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살길은 오직 하나 (민 35:15)

첨부 1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 가서 살면서 고의성이 전혀 없이 부주의나 실수로 인해 사람을 죽이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그 당시에는 사람을 죽이게 되면 반드시 그 죽은 사람의 친척이 그 죽인 사람을 죽이게 되어 있었습니다. 고의적으로 사람을 죽인 경우는 당연할 지 모르지만 실수인 경우는 좀 더 정확한 판단이 필요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통해 법을 제정하셨습니다.
피의 복수법(이른바 "탈리오의 법")에서 피할 수 있도록 모세의 율법은 피난처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의 지파별로 여러곳에 도피성을 만들어 놓고 사람을 죽인 자가 일단 그 성으로 들어가서 피신하면 죽은 사람의 친척들이 그를 해치지 못한다는 법입니다.
나중에 재판관들이 고의성이 있느냐 없느냐를 판단해서 고의성이 있으면 그 친척들에게 인계해서 죽이는 것이고 고의성의 전혀 없으면 그를 살려냅니다.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있어서 도피성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이 도피성이 구약성경에서만 나오는 이야기일까요

1. 이 도피성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바로 우리들의 도피성이십니다. 구약의 도피성은 가까운 곳에 있었습니다. 가나안 지도를 보면 이 성읍들은 이스라엘 어느곳에서든지 몇시간 안에 도착할 수 있는 곳에 위치해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기 위해 하늘나라에 올라갈 필요는 없습니다. 주님께서 하늘의 보좌를 버리시고 이 땅에 오신 것은 우리 인간과 가까운 곳에 계시기 위해서 입니다. 우리가 원하면 언제든지 주님을 만날 수 있는 특권을 주셨습니다. 구약시대에는 직접 하나님 앞에 나갈 수 있는 사람은 제사장으로 제한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신 후 하나님 앞에 나갈 수 있는 길이 활짝 열렸습니다. 주님께서는 하나님께 가는 길을 "내가 곧 길이요"(요14:6)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롭고 산 길이요…"(히10:19-20).

2. 도피성에 피하는 것을 미루면 안됩니다.
도피성은 죄인이 급히 찾아 가서 생명을 보존해야 되는 곳입니다. 가는 길에 자기 집에 가서 인사하거나 친척 만나서 인사할 시간이 없습니다. 그러는 사이에 붙잡히면 죽습니다. 어디서든지 일을 저지르게 되어 죽게 되었을 때 도피성으로 피하면 살 수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을 지체하면 안됩니다. 다음에 믿는다든지 1년 후에 믿는다고 하면 안됩니다.
만약 어떤 사람이 1년후에 예수를 믿겠다고 했는데 그 전에 그가 세상을 떠나면 앞으로 예수를 믿는다고 하는 말이 무슨 소용이겠습니까 이미 구원 받을 길은 없어지고 만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보다 더 급한 것은 없습니다. 예수를 믿는 일은 절대로 내일로 미룰 수가 없습니다(눅9:57-62). 지금 이 시간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도피성에 들어가야 합니다. 지체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예수님께서 길을 가시다가 주님을 따르겠다는 사람을 만났습니다. 그러면서도 한 사람은 집에 가서 장례를 치르고 와서 좆겠다고 하고 또 다른 사람은 가족과 작별하고 와서 좇겠다고 했더니 예수님께서는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치 아니하니라"고 하셨습니다(눅9:57-62). 결단이 되었으면 미루거나 지체하지 말라는 주님의 가르침입니다.

3. 도피성은 어떤 사람에게 필요한 것입니까1) 죄인에게 필요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어떤 사람에게 필요합니까 죄인에게 필요합니다. 죄인은 누구입니까 "의인은 없나니 한 사람도 없다"(롬3:10)고 성경은 선언하고 있습니다. 모든 사람이 죄인입니다. 그렇다면 이 세상의 모든사람은 예수 그리스도 앞에 돌아와야 삽니다.
민수기 21장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죄를 지었을 때 하나님께서 불뱀을 보내 그들이 물려서 많은 사람들이 그 독으로 죽게 되었습니다. 그 때 모세가 기도하니 하나님께서 구리로 뱀을 만들어서 장대에 매달아 높이 쳐들고 누구든지 이 구리뱀을 쳐다보는 자는 다 살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때 그 구리뱀을 쳐다본 자는 다 살았습니다. 2000년 전에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갈보리산 언덕의 십자가 위에 매달아 놓고 누구든지 십자가의 예수를 바라보고, 믿는 자는 다 살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죄인은 십자가에 달린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아야 삽니다.
2) 이 도피성은 환난을 만난 사람에게 필요합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살다보면 뜻하지 않는 환난을 만나게 됩니다. 어려운 일도 만나고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납니다. 그럴때에 그리스도안에 들어가면 주님께서 우리의 도피성이 되십니다.
누가복음 10장에 보면 어떤 사람이 여리고로 내려가다가 강도를 만났습니다. 그 사람은 강도에게 몹시 두들겨 맞아서 거의 다 죽게 되어 길바닥에 버려졌습니다. 그 곁을 제사장도 레위인도 지나갔지만 아무도 도와 주지 않았습니다. 그 때 한 착한 사마리아 사람이 지나가다가 그의 상처를 치료해 주고 보살펴 주었습니다.
인생의 여리고를 내려가다가 강도를 만난 사람은 누구입니까 우리의 모습이 아닙니까 죄악과 환난으로 인하여 비참한 모습이 된 우리에게 사랑의 손길을 주신 착한 사마리아인은 누구입니까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모든 어려움에서 우리를 구해주실 분은 예수그리스도 밖에는 없습니다.
다윗은 많은 환난을 당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사울왕의 칼날을 피해서 이 굴, 저 굴로 그리고 광야를 헤매며 숨어 다녔습니다. 대한민국의 강원도 만한 그 좁은 땅에서 숨을 곳이 있었겠습니까 그런데도 그는 용케도 사울왕의 눈에 띄지 않고 살게 되었습니다. 다윗은 왕위에 오르고 난 다음에 자신이 재간이 좋거나, 재수가 좋아서 사울왕에게 발견되지 않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피난처가 되어 주셨기 때문이라고 고백했습니다(시18:1-2).
우리가 세상을 살아갈 때 얼마나 많은 재앙이 닥칠지 모릅니다. 악한 마귀의 시험이나 때때로 찾아오는 견디기 힘든 재앙 앞에서 넘어지지 말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그늘에 숨기만 하면 재앙이나 모든 시험이 우리를 넘어갈 줄로 믿습니다. 그리스도는 우리의 영원한 피난처 이십니다.
3) 도피성은 나그네 길을 걸어가는 모든 인생들에게 필요합니다.
나그네 생활의 특징은 피곤하며 안식이 없고 늘 불안한 것입니다. 그래도 하나님께서는 나그네 길을 가는 우리들에게 도피성이 되어 주셔서 우리가 다 나그네 길을 갈 수 있도록 인도하십니다.
그 옛쌀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을 떠나 가나안으로 가기 위해서 40년 동안 광야를 지날 때 하나님께서는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그 백성들을 인도하시며 보호해 주시고 피난처가 되어 주셨습니다.
창세기 28장에 보면 야곱이 고향을 떠나 하란으로 갈 때 광야를 지나갔습니다. 홀로 처음 가는 광야길이 얼마나 무섭고 힘든지 말할 수도 없습니다. 벧엘에서 밤에 잠을 자는데 하나님께서 나타나셔서 "내가 너와 함께 하리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야곱의 도피성이 되어 주셨습니다.
요한복음 4장에 보면 수가성 우물가에 물을 길러왔던 여인은 자신의 인생의 목마름을 해결하기 위해 5번이나 남편을 갈아쳤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여인에게 세상의 어떤 것으로도 목마름을 해결할 수는 없다고 하시면서 주님이 주시는 물을 먹어야만 목마르지 않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영원한 생수이시며 모든 목마른 나그네 인생들에게 영원한 평안을 주시는 안식처인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주 안에 있으면 딴 근심이 없으며 참 만족과 참 기쁨이 있고 영원한 소망이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모두가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 가운데 들어와 있는 사람들입니까 그렇다면 여러분들은 모두 도피성 안에 있는 사람들입니다. 주님께서 여러분들의 인생을 책임져 주실 것입니다.

4. 절대로 도피성 밖으로 나가면 안됩니다.
도피성 밖으로 나가면 책임을 질 수가 없습니다. 도피성 밖에 나가면 피해자의 친척들에게 잡혀서 죽어도 아무런 할 말이 없습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어야 합니다. 교회 안에 있어야 합니다. 말씀의 은혜 안에 있어야 됩니다. 주님 밖으로 나가는 순간부터 절망과 슬픔이 기다리고 있다가 여러분들을 엄습하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그리스도 앞에 왔다 갔다 하면서도 그리스도 밖에 있습니다. 라오디게아 교인들은 예수님을 문밖에 세워둠으로 책망을 받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라오디게아 교인들에게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계3:20)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도 라오디게아 교회처럼 주님을 문밖에 세워 두지나 않았습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님은 우리의 영원한 도피성이며 참된 도피성입니다. 이제 주님 안에서 죄사함 받고 재앙을 면하여 이 땅을 사는 동안 참 평안을 누리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