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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소원을 이룬 여인 (마 15:2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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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이 이땅에 계시면서, 수많은 사람을 만났습니다. 그중에서 주님께 "믿음이 크다"고 칭찬받은 사람은 두 사람뿐입니다. 한사람은 마태복음 8장에 나오는 로마의 백부장이었고 또 한사람은 본문에 나오는 이방여인입니다. 예수님 당시에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님께 나아왔으나 그들 모두가 은혜를 받고 구원 받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심지어는 3년동안 주님을 따라다닌 제자중 가롯유다는 주님을 배신하기까지 하였습니다.
사람들이 교회에 나오게된 동기를 보면 개인, 개인이 각기 다릅니다. 어떤 이는 병을 고칠 목적으로, 친구를 따라서, 호기심으로, 기독교 가정에 태어나서 자동적으로, 혹은 물질적인 도움이나 받아볼까하고 또는 자기자신의 출세를 이용할 목적으로 나온 사람(선거철만 되면 입후보자들이 갑자기 신앙인으로 탈바꿈한다), 정탐꾼으로 나온 사람등이 있습니다.
무엇이 중요합니까 다음의 사실들을 한 번 스스로 물어 보시기 바랍니다. 과연 내가 지금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의 반열에 있느냐 나는 과연 하나님의 은혜를 힘입고 살고 있는 것을 알고 있는가 나는 과연 구원의 기쁨이 있는가 이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오늘 본문에 나오는 수로보니게 여인을 통하여 예수님께 찾아 오는 성도의 참된 모습을 발견해야겠습니다.

1. 심각한 문제를 가지고 주께 나왔습니다.
이 여인이 주님께 나온 것은 호기심에서 온 것도 아니고 친구따라 온것도 아닙니다. 이 여인이 주님께 나온 것은 절박한 문제를 가지고 왔으며, 큰 슬픔을 가지고 왔습니다. 이 여인에게는 악한 귀신에 사로잡힌 딸이 있었습니다.
상상해 보십시오, 사랑하는 딸이 귀신들려 있는 모습을 말입니다. 수로보니게 여인이 주님께 나온 목적이 너무도 분명하였는데, 그 문제는 딸의 문제였습니다. 딸의 문제는 곧 자기 자신의 문제이며, 딸의 불행은 곧 어머니의 불행이었기 때문입니다. 이 여인은 자신의 고통의 문제, 불행의 문제, 슬픔의 문제를 가지고 왔습니다. 예수를 구주로 믿는 우리들에게 필요한 일은 주님앞에 찾아와 자신을 바로 깨닫는 일입니다. 나의 처지가 어떠한지 바로 알고 주님앞에 나오는 것이 중요합니다.
요한계시록 3장에 보면 아시아의 7교회중의 하나인 라오디게아 교회를 주님이 책망하셨습니다. 라오디게아 교인은 "나는 부자이고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는 자만심의 신앙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실상을 모르는 라오디게아 교회를 향하여 주님은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도다"라고 책망하신 것입니다.
여러분의 믿음의 실상은 어떠한가요 자신의 실상을 파악하십시오. 그리고 심각성을 깨닫기 바랍니다.

2. 매어 달리는 간구가 있어야 합니다.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내딸이 흉악히 귀신들렸나이다"(22절)라며 그녀는 한 번으로 그친 것이 아니라 계속적으로 따라다니면서 부르짖었습니다.
이 여인은 자기의 고통스런 문제를 주님께 그대로 고백을 하였습니다. 딸이 귀신들린다는 일은 남에게 그리 자랑할 만한 것이 못되지만, 부끄럽다고 숨길 일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대로 주님께 아뢰었습니다.
문제의 심각성을 발견하면 주님께 결사적으로 매달려야 합니다. 얍복강변의 야곱과 마가복음10장에 여리고의 바디매오를 보면 그들은 결사적인 사람들이었습니다.
주님께 악착같이 매달렸습니다. 이러한 그들에게 주님은 긍휼을 베풀어 주셔서 문제를 해결해 주셨습니다. 우리가 기도하지 않은 것은 아직도 문제의 심각성을 발견하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있으나 기도하지 않는 것은 기도에 대하여 불신앙적인 믿음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들이 있습니다. 저와 여러분은 기도하지 않아도 괜찮으리만큼 온전한 사람이 못된다는 것입니다. 또한 기도한 결과는 반드시 나타난다는 사실을 믿어야 합니다.
기도에는 세가지의 응답이 있습니다.
① 즉시로 이루어지는 응답이 있습니다.
② 이루어지지 않는 응답이 있습니다.
③ 오랜 시간이 흐른 후에 이루어 지는 응답이 있습니다.
자녀가 부모에게 어떤 것을 요구할때에도 이 세가지의 방법으로 응답을 받게 됩니다. 학생이 공부하기 위해서 학용품을 사달라고 할 때 부모는 즉시 수락을 하고 사줄 것입니다.
2-3살 먹은 어린아이가 부모에게 날카로운 칼을 달라고 할 때 부모는 냉정하게 거절할 것입니다. 어린 자녀가 텔레비젼에서 결혼하는 장면을 보고, 부모에게 결혼시켜 달라고 하면 부모들은 웃음지으면서 '기다리라'고 할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는 응답시기와 방법이 틀릴뿐이지, 반드시 응답된다는 사실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3. 물러서지 않는 인내심이 있어야 합니다.
심각한 문제를 가지고 주님께 나아와서 목이 터져라고 기도했건만, 이 여인에게 돌아온 것은 멸시와 냉대와 침묵뿐이었습니다. 자기의 간청이 거절당하자 그 여자는 참으로 비통하기 짝이 없었을 것입니다. 그래도 그녀는 불쌍한 딸을 생각하면서 다시금 간청하였습니다. "주여 제발 도와 주소서"비명 섞인 절규였습니다. 그러자 주님께서는 여인에게 참으로 어쩌구니 없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자녀들의 떡을 어떻게 개한테 던져 준단 말이냐 그것은 옳지 않은 일이다" 이정도가 되었으니 이 여인은 크게 실망을 해야합니다.
"내가 잘못 온 것이 아닌가, 예수는 소문으로 듣던 예수가 아니다. 사랑의 사람이라고 소문이 있더니 영 딴판이로구나" 그러나 이 여인은 물러서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이러한 자세가 되어 있었습니다. "개면 어떻고 쓰레기면 어떻습니까 저는 이대로는 물러설 수가 없습니다. 주님 지금까지 수많은 방법으로 치료해 보았지만 소용이 없습니다. 마지막으로 주님께 왔습니다. 주님마저 거절하시면 저는 이제 죽을 수 밖에 없습니다. 절망뿐입니다" 라는 마음이었습니다.
"주여 영생의 말씀이 계시매 우리가 뉘게로 가오리이까"(요6:68)하는 베드로의 믿음으로 나아왔습니다. 그렇습니다. 다른 길은 살 길이 없습니다. 오직 이 길만이 내가 사는 길이요, 구원받는 길이요, 축복받는 길이며, 은혜받는 길입니다. 멸시를 받아도 좋고 개라고 조롱당하여도 상관없습니다. 왜냐하면 내가 가지고 온 문제가 더 크고 심각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주님앞에 나온 것은 육신의 질병이나 고치기 위해서 나온 것이 아닙니다. 복을 받아 사업이 번창하게 하기 위함도 아닙니다. 나의 용서받을 수 없는 죄를 사함받고 죽으면 지옥에 갈 수 밖에 없는 내 영혼이 구원받고 영생의 축복을 받아 날마다의 기쁨속에 감격을 누리고자 나온 것입니다.
아람나라라는 대제국의 국방장관도 엘리사 앞에 왔을때는 문둥병자 이상의 대접을 받지 못했습니다. 그가 무시당함과 멸시를 감수하고 엘리사의 뜻에 순종하였기 때문에 최대의 은혜을 만끽하여 신유를 체험하고 돌아갈 수 있었습니다. 하물며, 죽을 수 밖에 없는 정도가 아니라 죽은 우리 인생을 하나님께서 살려 주신 것입니다.
회개하는 심정으로 우리의 신앙생활에 대해 냉정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수로보니게 여인처럼 주님으로부터 "네 믿음이 크도다 네 믿음대로 될지어다"라는 칭찬을 받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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