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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대화의 기독교 (요 04: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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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란 무엇인가"하는 질문에 대해 올바르게 대답하려면 두가지 면에서 고찰해야 합니다.하나는 성서에서 가르치고 있는 기독교의 본 질적인 양상에서, 또 다른 하나는 그 기독교를 믿는 사람들, 그런 신 자들이 모여서 경영하는 기관, 사회 사업단체나 학교나 교회 활동을 구체적으로 하고 있는 여러가지 기관들이 어떻게 기독교를 사람들에게 보여 주고 있느냐 하는 면에서 기독교가 어떤 종교인가함을 알아볼 수 있습니다.

어느 종교나 그 종교성을 나타내는 것은 제도, 조직, 교리,경전해석, 그리고 그 경건과 의식,감화성 등인데, 그 종교에서 인간적인 관심이 제도나 조직 또는 교리나 신학등의 배후에 숨겨져 버리면, 그 종교는 종교로서의 사명을 다하기에는 여러가지 약점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 다.

제가 이해하는 대로는 기독교는 사람들에게 어떤 철학을 제공하기 전 에 인간에 대하여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으며, 한 사상을 제공하기 전 에 따뜻한 인간 관계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인간에 대한 관심과 인간 관계의 문제는 모든 교리와 신학, 모든 제도와 조직, 모든 교파와 종 파 이전에 가져야할 기독교의 기본적인 요소입니다.

그런데 인간 관심이니 인간 관계의 기본 형태는 어디에서 찾을 수 있 습니까 나는 그것을 보고 싶습니다. 독백(momologue)이 아니라 대화(dialogue)에서만 인간 관계가 맺어집니다. 대화가 끊어지면 관계는 끊어지는 것입니다.

기독교는 사람들에게 참으로 서로 대화할 수 있는 자리를 주고, 또한 그 대신 어느 한편에 치우친다거나 잠시 서로 나누다가 말 일시적인 것이 아닌 오랜 대화를 하게 하는 이론적인 근거를 주고 있습니다. 나 는 기독교가 대화의 종교라는 사실을 가장 잘 보여 주는 성서의 기 사가 오늘 우리가 읽은 성서 본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첫번째 대화에서는 예수님이 물을 길러 우물에 온 그 여인에게 "물을 좀 달라"는 말을 한것입니다. 여기 대답하는 여인은 물을 달라는 예수 의 구체적인 요구에 응답하기보다 철학적인 생각을 했습니다. "왜 당 신같은 유대인이 나 같은 사마리아 사람에게 물을 달라 하느냐 물을 달라 하는 그 자체가 잘못되지 않았느냐고 합니다. 처음부터 상종도 못하게 해버립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동족인 유대인들이 사마리아 사람들을 오랜 역사동 안 개처럼 멸시해 왔기 때문에 이 멸시받아 온 사마리아 여인으로서는 으례 할 수 있는 항변이었습니다. 그가 비록 종로 3가에 사는 여인이 라고 해도 민족적인 의식은 강하게 가지고 있었음으리 알 수 있었습니 다.

이렇게 서로 이가 맞지 않는 논리에서부터 시작한 대화였지만, 세번 째 대화에서는 그 여자 자신이 오히려 예수님에게 물을 좀 달라는 애 원을 하게 되었고, 다섯번째 대화에서는 이 여자가 완전히 예수의 인 격과 그 영력에 감동을 받아, "주여, 내가 보지 당신은 선지자로소이 다"하고 고백하고 말았습니다.

이 성서의 말씀을 끝까지 읽어보면 이 여자는 자기에게 물 한잔을 청 하던 그 분이 바로 자기들이 기다리던 메시야라고 인정하고 자기 동네 에 들어가서 많은 사람들에게 이 예수를 소개하고, 거기에 있는 많은 신자가 생기게 되어 그 여자의 동네에 이틀이나 유하면서 진리의 말씀 을 가르쳤다고 했습니다.

여기 이 여자의 얘기속에서 기독교가 어떤 것인가를 잘 가르쳐 줍니 다. 그 교훈은 무엇보다 대화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이 놀라운 일입니 다.

기독교는 대화의 길을 열어 줍니다. 여러분이 아는 기독교 신자인 선 생이나 교회의 어떤 지도자가 여러분과 같이 대화할 수 있는 사람이 되지 못한다면 그 사람, 그 지도자가 가진 기독교는 확실히 잘못된 것 입니다. 기독교를 믿음으로 병이 낫는다거나, 당장 부자가 되거나, 취 직 자리가 생기거나, 어떤 출세를 하는 길이 열린다고만 생각하고 믿 는 것은 잘못되었습니다.

기독교는 우선 인간과 인간 사이에 대화의 길을 여는 것입니다. 예수 님이 이 세상에 계실 때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따라 다녔다는 사실은 그의 마음이 모든 사람들의 얘기를 들어 주실 수 있을만큼 열려 있었 기 때문이었습니다. 특히 로마의 정치가 가난하고 세력없는 유대의 중 류 계급 사람들과 혹사를 당하고 천대를 받고 있었던 하류계급 사람들 의 친구가 되어 그들의 대화의 상대자가 되어 주셨다는 것이 하늘 나 라의 복음을 선포하는 설교보다 앞섰던 것이었습니다.

기독교가 참 종교, 모든 종류의 사람들에게 대화의 길을 열어 주는 참 종교가 되려면 거룩한 것과 속된 것을 구별하는 이 종교서을 탈피 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기독교의 비종교화의 문제입니다. 창녀라 도 예수와 더불어 대화를 하게 하여 그 자신의 인격과 삶에 변화가 오 게 하는 것이 기독교의 본질적인 요소입니다. 사마리아 여인의 예수와 의 대화를 통하여 새사람이 되었고 자기의 변화된 새 삶의 증거가 시 작이 되어 자기 동네에 다른 사람들까지도 예수를 믿고 따르게 했습니 다.

기독교는 사람들에게 대화의 터전을 마련해 주고, 또 그 대화의 내용 을 주고, 그 대화의 결과로서 새 삶을 창조하게 하는 것입니다. 이 대화는 사람들 사이에 막힌 문을 열어 줄 뿐 아니라, 진리와의 대화의 길을 열어 줍니다. 사람과의 대화가 막힌 때라도 언제나 자기를 볼수 있고 또 자기의 울분을 방출할 수 있고 또 인간 자신이 가진 고통과 비애를 진정시킬 수 있는 참 진리와의 대화의 길을 열어 줍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독교가 제공하는 이 대화의 광장에서 예수 그리스도 와의 대화를 가질 수 있는 사람들은 그들이 가진 모든 인간의 문제를 해결짓습니다. 진리가 우리 인간의 모든 문제 속에서 우리를 해방시 켜 우리에게 자유를 주는 것입니다.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는 이 말씀은 다만 예수님이 제공하는 대화의 광장에서 찾는 새 삶의 원 칙입니다.

김정준 목사 장로교 목사, 구약 신학자. 1914년 경남 동래 출신으로 연희전문,동 경 야오마학원을 졸업하고 영국 에든버러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한국신학대학장 동북아 신학대학협의회 회장을 역임하는 등 한국 사학 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평소 학문과 경건생활에 힘썼으며,70년대에는 유신독재에 항거, 한국신학대학 교수 전원이 삭발한 것으로도 유명하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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