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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너희도 가려느냐? (요 06:60-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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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살이와 메뚜기가 하루 종일 논에서 재미있게 놀았 습니다.날이 저물어오자 메뚜기는 하루살이에게 이렇게 말했 습니다.

"얘,이젠 저녁이 다 되었어.오늘은 그만 놀고 내일 또 놀자." 이 말을 들은 하루살이는 메뚜기의 말이 무슨 뜻인지 몰라 되물었습니다.

"메뚝아,내일이 뭐니 어떻게 내일 또 놀자고 하니" 메뚜기는 잠시 후면 하늘에 별들이 반짝이고,모든 동물 이 다 잠을 자게 되는데 잠자는 이 밤이 지나면 내일이 온 다고 일러주었습니다.

그러나 하루살이는 '내일'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오히 려 메뚜기를 보고 날씨가 무더워서 정신이 나갔나 보다고 놀렸습니다.

그후 메뚜기는 개구리와 온 여름을 함께 놀고 지냈습니 다.가을이 오고 날씨가 차가워지자 개구리가 메뚜기에게 이 렇게 말했습니다.

"메뚝아,내년에 다시 만나서 놀자." 메뚜기는 '내년'이 뭐냐고 개구리에게 물었습니다.개구 리는 흰눈이 천지를 뒤덮고 얼음이 얼고 몹시 추워서 모든 개구리가 땅 속에 들어가서 오래오래 겨울잠을 자고 나면 다시 따뜻한 봄이 오는데 그때가 내년이라고 일러주었습니 다.

그러나 메뚜기는 그 말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오히려 개구리를 보고 날씨가 서늘해지니 정신이 나간 모양이라고 놀려댔습니다.

하루살이나 메뚜기는 '내일' 혹은 '내년'을 경험하지 못 합니다.그래서 '내일'이나 '내년'을 쉽게 믿으려 하지 않습니 다.그러나 그들이 믿지 않는다고 해서 '내일'이나 '내년'이 존 재하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그들이 믿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내일'이나 '내년'은 엄연히 존재하는 것입니다.

내세나 하나님의 존재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들이 그 세계를 경험하지 못하기 때문에 그 세계를 쉽게 믿으려 하 지 않지만,그럼에도 불구하고 천국과 하나님은 엄연히 존재 하는 것입니다.

"(시14:1) 어리석은 자는 그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도다 저희는 부패하고 소행이 가증하여 선을 행하는 자가 없도다." 예수께서 자신이 인류를 위한 "참된 양식"이며,"생명의 양식"이라고 말씀하셨을때 제자들은 이 예수님의 가르치심 을 듣고 "어렵도다 누가 들을 수 있느냐"고 했습니다.

여기 "어렵도다"는 말의 헬라어는 스클레로스(skleros) 인데 이 말은 이해하는 데 어려움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고 받아들이기가 어려운 것과 관용하기가 어렵다는 것(hard to tolerate)을 의미합니다.믿음은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받아들 이는 것입니다.

유한자(有限者)인 인간은 무한하신 하나님을 결코 이해 할 수 없고,하나님의 길은 인간의 정신으로는 파악할 수 없 는 것이며,따라서 인간은 언제나 하나님을 완전히 이해할 수 없는 것입니다.우리가 하나님을 완전하게 파악할 수 있다고 한다면 이미 하나님은 하나님의 존재가 될 수 없을 것이며 단순히 일종의 특출한 인간에 불과할 것입니다.그러나 하나 님을 알 수 있는 방법이 있습니다.

"(요8:19) 이에 저희가 묻되 네 아버지가 어디 있느냐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너희는 나를 알지 못하고 내 아버지도 알지 못하는도다 나를 알았더면 내 아버지도 알았으리라." 예수님을 알면 바로 하나님을 아는 것이 됩니다.예수님 을 아는 것은 예수님과 인격적인 관계를 가지는 것을 말합 니다(Personal Relationship).예수님과의 인격적인 관계는 "믿 음"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그 분께서 나의 죄를 대 신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내가 생명을 얻었다는 것을 믿는 것이 바로 인격적인 관계를 맺는 것입니다.성령은 하나 님의 인격신(人格神)이십니다.예수님은 성령을 우리 가운데 보내시어 지금 여기서 하나님과의 인격적 관계를 맺게 하십 니다.

 "(요14:16)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 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 (요14:17) 저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저를 받지 못하 나니 이는 저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 희는 저를 아나니 저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 에 계시겠음이라 (요14:18)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 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 (요14:19) 조금 있으면 세상 은 다시 나를 보지 못할 터이로되 너희는 나를 보리니 이는 내가 살았고 너희도 살겠음이라 (요14:20) 그 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 희가 알리라." 인간은 유한 존재일지라도 영원하신 성령을 통해 무한 세계와 무한하신 하나님을 경험할 수 있는 것입니다.예수와 그의 보내신 성령을 통하여 하나님과 천국을 경험할 수 있 습니다.

오늘 본문에 "너희도 가려느냐"는 예수님의 말씀이 있 습니다.

한 때 많은 사람들이 예수께 몰려 들었습니다.그들은 예수께서 행하시는 많은 기적을 보고 그의 이름을 믿었습니 다(요2:23).그리고 그의 제자들에게 세례를 받으려고 몰려드 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 난처할 정도였습니다(요4:1-3).

그러나 지금에 와서 사태는 일변하고 있습니다.예수의 십자가 죽음을 앞에두고 사람들은 그 본성을 드러내기 시작 한 것입니다.즉,예수께 등을 돌리고 더 이상 함께 하지 아니 하는 사람들이 생기기 시작하였습니다.그들은 한 때 모여 들 었으나 지금은 변절하여 다 물러가 버렸습니다.그들 중에 어 떤 사람들은 분명히 예수가 져야만 하는 십자가의 길을 알 고 있었습니다.그래서 그들은 시간에 맞게 예수를 떠나가 버 렸습니다.이 때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너희도 가려느냐"고 물으셨던 것입니다.만사가 잘 되어 갈 때의 추종자들뿐이었 습니다.군대의 시련은 그 군대가 힘을 잃었을 때 어떻게 싸 우느냐라는 말이 있습니다.떠나버린 자들은 예수의 생애가 상승하고 있는 한에서만 충성하다가 처음으로 십자가 그늘 이 내려 덮이자 그를 떠나버렸던 것입니다.그들은 십자가 뒤 의 부활을 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하루살이 같이 '오늘'에 살았지 '내일'이 있음을 알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메뚜기같 이 '금년'에만 살았지 '내년'을 알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두 마리의 송충이가 땅을 기어가고 있었습니다.마침 머 리 위를 찬란한 나비가 날고 있었습니다.한 송충이가 중얼거 렸습니다.

"여보게,우리 팔자도 사납지.같은 생물인데 저 나비에 비하면 우리 꼴은 뭔가"다른 송충이가 말했습니다.

"쳐다봐선 뭣해.나무잎이나 실컷 갉아 먹자구." 이 송충이들은 장차 자기들이 나비가 된다는 것을 생각 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사람이 동물과 구별되는 점은 내일 을 본다는 점입니다.

박물관에서 어떤 거장(巨匠)에 의해 제조되었다는 바이 올린을 보았습니다.거기에는 이런 글이 조각되어 있었습니 다.

"살아있는 나무였을 때 나는 말없이 자라났다.그러나 나는 죽은 뒤에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묵묵히 십자가를 진 예수가 부활로서 평화의 대 교향곡을 연주하기 시작한 것과 흡사한 이야기입니다.

예수를 따르고자 하는 사람은 그를 따름에 있어 언제나 십자가가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않됩니다.

 "(마10:38) 또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지 않는 자도 내게 합당치 아니하니라." 그러나 십자가 후에 부활과 영광이 있음을 또한 알아야 합니다.

"(빌2:8)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 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빌2:9)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 난 이름을 주사 (빌2:10)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 들과 땅 아래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빌2:11)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 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부활 승천의 영광을 바라보고 생명이신 예수와 끊을래 야 끊을 수 없는 치밀하고 견고한 관계를 가져야 할 것입 니다.

"(롬8:35)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 이랴 (롬8:36) 기록된바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 케 되며 도살할 양 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롬8:37)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 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롬8:38)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롬8:39)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 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수 없으리라." 사도 바울은 이처럼 하나님과 '끊을 수 없는 사랑'으로 밀접한 관계(connection)를 유지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아일랜드(愛蘭)의 밸파스트에서 주민 2,000세대 전원을 상대로 종교 조사를 최근에 실시한 학자가 있었습니다.이 마 을은 전통적 장로교 동네입니다.60%가 다음과 같은 비슷한 대답을 하였습니다. "나는 이전에는 교회에 나갔었으나 현재 는 예수와 관계가 없다고 생각된다."(We are Presbyterians, but disconnected) 냉장고는 음식을 싱싱하게 저장할 수도 있지만 전기줄 만 절단되면 음식을 부패시킬 수도 있습니다.참된 생명이신 예수와 관계가 끊어진 사람의 상태는 어떠하겠습니까 벨파스트의 종교 조사 분석은 예수와 끊어져 있는 사람 들을 다음과 같은 몇가지 부류 속에 종합할 수 있습니다.

첫째로,쉽게 크리스챤의 이름을 유지하려는 사람들,쉽게 예수 믿으려는 사람들은 결과적으로 예수와 끊어지고 맙니 다.

둘째, 전통적이며 조직된 교회를 무시하는 사람들,개인 적으로 잘 알고 잘 믿는 것 같이 생각하나 전통적인 교회에 서 이탈하는 사람은 결국에 가서는 예수와는 끊어지게 됩니 다.

셋째,세속적 요구,혹은 주변 일의 압력에 굴복한 사람들, 물질적인 욕구나 주변에서 일어나는 정치적 사회적 압력에 타협하고 마는 사람은 결국 예수와는 끊어지고 맙니다.

넷째로,기독교 가정이나 기독교 학교같은 분위기 속에 서 자라나면서 기독교에 만성이 된 사람 가운데 뒤에 가서 는 예수와 끊어지게 된 사람이 많았습니다.

그리스도인이라고 하면 다른 무엇보다도 나와 예수의 확고한 연결(connection)이 기초를 이루어야 합니다.

인간은 왜 예수와 관계(connection)를 가져야만 합니까 예수는 그리스도 즉 메시야,세상을 구원할 구세주이시 며,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하나님 자신입니다. 그러 므로 예수 코넥션(connection,예수를 믿음)은 바른 신앙을 가 지는 유일한 길인 것입니다.

성경은 솔직하고 노골적으로 인물들을 소개하고 있습니 다.노아를 주정꾼으로, 모세의 교만을, 다윗의 자기자랑을, 삼손이 여자에게 약한 것을, 엘리야의 겁 많음을, 야고보와 요한의 이기주의를, 베드로의 일관성 없음을, 바울의 참을성 없음을 폭로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를 증거하는 일에 있어서 비록 예수가 시험 을 받기도 하고 곤경에 처하기도 하고 세상 재판을 받은 사 실을 지적하면서도 그의 죄에 대하여는 한 마디의 지적도 없는 것입니다.

오히려 예수 곁에서 십자가를 지고 그 최후를 목격한 사형수는 "이 사람에게 잘못된 점이 없다."(눅23:41)고 증언 하였으며,십자가를 지키던 로마군 장교 한 사람은 "이 사람 은 무죄다."(눅23:47)고 고백하였고,마가복음 기자는 "대제사 장과 온 의회가 예수를 죽일 조건을 찾았지만 한 가지도 찾 지 못했다."(막14:55)고 증언하였습니다.

예수는 흠 없는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배신자 유다까 지도 "그 무죄한 피를 흘리게 한 내가 죄인이로다."(마27:3) 고 고백하고 자살하였습니다.

예수는 인간의 역사로부터 배출된 위인이나 성자가 아 닙니다.예수는 오히려 인간의 역사 속으로 들어온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십니다.예수를 하나님의 아들 즉 삼위일체의 신으로 증거하는 기사가 신약에만도 22회나 증언되고 있습 니다.

삼위일체의 신인 예수 그리스도만이 예배의 대상이 될 수 있고 신앙의 대상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우리는 예수 코 넥션(connection,예수를 믿음)을 통해서만 구원함에 이를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많은 제자들이 예수를 떠난 서글픈 사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주님은 제자들을 향하여 "너희도 가려느 냐"하는 비장한 질문을 던지십니다. 베드로가 대답하였습니 다.

"(요6:67) 예수께서 열 두 제자에게 이르시되 너희도 가 려느냐 (요6:68)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되 주여 영생의 말씀 이 계시매 우리가 뉘게로 가오리이까." 영원한 생명이 예수에게 있기 때문에 예수 코넥션 (connection,예수를 믿음)은 불가결의 생애라고 하는 것이 베 드로의 대답이었습니다.

우리는 생명보험에 가입함으로써 안도감을 갖게 됩니 다.그러나 실상 생명보험은 죽은 다음에 유가족들이 받는 것 이므로 생명 보험이 아니라 사망보험이라고 붙여야 옳습니 다.진짜 생명 보험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보험료는 무료 입니다.오직 "믿음"으로 보험료는 날마다 지출되고 있습니 다.그리스도는 십자가와 부활을 통하여 영원한 생명을 우리 에게 약속하셨던 것입니다.

문호(文豪) 빅톨 유고는 70세 생일에 쓴 메모에서 이렇 게 말했습니다.

"내 머리엔 겨울이 왔으나(백발이 되었다는 뜻) 내 가슴 엔 영원한 봄을 느낀다.마지막 시간이 가까울수록 저 우렁찬 영원이라고 하는 제목의 교향곡을 나는 듣는다." 이 노인은 참으로 행복한 사람임을 알 수 있습니다.육 신은 늙어가지만 그의 정신은 영원한 봄에 살고 있었으며,그 의 영적 귀에는 영원이라고 불리우는 아름답고 웅장한 오케 스트라를 계속 듣고 있었습니다.

우리가 예수 코넥션 속에 기쁨으로 머무는 이유는 첫째, 예수만이 예배의 대상,신앙의 대상이 될 수 있는 구세주이시 기 때문입니다.둘째,인류의 소망은 오직 예수이기 때문입니 다.그 이룩하신 역사를 보아 그가 이끄는 천국건설의 대열에 가담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셋째,영원한 참된 생명이 예수에게만 있기 때문입니다.

세상이 아무리 변한다 할지라도 세월이 아무리 많이 흘 러도 심지가 견고한 믿음을 가지고 예수님을 통한 참되고 영원한 생명이 풍성한 삶을 누리시기를 축원합니다.

'최후의 만찬'의 그림을 그린 한 미술가가 경험한 무서 운 이야기가 있습니다.그것은 위대한 그림으로서 그것을 그 리는 데는 많은 세월이 걸렸습니다.그는 그리스도의 모습의 모델을 찾아다니다가 뛰어난 아름다움과 순결의 용모를 지 닌 한 젊은이를 발견하고 그를 예수로 그렸습니다.그림이 조 금씩 채워져감에 따라 제자들이 차례로 그려졌습니다.드디어 마지막까지 남겨두었던 가롯 유다의 얼굴 모습을 가진 모델 이 필요한 때가 되었습니다.그는 그 도시의 빈민들의 소굴과 사악한 무리들이 사는 방을 두루 찾아 다녔습니다.드디어 그 는 너무나 타락하고 사악한 얼굴을 가지고 있어서 가히 유 다의 모델로 그릴만한 사람을 찾아냈습니다.그것이 다 끝난 후에 그 사람은 미술가에게 말했습니다."당신은 전에 나를 그린 적이 있습니다." 그 미술가는 대답했습니다."천만에 그 럴리 없는데." 그 사람은 다시 대답하기를,"아닙니다.지난번 에 당신은 나를 그렸습니다.당신은 나를 그리스도로 그렸지 요."라고 했습니다.

세월이 무서운 타락을 초래했습니다.이상(理想)에는 언 제나 무서운 위험이 존재해 있습니다.세월은 잔인하게 될 수 있습니다.세월은 우리의 이상(理想)과 정열과 꿈과 충성심을 모두 빼앗아 갈 수가 있습니다.세월은 점점 축소될 뿐 성장 해 가지 못하는 인생을 우리에게 줄 수 있습니다.세월은 우 리에게 그리스도의 사랑에 대해 시들어갈 뿐 성장되지 못 하는 심정을 줄 수 있습니다.인생의 아름다움을 상실할 수도 있습니다.

세상이 아무리 악하고 세월이 아무리 여러분을 속인다 할지라도 예수님과 끊을 수 없는 코넥션(connection)을 가지 시므로 진선미의 아름다운 생애를 누리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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