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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변화 없이 미래 없다 (눅 13:3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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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에 의하면 어떤 바리새 인이 예수님께 "이곳 베뢰아를 떠나소서 헤롯이 당신을 죽이고자하나이다"하니 이에 대한 예수님의 태도와 반응이 나옵니다. 곧 '변화 없이 미래 없다'는 논리로서 교회는 현실에 안주하려는 안일한 자세에서 벗어나 과감하게 신앙의 개혁을 가져와야 할 것을 교훈하십니다.
우리는 IMF의 터널을 1 년간 지나왔습니다. 문제는 보이지 않는 터널 속에서 멋대로 자신을 은폐하고 분명히 새로워져야 한다는 변화의 요구에 대하여 복지부동인 자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이 경우 미래가 없습니다. 이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Ⅰ. 헤롯의 대명사 현대판 여우를 잡자
첫째, 당시 이스라엘의 상황은 로마의 속국이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로마의 분봉왕인 헤롯의 위협을 받게 되었습니다(눅 13:31-33). 그럼에도 위협을 이길 만한 변화가 없기 때문에 미래가 없다는 것입니다(눅 13:34,35). 이를 해결하기 위한 예수님의 말씀, 곧 헤롯에 대한 예수님의 태도와 반응을 살펴봅시다.
예수님께서 "가서 저 여우에게 이르되"(눅 13:32)라고 하신 것은 헤롯의 인간성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폭군 헤롯 안티파스는 사마리아 인과 에돔 인의 혼혈인이었습니다. 그는 유대교를 고백하면서 이교도 생활을 한 자이며, 가이사의 은혜와 로마 용병의 후원으로 통치한 자이며, 춤추는 탕녀를 즐겁게 하고자 당대 최고의 선지자 세례 요한의 머리를 소반에 받쳐 들게 한 자이며(막 6:28), 이중 근친 간통으로 형제의 아내까지 빼앗은 자입니다. 한 마디로 헤롯은 비겁하고 거만하고 야비하며 교활한 자임을 지적한 것입니다.
탈무드에서 가장 간교하고 교활하고 게으름의 상징으로 표시되는 동물이 여우입니다. 솔로몬은 "우리를 위하여 여우 곧 포도원을 허는 작은 여우를 잡으라"(아 2:15)고 했습니다. 여우는 악한 자의 대명사입니다(겔 13:4). 야행성 동물인 여우는 구덩이를 파고 숨거나 숲에 숨기도 합니다. 농부가 포도원을 잘 가꾸어 놓았어도 여우가 포도원을 파헤쳐 포도나무의 뿌리가 드러나게 되면 열매를 기대할 수가 없습니다.
둘째, 예수님과 우리 사이에 가로막은 그 무엇이 있습니까 그 무엇은 신앙의 뿌리를 죽게 하거나 썩게 하는 숨은 죄악입니다. 포도원을 허는 현대판 작은 여우를 잡아야 하겠습니다. 교회 안엔 요즈음 유행하는 '사오정'이 많이 있습니다. 서로의 불신과 질투, 이기적 마음과 교만한 마음, 나쁜 점만 지적하고 용서 못하며 좋은 점은 무시하는 좁은 마음의 소유자입니다. 기도 없이 응답이나 요행을 기대하는 자, 봉사 없이 형통이나 축복을 꿈꾸는 자, 전도 없이 교회가 부흥 안된다고
비판하는 자, 감사 생활은 인색하면서 자신의 하는 일에는 많은 보조와 협조를 주장하는 자, 받은 직분을 기화로 상대의 폭을 좁히려고 약은 꾀를 쓰는 자, 공동체 안에는 전혀 참예는 하지도 않고 회비도 안내면서 살며시 자기 주변의 벽을 쌓고 보이지 않는 그룹을 만드는 자, 교인에게 빚을 많이 지고는 핑계 삼고 다른 교회로 나가는 자, 제 잘못은 전혀 고려 않고 목사와 교역자, 중직을 비난하는 자, 일은 조금 해놓고 개구리처럼 말이 많은 자, 아무리 강단에서 말씀을 외쳐대도 나와는 전혀 상관없고 다른 이가 들어야 한다고 떠드는 자, 일 년에 한두 번 교회에 나오면서 집사라고 불러주기를 좋아하는 자, 왜 이뿐이겠습니까 이런 자는 변화 없이 미래가 없습니다.
여우를 잡거나 사오정을 고치는 것은 두 가지의 길이 있습니다. 여우가 들어 있는 굴 입구에 불을 놓으면 연기 때문에 굴 속의 여우가 튀어나옵니다. 곧 기도로 승부를 걸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또한 포도원을 허는 여우는 몽둥이질 밖에 없습니다. 건강, 재물, 불통 등으로 매를 맞아야 겨우 반응하는 경우를 수없이 보아왔습니다. 이런 자들은 "천부여 의지 없어서 손들고 옵니다"(찬송 338장)라고 찬송하고 회개해야 살 길이 열리는 것입니다.
Ⅱ. 변화 없이 미래 없다
첫째, '오늘과 내일과 모레'의 개념입니다(눅 13:32,33). 다니엘의 한 때. 두 때, 반 때(단 8:25)의 시간의 장단보다는, 오늘은 현실 직시를, 내일은 베뢰아에서 예루살렘으로, 모레(삼일)는 예루살렘에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성역을 완성하실 예수님의 사역을 교훈하신 것입니다.
우리도 현실을 보고 미래의 희망에 살아야 하겠습니다. 예수님의 사흘 개념 자체가 십자가의 고난이 없이는 불가능한 것처럼(히 2:10, 5:9) 우리가 비록 IMF의 긴 터널을 지나면서 여러 모양의 환난이 와도 참고 견디면 주님께서 인내력과 희망을 주셔서 온전히 살도록 역사하실 것입니다.
거룩한 성 예루살렘이 한때 공평과 의리가 충만했으나 지금의 남은 백성은 현실에만 안주하고 미래의 희망을 저버렸기 때문에 티토 장군에 의해 주후 70년 완전히 황폐해지고 말았습니다(눅 13:34,35). 특히 "암탉이 제 새끼를 모음같이 하던 일이 '몇 번이냐' 그러나 너희가 원치 않았다"는 것은 회개 촉구에도 불구하고 반응이 없으면 미래가 없다는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미래의 희망이시며 현실 문제의 해결자이십니다. 그러기에 죽음에 대하여 "선지자가 밖에서는 죽는 법이 없느니라"고 눈물로 말씀하신 비통한 풍자에서 우리의 현실을 보고 변화를 위해 여호와께로 돌아가 회개 운동과 구령 운동에 힘써야 하겠고, 그 앞에 살기 위하여 경건성 회복 운동을 지속적으로 전개해야 하며 여호와를 바로 알아 치유를 받아야 하겠습니다(호 6;1-3, 출 15:26). 하나님은 생사화복과 흥망성쇠를 주관하시기 때문입니다(신 32:39, 삼상 2:6,7).
둘째, 포도원을 잘 가꾸어 놓았어도 여우가 뿌리를 드러내 놓으면 포도송이를 기대할 수 없습니다. 포도원의 여우를 잡거나 현대판 사오정을 고치는 방법은 자명합니다. ① 기도 생활 철저입니다. 기도는 응답입니다. 하나님의 보좌를 움직이는 능력입니다. 1월 한 달 새벽 제단을
잘 쌓았으니 계속 기도하여 금년의 영적 농사가 대풍하기를 소원합니다.
② 봉사 생활입니다. "먼저 자신을 주께 드리고"(고후 8:5)라고 하셨습니다. 헌신하기를 바랍니다(롬 12:1). 이것이 산제사이며 하늘의 상급을 받는 지름길입니다.
③ 범사에 감사하기를 바랍니다(살전 5:18). 마게도냐 교회는 환난의 많은 시련 가운데서도 미래의 희망을 가졌기에 기쁨이 있었고 극한 가난 가운데서도 풍성한 연보를 넘치도록 했습니다. 바울의 증거에 의하면 "저희가 힘대로 할 뿐 아니라 힘에 지나도록 자원했다"고 했으니 집에 찾아온 손님 그냥 못 보내듯 교역자의 심방도 잘 받으시고 감사도 빼놓지 말기를 바랍니다.
④전도 생활입니다. 1월 중 11분은 자진 등록하셨고 나머지는 여러분의 인도에 의했습니다. 그러니 더욱 '불신자 전도에 주력하여 삶에 희망을 주는 교회'가 되도록 합심협력하여 하나님께 영광 돌리기 바랍니다.
결 론
변화 없이 미래 없습니다. 그러니 헤롯의 대명사 현대판 여우를 잡고 요즘 유행하는 사오정의 감염을 막기 위하여 먼저 성령 충만하기를 바랍니다. 성령 충만은 변화가 시작된 증거입니다(행 2:38). 또한 사오정과 같은 삶을 청산하고 예수님을 진정으로 만나면 삭개오도, 죄인인 여자도 복을 받은 것처럼 미래가 열리고 보장 받을 줄 믿습니다.
팔복을 말씀하신 예수님은 우리에게 맛을 내는 소금과 어두움을 밝히는 빛이 되라고 하셨습니다(마 5:13,14). 명심할 것은 "왕이 여호와의 말씀을 버렸으므로 여호와께서도 왕을 버려 왕이 되지 못하게 하셨나이다"(삼상 15:23,26)하심에 예외가 없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니 다시 한 번 웅비하여 21세기를 맞기 위한 금년 한 해의 신앙 생활과 가정과 사업 위에 주님이 함께 하실 수 있도록 순종적 섬김이 충만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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