즉 내 정성을 바쳤기에 사명이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묻기만 하시고 내 어린양을 먹이라는 것입니다.
구약의 십계명의 세부 항목에 들어가기 전에 출애굽기 20장에 ‘나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너의 하나님 여호와로라’ 건져내어 주신 하나님의 사랑이 우선임을 말하고 있습니다. 너희가 무슨 일을 하기 전에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를 인도한다는 사실입니다. 이 마음으로 우리는 비로소 주님의 양을 먹이게 되는 것입니다.
내 어린양을 먹이라는 말씀은 주님의 말씀만 고집하기에 우리 주님께서 이 땅에서 고난을 받았듯이 제자들도 동일한 고난을 받을 것을 암시합니다. 주님의 양은 주님의 말씀만을 먹고삽니다. 따라서 주님의 말씀만을 고집하는 참된 주의 제자는 고난과 함께 그 사명을 감당할 것입니다.
2) 성경적 연결
베드로는 주님으로부터 세 번이나 반복되는 말씀인 ‘내 양을 먹이라’ 는 명령을 받은 후부터 이 명령을 잘 지켰습니다. 이러한 사실은 그의 서신에서 잘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양무리를 치되 부득이 함으로 하지 말고’(벧전 5:2)라는 교훈과 함께 ‘맡기운 자들에게 주장하는 자세를 취하지 말고 오직 양무리의 본이 되라’(벧전 5:3)는 명령을 할 정도로 자기에게 맡겨진 양떼를 사랑했습니다.
이와 같은 명령은 베드로에게만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따르는 영적으로 성숙한 그리스도의 제자들은 모두가 목자이기 때문에 어린양들을 돌보며 바른 길로 인도할 책임이 있는 것입니다.
3) 적용
주님께서 세 번씩이나 같은 말로 부탁하셨습니다. 내 어린양을 먹이라는 주님이 맡긴 사명은 베드로가 자신을 철저히 부인하는 가운데 주님의 사랑이 확인될 때에 맡겨진 것입니다. 우리들 주변에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주님의 사명에 대해서 오해를 하고 있는지 모릅니다. 어떤 사람은 기적과 표적을 보여 주면 주의 종이 되겠다고 말합니다. 삼각산 꼭대기에 앉아서 신비한 능력을 구하면서 사명자가 되겠다고 합니다. 혹 바다 위를 걷게 하신다면 온 세상을 간증하며 다니겠다고 할 수도 있습니다.
베드로는 주님께 초막집 셋을 바치겠다고 하였습니다. 나는 주님이 가는 곳이면 옥에도 갈 것이며 죽기까지 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주님이 죽으러 가야겠다고 하실 때에 ‘그리 마옵소서 그런 일이 있을 수 없습니다’ 라고 하였습니다. 사람으로서는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바다 위를 걸어 본 사람이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순간 주님은 베드로를 가장 불안한 마음으로 보고 계셨습니다. 그때에는 베드로에게 내 양을 먹이라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주님의 양은 주님을 사랑하는 자에게 맡겨집니다. 자신을 부정하고 오직 주님만을 의지하는 자에게 허락하신다는 것입니다. 때로는 어려운 일을 만나도 이 문제를 어떻게 풀어야 될지 나는 모르지만 오직 주님만은 아시나이다. 그리고 주께서 응답하실지 안하실지 나는 모르지만 주님만이 아십니다. 나는 갈길 모르나 주님 인도하소서 라고 고백될 때에 주님안에서 맡겨진 충성된 삶을 감당하게 됩니다.

3. 주님을 따라야 합니다(요21:19)1) 본문 설명
그리스도께서 베드로에게 그의 할 일을 명하신 다음 그의 고난받을 일을 그에게 명하십니다. 그에게 사도의 영광을 확인시키신 후 그는 이제 그에게 예정된 순교자의 영광에 관하여 말씀하십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자기 자신의 모든 고난을 미리 아셨던 것과 같이 자기를 따르는 모든 자들의 고난을 미리 아셨으며 비록 베드로에게 하신 것처럼 일일이 말씀하지 않으셨을지라도 그들이 자기들의 십자가를 지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전반적으로 그들에게 예언 하셨습니다. 그의 양을 먹이도록 그에게 위탁하신 후에 주님께서는 그가 그 일에 있어서 안일과 영광을 바라지 말고 오히려 고통과 핍박을 기대하며 선을 위하여 고난을 받기를 명하시는 것입니다. 이제 주께서 그들을 떠나시면서도 비록 다른 방향에서 행하게 될지라도 ‘너는 나를 따르라’ 는 계속되는 의무는 그가 주신 계명과 자기들에게 보이신 모범을 따르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2) 성경적 연결
주님을 따르는 자들에게는 기쁨이 주어집니다. ‘그때에 우리의 입에는 웃음이 가득하고 우리 혀에는 찬양이 찼었도다’(시126:2). ‘만일 너희 믿음의 제물과 봉사 위에 내가 나를 관제로 드릴지라도 나는 기뻐하고 너희 무리와 함께 기뻐하리라’(빌2:17).구주를 따르는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거듭나게 되었으며 그럼으로써 산 소망을 갖게 되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