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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바울의 일생 (행 1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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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IMF시대라고 한다. 잘나가던 우리나라가 이렇게 된 원인이 어디에 있을까 주님은 집을 지릉때 기초가 중요하다고 하셨다. 반석위에 지어지지 않은 집은 결국 무너진다. 그러므로 좋은 집은 설계도에서 시작된다. 또한 좋은 작품도 좋은 구상으로 부터 시작이 된다. 우리나라는 이러한 구체적인 미래의 설계없이 나라를 운영해 왔다.
② 이 처럼 우리 인생도 좋은 구상과 좋은 꿈이 있어야 성공할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을 철학이라고 한다. 비젼이 없는 백성, 묵시가 없는 사람은 방자해지고 방탕해 지는데 이는 기필코 도달해야할 목표 지점이 없이되는 대로 살기 때문이다.
③ 기도는 왜 하는가. 그것은 무엇보다 먼저 나무를 그리기 전에 숲을 그 려야 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그림을 그리기에 앞서 먼저 구도를 잡 고 밑칠부터 해야 하는 원리와 같은 것이다.
④ 우리의 기도는 매일의 일용할 양식(영어로 our daily bread)도 구해 야 하지만 그보다 더 큰 문제인 어떻게 살며 무엇을 위해 살 것이냐를 기도한뒤에 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대부분의 우리 기도는 매일의 일용 할 양식만을 구한 채 우리의 먼 미래의 꿈과 비젼에 대한 기도는 하지 않는다는데 문제가 있다. 그래서 우리 기도의 대부분은 하늘나라에서 잡동사니 취급을 받고마는 것이다. 그러니 어찌 응답이 있겠는가.
⑤ 주님은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와 그분의 의를 위하여 구하고 기도하면 오히려 지엽적인 문제는 그냥 해결해 주시겠다고 약속하신다. 그렇다 면 우리의 기도는 어떻게 무엇을 위해 살겠다는 것에 더 많은 비중을 두 어야 한다는 것이다.

2. 바울의 꿈
① 바울은 오늘 본문에서 소개되어진 대로 ‘천하를 어지럽게 하던자 들’의 괴수였다.(행 17:6)
그때 당시의 헬라 세계, 로마가 장악하고 있던 3개 대륙 아시아와 유럽과 아프리카를 온통 어지럽게 하고 시끄럽게 만들고 급기야 그의 사후 250년이 지난 후에는 어지럽게 하는데서 천하를 장악하게 되는 종교의 지도자로 나타나게 된 것은 어찌 된 일인가
그가 예수를 소개하는 자로 서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예수가 소개되어진 곳에서는 예수보다도 훨씬 더 많이 언급되어 지는 사람 , 도대체 그는 어떤 사람인가
② 2세기경 기록된 바울과 데크라의 행적이라는 외경의 기록에 의하면 “대머리에 흰 다리, 눈썹은 서로 맞닿고 코는 매부리에 단신의 다부진 체구”를 가진 호감에 찬 사나이, 그는 인간의 모습에 천사의 얼굴을 가진자다..“ 라고 소개 되어 있다.
F.F브르스라는 신학자는 그를 “친구를 잘 사귀는 사람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바울과 함께 한 사람들의 이름이 신약 성경에서 약 70명 정도가 나오는 데 이름조차 나오지 않는 친구들까지 합 한다면 그는 훨씬더 많은 친구들을 사귀고 있었을 것이다. 바울은 또한 비그리스도인과 우정을 맺는데도 은사가 있었던 것이다. 에베소의 관원들(행 19:31)이나 백부장 율리오(행 27:3, 43) 같은 사람들이다. 그리고 또 하나 특기할 만한 사실은 바울 곁의 사람들은 그를 열렬히 사랑하든지 아니면 도저히 용납할 수 없어서 배척하는 사람들로 양분되어 있어서 중립적인 태도를 가진 사람은 전혀 볼 수 도 없는 사실이 그것이다.
③ 그는 로마의 중요한 30여개 도시를 종횡무진 다녔고 약 50년동안 1만 5000여 km가되는 거리를 전도하면서 다녔던 사람이었다. 집도, 전답도, 그의 소유라곤 그야말로 하나도 없이 일평생을 무일푼으로 살았던 그가 최후에 맞이한 것은 로마의 감옥과 단두대의 죽음이었다.
그가 꾸었던 꿈은 도대체 무엇이었기에 그는 어떤 인생의 설계도를 가지고 있었기에 그렇게 살 수 있었을까

3. 바울의 과거
① 그는 바리새인이었다. 물론 그의 부친도 바리새인이었다.(행 23:6)
② 그는 로마 시민권을 갖고 있었다.(행 22:25028)
③ 베냐민지파로 다소에서 출생하였다.(행 22:3)
④ 가말리엣 문하에서 공부하였고(행 22:3) 또한 랍비들이 그러하듯 장막 만드는 기술을 가지고 있었다.(행 18:3)
⑤ 그는 대제사장의 무리들과 깊은 관련을 맺으며(행 26:10) 유대교의 열심으로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하였다.(행26:5)
⑥ 그 열심이 결국 스데반을 돌로칠 때 동참케한 것이다.(행 7:58)
그의 열심은 정당한 것이었으며 유대 율법주의 전통안에서 그는 하나님을 위하여 사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그러하듯 그는 최선을 다하며 하나님의 나름대로 섬기고 위하고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하나님의 공의는 인간의 모든 불의에 대하여 심판으로 종결되고 오직 유대교인 만이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된다고 믿었던 것이다.
그러던 그가 어떻게 무너질 수 있었는가
그가 핍박하던 예수를 오히려 따르되 열렬하게 주종하며 따르는 삶으로 180도 바꿀 수 있었던 것은 도대체 무엇 때문일까
무엇이 그로 하여금 변하게 만들었까

4. 바울의 광명
① 스데반이라고 부르는 예수의 한 추종자가 감히 공적으로 유대교와 그 성전은 이제 끝났다고 공언하자, 바울과 그의 동료 유대교인들은 이제 행동으로 처리해야 할 때가 왔다는 것을 알았다.
그들은 유대교 체제가 위협을 받는 중대한 사실 앞에 폭도들을 이용해 동을 던져 죽게 만들었다. 마치 얼마전 있었던 집권당의 창당 방해 사건처럼 말이다. 그러나 스데반의 죽음은 그리스도교 광신자들을 잠재우기는 커녕 그들의 가슴속에 불을 질러 놓아 더 많은 지역에 흩어져서 그 도를 퍼트리게 된다는 사실을 바울이 감지한 것이다.
그중에 많은 광신도들이 모여 있는 다메섹(오늘날 다마스커스)이라는 나바티안 이란 왕국 내의 도시를 습격하기로 마음을 먹고 예루살렘의 대제사장들에게 가서 그들을 체포하여 예루살렘으로 송환해 올 궁리를 하였던 것이다.
그리하여 군대를 이끌고 다메섹을 가고 있었다.
그는 그곳에서 자신의 생애를 온통 뒤바꾸는 놀라운 체험을 하게되는것이다. 빛을 본 것이다.
② 행9:7에는 바울의 동반자들이 함께 “그 빛을 보았다”라고 말하였다. 행 22:9에서는 말하길 “나와 함께 있는 사람들이 빛은 보면서도 나더러 말하시는 이의 소리는 듣지못하더라”고 기록하고 있다.
그때 “하늘로서 해보다 더 밝은 빛이 나와” 그를 비추었다.(행 26:13) 그리고 그는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라는 음성의 도전을 받았다.
③ 바울이 바뀐 것이다.
이 사건에서 그는 유대인으로서 가졌던 희망과 이상들이 모두 거짓이었음을 깨달았던 것이다. 유대인의 꿈과 이상은 오실 메시야가 군인이어야 했고 그들의 적은 로마 당국과 그들을 억압하고 있던 잘못된 세상의 체제였던 것이다.
그런데 이 땅에 오신 메시야는 ‘종’이셨고 또한 그리스도의 대적은 눈에 보이는 체제가 아니라 그 배후에 있는 정사와 권세 즉 사탄과 그의 더러운 귀신들에 대한 싸움(엡 6:12)이었던 것이다.
④ 바울은 나사렛 예수, 비천한 출생의 패배자 예수를 메시야로 인정하는 무리들을 그대로 보고 있을 수 없었던 것이다. 적어도 그들의 믿기로는 화려하고 위엄 있게 이 땅에 임하셔야 할 만왕의 왕이셨던 것이다.
그러나 다메섹 도상에서 나타나신 예수는 바울에게 그 비천한 종으로 왔던 ‘나사렛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과 만유의 주로 인정하라고 한 것이었다. 그뿐 아니라 바울 자신과 그의 미래와 또 그의 조국 이스라엘에 대한 모든 권리와 통치권도 예수 그리스도에게 있음을 인정하라고 한 것이다.
그는 이러한 그리스도 예수의 부르심에 승복하였다.
그는 후에 아그립바 왕에게 이때를 회고하며 이렇게 말했다.
“아그립바 왕이여 그러므로 하늘에서 보이신 것을 내가 거스리지아니하고”(행 26:19)
⑤ 바울은 크리스챤들의 믿음을 광신으로 몰았고, 비천하게 여겼던 과거를 청산하고 종으로 오셨던 예수 그리스도의 눈으로 성경을 다시 보기 시작한 것이다.
어제의 자기는 분쇄되고 부활하신 예수에 대해 지배당하는 새로운 삶이 전개된 것이다.

5. 결론적으로
① 바울은 이 사건이 너무나도 충격적이어서 다메섹의 숙소에 사람들의 부축을 받으며 당도한 후에도 3일동안 먹을 수도 마실 수도 없었다.
그는 신체적으로 환상 때의 강렬한 빛 때문에 맹인이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 순간부터 예수에 의해 새로운 영안이 열렸던 것이다.
② 모든 인간은 눈을 뜨고 세상을 살아가지만 이 세상 속에서 영적인 세계를 모른 채 맹인으로 살아가고 있다.
그 눈은 비천한 종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날 때 비로소 열리는 것이다.
③ 영안이 열리기 위하여 인간은 필연적으로 세상을 보는 눈이 잠시 감기워야 한다.
앞이 캄캄할 지경을 만나야만 새로운 영적 세계에 대한 눈이 열리는 것이다. 그 눈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만남으로만 열리는 것이다.
④ 철야 기도회에 오는 사람의 공통된 특징이 있다. 그것은 남다르게 눈앞이 막힐 만큼의 답답한 일을 만났다는 것이다. 울부짖어 잠안자고 기도할 수 밖에 없는 상황 속에 놓여 있다는 것이다.
세상의 여러 다른 방법으로 할 수 있다라고 생각하다가 이밤 기도하고 나면 주님은 분명히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이다.
“너는 나사렛 예수를 믿느냐 내가 그로라 내가 너의 인생을 책임지겠다. 내가 너의 사업과 미래, 그리고 너의 자녀와 가정을 책임지겠다. 맡기겠느냐”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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