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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사랑의 빛만 지십시오 (롬 13: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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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지난주에 로마서 13장 1절부터 7절까지에서 권위에 순종하라는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여러분이 정말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하나님이 주신 권위에 순종하셔야 합니다. 가정에서, 학교에서, 사회에서, 직장에서 순종하셔야 합니다. 사탄은 권위체제를 무너뜨리려고 합니다. 권위가 무너지면 혼란이 옵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누구보다도 조직의 권위에 순종할 줄 알아야 합니다. 권위가 세워지면 사탄은 발붙힐 곳이 없어지기 때문에 권위주의로 우리를 유혹합니다. 권세를 가진 사람에게 권위를 사용하라는 말보다는 권위주의를 가지라고 말합니다. 또 권위밑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그 권위주의에 반항하라고 유혹합니다. 그러면 이 세상이 혼돈가운데 빠지게 됩니다.권위를 가진 사람들은 권위를 잘 사용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주신 권위를 남용해서는 안됩니다. 권위를 가지고 돈벌이를 하거나 권력의 수단으로 사용해서도 안됩니다. 그러면 권위를 잃어버립니다. 권위밑에 있는 사람들은 비록 잘못된 권위이며 존경할 수 없는 권위라 할지라도 그 권위에 상처를 주면 안됩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우리가 이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원리를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우리는 세상을 반항함으로 변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순종함으로 변화시켜야 합니다.
그러면 사회생활이나 공적인 생활에 이런 원리를 주셨다면 개인적인 삶에는 어떤 원리를 주셨을까요 12장에서는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은사대로 살아라,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는 말씀을 주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저주하지 말고 축복하라,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라는 지침을 주셨습니다.오늘 말씀을 통해 개인적인 크리스천의 삶의 원리를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8절을 함께 보겠습니다. 피차 사랑의 빚 외에는 아무에게든지 아무 빚도 지지 말라 남을 사랑하는 자는 율법을 다 이루었느니라 우리에게 조직안에서 공동생활을 할 때 권위에 순종하라는 것입니다. 여러분들도 언젠가는 권위자가 됩니다.만일 여러분이 권위에 순종하지 않으면 언젠가 여러분이 권위자가 되었을 때 여러분 밑에 있는 사람들이 순종하지 않게 됩니다. 악순환이 이루어집니다. 이 세상을 하나님께서 원하는 세상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권위주의가 아닌 권위에 순종하고 권위를 지키라는 것입니다. 권위체제가 무너지면 모든 것이 무너집니다.
그러면 개인의 삶의 원칙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사랑의 빚만 지라는 것입니다. 사랑의 빚외에는 다른 빚을 지지 말라는 것이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입니다.
타인의 사랑으로 된 현재의 나
우리는 여기서 빚에 대한 이야기를 듣습니다. 엄밀하게 보면 우리의 인생은 하나의 부채입니다. 부모에게서 태어날때부터 우리는 갚을 수 없는 부채를 안고 태어납니다. 내가 노력해서 세상에 태어나지 않습니다. 내가 잘나서 태어난 것도 아닙니다. 원해서 태어난 것도 아닙니다. 어머니들이 아이를 잉태하면 십개월동안 많은 고생을 합니다. 그것은 부채입니다. 어머니는 해산의 고통을 겪으면서 나를 세상에 태어나도록 해 주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성장해서 스스로 자립할수 있는 성숙한 사람이 될때까지 우리는 부모님의 도움을 받지 않을 수 없습니다. 양육비, 교육비, 의료비 뿐만 아니라 돈으로 계산할 수 없는 부모의 사랑이 있습니다. 이것도 부채입니다. 내가 이곳에 있는 것이 내가 잘나서 있는 것이 아닙니다. 잘난 부모든, 못난 부모든간에 우리는 말할 수 없는 부채를 안고 자라온 것입니다. 그런데 모두 자기가 잘난줄 압니다. 자기가 잘나서 공부 잘한 줄 알고 똑똑해서 이만큼 성장한줄 알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여러분, 요즘 우리나라가 몹시 시끄럽고 어지러워서 나라에 대한 염증을 느끼고 있지만 나라가 얼마나 고마운지 생각해 보십시오. 만일 나라가 없다면 우리가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사실 내가 그렇게 잘난 것이 아닙니다. 나라가 보호해 주고 조직이 나를 잘 도와주었기 때문에 오늘 이렇게 감사예배를 드릴 수 있는 것입니다.
나라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리십시오. 조금 싫고 복잡한 것이 있지만 더 근본적인 것을 생각하십시오.우리나라를 지켜야 합니다. 우리 민족이 잘 살아야 합니다. 나라가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 오늘 우리가 이만큼 살수 있는 것을 감사하십시오. 축복입니다. 어찌 제가 혼자 이렇게 될 수 있었겠습니까 제 주변에 좋은 스승이 있었고, 좋은 이웃이 있었고, 친구들이 있었습니다. 그분들이 모두 저를 도와서 제가 여기까지 왔다고 생각합니다. 인생은 하나의 부채입니다. 내가 잘나서 여기까지 온 것이 아니라 누군가 사랑의 희생으로 여기까지 온것입니다.
거저 주신 하나님의 구원
구원에 관해서는 더 말할 것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구원 받는 일에서 내가 한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습니다.나의 선행, 나의 노력이 나의 구원에 도움을 주지 않았습니다. 이는 전적으로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자기 아들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내어 십자가에 죽게 하심으로 우리가 구원받은 것입니다. 우리가 한 것이라고는 받은것 밖에 없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받은 구원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우리에게 이 세상에서는 하나님이 만드신 권위에 순종하라. 개인적으로는 구원을 받아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라면 피차 사랑의 빚 외에는 아무 빚도 지지말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피차 사랑의 빚 외에는 아무빚도 지지말라는 말속에서 우리는 몇가지 중요한 교훈을 찾게 됩니다. 첫째, 이 말씀은 사랑을 받은 사람, 구원받은 사람에게 주시는 말씀입니다. 사랑받은 일이 없는 사람은 남을 사랑할 줄 모릅니다. 여러분이 정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감당할 수 없는 큰 구원을 받았고 그 구원이 진짜라면 우리는 다른 사람을 용서하고 사랑할 수 밖에 없습니다. 마태복음 18장 23절에서 예수님은 이런 비유를 들었습니다. 어떤 주인이 있는데 그에게 일만달란트 빚진 종이 있었습니다. 그 종을 불러서 빚을 갚으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이 종은 빚을 갚을 능력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 종이 기막힌 심정으로 참아주세요. 제가 꼭 갚겠지만 지금은 어떻게 할 방법이 없습니다.라고 말하자 주인이 종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생겨서 일만 달란트의 빚을 탕감해주었습니다. 이 빚을 탕감받은 종은 너무나 기쁘고 즐거웠습니다. 그 종이 주인의 집에서 나오다가 자기의 동관을 만났는데 이 동관은 그에게 백데나리온을 빚진 동관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종은 동관을 만나자마자 당장 빚 갚으라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이 동관은 손이 발이 되도록 빌면서 사정을 했지만 일만 달란트 빚을 탕감받은 종은 백데나리온 빚진 동관의 멱살을 잡고 감옥에 처넣었습니다. 옆에서 이것을 모두 본 다른 동관이 그 주인을 찾아가서 이 모든 사실을 말했습니다.
이때 그 주인이 듣고 화가 나서 그 종을 불러 악한종아, 네가 내게 빌기에 빚을 탕감해 주었거늘 내가 너를 불쌍히 여김같이 너도 네 동관을 불쌍히 여기는 것이 마땅하지 아니하냐라고 말하고 감옥에 집어넣었습니다.여러분, 우리는 이 비유의 말씀을 경청해야 합니다. 여러분이 사랑을 받았다면 남에게 사랑을 베풀어야 되지 않겠습니까 어떤 사람들은 태어날 때부터 좋은 부모님과 부유한 가정환경에서 자란 사람이 있습니다.그분들은 감사하셔야 합니다. 세상에 많은 사람들이 얼마나 고생하는지 아십니까 여러분이 손하나 까딱하지 않아도 되는 환경에서 살았다면 가난한 자를 생각해야 하고 우리가 머리가 좋아서 공부를 잘했다면 그렇지 못한 사람도 생각해 주어야 합니다. 특혜를 받은 사람들은 특혜를 받지 못한 사람들을 생각해 주어야 합니다.이것이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우리는 적어도 받은 것의 십분의 일의 사랑은 남에게 베풀줄 알아야 합니다.
복음에 빚진 자
두번째, 사랑이란 갚아도 갚아도 다 갚을 수 없는 빚이라는 사실입니다. 사랑의 정의는 갚을 수 없는 빚입니다.미완성의 빚입니다. 사랑은 갚으면 갚을수록 더 커지는 것입니다. 다 끝난 사랑은 없습니다. 진짜 사랑은 하면 할수록 더 빚이 많아지는 것입니다.
로마서 1장 14절에서 사도바울은 헬라인이나 야만인이나 지혜있는 자나 내가 다 빚진자이며 복음에 빚진 자라고 말했습니다.
크리스천은 빚쟁이입니다. 빚을 져보셨습니까 빚을 졌는데 갚을 수 없는 상황에 처해 보셨습니까 빚쟁이들이 집에 들어와서 눌러 앉아 있는 경험을 해본적이 있습니까 어떤 사람은 세상에 제일 비참한 것이 죄의식과 빚쟁이에게 시달림을 받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렇게 어려운 것입니다. 빚진자는 늘 죄인처럼 고개를 들지 못하고 사는 것입니다. 그것이 빚쟁이입니다. 내가 복음을 전해 주어야 할 사람이 많기 때문에 늘 빚쟁이같이 느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열심히 일합니다. 여러분, 예수믿는 사람들은 빚진 마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복음을 전하지 못한 빚진 마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로마서 8장 12절에서 14절을 보면 빚졌다는 얘기를 바울이 또 한번 합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빚진 자로되 육신에게 져서 육신대로 살 것이 아니니라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그들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우리는 육신에 빚진자가 아니며 육신의 노예가 아닙니다. 우리는 영에 빚진자입니다. 우리는 이 거룩한 삶에 빚진 자들이라는 것입니다. 갚아도 갚아도 갚아지지 않는 빚이 있습니다. 웬만한 빚들은 적게 3년, 최대한 20년
정도만 고생하면 빚을 갚을수 있습니다. 또 내가 갚지 못하면 내 아들이 갚을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내 아들대에 가서도 갚지 못하는 빚이 하나있습니다. 그것은 사랑의 빚입니다. 사랑은 하면 할수록 부족한 것을 느낍니다. 이만큼 하면 됐다라는 것이 없습니다. 그만큼 해주었으면 됐지!라고 말하는 것은 사랑이 아닙니다. 이것이 두번째야! 세번째는 국물도 없어라고 말하는 것은 두번째까지도 용서를 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용서나 사랑은 이렇습니다. 부모들도 키울때는 값없이 주지만 나이가 들면 보상을 받으려고 합니다.왜냐하면 어른들은 모두 섭섭해지기 때문입니다. 자식들에게 섭섭해 하지 않은 부모는 없습니다. 젊었을 때 주었던 사랑을 보상받고 싶어합니다. 보상받고 싶은 사랑은 사랑이 아닙니다. 주어도 주어도 부족하게 느껴지는 것이 사랑입니다.
사랑하고 나서 잊어버리는 것이 사랑입니다. 크리스천의 삶이란 한마디로 말하면 값없는 사랑을 베푸는 삶입니다. 이것이 전부입니다. 하나님의 사랑때문에 감격하고 그 사랑을 표현하지 않으면 견딜 수 없어서 눈물로 가슴앓이 하는 사람들이어야 합니다.
특별히 가난하고 병들고 갈곳없고 지친 사람들을 사랑하는 것을 하나님이 원하십니다.
예수님은 내가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을 사랑하면 그것이 무슨 사랑이냐고 우리에게 묻습니다. 사랑할 수 없는 사람까지 사랑하는 것이 사랑이라고 말씀합니다.
사랑받을 만한 가치가 없는 사람에게 시간을 내주시고 돈을 쓰시고 먹을 것을 줘보십시오. 그러면 이상한 느낌이 듭니다. 마치 하나님이 내 가슴속에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가난한 자를 도와주면 하나님이 제 옆에 있는 것 같습니다. 하나님은 항상 가난한 자들과 함께 계십니다. 사랑받을 수 없는 사람, 받을 자격이 없는 사람, 원수까지 사랑하기를 하나님은 원하십니다. 저는 가끔 인도에서 마지막 생애를 마친 마더 테레사를 생각합니다. 어떻게 그 분은 그곳에서 평생을 지낼 수 있었을까 이것이 그 분의 힘이었을까 아닙니다. 하나님의 힘입니다.제가 읽은 책중에 다니엘 신부라는 작은 책이 있는데 그 사람은 의사였습니다. 하와이 몰로카이섬에 나환자들이 모인 원주민들을 전도하기위해 갔지만 그들은 다니엘 신부를 거부합니다. 당신은 건강한 사람이고 우리는 문둥병환자인데 어떻게 우리를 당신이 알수 있습니까라는 것이 이유입니다. 그때 다니엘은 결심을 하고 문둥병의 균을 자기몸에 집어넣습니다. 그리고 문둥병이 발생되기를 기다립니다. 그러던 어느날 자기 몸에 문둥병증상이 나타났습니다. 그는 너무나 기뻐하며 환자들에게 찾아가서 나도 당신과 같은 환자요라고 말합니다. 그때 그들이 마음의 문을 열고 그를 받아들여 주었고 그 섬 전체가 복음화가 되었다는 이야기였습니다. 다니엘 신부는 그 문둥병환자들을 사랑했기 때문에 스스로 문둥병환자가 되었습니다. 예수님이 오늘 우리에게 말하는 사랑이 이것입니다.
세번째 1절에서 또 하나의 재미있는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남을 사랑하는 자는 율법을 다 이루었다는 말입니다.
사랑은 율법을 완성합니다
사랑의 행위는 미완성이지만 그 미완성의 과정을 통하여 율법은 완성된다는 것입니다. 아주 놀라운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로마서 7장으로부터 되돌아보아야 합니다.
7장에서 사도바울은 기막힌 고민을 합니다. 예수믿고 난 다음에 그가 하는 고민은 하나님의 율법은 선하고 의롭고 완전한데 육의 몸을 가지고 있는 인간은 완전한 율법을 지킬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에게도 예수믿고 나서 이와 같은 갈등과 고민은 계속 있습니다. 왜냐하면 마음은 원하는데 내가 원하는대로 살 수가 없습니다. 질투를 하지 말아야 하는데 자꾸 합니다. 분노를 품지 말아야 하는데 분노가 품어집니다. 사랑해야 되는데 자꾸 미움이 생깁니다. 로마서 7장 21-24절에서 말합니다.
그러므로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 내 속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내 지체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 아래로 나를 사로잡아 오는 것을 보는도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 내랴
예수믿는다고 모든 고민이 다 사라지기를 기대하지 마십시오. 죄를 짓고 싶지 않은데 죄를 계속 짓고 있는 것에 대한 갈등이 있습니다. 이것이 인간입니다. 누구든지 자신의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사랑하지만 육신은 자꾸만 죄의 법에 끌려가고 있는 것을 경험을 합니다.
그렇다면 예수믿는 것은 계속되는 갈등의 연속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사도바울은 이 문제에 대해서 로마서 8장 1절에서부터 위대하고 명쾌한 해답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비록 갈등을 가지고 살 수 밖에 없는 사람이지만 생명의 성령의 법이 임하시면 이 육신의 욕망이 내 몸에서 빠져나가기 시작한다는 것입니다. 오늘 저는 여러분이 성령충만을 받기를 원합니다. 인간의 육은 율법을 지킬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영은 율법을 섬길 수가 있습니다. 여러분이 갈등을 느낄때마다 여러분 혼자 헤어나려고 애쓰지 마십시오. 여러분의 힘으로나 경험으로나 지식으로 되지 않습니다. 종교로도 안됩니다.
방법은 단 한가지입니다. 성령을 사모하십시오. 나의 실수와 부족함과 한계를 고백하면서 하나님께 항복하십시오. 내 힘으로 해보았더니 안됩니다. 저를 도와 주십시오.라고 말할때 성령님이 내 몸에 들어오셔서 육을 몰아내기 시작합니다. 육의 생각을 깨버리기 시작합니다. 그때 우리에게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법을 섬길 수 있는 영적 능력을 부어주십니다.
죄를 이기는 사랑의 힘
성령님이 우리안에 들어오셔서 내 육신의 문제를 해결해주고 나면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어지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그것으로 끝나면 우리는 육신으로 다시 돌아가게 됩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부어질 때 그 사랑을 잡아야 합니다. 그리고 사랑으로 행동하고 살기 시작하면 어렵고 힘들고 고통스러워도 성령충만한 삶을 살게 됩니다.
예수믿다가 회의가 생기고 갈등이 생기는 사람은 나가서 전도해 보십시오. 그러면 순식간에 사라집니다. 왜냐하면 전도하면서 사실은 나도 고민이 많아라고 말하면서 전도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대신 하나님은 살아계십니다.라고 외치게 됩니다. 그럴때 성령이 임하십니다. 그래서 다시 육신의 삶으로 돌아갈 기회를 주지 않습니다.
성령이 임하면 사랑의 행동을 하십시오. 구제하고 도와주고 전도하십시오. 이 일을 계속하면 뒤로 물러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성령받고 그것으로 끝나면 다시 원래 자리로 돌아갑니다. 성령받고 나서 여러분이 해야 할일은 빚을 갚는 것입니다. 몸으로 봉사하십시오. 사랑의 빚을 갚으십시오. 그럴때 우리의 믿음이 자라납니다. 이 일을 할때는 고통스럽고 손해보는것 같지만 언젠가 열매를 맺게 될줄 믿습니다. 9절을 보십시오.간음하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 도적질하지 말라 탐내지 말라 한 것과 그 외에 다른 계명이 있을지라도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그 말씀 가운데 다 들었느니라 왜 사랑은 율법의 완성인지 9절에 그 해답이 들어있습니다. 사람들이 왜 간음을 할까요 그 상대를 사랑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상대를 쾌락의 대상과 이용물의 대상으로만 생각하기때문에 간음하는 것입니다. 왜 살인을 합니까 사랑하는 사람을 살인하지 않습니다. 희생합니다. 도적질하는 이유도 사랑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무엇이라도 가져다 주려고 합니다. 왜 탐욕을 가집니까 사랑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랑하십시오. 그러면 간음도 살인도 도적질도 하지 않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의 물건을 어찌 도적질 할 수 있습니까 그러나 인간은 단 한번도 간음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혹 간음을 하지 않더라도 음욕을 품을 수 있습니다. 그것을 막을 길이 없습니다. 도적질을 하지 않아도 탐심을 막을 길이 없습니다. 우리는 율법을 이룰 수 없습니다. 그러나 길이 있습니다. 사랑하십시오. 그래서 사랑은 율법의 완성입니다. 10절을 보십시오.사랑은 이웃에게 악을 행치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니라
할렐루야!
성령받으시기를 바랍니다. 성령충만하십시오. 성령이 임하면 사랑이 부어지기 시작합니다. 그때 그것을 놓치지 마십시오. 시간을 놓치면 모두 사라집니다. 내 마음에 사랑의 충동이 생겼을 때 결심하십시오.결단하십시오. 사랑의 행동을 시작하십시오. 그때 여러분의 믿음은 뒤돌아서지 않고 자라나기 시작할것입니다.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연약한 우리들에게
사랑을 부어주신 것을
감사드립니다
이제 실천하게 하옵소서
작은 일부터 행하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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