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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풀어 내게로 끌고 오너라 (마 2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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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대통령을 지냈던 아이젠하워는 지독한 골초였다고 합니다. 하루에 담배 세 갑을 태웠다니 그의 코에서는 옹기점 굴뚝처럼 거의 쉴새 없이 연기를 내뿜었을 것입니다. 그래도 건강하던 그가 어느 날 갑자기 맥박이 빨라지고 호흡이 이상해져서 병원에 갔습니다. 진찰을 하고 난 의사는 담배를 끊어야 한다며 금연을 명령했습니다. 그는 의사의 지시대로 즉시 담배를 끊었고 일 주일이 지나면서 정상이 되었습니다. 쉴 새 없이 피워대던 담배를 완전히 끊고 난 후 어떤 친구가 말하기를 담 배를 피우지 않는 당신 사무실에서 사람들이 담배를 피우면 기분이 나쁘지 않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때 아이젠하워는 웃으면서 대답하기를 "천만에 나는 담배를 피우는 사람들을 보면서 도덕적 우월감을 느낀다"고 했습니다. 나는 담배를 끊을 수 있는 의지력이 있으나 그 사람들은 그런 의지력이 없다는데 서 기분이 좋다는 것이었습니다. 사람이 오래된 습관을 버린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나의 습관이 건강상으로 영적으로 나에게 해를 끼친다면 아무리 어려워도 끊어야 합니다.
첫째, 매여 사는 인생들.
오늘 읽은 말씀에 보면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너희가 맞은 편 마을로 가다보면 나귀와 나귀 새끼가 함께 있는 것을 볼텐데 풀어 내게로 끌고 오너라"(2절) 하셨습니다. 가다가 보니 역시 나귀가 매여 있었습니다. 매여 있는 나귀를 보면, 매여서 사는 인생을 보는 듯 합니다. 그 나귀는 사람의 필요에 의해 쓰여지기 위해 사람이 붙잡고 있는 가축입니다. 나귀가 매여 있듯이 모든 사람들이 무엇인가에 매여 있습니다. 가축은 고삐에 매여 있고 사람들은 고정관념이나 오랜 습관에 매여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악한 영에 매여 있습니다. 사람이 시시한 것들에게 매여 있으면 더 멀리 뻗어 나가지도 못하고 앉은뱅이처럼 주저앉아 일생을 낭비하고 맙니다. 어느 날 모험을 좋아하는 소년이 산에서 독수리 알 하나를 주어다가 암탉 이 품고 있는 알속에 몰래 집어넣었습니다. 드디어 알속에서 병아리와 독수 리가 나왔습니다. 독수리 새끼는 병아리들과 똑같은 환경에서 병아리들이 하 는 짓을 하면서 병아리처럼 자랐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독수리 한 마리가 지붕 위에서 원을 그리며 날아오자 모 든 닭들이 놀라서 달아나고 어디론가 숨느라고 야단이었다. 참으로 위협적이 고 멋있는 독수리의 비행이었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보니까 자기가 공중에 나는 독수리를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독수리는 자기 자신을 발견했습 니다. 자기는 닭이 아니라 독수리라는 것을 알게 된 것입니다. 자랄 만큼 다 자란 독수리는 날개를 움직여 허공으로 힘껏 날아 보았습니다. 이게 웬일입니까 떠오른 것입니다. 공중을 날으던 그 독수리가 닭의 세계 에서 벗어났습니다. 지금까지 자기가 닭인 줄 알고 닭처럼 살아온 젊은 독수 리는 하늘로 치솟아 올랐습니다. 사람이 고정관념에 매여 있는 한 그가 제 아무리 자기만의 달란트를 가지 고 있어도 써먹지 못하고 인생은 끝나게 될 것입니다. 고정 관념에서 벗어 나시기 바랍니다. 코끼리는 코에 대단한 힘이 있습니다. 1톤 정도의 무게를 들어올릴 수 있 는 힘센 동물입니다. 그런데 써커스단의 작은 말뚝에 매여 놓은 가느다란 끈 에 묶어 시키는 대로 따르고 얌전이 앉아 주는 것이나 먹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어려서부터 코끼리를 묶어 놓았기 때문입니다. 크고 힘센 코끼 리를 붙잡고 있듯이 사람들은 고정관념의 줄에 매여 있고, 오랜 습관의 사슬 에 매여 있습니다. 여기서 벗어나야 합니다. 내가 벗어날 뿐 아니라 매여 있 는 사람5湧≫ 풀어서 예수님께 데려와야 합니다. 죄와 사망의 사슬에 얽매인 사람들, 구원받을 수 없는 종교에 얽매인 사람 들, 이 세상 오락과 향락에 매여 있는 사람들을 풀어서 예수께로 데려 오시 기 바랍니다. 잘못 된 이념과 오랜 습관에 매여 있는 사람들을 풀어 주는 것 이 우리가 해야 할 일입니다. 묶여 있어서는 안 될 것들에게 결박되어 있는 사람들을 풀어 주고 그들을 주님께 인도하시기 바랍니다. 귀신이 사람을 붙잡고 불에도 물에도 쓰러뜨리고 있는 것을 그냥 보고만 있을 수는 없습니다. 그들을 붙잡고 있는 악령에서 해방시켜야 합니다. 세상 에 매여 있는 자를 찾아 구원하려고 세상에 오신 예수님 앞으로 매인 자를 풀어 이끌어 오시기 바랍니다.
둘째, 주께서 쓰고 싶어하는 사람들.
예수님은 제자들과 함께 예루살렘에 가까이 와서 감람산 벳바게 맞은 편 마을에 가서 매여 있는 나귀를 풀어 오라고 하셨습니다. "만일 누가 무슨 말을 하거든 주가 쓰시겠다" 대답하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예루살렘에 들어가실 때 나귀를 타고 들어가고 싶어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나귀가 필요하셨습니다. 똑같은 나귀라도 누구에게 쓰이느냐, 어떻게 쓰이느냐에 따라서 그 가치는 달라집니다. 보통 나귀는 짐을 나르는데 쓰입니다. 사람을 태우는 교통수단으로 쓰인다면 더 값지게 쓰이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나귀는 예수님을 태우고 예루살렘 성에 들어갔습니다. 나귀의 영광입니다. 사울을 이스라엘 왕으로 세웠던 하나님이 새로운 왕을 찾고 계셨습니다. 사무엘 선지자를 이새의 집에 보내어 그 아들들 중에서 이스라엘 왕 될 사 람이 있으니 찾으라고 하셨습니다. 이새에게는 아들이 여덟이나 되었습니다. 사무엘은 이새의 큰아들 엘리압을 보고 그가 하나님이 쓰실 사람인가 생각 했습니다. 잘 생겼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용모와 신장을 보지 말라, 사람은 외모를 보지만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본다고 하셨습니다. 일곱 아들을 다 보고 난 사무엘은 아들이 더 없느냐고 물었습니다. 들에서 양을 치고 있 는 막내가 하나 더 있다고 했습니다. 사무엘은 그 아들을 빨리 데려오라고 하여 다윗이 들에서 돌아 왔습니다. 다윗이 돌아오자 사무엘은 곧 기름을 부었습니다. 부모나 형제들이 아직 어 리게만 보였던 다윗은 하나님이 쓰시고자 찾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지금까지 들에서 짐승이나 먹이는 목동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의 중심을 보시고 다윗에게 기름을 붓게 하였고, 하나님의 신에 크게 감동 되었습니다. 사람의 눈으로 보아서는 어리고 부족했던 다윗을 하나님이 쓰셨 습니다(삼상16:13). 하나님의 기준으로 쓸만한 재목이었습니다. 한번은 다메섹에 사는 아나니아라는 주님의 제자가 환상 중에 주님의 부 르시는 음성을 들었습니다. 직가라하는 거리로 가서 유다의 집에 머물고 있 는 다소 사람 사울이라 하는 자가 기도하고 있으니 그를 찾으라 하셨습니다. 그때 아나니아가 "제가 듣기로는 성도들에게 많은 해를 끼친다고 들었고 다 메섹에 온것도 믿는 사람을 결박할 권세를 가지고 왔다고 하던대요"라고 말 했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이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 앞에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 하셨습니다. 그래 서 아나니아는 사울을 찾아 나섰고 만나서 안수하면서 "형제 사울아 네가 오는 길에서 나타나시던 예수께서 나를 보내어 너로 다시 보게 하시고 성령 으로 충만하게 하신다 하니 즉시 사울의 눈에서 비늘 같은 것이 벗어져 다 시 보게 되었고"(행9:15-18) 주님이 그를 크게 쓰셨던 것입니다. 사람들이 볼 때는 악질적인 기독교 박해자요, 핍박자였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를 택하 였고, 다듬어서 쓰셨습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똑같은 일을 반복하고 계십니다. 쓸모 없을 것 같은 우리 들을 쓰십니다. 하나님은 나를 쓰고 싶어하십니다. 어떻게든지 하나님께 쓰 임 받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지금은 하나님을 모르고 있는 불신자일 지라도 그 사람을 쓰고 싶어하십니다. 매인 것을 풀어 주님께 인도하시기 바 랍니다.
셋째,명하신 대로 끌고 온 제자들.
제자들은 매인 나귀를 끌어오라는 말씀을 듣고 예수의 명하신 대로 했습니다. 나귀와 새끼를 끌어 온 것입니다. 제자란 배우는 사람입니다. 배우는 사람은 가르치는 스승의 말을 들어야 합니다. 누구의 소유인지도 모르고 남의 나귀를 무조건 끌고 오라 하신 것입니다. 선듯 나서기 곤란한 일입니다. 조금은 어렵고 당혹스러운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불만없이 순종했습니다. 이것이 제자로서 주님을 섬기는 일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예루살렘에 가까운 벳바게까지 걸어서 오셨습니다. 이제는 나귀 를 빌려 타고 예루살렘에 들어갈 생각이십니다. 그는 부요 하신 자로서 우리 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셨습니다. 그의 가난함을 인하여 너희로 부요케 하려 하심이라 하셨습니다(고후8:9). 제자들이 끌고 온 나귀는 안장도 없는 아직 사람을 태워보지 않은 나귀입 니다. 제자들은 주님을 조금이라도 편하게 모시기 위해서 나귀들에 옷을 벗 어 깔아 드렸습니다. 이것은 주님께 대한 존경과 사랑의 표현입니다. 자기는 벗으면서 예수님의 자리를 깔아 드리는 제자들에게서 스승을 존경하는 제자 의 진심을 발견합니다. 비록 보잘것없고 땀내 나는 옷이었지만 거기에는 주 님을 존경하는 마음과 순종심이 진하게 배어 있었습니다. 한 여자가 자동차를 몰고 가는데 갑자기 엔진이 꺼졌습니다. 겨우 차를 도 로변에 세우고 지나가는 차를 향해 손을 흔들었으나 모두들 그냥 지나갑니 다. 한참 후 트럭 한 대가 오더니 차를 멈추고 한 남자가 내리면서 도움이 필요하냐고 물었습니다. 그 남자는 자동차 뚜껑을 열고 2-3분 동안 어디에 이상이 있는지를 살피더니 무엇이 문제인지를 찾아냈다고 좋아하면서 자기 차에 가서 스카치 테프를 찾아 가지고 왔습니다. 고장난 차의 운전자는 맥이 빠졌습니다. 가다가 엔진이 멈춘 차를 스카치 테프로 고치겠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아서입니다. 그러나 그 남자는 그까짖 스카치 테프로 기적이라도 일으키겠다는 듯이 자동차 엔진에 머리를 처박고 스카치 테프를 붙인 후에 엔진을 걸어 보라고 했습니다. 여자는 속는 셈치고 시동을 걸어 보았더니 이게 웬일입니까 시동이 걸렸습니다. 너무너무 고마 워서 감사의 인사를 여러번 하였습니다. 그 남자는 여자 운전자에게 지금 내 가 손을 본 것은 정비소까지만 갈 수 있으니 정비소에 가서 수리를 해야 한 다고 일러주었습니다. 그 남자는 여자가 차를 몰고 가는 뒤를 계속 따라 오 다가 정비소까지 무사히 도착하는 것을 보고는 손을 흔들며 자기 갈 길을 갔습니다. "친절한 그 남자" 잊지 못할 고마운 사람입니다. 그 여자는 자기 차를 고 쳐준 이름 모르는 그 남자를 잊지 못할 것입니다. 우리도 그 남자처럼 주님 을 위해 쓰여졌으면 좋겠습니다. 사망 길에서 방황하는 이웃을 구원의 길을 가게 함으로 잊지 못할 은인이 되시기 바랍니다. 여리고로 내려가다가 강도를 만나 거의 죽게 된 사람을 발견하고 가지고 있던 약품으로 응급 처치를 하고 주막에 데려다 주어 치료를 부탁하여 죽은 사람을 살려준 선한 사마리아 사람의 이야기를 하셨던 예수님은 너희도 가 서 그와 같이 하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하라는 대로했던 제자들처럼 여 러분도 그렇게 하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은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에 들어 가셨습니다. 소문을 들은 수많은 사람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와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9절)하고 예수님을 환영했습니다. "호산나"란 이제 구하소서! 우리가 기도하오니 구원하소서!라는 뜻입니다.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 구원은 가장 높은 곳 하나님께로서 옵니다.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들어가시니 온 성이 소동하였습니다. 온 성이 뒤흔들렸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예수께서 명하시는 대로하면 이 지역을 소동케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주님을 위해 옷을 벗고 나서면 안될 일이 없습니다. 우리 모두 나아가 매인 자들을 풀어 주님께로 데려 옵시다. 안드레가 데려온 시몬 베드로는 주님의 큰 일꾼으로 쓰임 받았습니다. 내가 데려 온 사람이 나보다 더 귀하고 크게 쓰이게 합시다. 우기가 하는 일이 많은 사람들을 선동하여 주님을 높이 찬양하게 하십시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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