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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사랑과 배반 (요 13:2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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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여뿐 소녀가 가족들과 나들이를 하다가 잠시 혼자 돌아다니는바람에 길을 잃었습니다. 이리저리 헤매던 소녀는 한 우물가에 다다랐습니다.
"아이! 목말라,...."
그러나 그 우물은 물이조금밖에 차 있지 않아서 도저히 두레박으로 떠마실수가 없었습니다. 할 수 없이 소녀는 두레박을 따라 밑으로 내려갔습니다.
그런데 목을 축이고 난 후에야 그녀는 자신을 위해 두레박을끌어올려 줄 사람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때마침 그곳을 지나던 청년 하나가 소녀의 울음 소리를 들었습니다.그는 그녀를 구출해 내었고, 둘은 사랑을 맹세하는 사이가 되었습니다.그러나 청년은 하던 일이 있어서 아주먼곳으로 길을 떠나게 되었고 따라서 소녀와 작별하지 않을수 없었습니다.헤어지던 날 그들은 처음 만났던 우물가에서 손을 맞잡고서서 자기들이 결혼할 수 있는 그 날까지 언제까지나 기다리며 성실을 지키자고 굳게 약속을 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약혼에는증인이 없었습니다.
청년이 누군가에게 증인을 서달라고 하자고 말하는데,마침 족제비 한 마리가 그들 곁을 지나치며 저편 수풀로 달려가는 것이 아닙니까 이것을 본 소녀가 얼굴을 빛내며 말했습니다.
"족제비와 우리 옆에 있는 이 우물이 증인이예요."
계절이 바뀌고 여러 날들이 지나갔습니다. 청년은 멀리 이역땅에서 우여 곡절 끝에 출세를 했고, 그곳 여인과 결혼하여 아이까지 얻었습니다. 그렇게 평온한 나날을 보내던 어느날 이었습니다.그의 아이가 놀다가 잠시 풀밭 위에서 잠들어 있는데 어디서 나타났는지 족제비 한 마리가 덤벼들어 아이의 목을 물었습니다. 아이는 그 자리에서 죽었고 그는 이 일로인해몹시 슬퍼했습니다.
얼마후 그는 또 한 아이를 얻었는데, 이번에는 아이가 제법 뛰어놀기 시작할 무렵 마당 한 구석에 있는 우물을 들여다 보며 그 안에 비치는 갖가지 물 그림자를 구경하다가 그만 우물속에 빠져 죽고 말았습니다.
그제서야 그는 옛날 소녀와의 맹세를 기억해 냈습니다.
그리고그들이 세운 두 증인도....., 그곳에서의 생활을 모두 청산하고 그는 자신의 신부를 찾아 예전의 그 소녀가 있던 마을로 되돌아왔습니다.이제는 꽤 나이가 들은 그 처녀는
아직도 그를 기다리며 약속을 지키고 있었습니다.
제자를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는 스승 예수님의 절대적인 사랑을 배신한 가롯 유다는 인류 역사상 가장 추악한 인물입니다.사랑을 배신했기 때문입니다.
마태 복음 21장 33절이하에서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배신자들의 이야기를 비유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어떤 포도원주인이 포도 농사를 짓고 외국으로 떠났습니다.
수확때가 되어 주인은 자기의 몫을 받으려고 농장으로 종들을 보냈습니다. 그러나 농부들은 주인의 종들을 때리고 돌로 쳐죽여 버렸습니다. 주인은 다시 더 많은 종들을 파견했습니다.그러나 농부들은 도착하는대로 모조리 죽여버렸습니다. 마지막으로 주인은 자기의 아들을 직접 보냈습니다. 그러나 농부들은 이 아들마저 죽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이야기의 결론을 제자들에게 내리게 했습니다.
"(마21:40) 그러면 포도원 주인이 올 때에 이 농부들을 어떻게 하겠느뇨"
제자들이 대답했습니다.
"(마21:41) 저희가 말하되 이 악한 자들을 진멸하고 포도원은 제때에 실과를 바칠만한 다른 농부들에게 세로 줄찌니이다."
사랑을 배반한 자들에게 주어지는 것은 멸망밖에 없으며,그나마 소작 농지마저 빼앗기고 다른 사람에게 넘어가고 말것이라는 것입니다.
이 농부들이 배척하고 돌을 던지고 살인한 것은 실제로 무엇이었습니까그것은 다름아닌 주인의 사랑에 대하여 돌멩이를 던진것입니다. 사랑의 배신자들입니다. 주인은 그들의 배반에도 불구하고 참고 또 참고 거듭 거듭 종들을 다시 보냈습니다.두번째 배반을 당하고서도 자기의 사랑을 대표하는 아들까지 보냈습니다. 그러나 끝내 그들은 주인의 사랑의 심장에다가 칼을 꽂았습니다. 사랑에 대한 배신처럼 악한 것은 세상에 없습니다.
부모님이 그토록 희생하며 우리를 사랑하셨는데 그 향기로운 사랑을 깔아 뭉게고 더럽힌 일은 없습니까
압살롬은아버지 다윗의 가장 사랑받은 아들이었지만 아버지를 반역한 결과 비참한 최후를 마치게 됩니다. 그토록 자기를 배반한 아들이지만 다윗은 아들에 대한 사랑이 여전하여그의 죽음을 놓고 울부짖습니다.
"(삼하18:33)왕의 마음이 심히 아파 문루로 올라가서 우니라 저가 올라갈 때에 말하기를 내 아들 압살롬아 내 아들 내아들 압살롬아 내가 너를 대신하여 죽었더면,압살롬 내 아들아 내 아들아 하였더라."
아들은 아버지의 사랑을 배반하였을지라도 아버지는 그 아들을 미워할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차라리 자기가 대신하여 죽었더라면하는 심정입니다.
친구의 우정과 사랑을 돌멩이로 갚은 일은 없습니까
다윗과 요나단의 사랑과 우정을 배웁시다.
"(삼하1:26) 내 형 요나단이여 내가 그대를 애통함은 그대는 내게 심히 아름다움이라 그대가 나를 사랑함이 기이하여 여인의 사랑보다 승하였도다."
요나단은 다윗을 목숨보다 사랑함으로써 이들의 우정은 성경 역사상 가장 아름다운 것이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다윗은그 요나단의 사랑과 우정을 잊지 않고 요나단 사후 그 아들 므비보셋을 항상 왕의 상에 앉게 하였습니다.
"(삼하9:7)다윗이 가로되 무서워 말라 내가 반드시 네 아비 요나단을 인하여 네게 은총을 베풀리라 내가 네 조부 사울의 밭을 다 네게 도로 주겠고 또 너는 항상 내 상에서
먹을지니라."
지성어린 아내나 남편의 사랑에 잔 못을 박아 괴롭힌 일은 없습니까
그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사랑을 배반하지는 않았습니까앞의 비유의 말씀은 이스라엘에 대한 끝없는 하나님의 사랑,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보내기까지 사랑하시는 그 사랑에 대한이스라엘의 배반을 설명하는 것입니다.호세아서는 사랑의 책입니다.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가 사랑의 끈으로 맺어져 있음을 보여주는 책입니다. 호세아는 고멜이 부정한 여인인 줄 알면서도 결혼했고, 지순한 남편의 사랑을 배반하고 음란한 가운데 빠진 부정한 아내를 또 다시 데리고 와서 사랑하려고 하였습니다.호세아는 도저히 사랑할 수 없는 여인, 사랑해서는 않되는 부정한 여인 고멜을 아내로 삼으라는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순종합니다. 결혼하여 자식을 셋씩이나 낳았지만 하나도 하나님의 축복받은 자식들이 아니었습니다. 아내 또한 자식까지 낳아 놓고 눈이 맞아 도망 나갔습니다. 남편의 뼈아픈 사랑을 배반하고 도망쳤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거듭 고멜을 데려오라고 말씀하십니다.

"(호3:1)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이스라엘 자손이 다른 신을섬기고 건포도 떡을 즐길지라도 여호와가 저희를 사랑하나니 너는 또 가서 타인에게 연애를 받아 음부된 그 여인을사랑하라 하시기로 (호3:2) 내가 은 열 다섯 개와 보리 한호멜반으로 나를 위하여 저를 사고 (호3:3) 저에게 이르기를 너는 많은 날 동안 나와 함께 지내고 행음하지 말며 다른남자를 좇지 말라 나도 네게 그리하리라 하였노라 (호3:4)이스라엘 자손들이 많은 날 동안 왕도 없고 군도 없고 제사도 없고 주상도 없고 에봇도 없고 드라빔도 없이 지내다가(호3:5) 그 후에 저희가 돌아와서 그 하나님 여호와와 그왕 다윗을 구하고 말일에는 경외하므로 여호와께로 와 그 은총으로 나아가리라."
부정하고 음란한 아내, 사랑을 헌신짝처럼 배신한 아내이지만 끝까지 사랑하라는 말씀이십니다. 결국 아내는 제자리에 돌아오게 되고 자식들도 축복의 자녀들이 됩니다.
법으로서는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여인, 법으로서는 도저히 새롭게할 수 없는 여인, 남의 사랑을 깡그리 짓밟은 배신자, 그 고멜을 결국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사랑으로 변화시키고, 인간의 배반보다 하나님의 사랑이 더 우세함을 여실히 증명해주는 하나님 사랑의 승리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호세아는 이러한 자신의 비극적인 경험에서 하나님과 백성과의 사랑의 관계를 발견하게 됩니다. 음란하고 자기를 버리고 다른 신을 향하여 도망갈 여인인 줄 알면서도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선택하셨고 결혼하셨고 사랑하셨고 또 부르셔서 다시 사랑하셨습니다. 호세아는 하나님의 이 일방적인 선택과 사랑, 그 고통과 연민, 그리고 사랑의 배반이 가져온 쓰라린 슬픔, 마침내 배반한 자를 찾아 나선 사랑의 승리의 기쁨 등을 알 수 있게 됩니다. 고멜의 죄와 같이 이스라엘의 죄는 사랑을 저버린 죄입니다. 사랑이 짓밟히고 은혜가 무시되어지고 호의가 무시를 당합니다.단순히 은혜를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을 짓밟는 일이요 거룩한 혼인의 언약을 모독하는 일이 자행됩니다. 이렇게 지극한 사랑을 베푼 자에게 배신을 당할 때 그 분노는 더욱 극심할 것입니다. 그러나 호세아서는 사랑을 배반한 죄를 꾸짖고 심판을 경고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보다,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인간의 배반보다
도 하나님의 사랑이 더 우세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랑의 복음서입니다.
사랑을 받아들이지 않으며, 또한 사랑을 배신한 고멜의 위치가 바로 인간의 모습입니다.
가롯유다가 자신을 배반하여 은 30냥에 팔것을 아시면서도 그 가롯 유다를 끝까지 사랑하시는 예수님의 사랑을 잊지맙시다.
십자가에 자신의 독생자를 죽이시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배반하지 맙시다.가롯 유다가 사랑을 배반했어도 하나님의 사랑이 승리하였습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사랑을 배반하여도 하나님은 인간을 절대로 버리지 않으시고 끝까지 사랑하십니다.
하나님만을 사랑해야 할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 사랑을 배반하고 우상 바알을 숭배하는 의식을 따라 모압 여인과 행음했을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 24,000명을 염병으로 쳐서죽게 하셨습니다. 이 시대에 하나님의 심판은 하나님의 사랑을받아들이지 않는데 있습니다. 십자가의 사랑을 거절하는데 인간의 고통과 아픔이 계속되는 것입니다. 사랑을 배반한 가정과 사회에 기쁨과 행복이 있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요일4:7)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께로 나서 하나님을 알고 (요일4:8)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요일4:9)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 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저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니라 (요일4:10)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 (요일4:11)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 (요일4:12) 어느 때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만일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고 그의 사랑이 우리 안에 온전히 이루느니라(요일4:18)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어 쫓나니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음이라 두려워하는 자는 사랑 안에서 온전히 이루지 못하였느니라
(요일4:19) 우리가 사랑함은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음이라"
세상이 우리를 배반할지라도 하나님의 사랑이 승리합니다.
세상이 여러분의 사랑을 배반할지라도 사랑이 승리합니다.
인간을 사랑하시되 그 누구도, 그 무엇으로도 끊을 수 없는, 그리고 끝까지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의 영이 여러분들에게 충만하시어 사랑의 승리자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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