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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두개의 양심을 갖고 사는 사람들 (고전 08: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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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양심에 따라 사는 것도 힘든 요즘 세상에 다른 사람의 양심까지도 함께 가지고 살라는 말은 참으로 가능치 않은 요구인 것 처럼 들립니다. 그러나 성경은 우리 주님의 삶이 그러했듯이 우리도 우리 자신만을 위해, 우리들의 마음대로 살 수 만은 없는 존재임을 말 하고 있습니다. “그런즉 너희의 자유함이 약한 자들에게 거치는 것이 되지 않도록 조심하라. 지식이 있는 네가 우상의 집에 앉아 먹는 것을 누구든지 보면 그 약한 자들의 양심이 담력을 얻어 어찌 우상의 제물을 먹지 않겠느냐!”(고전 8:9-10)
‘두개의 양심’을 가진 우리의 삶의 태도는 어떠해야 합니까
첫째, 우리 모두는 서로 다를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9절의 말씀에 의하면 믿음이 강하여 자유로운 자가 있는가 하면 믿음이 약하여 아주 작은 것에도 걸려 넘어지는 사람들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러한 차이를 인정하지 않고 나의 신앙을 다른 이들에게 강요 하거나 나의 양심을 기준으로 ‘모든 사람이 다 나 같이 생가 하려니’하고 행동하는 사람은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인은 자상하고 섬세해야 합니다.
둘째, 이러한 차이점은 우리의 지식으로가 아닌 사랑으로 극복 되어야만 합니다.
다른 사람들에 대한 우리의 판단 기준은 ‘내가 아는 것’ ‘내가 배운 것’ 또는 ‘내가 믿는 것’ 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지식적 판단만으로는 부족 합니다.(10-12절) 사도 바울은 로마서 14장 1절-3 절에서 ‘믿음이 약한 자의 의심하는 바를 비판치 말고 믿음이 있어 거침없이 행하는 자를 판단하지 말라’고 권고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있는 모습 그대로 사랑으로 받으셨기 때문 입니다.
사랑은 말의 어원 그대로 ‘남을 깊이 생각하는 것’ 입니다.
셋째, 만일 다른 사람의 양심에 저촉될 만한 것이 있으면 다른 이의 양심을 위하여 포기하여야만 합니다.
바울은 “만일 식물이 내 형제로 실족케 하면 나는 영원히 고기를 먹지 아니하여 내 형제를 실족치 않게 하리라.”고 말합니다.(13절) 인간의 모습 중 가장 아름다운 것은 ‘남을 위하여 있는 자가 있는 것을 포기하고, 남의 양심을 위하여 자신의 자유를 포기하는 모습’ 입니다.
사랑하는 벧엘 식구들이여! 우리는 나의 양심 뿐 아니라 남의 양심도 함께 갖고 사는 ‘그리스도인’ 입니다. 내 지식과 내 양심으로는 아무리 옳다고 하는 일일지라도 나를 바라보는 다른 양심들을 위해 내 자유를 양보할 줄 아는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됩시다.
“ 누구든지 자기의 유익을 구치 말고 남의 유익을 구하라.”(고전 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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