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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바울을 포용한 사람 아나니아 (행 09: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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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새로운 길의 새로운 친구가 필요한 사람.
① 요사이 자살하는 사람이 부쩍 늘고 있다. 부도로 혹은 실직으로 혹은 외로움으로 자살하는 늘어만 가는데 이는 결국 하나님 없는 사람들이 인생의 막다른 골목길에서 선택할 수밖에 없는 마지막 길인 것이다. 이러한 때에 진정한 사랑의 친구가 있다면 그를 도울 수 있지도 않을까 하나님의 사랑은 이렇게 어려움 당한 인간에 대해 오히려 자신의 생명울 내어주는 사랑으로 나타났다. 그리고 이러한 그리스도의 사랑에 감전된 사람은 대가없이 남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게 되는 것이다. 사도 행전뿐 아니라 교회사를 살펴보면 위대한 복음전도자들의 이면에 감추어진 사람들이 많이 나타난다. 사람들은 대부흥사 무디를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무디에게 복음을 전하고 말씀의 도전을 던진 죠나단 선생은 잘 알지 못한다.
그는 14세의 구두 수선공이었던 무디의 주일학교 선생이었습니다. 그 선생님은 무디가 주일학교에 잘 나오는 착한 학생이지만 예수에 대하여 잘 모르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그 선생님은 날을 정하고 무디가 일하는 구두방으로 가서 그에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가게의 뒷켠에 있는 창고로 데리고 들어가서 “얘 너는 예수님을 알고 있니 그분은 너의 죄를 위하여 죽어주시고 십자가에서 고통을 당하셨단다. 그런데 너는 그분을 잘 모르는 것 같구나 그 예수님이 너에게 들어가고 싶다고 나에게 말씀하셨어. 너는 그분을 마음속에 모시지 않을래”
그때 무디는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했고 거듭난 것이다. 무디가 장차 미국과 온 유럽에 식어가는 기독교에 부흥의 불길을 다시 일으키게 될 하나님이 종이 되리라곤 아무도 몰랐지만 무디의 선생님은 그에게 복음을 전했던 것이다. 작고 못 배우고 가난한 무디를 아무도 관심 없게 여겼지만 그 주일학교 선생님은 성령의 감동에 따라 신실하게 순종하여 그에게 다가갔던 것이다.
② 헬렌은 소경이며 귀머거리요 벙어리였다. 그런 그녀가 스코틀랜드의 글래수 고우 대학에서 여자로서는 최초로 명예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때 그녀는 “나와 같은 보잘것 없는 불구자에게 이런 명예로운 학위를 주신 것을 감사합니다. 암흑과 침묵도 전진하려는 내 정신력을 막을 길이 없습니다.”라고 수화로 연설했다. 그때 그곳에 모인 사람들이 보낸 박수소리는 천둥소리와도 같았다고 당시의 신문이 소개한다. 그런데 이 헬렌을 깨운 사람이 누구일까 그것은 설리번이라는 그녀의 가정교사였다. 어머니 조차도 버린 그녀, 그 집의 개도 고양이 보다도 더 못한 걸림돌 같은 존재였던 그녀를 바꾸어 놓을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계획을 믿었기 때문이다.
③ 이런 사람들, 위대한 전도자 무디, 그리고 여성지도자 헬렌켈러와 그들의 존재가치를 인정하고 묵묵히 키웠던 그 뒤의 선생님들 중 하늘나라에서 누가 더 상급이 클까
④ 바울은 다메섹에서 그리스도를 만나 눈이 감기워지는 순간 모든것을 잃어버렸다. 그의 가치관과 꿈은 말할 것도 없고 소경이 된 그를 부축해줄 친구마저도 잃어버린 것이다. 이제 어떻게 될것인가
⑤ 누가 이 사람을 받아들일 것인가
버림받고, 소외당하고, 인정받지 못한 사람들을 누가 안아줄것인가

2. 하나님이 쓰시는 그릇을 만드는 사람.
① 바울이 눈이 감기워진채 도움을 받기 위해 제일 처음 만나야했던 사람은 다메섹에 있는 직가거리의 아나니아였다.
아나니아는 원래 다메섹에 살고 있던 유대인 신자였다.어떤 연유로 예수를 믿었는지에 대해서는 성경이 자세히 말하고 있지 않지만 그는 9장 10절의 기록대로 제자로 불리워졌던 사람이었다. 그뿐 아니라 말씀과 계시 성령의 권능에 대해서도 열려있을 만큼 믿음이 있는 사람인 것 만은 틀림없었다. 행 22장 12절에서 바울은 회고하기를 그는 “율법에 의하면 경건한 사람으로 거기 사는 모든 유대인들에게 칭찬을 듣는”사람이었다.
② 아나니아는 처음에 놀라고 거부했다.
아나니아는 바울을 본적은 없지만 적어도 그가 어떤 사람인가 하는 것만은 다 알고 있었다. 핍박자요 살인자이기도 한 그가 자기에게 올 것이라는 사실이 놀랍기도 하고 의하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그의 역할이 무엇인가를 그리스도로부터 직접 듣게 되었다.
③ 그는 예수 그리스도의 지시하심에 따라 그를 찾아가야했고 그를 만나야했다.
어떤 마음이었을까 그의 과거와 현재의 변화를 이해하는데에는 얼마간의 시간이 필요했을 것이다.
그를 초신자로 받아 그를 용납하고 세례를 주어 자신의 제자로 삼아야할 것인가 아니면 거부하고 내팽개쳐야만할것인가
④ 믿음을 확인할 필요는 있었다.
믿음이 있으면 다른 것은 중요치 않기 때문에 먼저 바울의 회심과 변화를 확인했을 것이다.
바울이 변화한것은 다메섹 도상에서 만난 예수 그리스도 때문이요 이로 인하여 그가 눈이 멀었다는것을 확인한 후에 그는 모든 의심과 회의를 버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을 믿기로 한 것이다..
⑤ 그는 직가라는 거리로 갔다.
그곳에서 눈먼 사람을 보게 된 것이다.
9:18(참고 22:16)에 보면 아나니아는 바울에게 세례를 베풀었다. 그리고 그를 초신자로 받아들이고 그를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양육하기 시작했다.
⑥ 위대한 종 바울의 믿음 생활은 이렇게 해서 시작된 것입니다. 바꾸어 말하면 위대한 종 바울도 초신자로서 다른 성숙한 크리스챤으로부터의 도움을 받아야 했다는 말이다.
모세는 산파와 미디안 사람 이드로의 도움이 아니였다면 이스라엘을 인도하는 지도자가 될 수 없었을 것이다.
⑦ 이것은 오늘날에도 마찬가지 이다.
아무리 위대한 종으로 다음세기에 우뚝선다 하여도 믿음은 진공상태에서 생기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또 하나님의 종이라도 누구나 초신자 시절이 있다는 사실이다. 아무리 큰 종으로 쓰임 받는다 할지라도 신앙이란 첫걸음마부터 배워야 한다. 신앙생활에 있어 이 부분은 참으로 중요한 것이다.
⑧ 초신자는 처음 교회에 발을 디뎌 놓을 때 누구를 첫 친구로 알게되며 누구에게서 말씀의 구체적인 도움을 받느냐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처음 만나게 되는 그 사람이 첫 신앙의 출발을 하는 초신자에게는 엄청나게 큰 전환점의 시작이 될 수 있다.

3. 결론적으로
① 바울을 포용하여 제자로 삼았던 아나니아, 어쩌면 짧은 만남을 통하여 사도바울은 그리스도인의 진실된 믿음과 언행일치의 사랑을 깨달았는지도 모른다.
아무도 그를 도와주지 않고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는 두려움속에서도 바울 사도는 아나니아를 통하여 주의 용납하심과 사랑하심을 깨달았을 것이다.
② 바울에게 첫 믿음과 세례를 선물로 주고 아나니아는 더 이상 나타나지 않지만 사도바울을 설명하는데 있어 아나니아를 제외하고는 결코 설명할 수 없는 것이다.
③ 나는 여러분들이 이처럼, 바울이 되지 않을지라도 여러분들이 전도하고 가르치며 인도한 사람중에 바울같은 지도자와 종들이 나올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 한다.
그러므로 앞서 말하였던 무디같은 사람, 헬렌켈러같은 사람, 이들도 위대했지만 그들을 용납하고 복음의 도전을던지며 그리스도앞으로 인도하였던 사람들이 훨씬 더 위대하고 아름답다는 것을 기억하여야 한다.
④ 혹시 여러분들이 전도하고 인도하는 사람중에 과거에 포악한 사람이고 가망없었던 사람이라할지라도 포용하고 용납하여 성실하게 사랑으로 인도한다면 우리는 또 다음세기에 위대한 전도자를 만날 수 있을 것이다.
⑤ 그러므로, 주의 일에 항상 힘쓰는 여러 분되기를 바란다.
또 그 주의 일중에 사람을 낚고 가르치고 인도하는 일에 게으르지 않기를 바라는 것이다.
하나님 나라는 사람들로 구성되어져있고 사람의 수고와 전도를 통해 확장되어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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