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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파도위에 서신 주님 (마 14:2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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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로부터 고민의 맛을 안 사람은 우리에게 그것이 천금만큼의 가치가 있다는 말을 남겼습니다. 어떤 신앙인은 이렇게 고난에 대해서 말합니다. "고난은 실로 무거운 짐이다. 그러나 생각해 보면 그것은 새의 날개와 같고 물고기의 지느러미와 같으며, 더 나아가 배의 돛과 같다. 사람은 이것에 의하여 하늘 높이 날며 물 위로 뛰어 오르고 헤엄쳐 건너편에 도달한다. 이렇게 해서 우리들은 고난에 의해서 하나님에게 되돌아 가고 사람의 마음에 닿으면 또한 자기를 제어할 수 있다. 고난은 적저럼 보이지만 사실은 우방이고, 우리들을 미워하는 것처럼 생각되지만 사실은 우리들을 사랑한다"는 것입니다.
본문 말씀은 벳세다 광야에서 오병이어의 기적이 일어난 후, 갈릴리 바다에서 일어난 사건의 이야기입니다. 떡 다섯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수많은 군중들을 먹이신 예수님께서는 오병이어의 기적의 감격이 채 가시지 않은 제자들을 돌려 보내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홀로 산중에서 깊은 기도의 시간을 갖게 되었습니다. 어두움이 깔리고, 제자들을 육지에서 멀리 떠나 있었습니다. 배를 타고 육지에서 멀리 떨어져 있다는 사실만이라도 조금의 두려움이 있을 수 있습니다. 거기에다가 바람이 불기 시작하더니 순식간에 매서운 돌풍으로 변하여 노를 저을 수 없을 만큼 풍랑이 심해졌습니다. 그들은 밤새동안 사력을 다해 풍랑과 싸웠으나 어찌할 도리가 없었으며 이제 그들의 생명은 풍전등화와 같이 되었습니다. 그때 설상가상으로 파도를 해치고 마치 유령이라고 생각이 되는 검은 그림자가 그들에게 접근하고 있었으니 그들의 두려움은 말로 형용하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유령이 아니라 공포에 빠져 있는 제자들을 구워하시기 위해 찾아오신 예수님이었습니다. 그때 예수님은 "네니 두려워마라."고 하시며 배에 오르셨습니다. 주님이 배에 오르자마자 거센파도는 금방 잔잔해졌습니다. 제자들은 생명과 자연을 지배하시는 주님 앞에 무릎을 꿇고 경배를 드렸습니다. 본문은 험한 인생의 바다를 향해가는 우리들에게 삶의 지혜와 영적 교훈을 제시해 주고 있습니다.

1. 풍랑 때문에 고생하는 제자들의 모습
제자들이 타고 가던 배가 갈릴리 바다에서 풍랑을 만나 밤이 새도록 고생을 하는 모습을 발견하게 됩니다. 많은 성경 주석가들의 의견으로는 그들이 바다에서 풍랑으로 고생한 시간은 9시간에서 10시간 정도일 것이라고 추정하고 있습니다. 즉, 그들이 날이 저물 때에 출발을 했고 주님이 나타난 시간이 새벽 4시니까 시간상으로 따지면 밤이 새도록 시달림을 당한 것입니다. 또한 육지에서 멀리 떨어져 있었다는 것과, 때가 밤이었다는 것, 배가 주님이 함께 동승하지 않았다는 것들이 그들의 고난을 극명하게 설명해 주고 있는데 바로 이러한 상황들이 우리 인간들의 삶의 모습입니다. 우리가 삶을 살아갈 때에 삶의 여정에 심한 풍랑이 쉬지 않고 일어납니다. 성서에서 우리는 풍랑으로 인한 사건들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구약에서는 요나의 사건입니다. 요나에게 닥친 풍랑의 원인은 하나님의 말씀을 불순종하고 역행하였기 때문이었습니다.
신약에서의 풍랑사건은 사도행전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로마로 호송을 당할 때에 미항(美港)이라는 곳에 이르렀습니다. 위험을 예견하는 하나님의 사람 바울의 말을 무시하고 항해하다가 유라굴로라고 하는 거대한 폭풍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보통 우리는 풍랑의 원인을 하나님 말씀을 불순종 하기 때문이라고 말하는데 꼭 그런 것은 아닙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태풍은 제자들이 주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가다가 만난 풍랑이었습니다. 누가복음 8장에서는 제자들이 예수님과 같이 항해하는 도중에도 풍랑을 만났다는 사실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의 소원과는 관계없이, 분명한 것은 우리가 일생을 살아가면서 어느 누구에게든지 이러한 풍랑이 닥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2. 풍랑 속의 베드로
이러한 풍랑 가운데 주님에게 한가지 요청을 한 사람이 있었는데 베드로입니다. 그는 예수님에게 "나를 물위로 오라 하소서"라고 요청하는데, 이것은 실로 엄청난 요청이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의 요청을 받아 들이셨고 명령을 내려 베드로는 풍랑위를 몇 발자욱을 걸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얼마 가지 못하고 풍랑속에 빠지는 실패를 맛보게 됩니다. 우리는 이 사건에서 중요한 교훈을 얻게 됩니다. 왜 베드로가 풍랑속에 빠지게 되었습니까 주님께서 오라고 명령했으며 바로 그의 눈앞에 서 계셨는데 말입니다. "바람을 보고 무서워 빠져 가는지라(30절)" 이 말씀에서 우리는 이유를 찾게 됩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베드로가 물위에 서 있기에는 아직 그의 믿음이 부족했다는 것입니다. 베드로의 열심, 용기는 훌륭하고 본 받을만 합니다. 어느 누가 감히 베드로의 그 모험적인 용기를 흉내낼 수있겠습니까 그러나 믿음은 기분과 감정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용기만 가지고도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때 그때의 기분에 따라 생각하고 생활하는 사람들도 많이 있지만 그들은 모두 실패하고 맙니다.
베드로가 적어도 심한 풍랑을 딛고 일어서서 스스로 주님을 향해 고난의 행진을 할 수 있기까지는 수 십년의 기간이 필요했으며, 그동안 그는 헤아릴 수 없는 실패와 좌절이 있었습니다. 그날 만약 갈릴리 바다에서 그가 물에 빠지지 않고 주님이 계신곳까지 걸어갔더라면 어떤 결과가 왔겠는가를 상상해 보십시오. 베드로는 수많은 실패를 통해서 자신의무능함을 체득(體得)했으며, 결국 초대교회의 반석이 되었습니다. 주님이 잡히시던 날 밤에도 예수님을 모른다고 세 번씩이나 부인하고 넘어졌던 베드로였지만, 결국 그러한 실패 가운데서 그의 신앙과 인격은 성장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모세가 모세될 수 있었던 것은 여러번의 실패 가운데서 자신의 무능(無能)함과 연약함을 확실히 깨달을 수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우리의 인생길에 고난의 파도가 밀려올 때에 우리는 두가지를 항상 경계해야 합니다. 그 하나는 파도를 자기 혼자의 힘으로 나갈 수 있다는 자신감입니다. 이러한 교만함도 문제이지만 험한 파도가 덮쳐올 때에 절망으로 인하여 그 파도속에 그대로 빠져 버리는 것도 경계하여야 합니다.

3. 파도를 밟고 서신 주님이 계십니다.
미친듯이 춤추는 바다, 금방이라도 배를 삼킬 듯이 요동하는 풍랑속에서 공포에 떨려 신음하는 제자들, 두려운 눈길로 파도를 보다가 물속에 빠져 들어가는 베드로의 모습을 보면서 연약한 인간들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칠흙같이 어두운 밤중에, 사경을 헤메는 고난의 현장에 풍랑을 딛고 서 계신 분이 계십니다. 그 분이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나다, 두려워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아이들만이 밤중에 그들은 겁에 질리지만 다정한 아빠의 음성, 엄마의 음성이 들릴 때, 그 음성은 참으로 반가운 것입니다. 갈릴리 바다에 찾아오신 주님은 음성은 바로 이 아빠의 음성이요. 엄마의 음성입니다. "나다. 이제는 무서워 할 것 없다."는 위로의 주님의 음성입니다.
밀크 코넬리의 '푸른 초원'이라는 영화의 한 장면은 참으로 인상적입니다. 40여년간 수많은 고생을 하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가나안 땅으로 이끌던 모세는 주님의 명령으로 지휘권을 젊은 지도자 여호수아에게 넘깁니다. 자기 앞을 떠나 멀리 꿈에 그리던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는 이스라엘 백성을 바라보는 모세는 고독감과 허탈감에 몸부림치게 됩니다. 바로 그때 누군가가 자기의 어깨를 감싸주는 것을 느꼈습니다. 바로 주님이셨습니다. "주님, 주님은 이 순간에도 저와 함께 계시지요"라고 모세는 물어 보았습니다. "물론, 나는 너를 떠나지 않고 항상 함께 있지, 모세야." 주님은 이렇게 위로하여 주셨습니다. 모세를 위로하시고 힘이 되어 주셨던 주님은 물에 빠져 들어가는 베드로의 손을 잡아 구원해 주시고 풍랑을 잠잠케 하셨습니다.
그러면 풍랑속에서 빠지지 않는 비결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풍랑 가운데 서 계시는 주님을 바라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캄캄한 밤을 보아서는 안됩니다. 사나운 풍랑을 보아서도 안됩니다. 그 사나운 풍랑을 딛고 서서 "네니 두려워 말라" 하신 주님을 보아야 합니다. 우리에게 풍랑을 딛고 서서 "네니 두려워 말라"하신 주님을 보아야 합니다. 우리에게 풍랑과 성난 파도가 없는 것이 아닙니다. 온갖 시련이 있습니다. 예수를 영접한 우리에게도 똑같이 시련이 있습니다. 시련이 우리에게 다가왔을 때 우리는 파도를 보아서는 안됩니다. 파도위에 서 계신 주님을 보아야 살 수 있습니다. 홍해바다 앞에서 모세는 넘실거리는 홍해의 물결을 보지아니하고 "내니 두려워 말라"하신 하나님을 보았습니다. 히브리서 12장 2절에 보면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라고 히브리서 기자는 우리에게 말하고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인생의 바다에는 예측하지 못하는 파도가 일어납니다. 요즈음 우리는 일기예보라는 과학의 혜택으로 폭풍주의보를 듣고서 배의 항해를 사전에 조정함으로 상당한 피해를 줄이기도 하지만, 인생의 항해는 그러한 일기예보가 없습니다. 국가의 재난이나 개인에게 밀어 닥친 환란이 우리가 원해서 일어나는 것도 하나도 없습니다. 원하지 않는 파도가 항상 밀려 듭니다. 지금 국가적으로도 심한 파도가 일고 있으며, 국제정세의 기상도는 언제 우리나라에 또 한차례의 태풍을 몰고 올지 모릅니다. 바로 이때에 우리는 역사의 저 지평선상에 서시어 회오리바람을 붙잡고 "네니 두려워 말라"고 말씀하시는 주님을 바라봅시다. 그리고 우리의 연약한 손을 내밀고 이렇게 간구합시다. "주여 도우소서, 주께서 함께 하시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나이다"라고
성도 여러분! 지금 고난의 파도를 만났습니까 풍랑속에 빠져 있습니까 삶이 현장에서 지금 절망의 파도를 만나셨습니까 예수님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여러분의 손을 파도위로 내밀고 "주여, 나를 도우소서"라고 간구하시기 바랍니다. 스펄젼 목사의 젊은시절 한 때 그는 깊은 회의와 좌절에 빠져 있었습니다. 우연히 어느 시골교회 예배에 참석하였다가 설교자가 "저기 저 청년은 길을 잃었습니다. 예수님을 바라보십시오"라는 지적을 받게 됩니다. 스펄젼은 이 사건을 통하여 세상과 절망을 바라보던 시선을 예수님께로 돌리는 하나님의 사람이 됩니다.
감리교를 창시한 요한 웨슬레 선생이 북미 대륙에서 선교사역에 실패하고 돌아오다가 넓은 바다에서 풍랑을 만나게 됩니다. 웨슬레는 이상한 일을 목격하게 됩니다. 배안의 모든 사람들은 죽음의 공포 앞에 두려워 떨고 있는데 기독교의 한 종파인 모라비안 교도들은 담대한 마음을 가지고 평안히 예배를 드리고 있었습니다. 이상스럽게 생각한 웨슬레는 모라비안 교도들에게 당신들은 이러한 풍랑이 두렵지 않느냐고 물어보자 그들을 "우리는 파도를 보지 않았습니다. 다만 주님이 계신 하나님 나라를 보았습니다"라고 대답하였습니다.
음악가 헨델은 전신마비가 되고 파산을 당했을 때에도 주님을 바라보았습니다. 결국 그는 역경을 이기고서 "메시야"라는 세기의 대작을 만들어 낼 수 있었습니다. 인류 역사의 물결 가운데 서 계신 주님은 "내니 두려워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의 고난의 파도앞에 서 계셔서 "내니 두려워 말라"하십니다. 주님을 바라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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