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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포도원의 초대 (마 20: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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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로마에 야누스라는 두 개의 얼굴을 가진 신이 있었습니다. 야누스의 두 개의 얼굴 중에 하나는 앞을 향하고 다른 하나는 뒷면을 향하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들은 이 야누스 처럼 앞과 뒤를 보면서 살아야 할 때를 맞이한 것 같습니다. 지나간 삶을 반성하고 다가올 삶을 계획해야 하겠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포도원 품꾼의 이야기이다. 여기에 나오는 포도원 품군의 이야기는 4복음서 중에서 본서에만 나오는 비유이다. 이 비유는 앞장의 베드로의 질문과 예수님의 대답에 연관된 것이다. 이것은 영생의 문제에 있어서 먼저된 자로서 나중되고 나중된 자로서 먼저 될 자가 많을 수 있음에 대하여 재차 밝히고 있다. 여기서 먼저 된 자란 유대인을 의미하지만 오늘날에는 먼저 주님을 믿은 사람을 의미하며, 나중된 자란 유대인 보다 늦게 복음을 접한 이방인을 가리키면서 주님을 늦게 접한 신자를 의미한다.
이 포도원 품꾼의 이야기를 통해서 교훈하는 중요한 멧세지는 하나님 나라의 백성들이 갖추어야할 자세를 가르쳐 주고있다. 포도원은 하나님 나라 이고 현실적으로는 교회를 가리키고 있는 것이다. 집주인은 하나님을, 품군은 세상사람을, 청지기는 예수님을 가리킨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장터 곧 온갖 종류의 사람들이 모여 있는 이 세상으로부터 품군을 취하여 포도원에 들여 보냈다는 것은 교회의 성격과 사역을 암시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교회를 포도원으로 비유한 것은 포도원이 자기 스스로 되는 것이 아니고 심는 자가 있어야 하는 것처럼 하나님이 교회의 설립자이시라는 것과 포도원은 목재나 잎을 바라는 것이 아니라 신령한 열매를 원하는 까닭입니다. 그러므로 포도원의 일꾼으로 들어오지 못한 자는 교회에 들어오지 못한 자요 버림받은 자이며 하나님의 축복에서 제외된 자인 것입니다.
포도원에 들어가지 않은 일군의 모습은 우리들이 주님을 알기 전의 상태인 것입니다. 따라서 뒤늦게라도 포도원의 일꾼이 된다는 것 즉 포도원으로 불러 주신다는 것은 그 자체가 하나님의 큰 은혜가 아닐 수가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느 누구라도 당신의 포도원으로 들어오시기를 바라시며 보다 많은 사람들이 포도원 일꾼이 되기를 바라십니다. 성도들은 이러한 주님의 뜻을 헤아려 많은 이들을 주님의 교회로 인도해야 합니다.

1. 이 비유의 첫 번째 의미는 일하라고 부르셨다는 것입니다.
당시 유대사회나 로마 사회에서는 직업을 구하는 일꾼들과 일꾼을 구하는 고용주가 만나는 시장이 있었습니다. 오전 6시가 되면 주인과 일꾼은 품삯을 계약하고 일터로 갑니다. 일찍 계약해서 일터로 가는 사람은 생활을 영위해 나갈 수 있기 때문에 뽑힌다는 그 자체가 복음이며 희소식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늦게까지 고용되지 못한 사람은 점점 불안해지고 초조해지는 것이었습니다. EX) 어떤 목사님은 인력시장에 나갔다가 아무도 써주지 않아서 그냥 돌아 왔다고 했습니다. 쓰임을 받는다는 것과 일할 수 있는 기회가 있다는 것은 대단히 좋은 특권이라고 생각합니다. 본문에서의 포도원 주인은 거의 체념할 즈음에 일하라고 부르십니다. 부름 받은 일꾼으로서는 품삯의 다소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일할 수 있다는 그 자체가 한없는 축복이며 기쁨이 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일할 수 있는 일꾼을 부르십니다. 어떤 사람은 요시야 왕처럼 아주 일찍부터 부르시기도 하고, 또한 여러 가지 방법을 통해서 계속 사람을 부르십니다. 그 부름은 구원이며 영광입니다. 그 부름 자체가 우리에게는 충분한 보상이 됩니다. 그리고 부름에 순종치 않는 것은 그 자체가 큰 죄가 됩니다. 제가 안타깝게 생각하는 것은 우리 지구촌교회 성도들 중에 주일에 예배만 드리고 집으로 돌아가는 사람이 많다는 것입니다. 이제 모두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위해 하나님의 포도원의 일군으로서 사역을 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여기에 모인 우리들부터 사역에 동참해야 합니다. 신앙생활은 설교를 듣고 은혜만 받는 생활이 아니에요. 말씀을 들은 대로 삶속에서 사역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1인 1사역을 꼭하시기를 바랍니다.

2. 두 번째 의미는 하나님은 늦게까지 우리를 부르고 계신다.
1절에 보면 주인은 이른 아침에 나갔습니다. 유대인들의 하루는 해뜰 때인 아침 6시부터 해질 때인 저녁 6시까지를 12시로 나누어서 오전 6시를 제1시로 하였습니다. 주인과 일꾼들은 그날 하루 노동의 품값으로 한 데나리온씩을 받고 일하기로 합의를 보았습니다. 그리 많은 액수는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적지도 않은 하루 일하기에는 적합한 품값 이었습니다.
일꾼들은 포도원을 향하여 힘차게 출발하였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좀 흘러 9시쯤 되었습니다. 포도원 주인은 슬그머니 일어나서 다시 장터에 나가서 사람들을 데려 왔습니다.
그런데 주인은 여기에서 멈추지 아니하고 다시 12시경에 시장에 나가 일꾼들을 고용하였고, 3시쯤 포도원 주인은 다시 시장에 일꾼을 부르러 갔고 그리고 5시 경에는 일할 시간이 한 시간 밖에 남아있지 않았는데도 주인은 또 일군을 불러 왔습니다. 포도원은 많은 일꾼으로 붐볐고 일도 많이 하였습니다. 주인의 마음은 매우 흡족하였습니다. 이제 시간은 오후 6시 드디어 임금을 지불하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주인은 재정을 관리하는 청지기에게 제일 늦게 온 사람들부터 임금을 주라고 말하였습니다. 이들은 겨우 한 시간 밖에 일하지 않았습니다.그래서 이들은 큰 액수는 처음부터 바라지 않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벌어지고 말았습니다. 이들에게 하루 임금인 한 데나리온이 주어지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이들은 몹시 기뻐하고 즐거워 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들보다 더 기뻐한 일꾼들이 있었습니다.아니 제일 기뻐한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아침 7시에 온 자들입니다. 그들은 이렇게 숙덕거렸을 것입니다. "저 주인은 한 시간에 한 데나리온씩을 주려나 보다" 눈을 크게 뜨고 침을 꿀떡 삼키면서 이들은 주인의 지갑만 빤히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두번째로 3시에 온 사람들에게 임금이 주어졌습니다. 그런데 5시에 왔던 사람들과 꼭 같은 1데나리온씩 주어지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일꾼들은 고개를 가윳뚱거렸습니다. "이상하다, 뭔가 잘못되는 것 아냐"그러나 곧 이들은 다시 기대를 가지고 청지기앞에 섰습니다. 그러나 일꾼들의 기대는 조금씩 조금씩, 그리고는 그만 와르르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아니 이집 주인은 몇시간이나 일했느냐에 관계없이 모든 사람에게 똑같은 임금을 지불한단 말인가 아니 이렇게 불공평한 일이 어디 있는가" 하고 일꾼들은 집에 갈 생각도 않하고 웅성거리고 있었습니다. 특히 아침 7시에 제일 먼저 일하려 왔던 일꾼들의 불만이 가장 컸습니다. 왜냐하면 이들도 똑같이 한 데나리온을 받았기 때문입니다.가장 기대가 컷던 만큼 가장 실망도 큰 이들은 주인에게 항의하기 시작했습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에는 그들이 집주인을 원망한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표현은 매우 비교적 젊잖은 표현입니다. 그들은 주인에 대하여 무시당하고 속은 것 같은 아주 불쾌한 생각을 떨쳐버리지 못하고 주인에게 항의하였습니다.
"아니 우리에게 나중에 온 일꾼들과 똑같은 임금을 준다는 말입니까 주인님도 생각이 있고 양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한번 생각해 보시지요,제일 늦게 온 사람들은 땀흘릴 시간이 없을 정도로 짧은 시간을 일했는데,온종일 뜨거운 태양밑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수고한 우리들과 똑같이 취급하실 수 있는 것입니까"
이때 주인이 '잠깐'하고 말을 막았습니다. 그리고 주인은 말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왜 당신들은 더 주기를 바라는 것이요 내가 오늘 아침 7시경에 당신들하고 이야기할 때 한데나리온으로 약속하지 않았소" "그렇습니다. 물론 그랬습니다만 상황이 달라지지 아니했습니까 어떻게 늦게 온 사람과 우리를 똑같이 대우하십니까 우리는 좀더 받아야 하겠습니다." "무슨 말이요 나는 당신들에게 잘못한 것이 없소, 나는 그들을 당신들과 똑같이 지불하기로 약속을 했었지 않습니까 아침 일찍 일을 시작한 일꾼들의 주장에 일리가 있다고 생각합니다.우리 자신이 아침 7시부터 일한 사람이라고 가정해 본다면 여러분의 기분은 어떠할 것 같습니까 일한 분량이 다른데 어데게 모든 일꾼을 똑같이 획일적으로 대우합니까 이는 공정하지 못합니다. 노사분규의 대부분이 주인이 공정하게 임금을 지불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불공정한 주인은 마땅히 지탄을 받아야 마땅할 것입니다. 그런데 왜 예수님을 이 비유의 이야기를 통해서 불공정한 주인의 편을 들고 있는 것일까요 이 이야기에는 뭔가가 있음에 틀림이 없습니다. 뭔가 독특한 것이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이해할 수 없는 이상한 이야기로 남게 됩니다. 이 짧은 이야기에는 우리들의 삶이 있고 그리고 아주 큰 교훈이 숨어 있습니다. 이 이야기를 이해하기 위해서 우리는 마태복음 19장,바로 전장에서 있었던 사건의 맥락에서 접근하여야 합니다. 거기에 보면은 예수께서 한 부자 청년과 대화를 나누고 계셨습니다.그는 한가지 면을 제외하고는 온전한 삶을 살고 있는듯한 청년이었습니다. 그는 실제로 예수께 담대하게 말하였습니다. "이 모든 것을 내가 지키었사오니 아직도 무엇이 부족하니이까"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가 온전하고자 할찐대 가서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사람에게 주라-그리고 와서 나를 좇으라"
그 청년은 재물이 많은고로 근심을 하며 떠났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떠나는 부자청년을 보시면서 예수님은 약대가 바늘귀에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
보다 쉽다고 말씀하셨습니다.그 얘기를 들은 제자들은 깜짝놀랐습니다. 예수님은 계속 이해하기 힘든 행동을 하시고 또 이해하기 어려운 말만을 하고 있었습니다.
용감한 베드로가 나섰습니다. "보소서 우리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좇았아오니 그런즉 우리가 무엇을 얻으리이까" 예수님,정말 들어보세요 우리는 정말 모든 것을 다 버리고 열심히 주를 좇았습니다.그런데 우리가 당신께 얻은 것이 도대체 무엇입니까 얻은 것이 무엇이냐는 베드로의 질문은 얻은 것이 없다는 항변입니다. 즉 속았다는 것입니다.포도원의 일꾼들의 불만도 바로 이것입니다.우리는 주인을 위해 열심히 일했는데 결국은 무엇이냐 우리가 결론적으로 얻은 것이 무엇이냐 속았다는 것입니다.
본문 20장 1절에 처음 시작하는 단어는 '천국은'이라는 말입니다. 예수님은 지금 하나님의 나라에 대하여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베드로는 하나님의 나라가 무슨 상거래인줄로만 알았던 것입니다.하나님의 나라는 사업상의 거래와 같거나 상거래의 계약과 같은 것이 아니었으며 언약(Covonant) 이었던 것이었습니다. 만약 우리가 내가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이렇게 애썼는데 내가 얻은 것이 무엇이요 하고 묻는다면 대답은 간단합니다. 속았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오늘 본문의 포도원의 이야기를 통하여 우리가 어떻게 속았는가를 발견하게 될것입니다.
우리는 우리보다 많은 일을 하는 사람과 자신을 비교하기 보다는 우리보다 일을 적게 하는 사람과 비교를 하게 됩니다. 실제로 어떤 교회에서 있었던 일인데 목사님이 연초에 집사를 임명한 후에 몇몇 사람들이 흥분하고 분개하고 몹시 기분 나빠하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
다.그들은 모두 서리집사 명단에서 빠진 사람들인데 이구동성으로 하는 얘기가 자신들보다 신앙의 연수도 짧고 교회봉사도 우리보다 적게한 누구누구는 집사임명을 받았는데, 그네들보다는 열심히 봉사하는 자신들의 명단은 빠졌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교회를 위해 이렇게 땀흘려 일해 왔는데 그럴수가 있느냐 라는 것이었습니다. 마치 7시에온 일꾼들 처럼 그들은 주인에게 항의하였습니다,.
이 사람의 체념어린 하소연도 '나는 속았다'는 말입니다.여러분은 어데게 나에게 그럴수 있느냐 하는 생각을 가져 본적은 없으십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날 교회에서는 이러한 일들이 종종 일어납니다. 저는 이것 때문에 하나님을 떠나고 교회를 떠나는 사람을 많이 보아 왔습니다. 떠나지는 않아도 마음의 상처를 받는 사람도 많이 봤습니다. 특히 교회의 큰 행사를 치루고 난뒤에 또는 큰 직책을 치루고 난 뒤에 우리가 가지기 쉬운 감정이 바로 포도원 일꾼의 마음입니다. 앞으로도 이러한 큰행사가 있게될 것입니다. 준비하고 애쓰시는 일꾼들은 오늘의 이 말씀을 그 마음에 아로 새겨놓으셔야 합니다. 우리가 맺은 계약은 상거래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만약에 상거래였다면 주인은 백번 잘못하였습니다. 그리고 일군들의 주장이 옳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상거래가 아니라 한 가족에 대한 이야기라면 이야기는 완전히 바뀌게 되는 것입니다.여러분의 가정에 가시면 자녀들이 있습니다. 3살,6살,9살 먹은 세 아이가 있다고 가정해 보겠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9살 먹은 아이를 3살 먹은 아이보다 세배 더 사랑하십니까 6살 먹은 아이는 3살 먹은 아이보다 두배더 사랑하십니까 그렇치 않습니다.분명히 그렇치 않습니다.만약에 9살먹은 아이는 3살먹은 아이보다 3배나 더 먼저 낳아서 부모곁에 있었기 때문에 세배를 사랑하여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다면 여러분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우리는 모두 한 가족인데 먼저 이 세상에 나왔고 나중에 나온 것이 무슨 소용이 있는가 우리는 모두 한 가족이라고 소리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오늘 본문을 통해서 주님이 우리에게 소리치시는 말씀이 바로 이 말씀인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하나님의 백성이요,그의 자녀요,따라서 한 가족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지금 한 가정과 맺으신 하나님의 언약에 대하여 말씀하고 계십니다.
사업은 이윤을 남기는 장사입니다.그러나 하나님의 나라는 내 것을 조건없이 주는, 속으면서 주는 것입니다.하나님의 일은 속으면서 하는 것입니다. 결코 우리는 계산적으로 따져서는 하나님의 일을 할 수가 없습니다. 사업은 할 수 있을지 몰라도 하나님의 일은 아닙니다.이 길이 좁은 길임을 뻔히 알면서도, 속으면서도 가는 길이 주님 따라가는 길입니다.가장 크게 속으면서 주님을 따랐던 사람들은 다름아닌 순교자들입니다.자신의 목숨을 주를 위해 바쳤습니다.예수 그리스도때문에 고난을 받고 핍박을 받고 결국 자신의 목숨까지도 버렸습니다.우리는 그들에게 무엇을 더 요청 할 수가 있겠습니까 아무것도 요청할 수가 없습니다.왜냐하면 그들은 하나님의 나라의 소망을 그 찬란한 면류관을 바라보았기 때문입니다.
이제 포도원의 일꾼들은 아무도 더 이상 임금을 달라고 요청할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모두 하나님의 나라에 초청된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포도원의 주인이 지금 이 시간에 어디에 있는 줄 아십니까 그는 지금 이 시간에도 시장에 다시 나가서 포도원에 초청받지 못한 사람들을 찾고 계십니다. 우리 모두 본향에 초대되는 것입니다.누가 무엇을 더 요구할 수 있겠습니까 이제 우리는 내가 주를 위해 무엇무엇을 하였는데,내가 7시부터와서 일을 하였는데,내가 저 사람보다는 훨씬 열심히 일했는데,내가,내가-라는 말을 사용하지 말아야 하겠습니다.오히려 우리는 우리가 초청되었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감사한 마음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우리가 7시에 혹은 9시의 이른 시간에 초청 되었다면 그것은 더욱 감사한 조건이 되는 것입니다.하나님,일찍 부르셔서,건강할 때 부르셔서,일할 수 있을 때 부르셔서 감사합니다.일찍 부르신 만큼 더욱 감사한 것입니다.
먼저된 자로써 나중되는 자가 되지 않고,나중된 자로 먼저 되는 삶을 살아 갈
때,우리는 포도원 주인의 즐거움에 참예케 될 것이며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에서 영
생의 축복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오늘날 이 사회는 능력있는 사람과 학력이 있고 힘과 배경이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그러나 배우지 못하고 가진것도 없고 신체적으로 불편한 사람은 사회에서 낙오자가 될 수 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그러나 성경은 마지막까지 낙심치 아니하고 끝까지 기다리고 있는 무능력한 사람과 자격이 없는 모든면에서 상대방과 비교할때 상대적으로 부족하다고 느낄 수 있는 사람을 일터로 보내실뿐 아니라 먼저 가서 일한 사람 못지 않게 똑같은 보상을 해주신다. 주인은 모든 일군에게 한 데나리온 씩을 주었다. 한 데나리온은 값없이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상징한 것이다. 세상과는 달리 하나님은 어떤 위치, 어떤처지에 있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한사람도 버리지 아니하시고 하나님의 뜻을 실천하기 위해 쓰시고 사랑하신다. 나의 형편이 어렵다고 낙심하지 않고 때를 기다리며 인내할줄 알아야 한다.

3. 하나님 앞에서는 공로를 세우지 말라
사람은 자신이 어떤 공로에 의해서 구원받는 것으로 착각할 때가 많이 있다. 그러나 내공로로 구원받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받은 것이다. 본문 말씀은 먼저 와서 일한 사람과 늦게와서 일한 사람에게 똑같이 한 데나리온을 주신 것은 자신의 공로때문이 아니라 주인의 은혜에 의해서 한데나리온을 받은 것이다. 우리의 구원도 마찬가지로 우리의 선행이나 공적이나 업적에 의해서 받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에 의해서 우리가 구원을 받았고 하늘나라 백성이 된 것이다. 그러나 먼저 된자로서 나중되고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될 자가 많으니라(마 19:30).고 하셨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나를 구원해 주시고 나를 섭리해 주신 은혜 때문에 그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서 일을 하는 자세를 가져야 할 것이다.그래서 모든면에서 겸손해지고 남을 사랑할 줄 알아야 하는 것이다.
셋째, 하나님의 약속을 생각하며 살아야 한다.
우리는 다른 사람과 비교해서 서운한 생각을 가질 때가 있다. 그러나 나와 하나님과의 약속이 무엇인가. 이 약속에 맞추어서 신앙생활을 할 수 있어야 한다. 본문에서 첫번째 일꾼은 나중에 온 일꾼과 똑같이 한 데나리온을 받고 시기심과 증오와 분노를 가지고 이야기 했다. 그러나 주님은 네가 나와 한데나리온을 약속하지 아니하였느냐고 하셨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약속하신 것만을 바라보고 다른것과는 비교해서는 안된다. 오직 주님만을 바라고 신앙생활을 해야 주님께 내 자신을 드린다고 하는 주님을 향한 예배가 되어질때에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예배가 될 수 있다. 우리가 포도원에서 일할시기는 지금이다. 품삯을 생각하
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부르심에 감사하고 충성할 때에 잘했다. 칭찬 받는 일꾼이 되는 것이다.
주인과 일꾼들은 그날 하루 노동의 품값으로 한 데나리온씩을 받고 일하기로 합의를 보았습니다. 그리 많은 액수는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적지도 않은 하루 일하기에는 적합한 품값이었습니다. 일꾼들은 포도원을 향하여 힘차게 출발하였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좀 흘러 9시쯤 되었습니다.포도원 주인은 슬그머니 일어나서 다시 장터에 나갔습니다.주인은 그곳에서 놀고 서 있는 일련의 사람들을 만나게 되었습니다.주인은 이들에게 상당한 품값을 주겠노라고 약속하여 이들을 포도원으로 끌어들였습니다.포도원은 더욱 활기를 띠고 일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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