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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주를 위해 승리하자 (딤후 0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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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하나님 앞과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 하실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그의 나타나실 것과 그의 나라를 두고 엄히 명하노니

2.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

3.때가 이르리니 사람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귀가 가려워서 자기의 사욕을 좇을 스승을 많이 두고

4.또 그 귀를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좇으리라

5.그러나 너는 모든 일에 근신하여 고난을 받으며 전도인의 일을 하며 네 직무를 다하라. 6.관제와 같이 벌써 내가 부음이 되고 나의 떠날 기약이 가까왔도다.

7.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8.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 예비 되었으므로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이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
지난 5월입니까 원로 희극인 이었던 김희갑 선생이 71세의 나이로 세상을 타계 했습니다. 우리가 합죽이로 알고 있는 그 분도 만년 그렇게 젊게만 살 수 는 없었나 봅니다. 성경말씀 그대로 인생의 나이가 아무리 길어도 70이요 좀 강건하게 산다해도 80이라고 했습니다. 그가 아무리 유명인으로 온 천하가 기억하는 이름으로 살다가 죽었다고 해도 죽음은 너무나도 허망한 것입니다. 아마 모르긴 해도 비슷한 연배에 있는 분들이라면 그 죽음이 남다르게 가슴에 닥아 올것입니다. 함께 고생했던 구봉서씨나 황정순여사 같은 분들은 자신의 죽음의 날짜를 손꼽고 있을런지도 모릅니다. 언젠가 목욕탕을 경영하는 동서를 만나서 이런 저런 얘기를 하다가 손위가 되는 그 동서로 부터 가슴에 남는 얘 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요사이는 40대 50대라고 해도 내일을 기약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어제까지만 해도 멀쩡하던 친구들이 당뇨니 고혈압이니 심장마비니 하면서 보이지 않는 친구가 한 둘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고 보니 제 고등학교 대학교 동창생들 중에도 불귀의 객이 된 친구가 제법 있군요! 죽음! 누가 뭐래도 변하지 않는 만고 불변의 진리가 아닐까 합니다.

1. 죽음을 기다리는 사형수
죽음을 기다리는 삶, 어차피 이것이 인생이 아니겠습니까 오늘 우리가 읽은 이 본문에는 죽음을 앞둔 사형수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는 사형수가 대기하는 특별한 간방에 수용되어 있었습니다. 햇빛이나 맑은 공기를 조금도 구경할 수 없는 습하고 어두운 깊은 동굴과 마굿간에서나 깔았음직한 짚더미가 그가 매일 보게 되는 환경의 전부인 그곳에서 날짜를 알지 못하는 사형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여러분! 간방을 구경해 보신 적이 있습니까 우리같은 목회자들은 전도 관계상 자주 들르게 되는데 사형수에게는 트결한 대접이 주어집니다. 왜냐면 고도의 심리적 불안 상태에서 어떤 것을 저지를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시시각각으로 다가오는 죽음의 공포 대개의 사람들은 견디기 힘든 고독과 죽음 앞에서 정신 분열증으로 미쳐 버린다고 합니다. 심리학자 정신 분석 학자들은사형수의 심리 상태가 세단계로 진전 된다고 합니다. 첫째 단계로서 자신의 죽음과 사형을 인정하지 않고 저항하게 되는 단계로써 원인을 자신이 아닌 타인의 탓으로 자꾸만 돌린다고 합니다. 둘째 단계는 애원의 단계로써 살아날 길이 있는가 하여 애걸 복걸하는 단계입니다. 가족이나 변호사 심지어는 간수에게 조차 살려 달라고 살아날 길이 없는가고 애절하게 매달리는 단계입니다. 그러다가 마지막 단계에 이르러 자신의 죄와 사형, 죽음을 인정하고 체념하게 되는 데, 대게의 사형수들은 넋이 나간채 아무 움직임도 없이 하루 하루르 보내게 됩니다. 그러다가 어느날 아침 혹은 저녁무렵 뚜렷한 행선지 없이 간수가 두명와서 불러 내는 날 그가 마지막 땅을 딛고 서 있는 순간이 되는 것입니다. 어떤일이 있어도 우리가운데 또는 우리가 아는 사람 가운데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곡 기도해야 되겠지요. 아니! 성경이 예언한 대로 환난과 핍박, 그리고 배교의 역사가 다시 이 세상애 온다면 이런일이 일어나지 않는다고 누가 보장하겠습니까 오늘 본문에 나타나있는 발신자, 편지의 저자는 이제 막 시작된 로마제국의 핍박시대에 같은 동족 유대인들의 고소로 종교사범으로 로마특별시로 압송되어 사형을 언도받고 3-4년의 감옥 생활중에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길리기아 다소가 고향인 이 사람의 죄목은 천항에 몹쓸 도를 전파하여 민심을 교란하며 로마황제를 숭배하는데 반기를 들은 죄라고 선고되었습니다. 벤허나 쿠오바디스 같은 영화에서 본것처럼 로마의 동굴 감옥은 끝도 없는 미로속 지하에 있었습니다. 아무리 강한 사람이라도 3-4일쯤만 갇혀 있으면 그 공포와 암흑에 질려 버릴 그런 장소 였습니다. 그는 이미 나이도 쇠잔해 있었고 의지하고 부를 만한 면회 올 만한 가족도 남겨 놓지를 못했습니다. 왜냐면 그는 80평생 장가도 가지 않은 채 혼자 살았기 때문입니다. 참으로 누가 그를 위로 한들 위로가 되겠으며 누가 그를 이해한다고 한들 소망이 되겠습니까 기력도 떨어지고 만성적으로 괴롭히는 안질 때문에 앞도 잘 볼 수 없는 가련한 사형수! 누가 보아도 측은히 여겨야 되고 누가 보아도 불쌍히 여겨 그를 동정해야 할 그런 사람입니다. 이 분이 누구입니까 아시아 남부와 북부, 그리고 동부와 전 유럽을 다니며 왕앞에서, 총독들 앞에서 고관 대작과 귀부인들 앞에서 그리고 저자거리와 회당과 신전에서 땅을 쩌렁쩌렁 울릴듯한 목소리로 복음을 전하였던 그 사도 바울입니다. 죽기까지가 몇번이었으며, 매를 맞아 실신하기가 몇번이었는지 모릅니다. 죽는 날까지, 아니 갇히는 날까지 한 템포도 그 걸음을 멈추지 않고 다녔든 그런 전도자 였습니다.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면 죽도록 충성한 이 복음의 사도 바울을 그의 여생 말년만이라도 편하게 해 주시고 쉬고 그의 여생을 잘 마칠 수 있도록 보살펴 주셔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오히려 하나님은 이제 사형수로서 일생을 마치도록 에정해 놓으셨으니 하나님의 지헤는 측량할 길 조차 없습니다.
① 관제와 같이 부음이 되고
디모데 후서는 빌립보서와 함께 옥중서신이라고 합니다. 감옥에서 보낸 편지라는 뜻이지요. 오늘 디모데 후서를 살펴보면 감옥에 있는 노 사형수의 심경을 드러내는 구절이 언듯언듯 눈에 뜨입니다.오늘 읽은 본문 4장 6절로 8절 말씀은 참으로 하나님의 사람이면서도 어쩔수 없이 사람의 모습을 보일 수 밖에 없는, 그래서 더 사랑이 가고 친근감이 더해지는 그런 모습입니다. 그는“관제와 같이 벌써 부음이 된” 자신의 모습을 알고 있었습니다. 여기서 관제란 민수기 15:5과 28:7절에 계시된 대로 어린양 제물을 제단위에 올려놓고 포도주를 붓는 의식입니다. 이것은 사도바울이 곧 순교 당하게 될 것을 암시하는 말입니다.그에게는 이 땅에서 마지막 어떤 죽음으로 죽게 될 것인가에 대한 확실한 예견이 있었습니다. 세상에는 병사도 있고, 자연사도 있고 교통사도 있습니다.그러나 크리스챤의 죽음에는 주를 위하여 살다가 주를 위하여 죽게 되는 순교라는 것도 있습니다. 땅위에 의로운 피를 뿌리고 세상 죄인들을 대신하여 관제와 같이 부음이 되어 순교하는 죽음이야 말로 성경이 말하는 바 크리스챤의 가장 큰 복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사실을 알고 있는 본인의 마음은 참으로 얼마나 번민과 갈등이 있겠습니까 예수께서도 그러한 번민을 제자들에게 수시로 보이셨는데 말입니다.
② 떠날 기약이 가까왔도다
‘떠날 기약’ 헬라어로는 ‘해방’을 의미하는데 이는 그의 죽음을 의미합니다. 죽을을 앞둔자의 심경, 우리는 이미 앞에서 어떠한 것인지를 잠시 생각해 보았습이다. 저는 시한부 인생의 사람들의 심정을 헤아려 봅니다. 제 처 삼촌이 40대로 세상을 요절 했습니다. 간경화증에서 간암으로 전이 되어 결국 확인 검사후 6개월이 채 못되어 돌아가셨는데 그 분의 면회갈 때마다 바짝바짝 타들어 가는 입술 속에서 그 분의 꺼져가는 생명불빛을 볼 수 있었습니다. 자신의 속에 있는 생명빛이 점점 연기를 내며 꺼져갈 때 인간은 어떤 마음이 되겠습니까 사도 바울의 수고와노력 그리고 헌신과 봉사에 비교하여서는 너무나도 가혹한 것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마냥 애처롭고 불쌍해서 우리가 마땅히 동정하고 면회가서 위로를 애 주며 최후까지 잘 참으라고 격려를 해 주어야 할 대상인 그 분이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이건 당당한 정도가 아니라 한 걸음 더 나아가 우리를 위로하고 우리를 격려 해 주고 있다는 것입니다.

2.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라
어린 목회자인 디모데를 향하여 때로는 아버지처럼, 때로는 무서운 교관처럼, 또 때로는 스승으로서의 글을 이어 가던 사형수 바울이 이제 마지막장인 4장에 이르러서는 갑자기 추상같은 소리로 디모데를 명령합니다.“하나님 앞과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실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그이 나타나실 것과 그의 나라를 두고 엄히 명하노니”(4:1) 어떻습니까 여러분들이라면 이런 말씀을 할 수 있겠습니까 만약 저나 여러분이 옥에 갇혀 교회에 편지를 쓰게 된다면 이런류의 어투로 과연 말씀할 수 있겠습니까 더욱이 사형을 앞두고 있는 사형수라면 절망과 허무로 시작해서 절망과 허무로 글을 맺을 수 밖에야 더 있겠습니까 어떻게 해서 그가 이런 벼락 같은 말주로, 그리고 날이 가고 달이 갈수록 더욱 확신에 찬 모습으로 옥에 갇힌자가, 사형수가 바깥에 있는 사람들을 걱정하고 글을 쓸 수가 있겠습니까
① 무엇보다도 그는 심판을 믿었습니다.
이것이야 말로 그를 바울되게 만든 원동력 이었습니다. 세상의 종말이 있음을 믿는 신앙, 세상의 끝에 하나님 앞에서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 하시게 될 예수님을 믿었습니다. 무슨 심판입니까 첫째,예수 믿지 않는 자가 받게 될 너무나 크고도 엄청난 심판과 지옥의 징계를 그는 알고 있었습니다.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이 사실을 모르고 자행자지 하며 제 멋대로 살아가고 있음을 그는 불쌍한 마음으로 보고 달려왔던 것입니다.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오래 참으시고 용서하시고 자비하심으로 은혜의 길을 열어 놓으셨는데, 사람들은 아직도 이 사실을 모르고 각기 제 길로 가다가 심판을 면치 못할것에 대하여 안타까운 심정으로 전달해 주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리스도 안에서 거듭나 천국을 본 성도들이여 여러분은 그 심판과 지옥의 환상이 눈 앞에 선하지 않습니까 여러분은 최후의 심판을 아십니까 그리고 그 사실을 믿으십니까 아니면 못 보셨습니까 보시기는 하셨지만 체감 되지는 않으십니까 사도 바울이 80의 노구를 이끌고도 복음 전하며, 감옥에서와 사형직전까지도 오직 강할 수 있었던 것은 이처럼 종말의 심판을 믿는 믿음이 있었기때문 입니다.
② 그는 예수의 나타나심 즉 재림을 믿었습니다.
오늘 이 사실이 또 얼마나 우리를 힘 있게 만들어 줍니까 성도의 소원이 있다면, 꿈에도 소원이 있다면 살아 생전에 예수를 뵈옵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 또한 주님을 만나고 그 분을 뵈옵기를 갈망 하였습니다. 아니 어쩌면 우리보다 더 갈망하고 고대하였는지 모릅니다. 왜냐구요 그는 받을 상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착하고 충성된 종에게 주시마고 약속하신 면류관, 금메달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7절, 8절을 보면 그의 갈망이 어떠했는지를 확연하게 알 수 있습니다.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에비 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

3. 승리의 비결
사도 바울이 어떻게 고독을 이길 수 있었습니까 그가 어떻게 시시각각 닥아오는 죽음의 공포를 이길 수 있었겠습니까 그가 달려온 지난 삶에 대하여 어찌 후회의 빛을 조금도 발견할 수 없습니까 그는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는 어떻게 세상이라는 거대한 골리앗과의 전투에서 위기를 이기며, 날마다 엄습해 오는 대적과 원수들의 조롱을 이길 수 있습니까 시도때도 없이 찾아오는 스트레스와 싸워 이길 수 있겠습니까 그렇습니다. 우리의 승리는 종말을 믿고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것입니다. 승리의 비결은 딴곳에 있지 아니하고 열매가 나타날 때 까지 인내하며 버티는 것입니다. 조금만 더 참으면, 조금만 더 기도하시면 승리는 완전히 우리의 것입니다. 주저 앉지 마십시오.. 포기하지 마십시오. 사도 바울이 우리를 격려하고 있습니다.그가 가장 음습한 곳에서, 로마와 빌립보의 감옥에서 우리를 향하여 박수를 치고 있습니다. 절망 중에 예수를 저주하고 자포자기 하여야 마땅할 사형수의 자리에 선 사도바울이 우리에게 외칩니다. 용기를 가지라! 힘을 내라! 승리가 눈앞에 있다.! 결승지점이 눈앞에 있다. 세상이 다 사리 사욕을 쫓고, 세상이 다 다른진리를 찾고 이 세상 모든 인간들이 다 주를 떠나가며 심지어 믿는다고 하는 이들 조차도 사욕의 스승을 좇아 이 교회 저 교회로 철새처럼 옮겨 다닌다 할 지라도, 에수쟁이들 중의 상당수가 탈세하고 타협하고 부동산 투기를 하여 일확천금을 얻었다 하더라도!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이여 여러분들은 그렇게 하지 마십시오. 그것은 허망한 신기루이며 그것은 모두 사상 누각일 뿐입니다. 여러분들은 아무리 어렵고 지치고 포기하고픈 환경 이라고 생각되어져도 사도 바울의 격려와 충고를 받아들이십시오. 사도 바울이 무엇이라고 우리에게 권고 합니까 몇 가지를 목표로 삼아야 한다고 가르쳐 주지 않습니까 경기하는 자가 바라보아야 할 규칙,높이,길이가 있듯이 우리도 나타나실 그리스도 앞에서 상급 받기 위해서는 다음의 몇가지를 목표로 삼아야 한다고 가르쳐 줍니다.
① 첫째는, 말씀전파하는 전도인의 일입니다. (2절,5절)
전도와 선교를 위하여 어떤 모양으로든지 협력하는 것 이것이야 말로 죽는 날까지 변하지 않는 우리의 목표 입니다. 복음 전파를 돕기 위해 가정을 가지십시오. 복음전파를 위하여 사업을 계획하십시오. 복음 전파와 연결해서 직장을 다니십시오. 하나님의 복음을 더 멀리, 더 많이 전파하기 위해서 공부 하십시오.이것이야 말로 상급얻는 중요한 목표입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들이 하나님 나라의 전파와 하나님 나라의 완성을 제쳐두고 여러분이 성공하고 일등해 보아야 무슨의미가 있습니까 그러므로 주의 나라를 위해서 일등 하시기 바랍니다.
② 둘째, 우리는 사람들을 격려해야 합니다. (2,5절)
경책하고 권고하며 가르치는 일이란 하나님 나라의 백년 대계를 위하여 교육을하는 것입니다. 지식만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인격으로 자라도록 끊임없이 양떼들을 보살펴야 합니다. 여러분이 앞장서서 가는 어미양이요 아비 양으로서 올바른 길로 가야만 뒤따르는 어린 양무리들이 안전하게 승리의 길로 갈 수 있을 것 입니다.

4. 결론적으로
참으로 무더운 여름입니다. 지치기 쉽고 무조건 멈추고 싶고, 누워서 마냥 세월만 갔으면 하는 유혹이 많습니다. 그래서 무더운 열대 지방의 사람들은 게으르고 가난한가 봅니다. 그러나 참된 그리스도인은 그렇게 하면 안됩니다. 이 여름 우리는 더욱 은혜를 사모하고 더욱 그리스도를 사모하여 맡겨주신 일을 감당해햐 합니다. 주일학교 여름 성경학교가 여러분들의 도움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중, 고, 대 학생회가 여름 수양을 가면서 도움의 손길을 찾고 있습니다. 평소 때보다 훨씬 더 봉사가 요구되고 있습니다. 이럴 때 로마 감옥 그 어두운 곳에서 편지를 쓰고 있는 사형수 사도 바울을 기억합시다. 안질 때문에 잘 보이지도 않는 글을 적고 또 적고 있는 그 분의 사랑과 헌신을 생각하면서 그리스도 앞으로 한발 더 바짝 다가갑시다. 참으면 우리는 왕노릇 할 것입니다. 상급이 있습니다. 약속이 있고 칭찬이 있습니다. 모쪼록 이 여름 오늘 디모데 후서 4장의 이 말씀이 여러분의 영혼 속에 떨어져 결실하여 상급 받을 수 있기를 전심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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