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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불의한 죄 (롬 01:2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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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서는 택하신 자들을 사랑하시고 은혜 가운데 거하게 하시며, 필요를 따 라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강건케 하십니다. 이것이 구원 받고 하나님의 자녀된 우 리들이 매일 경험하는 하나님의 손길이요, 성도들의 간증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택하신 성도들이 있으면 버림을 받은 사람도 있을 것이 아니냐 는 의문을 가지게 됩니다.그래서 칼빈은 이중 예정론을 주장했습니다.논리적으로 보면 그럴듯하게 보입니다.

또 한편에서 보면 인간에게는 자유의지가 있는 것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내 마 음대로 믿고,내 마음대로 버리고,내 마음대로 선하게 살거나, 악하게 살수 있습니 다.

이문제에 대한 해답을 저는 진실할수 있을 때에 진실하지 않으면 진실하고자 할 때에 진실 할수 없다.고 말하고자 합니다.

바로 지금의 선택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사랑할수 있을 때 사랑하지 못하면 그 다음엔 사랑하려고 해도 못하게 됩니다.

효도도 할 수 있을 때 해야지 조금,조금,미루다 보면 한계가 옵니다. 울어도 안 되며, 발버둥쳐도 않됩니다.

하나님의 일도 마찬가지 입니다. 기회가 있을 때 해야 합니다. 지금 우리가 하 나님의 일을 할수있는 시간이 있고, 믿음이 있고,물질이 있고, 나를 필요로 하는 교회가 있는 것을 감사하고 열심히 하시기를 바랍니다.

회개의 경우도 회개의 기회가 주어질 때에 해야 합니다.이 기회가 지나가 버리 면 어느 순간에는 우리의 마음이 완악해져서 회개하지 못하게 됩니다.

상황이 바뀐 것이 문제가 아니라,우리의 마음이 완악해집니다.

이것을 우리는 버려진 상태라고 말할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주어진 기회를 활용하여 바른 선택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오늘 내가 해야 할 바른 선택을 자꾸만 미루다 보면 내 의지로는 할수 없는 상태에 이르게 된다는 것입니다.

지난 시간에는 인간을 우상숭배에 내버렸다는 종교적인 문제에 대해서 생각했다 면 오늘은 도덕적인 문제와 타락한 인간의 성품에 대해서 공부하겠습니다.

오늘 본문을 읽어보면 우리가 좋아할 말은 한마디도 없습니다. 입에 담기조차 싫은 말들로 가득차 있습니다.어쩌면 생각해보지도 못한 일들인지 모릅니다.

사람들은 자기가 싫어하는 것을 본능적으로 피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현대 교인들은 죄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을 싫어 합니다.또 교인들이 싫어하는 것을 자꾸 얘기 할 필요가 있겠느냐고 말하는 목회자들도 많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말씀에는 구약은 말할 것도 없고,신약에서도 죄에 문제에 대해서 적나라 하게 다루고 있습니다.왜 그렇습니까 한마디로 죄에 대해서 이야기 하지 않고는 인간의 본래의 실상을 알수 있기 때 문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자기는 죄와 상관이 없고,죄가 무엇인지 알지 못하고,남의 이야 기를 하는 것처럼 느끼는 사람도 있습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죄의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죄를 이야기 할 때만 나 자신의 참 모습을 볼수 있기 때문입니다.

본문은 이를 인하여 라는 말로 시작합니다.

즉 25절에 있는 하나님을 거부하고 우상을 섬기는 것,자기를 하나님 대신에 우 상의 자리에 높인 것을 말합니다.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거부했다는 것입니다.

어느 자리에서 신앙에 대해서 이야기 하면 "왜 이런 자리에서 그런 말을 하느 냐"고 화를 냅니다. 바로 이런 것을 말합니다.하나님을 거부하는 자세입니다.

상실한 마음 이라는 단어가 나오는 데 하나님을 떠난 사람들이 어느 사이엔가 부패해져서 하나님이 싫어하는 일만 하게 됩니다.

하나님이 싫어하는 일들이 무엇입니까 바울은 지금 그 죄들을 하나 하나 열거하고 있습니다.그렇다고 여기에 모든 죄 가 다 기록된 것은 아닙니다.당시에 로마 사회에서 흔히 볼수 있는 죄 중에서 대 표적인 것 만을 기록한 것입니다.

로마시대를 말할 때 역사가 버질은 말하기를 옳고 그른 것이 혼돈 되어버린 사 회였다.유래없는 사치 시대로소 사람들이 물건을 놓고 그것이 무엇인가를 뭇지 안 고,얼마인가를 뭇는 시대였다 잘 생각해 보아야 할 이야기입니다.

옷을 하나 놓고도 이것이 무엇이냐라고 묻지를 않습니다.-옷을 용도는 수치를 가려주는 것과,몸을 보호하는 것과,예의를 갖추는 것입니다.그래서 옷을 살 때는 입을 것이 부족함을 느낄 때입니다.

그런데 얼마를 주었느냐고 묻는다는 말은 그것의 필요성은 제쳐 두고 100만원 을 주고 샀다. 하면 무조건 감탄하고 부러워 하며 훌륭하다고 생각한다는 것입니 다.사치가 극에 달한 것을 이야기 합니다. 그래서 로마가 멸망하고 심판을 받았습 니다.

그런데 지금의 우리시대는 어떻습니까 내가 아는 어느 분은 입만 별렸다 하면 메이커를 이야기 합니다.이 옷은 어느 메이커 제품이고,이 이 신발은 어느 메이커 제품이고,이 가방은 어느 메이커 제품 이라는 것을 자랑하고,어느 메이커가 값은 비싸도 멋인다느니 이야기합니다.

나는 이런 사람을 경멸합니다. 혹시 우리 성도들 가운데도 그런 사람이 있으면 회개하고 또 속히 습관을 고치시기 바랍니다.

교회에서 옷자랑하고 비싼 물건이나 패물자랑하는 것보다 어리석은 일이 없습니 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 목사님이 멋이 없다고 생각하지 마시기를 바랍니다.저도 미적감각으로 따지면 누구에게 되지지 않을 것입니다.그러나 사치와는 구별을 해 야 합니다.

메이커를 자랑하는 사람들은 돈이 모자라서 그렇지 돈만 있으면 일류 패션쇼에 나오는 그런 옷들을 입고 다닐 것입니다.

가끔씩 나오는 사진을 보면 그것이 옷입니까 벌거벗은 것이지 요즈음은 어떻 게 하면 더 많이 보여 줄까하고 연구해서 옷을 만드는 것 같습니다.

영어로는 멋있다를 sexcy하다 그럽니다. 이 말은 성적인 매력이 있다는 것입니 다. 즉 유혹하기 위해서 옷을 입는 것이 서양사람들입니다.즐기기 위해 사는 사람 들이니까. 이것을 알고 유행을 따라가야 합니다.

어느 학생들은 "나는 창녀다"라는 말을 가슴과 엉덩이에 써 붙이고 다니는 것을 봅니다.

지금 우리는 로마시대의 타락을 봅니다.

동성연애 에 대해서 말하는 것을 우리는 본문에서 보게 됩니다. 인간이 하나님 을 떠나면 성적인 타락을 가져오게 되는데 그 말기적인 현상이 동성연애입니다.

미국에서는 동성연애자들을 위한 편의시설이 마련될 정도로 이것이 당연시 되고 있기도 합니다.그리고 동성연애자들을 법적으로 보호해 달라고 하며,동성연애자들 의 결혼을 인정해 달라고하는 주장이 신문에 실린 것을 보았습니다.

우리나라에도 동성연애가 만연되어 있습니다.

마약이나,다른 범죄가 늘어나는 것과 같이 이런 성적인 범죄가 많아지고 있습니 다.

타락한 인간들은 쾌락을 위한 일이라면 무엇이라도 서슴치 않고 저지르고 있습 니다.

어느 강도가 칼을 휘두르다가 경찰에 쫓기게 되었습니다. 길을 가던 어린아이가 멋모르고 우물쭈물하고 있으니까 이 강도는 서슴치 않고 칼로 쳤습니다. 붙잡혀 감옥에 갇힌 강도를 경찰관이 찾아가서 "네가 찌른 어린이가 숨졌다"고 이야기 하 니까 "그 놈 재수없었군!"하더랍니다.

자기도 재수가 없어서 잡혔고, 그 아이도 재수가 없어서 자기에게 걸려 죽은 것 이지 자기가 한일에 대한 죄책감이나 뉘우치는 마음은 추호도 찾아 볼수 없는 말 입니다.

이런 일에 상당한 보응을 받는다고 성경은 말합니다. AIDS 하나님은 질서 안에서 살기를 원하십니다. 모든 것을 하나님이 지어 주신 질서 와 범위 안에서 할 때에는 축복이 되고 은혜가 되지만 그것을 떠 날 때에는 똑 같 은 것이 죄가 되고 무서운 심판이 될 수도 있습니다.

동성연애자들이 무서운 죄를 짓는 이유는 하나님의 질서를 파괴하고 있기 때문 입니다. 자신이 하나님이 된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으로 부터 버림 받은 결과 즉 심판 받은 결과는 무엇입니까

1. 불의입니다.

이것은 의와 반대로 하나님께로 향하지 않고 반대로 가는 길입니다.복된 길이 아니라 저주의 길입니다.아무리 세상적으로 옳게 살아도 하나님을 모르고 사는 사 람은 불의한 것입니다.

 2. 추악입니다.

다른 사람을 해롭게 하는 욕심입니다.

 3.탐욕입니다.

법을 떠난 욕망을 말하는 것으로 욕망 자체는 죄가 아닙니다.그런데 하나님을 떠날 때 욕망은 굴레 벗은 망아지처럼 된다는 것입니다.

법을 떠난 욕망,양심을 떠난 욕망,진리를 떠난 욕망은 결국 무서운 결과를 가져 옵니다.

아무리 가져보아도 한계는 없습니다.

외국인들은 마지각 죽을 때를 대비해서 유서를 써서 미리 변호사에게 맡겨 놓아 서 교회와 사회 사업을 위해서 자신의 재산을 씁니다. 그런데 한국 사람들은 갑자 기 죽으므로 임자없는 돈을 남겨 놓아서 자신이 욕먹고,후손을 망하는 꼴을 보게 됩니다.

 4.악의와 시기입니다.

시기는 악한 마음에 하나님 없는 마음이 합쳐질 때 나타나는 것입니다.악한 마 음에 자기 현실은 시인하지 않고 욕망을 부릴 때에 시기가 나타난다고 합니다.내 힘이 미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내 처지 내 형편대로 만족하며 살아야 하는데 다른 사람의 처지를 보고 시기 질 투 합니다.

 5.다음은 분쟁입니다.

하나가 되려고 하지만 잘 안됩니다.악이 중심에 있으면 절대로 하나가 되는 일 이 있을 수 없습니다.왜냐하면 인간은 양심적이기 때문입니다.확실한 의가 있고, 진리가 있어야 양심의 성원을 얻을 수있고,하나가 될수 있습니다.6.사기입니다.

하나님 없는 지혜의 결과입니다.

 7.수군수군하는 것입니다.

"너하고 나하고 만 알자"는 아주 나쁜 것입니다.그 가운데 하나님이 빠졌습니 다. 이런 비밀은 대개가 남을 해롭게 하든지 다른 사람을 마음 아프게 하든지 질 서를 파괴하는 것입니다.하나님이 없는 모의와 비밀은 하나님의 심판이라는 사실 을 알아야 합니다.

 8.하나님을 미워하는 것,교만한 것,능욕하는 것 은 다 불신앙의 결과입니다.

 9.자랑하는 것,악을 도모하는 것,부모를 거역하는 것은 모두가 병든 심령의 결 과입니다.

10.우매한 것입니다.

자기 나름대로는 지혜로운 것 같으나 어리석어 진다는 것입니다.하나님께로 부 터 버림 받은 심령은 반드시 우매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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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배약입니다.

약속을 배반하는 것으로 하나님 앞에서 정직하지 못한 것입니다.우리는 모든 약 속을 잘 지켜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과 한 약속과 신앙의 약속을 잘 지켜야 합 니다. 하나님과의 관계이기 때문입니다.

다음으로 주신 말씀은 이 모든 악이 잘못된 것으로 하나님께서 벌 주심을 알고 있다는 것입니다.

안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왜냐하면 첫째로 아는 데에서 그치지 않기 때문입니다.실천이 없다는 뜻입니다.

둘째는 알고 있으면서도 그 죄를 행한다는 것입니다.여기서 죄는 더 커지고 심 판은 더 무서워집니다.

마지막으로 더 무서운 죄가 고발되고 있습니다.

32절 맨 끝에 "자기들만 행할 뿐 아니라,그 행하는 자를 옳다 한다."고 했습니 다.죄짓는 사람보고 잘했다 하는 이유는 어디에 있습니까 그래야 내가 지은 죄도 잘한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잘못된 것을 잘못되었다고 비판하면 나도 비판을 받아 야 합니다.나의 잘못을 정당화하기 위해서 이런 불의를 저지르게 된다는 것입니 다.

그러므로 회개하는 기회가 주어지고 회개하는 마음이 생기는 것보다 더 큰 축복 은 없습니다.죄가 생각나는 그 순간 그대로 겸손하게 무피을 꿇을 수 있다면 축복 받은 심령입니다.죄에 대한 생각,잘못된 생각이 날 때마다 무슨 말로든지 변명하 는 자는 버려진 심령입니다.

어떤 사람은 혼자 있을 때에는 "내가 잘못 했구나"라고 생각 했다가도 다른 사 람이 지적하면 "내가 뭘 잘못했어"라고 반발합니다.

내가 하나님 앞에 잘못된 줄 알았으면 다른 사람이 내게 말해도 똑 같은 마음 으로 회개할 수 있어야 합니다.회개하는 것은 구원 받은 심령,즉 버려지지 않는 상태를 말해 주는 증거입니다.

잘못한 것을 알고도 회개하지 않으면 마음은 점점 더 악해지고 결국에는 하나님 께 버려진 심령이 됩니다.

진실로 회개는 모든 축복보다 더 귀한 축복입니다.

회개할 용기를 하나님께서 주셔야 우리는 회개 할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회개는 하나님이 사랑하는 자에게 주시는 은혜입니다.

우리 모두 회개하는 심령으로 기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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