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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 (마 01:1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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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탄주일을 맞이하여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는 제목의 말씀으로 은혜받는 시간되시기 바랍니다. 세상 모든 사람은 이름이 있습니다. 동명이인도 있지만 제각기 다른 이름을 가지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실 때 천사가 요셉과 마리아에게 이름을 예수로 지으라고 부탁하였습니다. 그의 친아버지되시는 하나님께서 지어주신 이름입니다. 예수라는 이름은 '자기 백성을 다스린다. 구원한다. 임마누엘'이라는 뜻인데 더욱 자세히 알아 보겠습니다.

1. 왕되신 예수님
예수라는 이름은 "자기 백성을 다스릴 자"(눅1:31)라는 뜻이 있습니다. 마리아에게 천사가 이르되 "이는 큰 자가 되고 다윗의 위를 저에게 주시리니 야곱의 집에서 영원히 왕노릇하리라"고 했습니다.
주전 700년에 벌써 이사야를 통해 한 아이가 이 세상에 나실터인데 어깨에는 정사를 메고 전능하신 평강의 왕으로 이땅에 오실 것이라고 예언하였습니다. 어깨에 정사를 멘다는 것은 다스린다는 말입니다. 통치자로서 왕권을 가지고 이땅에 오신다는 존귀하고 영광스런 말입니다.
우리는 뭡니까 그 나라의 백성입니다. 그 시절 백성의 소망은 로마 시민권을 갖는 것이었습니다. 그 시민권은 무적이고 무사통과였기에 엄청난 돈으로 사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러한 로마시민권과 비교할 수 없는 천국의 시민권을 가진 자들입니다.
우리의 왕은 누굽니까 역사를 다스리시며 운명을 좌우하시는 분이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을 다스리기 위하여 오셨습니다. 우리가 왜 주님 오신 날을 영광스럽고 복되게 여기며 만백성 맞으라고 기뻐합니까 그 분이 왕으로 오셨기 때문입니다. 진리와 의의 선하신 통치자이십니다. 나라나 백성은 통치자를 잘 만나야 합니다. 북한은 살기 좋은 경치와 풍부한 지하자원과 온천을 가진 아름다운 땅이었지만 해방 후 50년간 통치자를 잘못 만나 백성들이 억압 당하며 불행한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2. 구원자되시는 예수님
기독교는 구원의 종교입니다. 명상, 철학, 윤리, 도덕의 종교가 아닙니다. 성경 전체에 구원이라는 말이 550여회가 나옵니다. 병이나 가난에서의 구원이 아닙니다. 그것은 죄에서의 구원입니다.
인간은 죄때문에 망하였습니다. 죄는 마귀에게서 왔고 죄값은 사망입니다. 에덴이 파괴되고 살인을 부르는 죄는 인간을 불행하게 했습니다. 더럽고 무서운 저주를 가져다 주었습니다. 그러므로 구원받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병자를 고쳐 주실 때 "너 병 고쳤다. 좋겠다" 하시지 않으셨습니다. 중풍병자가 지붕을 뚫고 내려오니까 "네 죄사함을 받았느니라"하셨고 문둥병자에게도 "인간에게 불행을 주는 사단아 나가라, 더러운 귀신아 나가라". 하시면 사단을 격파하셨습니다.
교회가 왜 있습니까 사회인들과 운동권자들은 왜 교회가 가난한 자를 구제하지 않고 교회를 크게 짓고, 사회 정의를 외치지 않고 자기 울타리에 갇혀 사회에 무관심하냐며 비판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교회의 근본적인 사명이 아닙니다. 교회는 죄인이 구원받기 위해 있는 것입니다.
나라마다 군인없는 나라가 없는데 평화시에도 군인은 있어야 합니다. 군인이 대민봉사하고 물에 빠진 사람 구해주기 위해 있는 것이 아닙니다. 나라를 지키고 자유를 잃지 않기 위해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땅에서 공생애를 시작하실 때 마귀가 와서 인간을 구원하려면 당장 먹는 것이 필요하니 돌멩이로 떡을 만들라고 유혹하였습니다. 그러자 주님께서는 "사단아 물러가라, 사람이 떡으로만 살것이 아니라 하나님 말씀으로 사는 것이니라."고 물리쳤습니다. 교회는 존재 목적을 정확히 알아야 합니다. 교회의 근본 사명은 영혼 구원에 있는 것입니다.

3. 임마누엘 예수님
히브리어로 임마누는 "함께 하다". 엘은 "하나님"이라는 뜻입니다. 사람에게는 친구가 필요합니다. 혼자서는 불행합니다. 아담을 창조하신 후 하나님께서 내려다 보시고 외롭지 않게 돕는 배필을 만드셨습니다. 동반자가 필요합니다. 친구가 나를 돕는 것 같으나 한계가 있습니다. 끝까지 장소와 시간과 환경을 초월해서 돕는 분은 주님밖에 없습니다. 모두 나를 돕는 사람인줄 알았는데 아닙니다. 병들고 외롭고 답답하고 곤할 때 임마누엘 주님이 도와 주십니다.
그래서 시편 기자 다윗은 고백하기를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게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시편 23:4)라고 했습니다.
능력의 주님이 나와 함께 하셔야 내가 일어납니다. 위로의 주님이 나와 함께 하셔야 마음이 평안을 얻습니다. 기적의 주님이 나와 함께 하셔야 길이 열립니다. 요한 웨슬레도 임종직전에 "선생님이 일평생 동안 살아오시면서 가장 좋았던 것이 무엇입니까"라는 제자들의 물음에 "무엇보다 좋은 것은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심이라"고 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임마누엘되시는 하나님과 이 세상에서 승리의 삶을 살다가 하나님의 품에 안기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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