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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준비된 구세주 (막 01: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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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우리 선조들은 멀리 앞을 내다보고 준비하는 지혜가 있었습니다. 딸을 낳으면 밭두렁에 오동나무를 심었습니다. 그 오동나무는 딸과 함께 자라서 딸이 시집갈 때쯤 되면 크게 자라 그 오동나무를 베어 장농을 짜서 시집 보냈습니다. 아들을 낳으면 뒷산에 소나무를 심었습니다. 그 나무가 수십년 자라고 아들이 한평생을 살고 죽을 때는 그 소나무를 베어 송판을 켜서 관을 만들게 했다는 것 입니다. 우리는 요즘 준비된 대통령이라는 말을 자주 들어 왔습니다. 지난 2월 25일 대 통령 취임식장에서 새 대통령이 기념 식수를 했습니다. 구덩이를 파고 소나무 한 그루를 심었는데, 지리산, 한라산등 오대산에서 흙을 가져다가 구덩이에 깔고, 한 강, 금강, 낙동강등 오대강의 강물을 길어다 구덩이에 붓고 소나무 한 그루를 심 으면서 "화합의 소나무"라는 이름을 지었다고 합니다. 분단된 남북과 동서 화합을 염원하면서 한 그루의 소나무를 심고 있는 것을 보 면서 준비된 대통령의 일면을 보는 듯합니다. 준비된 사람에게 기회가 오고, 기회 가 있을 때 그 기회를 쟁취할 수 있는 것도 준비된 사람의 몫입니다. 예수님은 세상에 오신 목적이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에 있습니다(마20:28). 그분은 인류 구원이라는 큰 사명을 완성하기 위해 오셨고 또 철저하게 준비하셨습니다. 구세 주는 인류를 육체적 정신적 죄와 사망에서 구원하는 자를 말합니다. 예수께서는 구세주가 되기 위해서 무엇을 하셨는지를 살펴보면서 우리도 준비하는 삶을 살아 야 하겠습니다.
먼저 세례를 받으셨습니다.
세례란, "물에 가라앉히다", "물에 잠그다"라는 헬라어 밥토에서 파생된 말입니다. 세례란 죄를 씻는 종교적인 예식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죄가 없으신 분이신데 세례를 받고자 할 때, 요한은 예수님을 말리면서 "내가 당신에게 세례를 받아야 할 터인데 당신이 내게 오시나이까"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세례를 받으셨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이 죄인의 편 에서서, 죄인의 대속 제물이 되시고 죄인과 운명을 같이하여 자신의 몸에 죄를 대신 짊어지기 위해서 였습니다. "이제 허락하라 우리가 이와 같이 하여 모든 의 를 이루는 것이 합당"하다면서 억지로 세례를 베풀게 했습니다(마3:14,15).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신 것은 죄를 씻기 위해서가 아니라 인류 구원의 사명을 감당하겠다는 비장한 결단과 인류를 구원하라는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려는 표시 였습니다. 그는 요단강에 가서 세례를 받기 위해 그가 지금까지 30년간 살아온 나사렛을 떠났습니다. 나사렛에는 집도 있고 어머니와 형제들도 있는 곳입니다. 나사렛을 떠난 다는 것은 그의 육신적인 욕망과 모든 것을 포기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사 람이 큰 일을 하기 위해서는 작은 일을 포기해야 합니다. 천국을 소유하기 위해 서는 세상을 포기해야 합니다. 사명을 위해서는 단념하고 포기해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요단 강을 건넘으로 가나안 땅에 들어가게 되었듯이 예수님은 세례를 통해서 메시야의 공생애로 들어 간 것입니다. 새로운 개척지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지금까지 살아온 고토에서 떠나야 합니다. 신앙이란 결단하는 것입니다. 결단의 결(決)은 뚝으로 막아 놓았던 물을 갑자기 터놓는 것입니다. 그러면 고였던 물이 쏜살같이 흘러내립니다. 단(斷)이란 칼로 물건을 절단하는 것을 말합니다. 결단에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낡은 상황을 없애 고 새로운 상황을 선택하는 비상한 행동입니다. 세례는 예수님이 세상을 구원하 기 위한 구세주의 첫 번째 준비였습니다.
두 번째로 성령을 받으셨습니다.
예수께서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시자 곧 하늘이 열렸습니다. 그리고 곧 이어서 성령이 비둘기가 같이 임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머리 위로 성령이 오셨습니다. 예수께서 세상을 구하기 위해서는 마귀를 멸하셔야 합니다. 공중 권세 잡은 자와 싸워야 합니다. 그가 성령을 받으신 것은 포병이 포탄을 장전하는 것과 같습니다. 성령이 없는 사역자는 포탄 없는 대포와 같이 무능합니다. 성령의 능력으로 무장하시어 마귀를 물리치고 있습니다. 뉴욕 재판소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죄수한 사람에게 315년 징역형을 내린 일이 있습니다. 여섯명을 살해하고 일곱명에게 중상을 입혔습니다. 판사가 왜 그런 끔 찍한 일을 저질렀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는 체념한 듯한 표정으로 어떤 악령이 범 행을 충동했기 때문이라고 대답했습니다. 가룟유다가 예수님을 배신하여 팔아 넘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던 것은 마귀가 그 속에 들어갔기 때문입니다. 악령은 사람을 죽입니다. 그러나 성령은 살리는 일 을 합니다.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우리는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닙니다. 성령을 힘입을 때 우리는 마귀를 이길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 오신 성령은 비둘기 같다고 했습니다. 비둘기는 평화와 순결의 상징 입니다. 비둘기는 온순하고 순결합니다. 비둘기는 증오심도 없고, 사납게 물지도 않습니다. 상대를 해칠만한 발톱도 없습니다. 서로 교제하며 평화를 나눕니다. 교 회에 성령이 계실 때 교회는 화평하고 순수합니다. 성령은 누구를 미워하거나 헐 뜯지 않습니다. 성령은 우울하지 않고 쾌활합니다. 구원의 역사를 위해 쓰여지기 위해 성령이 충만하시기 바랍니다. 자동차가 먼길을 떠나려면 먼저 주유소에서 에너지를 공급받아야 합니다. 전쟁 터에 나갈 군대는 무기를 지급 받습니다. 준비가 잘 되어 있다는 것은 벌써 절반 은 승리한 것입니다. 무슨 일이든지 시작하기까지는 그만한 준비가 필요합니다. 월동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은 겨울이 와도 걱정이 없습니다. 잠언에서는 여호와를 경외하는 현숙한 여자는 겨울이 오기 전에 가족들의 두툼 한 의복을 준비하고, 밭을 사도 간품하여 사고 그 밭에 묘목을 심어 과수원을 만 드는 등 준비하는 여성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옛날 황의 정승은 세종대왕께서 언제 부르실지 몰라 퇴청하고서도 관복을 벗지 않았다고 합니다. 임금이 부르시면 즉시 달려가기 위해서 였습니다. 성령을 받으 시면 하나님의 목소리를 따라가게 됩니다. 성령의 감동으로 성경을 읽고 들을 때 그 말씀이 깨달아 지며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습니다. 어떤 한 사람이 많은 돼지들을 이끌고 도살장으로 가는 것이었습니다. 어떻게 여러마리의 돼지를 데리고 가는지를 알고 보니까 그 사람은 콩을 조금씩 떨어 뜨 렸다고 했습니다. 콩을 먹으며 길을 가지만 그 길은 죽음의 길이었습니다. 우리는 콩을 먹으며 사람을 따라가는 돼지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말씀을 먹으며 성령을 따라가야 삽니다. 살리는 것은 영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께 인정을 받았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께로부터 구세주로써 평가를 받았다는 말입니다. 즉 예수께서 구세주로써의 사역을 감당할 만한 조건 을 갖추었다는 인정을 받으신 것입니다. 사람이 인정을 받은 다는 것은 신뢰를 받는다는 뜻이고 무슨 일인가를 맡길 만한 능력도 갖추고 있다고 평가를 받은 자 입니다. 하나님은 예수님께 성령이 임한 일이 있은 후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고 하셨습니다(막3:17). 이것은 출전할 군대를 완전 무장시켜 연병 장에 집합시켜 출전 준비의 이상 유무를 점검한 사령관이 합격 판정을 내린 것과 같습니다. 구세주로써 인류를 구원할 자격을 구비했다는 선언이었습니다. .
세 번째로 시험을 받으셨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시험은 고통과 시련을 겪게 하는 과정입니다. 그리고 욕망을 자극하며 유혹하여 넘어뜨리는 시험입니다. 본문에 보면 성령이 곧 예수를 광야로 몰아 내신 지라"(12절) 하였습니다. 여기서 몰아낸다는 말은 "세게 밀치다", "쫓아내다" 라는 뜻입니다. 성령은 예수님을 왜 광야로 몰아내셨습니까 그분을 연단 하기 위해서입니다. 광야에는 먹을 것이 전혀 없는 빈들입니다. 있다면 돌멩이와 들짐승이 있을 뿐입니다. 그분을 광야로 몰아 내친 것은 예수님을 넘어뜨리기 위함이 아니라, 크고 힘든 일을 하기 위해 더 강해지도록 연단하기 위해서 입니다. 연단은 소망을 이루게 합니다. 예수께서 먼저 당한 시험은 배고픔을 참고 견디는 일 이었습니다. 사람이 가 장 참기 어려운 일은 배고픔입니다. 사람은 배가 고프면 어떻게 해서라도 먹고자 하는 것이 인간의 욕망입니다. 배고파 보세요 체면도 없습니다. 마귀는 가장 배고 픔을 견디기 어려울 때에 나타나서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이 돌덩이들 이 떡덩이가 되게 하라"는 것입니다. 대답하시기를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 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고 하셨습니다(마4:3-4). 에서는 배가 고플 때 팥죽 한 그릇을 받고 장자의 명분을 내주기까지 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배가 고플 때 가장 약해집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첫째, 시험을 무 사히 패스하셨습니다.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약1:-2,3). 가 장 작은 일 같으면서도 힘든 일인 배고픔을 견디어 내셨습니다. 그 시험은 구세 주가 되기 위한 필수과목이었습니다. 두 번째 시험 과목은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 내리는 일입니다. 네가 만일 하나 님의 아들이라면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 내리라"는 것입니다. 뛰어 내리면 하나 님이 너를 위하여 천사를 시켜 받들어 발이 돌에 부딪치지 않게 할 것이라는 것 입니다. 극적인 사건을 보여줌으로써 하나님의 아들임을 나타내 보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기적을 보임으로 영웅으로 우대를 받으라는 뜻입니다. 남자들은 이런 일 은 한 번 해보고 싶은 호기심이 있습니다. 한 번 뛰어내려 영웅이 되고 싶은 것 입니다. 마귀의 말대로 예수님께서 뛰어 내리고 하나님이 보낸 사자들이 그의 발 을 안전하게 보호해 주었다면 당시 표적을 구하던 민중들은 환호하며 박수를 보 낼 것이며 단번에 메시야로 인정을 받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영웅적 메시 야는 하나님의 뜻하신 바가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은 한마디로 거절하셨습니다. "하나님을 시험치 말라" 유혹을 물리치셨습니다. 세 번째 시험과목은 세상의 모든 것을 다스리는 권세를 주겠으니 자기에게 절 하라는 것입니다. 온 세상을 다스릴 권세를 준다는 것은 야심많은 사람들에게 이 보다 더 좋은 미끼는 없을 것입니다. 야심이란, 자신을 높이기 위해서 자기를 선전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권세를 잡고 자신을 나타내고 인정을 받으며 인기를 얻고 자신의 동료들 중에서 뛰어나 고 싶어합니다. 이런 사람들은 영광의 면류관은 구하면서도 고난의 면류관을 위 해서는 전혀 관심이 없습니다. 왕위 대관식에는 관심이 많으나 십자가에 못 박히 는 일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유혹에 걸리면 넘어지지만 이것을 밟고 서면 더 높아집니다. 사탄은 얼마나 끈 덕지게 물고 늘어지는지 모릅니다. 1차 2차에 안되니까 3차에 도전하여 어찌하든 예수님을 넘어뜨리고자 집요하게 유혹하고 있는 것을 봅니다. 한 번만 엎드려 절하면 천하를 다스리는 권세를 준다는 것입니다. 높은 곳에서 뛰어내리는 위험 부담도 없는 아주 쉬운 일 이었습니다. 고생 안하고 영광을 누 리게 해 준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하나님을 배반하게 유혹하는 것이 마귀가 하는 짓입니다. 예수님은 사단아 물러가라! 강경하게 꾸짖었습니다. "기록되었으되 주 너희 하 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마4:10) 하시니 마귀는 떠나가고 천사들이 나아 와서 예수님을 시중 들었습니다. 시험의 세 가지 코스를 완벽하게 패스한 것입니다.
하늘 나라는 준비된 사람의 것입니다. 등과 기름을 준비했던 다섯 처녀는 신랑을 맞아 연회에 들어갔으나 등은 있으나 기름을 준비 못한 다섯은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구 소련을 꺽고 세계를 제패한 일본 여자 배구팀의 감독 다이마쓰씨는 먼저, 목표를 세웠습니다. "세계 제일의 여자 배구팀을 만든다"는 것입니다. 팀 전원에 게 "세계 제일이 되자"고 했습니다. 그들은 하루에 다섯 시간만 자고 오전 8:30분 부터 오후 4:30분까지 회사에 근무하면서 5-7시간씩 맹연습을 했습니다. 세계 제 일이 되겠다는 목표가 그들을 그렇게 맹훈련을 하게 했던 것입니다. 목표 설정은 위대한 힘을 발휘합니다. 100명중 3명만이 목표가 분명하답니다. 목표가 없으면 준비가 없습니다. 목표가 분명한 사람은 꾸준히 준비합니다. 목표가 곧 힘이요, 행동입니다. 목표가 있을 때 준비하게 됩니다. 목표가 있는 사람은 문제도 극복합니다.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애굽 에서 나올 때 출발하는 시작부터 가나안 땅에 도착할 때까지 노정에서의 어려움 을 생각하지 않고 떠난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무조건 떠났습니다. 문제가 발생하 면 그때그때 해결하자는 과감함이 있었기에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나갈 수 있 었습니다. 키에르 게고르는 "내 인생에 사명이 무엇인가를 깨닫는 날, 그날이 내 생애의 최고의 날" 이라고 했습니다. 사람은 어떤 목적을 달성하려고 이 세상에 태어난 것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사명이라고 부릅니다. 예수님은 인류 구원이 사명입니 다. 그 사명을 위해 준비하셨습니다. 사순절이 시작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인류 구원의 역사를 위해서 죽음의 형 장으로 방향을 정하시고 준비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한걸음씩 한걸음씩 그곳으 로 올라가시는 장면을 바라봅시다. 여러분 모두 분명한 목표를 세우시고 예수님 을 따라가는 그의 제자로서 목적을 지향해 나가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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