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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레위인 바나바 (행 11:1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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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바나바와 바울 초대 교회에서는 바나바를 바울 곁의 사람으로 분류해야 할지, 아니면 (일부 사람들이 아주 강력하게 주장하고 있듯이) 바울을 바나바 주변의 사람으로 분류해야 할지에 대한 문제가 아주 격렬한 논점이 되었을 것 이다. 그 문제를 논한다는 것은 사실 별로 득이 없는 일이다. 단지 이 글에 바나바를 포함시키는 것은 몇 년 동안 이 두 사람이 가깝게 동역을 했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한 근거가 되기 때문이다.(FF.브루스) 바나바는 성경에서 착한사람으로 소개된다. 그 착함이란 본성적 참함뿐 아니라 주 예수의 은혜로 말미암는 성령의은사로 그렇게 되었음을 알아야 한다.

아뭏든 바나바는 주의 일에 동역함에 있어 사람과 사람사이의 관계가 어떠해야함을 가르쳐주는 가장 전형적인 사람이다.

①복음 전함에 있어 가장 힘든 요소가 있다면 그것은 아무래도 사람과 사람사이의 인간관계가 아닐까한다. 하나님의 복음전파를 위하여 함께 서로 뭉쳐야 함에 대해서는 동의하지만 막상 뭉치려고 하면 서로의 욕심이 팽팽히 맞서 쉽게 하나되지를 못한다.

“무리에게서 스스로 나뉘는 자는 자기 소욕을 따르는 자라 오갖 참지혜를 배척하느니라”(잠 18:1) ②그래서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연합하고 뭉쳤던 사람들은 승리를 얻을 수 있었다. 그런데 사람들은 뭉치지를 못한다. 이유는 자기의 의견을 내세워 남의 말을 듣지 않으려고 하기 때문이다.

“미련한 자는 명철을 기뻐하지 아니하고 자기의 의사를 드러내기만 기뻐하느니라.”(잠 18:2) ③유비는 삼국지에 나오는 촉나라의 황제이다. 그가 천하를 평정할 마음을 품고 인재를 구하러 다녔는 데 결국 관우, 장비를 얻게 되었다. 그러나 그들 장수만으로는 전쟁에서 이길 수 없는 것은 전쟁은 무력만으로 하는 것 아니라 지혜로 하는 것이기 때문에 모략가가 있어야만 했던 것이다. 그런데 사람들이 천거 하기를 제갈공명이라는 사람이 있는 데 그를 얻으면 천하를 얻을 것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유비는 참모들을 대동하고 제갈공명을 만나러 간다. 그런데 제갈공명이란자가 낮잠을 잔다고 만나주지를 않는 것이다. 또 한번은 눈이 내리고 몹시 추운 날 이었는데도 문밖에서 그가 잠을 잘 대까지 기다려야만 했다. 이렇게 세 번씩이나 찾아가서야 겨우 만나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는 데, 유비가 세 번씩이나 그를 찾아가 만났다고 해서 유명한 ‘삼고초려’란 말이 생겨난것이다. 왜 이것이 중요하냐면 그때 제갈공명의 나이라고 해봐야 이제 27살이었고 유비의 나이는 50이 넘은 그야말로 어른의 자리에 있었던 사람이었다. 그런 그지만 제갈공명을 만나 그와 연합하고 뭉치기 위하여 유비라는 한 위대한 황제의 지위를 땅에 헌신짝 처럼 버렸던 것이다.

④이 처럼 사명자를 찾고 찾다가 만나면 우리는 그를 세우고 일하게 하기 위하여 그 사람의 종이 되는 자리에 까지라도 내려갈 수 있어야 한다.

주님은 가만히 않아서 제자를 기다리라고 말씀하지 않고 가서 제자를 삼으라고 말씀 하셨을 뿐 아니라 주님도 친히 제자를 구하기 위하여 그들 삶의 현장에 까지 내려 가셧다.

“갈릴리 해변으로 지나가시다가 시몬과 그 형제 안드레가 바다에 그물 던지는 것을 보시니 저희는 어부라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를 따라 오너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하시니 곧 그물을 버려두고 쫒으니라” (막 1:16-18) ⑤바울과 바나바의 관계에 있어서도 우리는 이와같은 입장에서 밖에 이해할 수 없다. 왜냐면 지금까지의 바울의 행적을 살펴 보았을 땐 어느모로 보나 그는 ‘핍박자들의 스파이’로 밖에 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바울은 아나니아와 헤어진뒤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서 제자들과 사귀고 함께 복음사역을 도울것을 말하려고 햇지만 그를 아무도 만나주지 않는 것이었다. 앞으로 위대한 전도자로 일평생을 살게될 그를 알아보는 사람은 예루살렘에 아무도 없었다는 말이다.

그런데 이때 나타난 사람이 누구냐 하면 바나바였다.

“사울이 예루살렘에 가서 제자들을 사귀고자 하나 다 두려워하여 그의제자됨을 믿지 아니하니 바나바가 데리고 사도들에게 가서 그가 길에서 어떻게 주를 본 것과 주께서 그에게 말씀하신 일과 다메섹에서 그가 어떻게 예수의 이름으로 담대히 말하던 것을 말하니라” (행 9:26-27) ⑥이처럼 바나바는 바울의 변호자요 그를 주의 일군으로 세우는 데 있어 결정적인 역활을 하게 된다. 그래서 바울도 바나바를 회상할 때면 언제나 착한 사람이라고 소개하고 있는 것이다. 착함이란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을 세워 주는 것임을 알 수 있다. 마치 다윗과 요나단처럼 말이다.

 2.바나바의 과거 ①사실 바나바는 나쁜 점이 조금도 기록되어 있지않은 사람이다.

②성경 행 4:36-37에서 그의 이름이 최초로 언급되고 있는 데 성경에 의하면 그는 레위족속이요, 유대이름은 요셉이며 밭을 팔아 값을 가지고 사도들의 발앞에 둔사람이다.

“구브로에서 난 레위족인이 있으니 이름은 요셉이라 사도들이 일컬어 바나바라하니 그가 밭이 있으매 팔아 값을 가지고 사도들의 발앞에 두니라” (행 4:36-37) ③그가 어떻게 구브로에 가게 되었는지 또 어떻게 레위족속인 그가 땅을 소유하게 되었는지 알길은 없지만 모르긴해도 레위인으로서 땅을 소유하며 예루살렘에서 성전의 일을 보지못하고 있는 그의 양심은 많이 괴로웠을 것이다. 그런데 어느날 여느 유대인들처럼 예루살렘의 오순절절기를 지키러 왔다가 베드로가 전하는 복음을 접하고 성령을 체험하고 난 뒤에 성전중심의 예배와 신앙이 끝나고 예수의은혜와 공로로 말미암는 영적인 메시야 왕국이 선포 되었음을 믿고 확인하게 되자 일 순간에 그리스도의 종이 된것이라 할 수 있다.

④그는 또 얼마나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했을까 지금까지는 육적인 레위인으로 살아왔으면서도 자기의 안녕과 미래를 위하여 레위인으로서 금하고 있던 땅과 재산도 소유해야 했지만 이제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적으로 레위인된 바나바는 모든것을 주께 드리기로 작정하는 것이다. 이때부터 바나바는 진짜 착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3.바나바와 바울 ,바울과 바나바 ①바나바라는 이름의 뜻은 ‘권위자 ‘풀어서 보자면’ 위로의아들’이었다. 이것은 사도들이 붙여준 이름이었다.(행4:36) 그것은 그에게 아주 잘 어울리는 이름이었다. 그는 이름에 걸맞게 바울과 사도들이 원활하게 교제할수 있도록 중재하고 위로하는 일 을 잘 치루어 내었다.

②바나바가 다음에 등장하는 곳은 사도행전 13장의 안디옥이다.스데반의 죽음이후 핍박이 거세게 닥쳤는데 이 핍박 기간에 예루살렘을 피해나온 헬라어를 아는 유대인 신자들이 북쪽 수리아 지방으로 가서 마침내 수리아의 수도 안디옥에 이르렀다. 당시만해도 안디옥은 세계에서 세번째로 큰 도시였다. 그곳에는 많은 유대인이 거주하고 있었다. 이들이 헬라인에게도 복음을 전해야 한다고생각하기에 이른 것이다.

베니게와 구브로와 안디옥에가서 복음을 전했을 때 예상외의 일이 벌어졌는데 그것은 복음을 들은 헬라인들이 기다렸다는 듯이 복음의 멧세지를 온 가슴으로 받아들였던 것이다.

“주의손이 그들과 함께 하시매 수다한 사람이 믿고 주께 돌아 오더라” (행 11:21) ③그리고 이 일로 바나바를 안디옥에 보내게 된다 왜냐면 바나바야 말로 이 일에 가장 적합하다고 모든 사람들에게 인정 받았기 때문이다. 왜냐면 아주 엄격한 유대주의자를 보낸다면 비극이 일어날 수 있었기때문 이었다.

“예루살렘교회가 이 사람들의 소문을 듣고 바나바를 안디옥까지 보내니 저가 이르러 하나님의 은혜를 보고 기뻐하여 모든 사람에게 굳은 마음으로 주께 붙어 있으라 권하니 바나바는 착한 사람이요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자라 이에 큰 무리가 주께 더 하더라.” (행 11:22-24) ④바나바는 생각했던대로 안디옥에서의 사역을 성공적으로 수행해 낸다.안디옥교회는 부흥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제는 혼자 힘으로 이 사역을 다 감당 할 수 없다고 느끼기 시작했을때 동역자를 찾기 시작했다. 그리고 바나바는 이 일을 위하여 가장 적합한 한 사람을 생각해 내게 된다. 그는 유대인으로 헬라세계에서 태어나고 헬라어와 히브리어에 동시에 능통한 사람인 바울을 찾아 이끌어 안디옥에 데리고 오는 것이다.

“바나바가 사울을 찾으러 다소에 가서 만나매 안디옥에 데리고 와서 둘이 교회에 일년간 모여 있어 큰 무리를 가르쳤고 제자들이 안디옥에서 비로소 그리스도인이라 일컬음을 받게 되었더라.” (행 11:25,26) ⑤그후에 예루살렘에 핍박과 함께 큰 기근이 찾아와서 안디옥교회는 예루살렘교회를 위하여 부조의 헌금을 보내기로 작정한다. 이는 안디옥교회의 신자들이 아직 영적으로 어리지만 믿음안에서 바르게 자랐음을 보여주는 것이라할 수 있는 데, 이 일의 심부름꾼으로 바나바와 바울이 선택되는 것이다.(행 11:27-30) ⑥그런데 우리를 놀라게 하는 것은 이일후 부터 바나바와 바울로 호칭되던 것이 바울과 바나바로 호칭되기 시작하고 있다는 것이다.

어떻게 이렇게 되었는지를 알아야만 되는 것이다.

 4.바나바같은 사람이 필요하다.

① 바울이 유대를 방문했을때 드디어 그는 제자들로 부터 이방인선교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다는 것을 인정 받았다. 그렇게 생각 했을때 바울과 바나바는 안디옥에 오게 되었던 그 때처럼 이방인들에게 나아가 복음 전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믿게 되었던 것이다. 이 때에 성령께서 안디옥교회에 지시를 내린 것이다. 교회확장을 위하여 바울과 바나바는 안디옥교회의 파송을 받아 선교를 떠나는데 그가 제일 먼저 간곳은 바나바의 고향이었던 구브로 였다. 고향을 향한 뜨거운 마음이 그에게 있었으리라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

② 누가의 표현을 주의 깊게 살펴보면 호칭 순서에 변화가 일어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즉 안디옥을 떠날 때만 해도 바나바와 사울로 되어 있던 것이 바보에서 배를 타고 떠날 때는 바울과 및 동행하는 사람들로 바뀌어 나오고 있다. (사도행전 13장 2:13절) 이것은 바나바의 속마음을 알 수 있는 것으로서 바나바는 일평생 남을 세워주는 삶을 살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래서 바울을 그를 마음을 같이 한 그리스도의 일꾼이라고 칭찬하고 있는 것이다.

③ 또하나 놀라운 것은 바나바도 바울처럼 자비량이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선교를 위하여 스스로 자기 쓸것을 구했다는 것이다.

이는 레위인이었던 그가 은혜를 받고 난 뒤에 일평생 영적인 레위인으로 살기로 적정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어찌 나와 바나바만 일하지 아니할 권이 없겠느냐 누가 자비량하고 병정을 다니겠느냐 누가 포도를 심고 그 실과를 먹지 않겠느냐 누가 양때를 기르고 그 양때의 젖을 먹지 않겠느냐”(고전 9:6-7) 우리는 이시대도 진정 바나바와 같은 사람을 필요로 하고 있다. 바욹도 많아야 되겠지만 바울이 있게끔 한것은 바나바였기 때문이다. 모르긴 해도 바나바가 없었더라면 바울의 사역은 한참 뒤에야 시작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바나바의 중계로 정확하게 하나님의 원하시는 시점에 이루어 질 수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오늘날 바나바와 같은 사람도 많아야 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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