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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선으로 악을 이기라 (롬 12:1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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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움의 지뢰 제거하십시오
사람의 감정중에서 해결하기 어려운 감정이 있다면 미움일 것입니다. 사람이
미움의 감정에 한번 사로잡히면 빠져나오기가 어렵습니다.
사랑이 논리를 초월하듯이 미움도 논리를 초월합니다. 왜 사랑하는지 설명되지 않듯이
미워하는 것도 설명되지 않습니다. 그저 미울 수 있습니다.
사랑은 모든 것을 세워주지만 미움은 모든 것을 파괴합니다. 여자가 한을 품으면
오월에도 서리가 내린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만큼 미움이란 파괴하는 힘이 있습니다.
미움을 가지고 있으면 제일 먼저 파괴되는 것은 자신입니다. 미움은 마치 날카로운 톱과 같습니다. 미워하고 있는 동안 우리의 인격이 파괴되고 얼굴의 근육이 굳어집니다. 미움의 감정을 가지고 있는 사람의 얼굴은 살벌합니다. 전투적이고 방어적입니다.
또한 자기만 파괴되는 것이 아니라 주변에 있는 사람들까지도 불행하게 만들고 피해를 줍니다. 미움을 오래 간직해서 대대로 물려주기도 합니다. 그것이 한입니다.
우리민족은 한이 많은 민족입니다. 만일 피해를 준 상대에게 따지거나 복수할 능력이 있다면 미움의 감정이 해결되지만 복수할 능력도, 보복할 능력도 없을 때는 혼자 밤에 울어야 합니다. 그래서 한이 쌓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몇년동안 분노를 가질 수 있습니다. 또 평생을 미움과 분노로 보내는 분도 있습니다. 그러다가 너무나 화가 나서 이대로 죽을 수 없는데 죽어야만 하기 때문에 눈감고 죽지 못하고 눈뜨고 죽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우리들에게 어떤 종류의 미움을 가졌든지, 어떤 분노를 가졌든지 분노가 다음 세대로 넘어가지 않게 오늘로 끝을 내라고 말합니다.
이 분노와 미움은 마치 지뢰밭과 같습니다. 언제 터질지 모릅니다. 누가 밟기만 하면 터집니다. 그래서 우리나라 사람들은 점잖게 있다가도 그 분노를 터뜨리면 땅바닥치고 통곡하며 웁니다. 싸워도 머리카락을 잡고 싸웁니다. 분노와 미움을 참고 참다가 어느날 터지면 자기가 감당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여러분의 마음에 미움이라는 지뢰밭을 그냥 두지 마십시오. 지뢰를 제거하십시오. 이것은 마치 강대국끼리 핵협상을 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제는 핵을 폐기하자하는 것처럼 지금 우리 마음속에 미움과 분노를, 복수심을 폐기하지 않으면 엄청난 화와 저주가 우리들의 사회와 개인에게 미치게 될 것입니다.
어떻게 이 미움을 극복할 수 있을까요 어떻게 하면 나를 핍박하고 저주하고, 괴롭히는 사람을 사랑하고 용서할 수 있을까요 사실 내 부모를 죽인자를 용서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나의 가족을 죽인자를 용서할 수 없을 것입니다. 만일 누군가 사랑하는 딸을 납치해서 사창가에 팔아 넘겼다면 그 사람을 용서할 수 있겠습니까 제 주변에 그런 사람이 한사람 있습니다. 자기 딸이 납치당해서 사창가에 팔렸습니다. 찾을 수가 없습니다. 그 어머니는 언제 딸이 돌아올까해서 발 뻗고 잘 수가 없습니다. 자기 방에서 자면서도 웅크리고 잡니다. 이렇게 가정을 파괴한 사람을 용서할 수 있겠습니까 나의 직업을 빼앗아 가고 나의 결혼을 파괴시키고 나의 인생을 망가지게 한 사람을 용서할 수 있습니까 그래도 성경은 여전히 용서하라 너를 핍박하는 자를 저주하지 말고 용서하라라고 말합니다.
미움과 분노와 복수심은 광범위하게 온 인류에 오염되어 있습니다. 마귀가 준 전략입니다. 개인적인 미움도 있고 가족단위, 민족단위의 미움도 있습니다. 이 민족적인 미움은 개인의 윤리와 상관이 없습니다. 그 당사자가 우리입니다. 우리는 남과 북이 분단된 씻을 수 없는 상처가 있습니다. 그 상처는 우리에게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같은 상처를 북한도 함께 가지고 있습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틴, 영국과 아일랜드 동구에 일어나고 있는 민족전쟁들, 도처에서 우리는 이런 예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주님은 우리들에게 네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라 그리고 너를 핍박하는 사람을 저주하지 말고 축복하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원수까지 사랑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악으로 악을 갚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는 말씀이 오늘 우리가 들어야 할 말씀의 주제입니다.
오늘 말씀은 우리에게 더 강력하게 말씀하십니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우고 목마르거든 마시우게 하라 헐벗거든 입혀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왜 하나님은 우리가 감당할 수 없는 이런 강렬한 메시지를 우리에게 주실까요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용서받을 수 없는 우리를 용서하셨고 사랑받을 만한 조건이 없는 나를 무조건 사랑하셨고 저주받은 우리의 인생을 하나님은 축복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도 사랑하고 용서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 믿음의 선배들은 이런 하나님의 사랑앞에서 그들에게 당한 고난을 기꺼이 겪었습니다.
사랑은 댓가를 지불하는 것
사랑한다는 말은 무엇을 뜻하는 말일까요 용서한다는 말은 무엇을 말할까요 남을 축복한다는 말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댓가를 치룬다는 말입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사랑한다는 말은 십자가에서 댓가를 치루었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한다는 말은 자기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내어 죽게 내어주셨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사랑한다, 용서한다, 남을 축복한다는 것은 기분좋은 감정이 아닌 것입니다.
굉장히 어렵고 힘들고 자기 살을 뜯어내는 것 같은 그런 아픔을 수반할때 사랑은 가능한 것입니다. 히브리서
11장 36절을 보면 믿음의 사람들이 겪었던 고난에 대해서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또 어떤이들은 희롱과 채찍질뿐 아니라 결박과 옥에 갇히는 시험도 받았으며 돌로 치는 것과 톱으로 켜는 것과 시험과 칼에 죽임을 당하고 양과 염소의 가죽을 입고 유리하여 궁핍과 환난과 학대를 받았으니 저희가 광야와 산중과 암혈과 토굴에 유리하였느니라
여러분, 하나님을 진정으로 섬기고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는 이런 고난의 흔적들이, 사랑의 흔적들이 있었습니다. 오늘 우리의 문제는 고난없이 사랑하려고 하는 것에 있습니다. 댓가를 치루지 않고 용서를 하려는 것에 우리의 한계와 갈등이 있습니다.
우리의 믿음의 선배인 스데반은 결코 나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돌에 맞을 만한 이유가 있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예수 그리스도를 말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의 돌에 맞아 죽었습니다.
사도바울은 자기의 고난에 대해 설명하기를 부끄러워 하지 않았습니다. 고린도후서 1장 8-9절을 보십시오.
형제들아 우리가 아시아에서 당한 환난을 너희가 알지 못하기를 원치 아니하노니 힘에 지나도록 심한 고생을 받아 살 소망가지 끊어지고 우리마음에 사형 선고를 받은 줄 알았으니 이는 우리로 자기를 의뢰하지 말고 오직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만 의뢰하게 하심이라 사도바울이 얼마나 심한 고통을 받았으면 인간적으로 소망이 끊어지고 사형선고를 받은 것 같았겠습니까
고린도 후서 4장 8절에서 9절을 보면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핍박을 받아도 버린 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
이 말씀을 보면 사도바울이 우겨쌈을 당하였고 답답한 일을 당하였고 핍박을 당하고 꺼꾸러 뜨림을 당하였다는 것을 알수 있습니다. 사도바울은 이렇게 당할 사람이 아닙니다. 그는 가말리엘의 문하의 사람이었고 히브리인중에 히브리인이었으며 유대인중에 유대인이었습니다. 그가 얼마나 위대한 학자인지 아십니까 신약성경중에 13권의 성경을 쓸만큼 실력있는 사람입니다. 얼마든지 자신의 삶을 누리면서 잘 살 수 있었던 사람이지만 그는 예수님때문에 모든것을 버린 사람입니다. 고린도 후서 11장 23절을 보십시오.
저희가 그리스도의 일군이냐 정신없는 말을 하거니와 나도 더욱 그러하도다 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번 죽을 뻔하였으니
여러분, 예수님때문에 이런 고난을 경험해본적이 있습니까 이런 고난은 고사하고 오해만 받아도 펄쩍 뛰지 않습니까
계속해서 사도바울은 고린도후서 11장 24절에서 말합니다.
유대인들에게 사십에 하나 감한 매를 다섯번 맞았으며 세번 태장으로 맞고 한번 돌로 맞고 세번 파선하는데 일주야를 깊음에서 지냈으며 여러번 여행에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형제중의 위험을 당하고 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 고난을 겪어본 자만이 사랑을 할 수 있습니다. 정말 사랑한다고 생각하십니까 손해보고, 자존심상하고,감옥에 들어가보고, 매맞아보지 않은 사람은 사랑한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우리의 사랑은 감정적인 것입니다. 사랑한다고 말하지만 그것에는 아무 능력도 열매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가짜이기 때문입니다. 사도바울은 자기가 겪은 고통은 교회를 위하여 흘리는 나의 눈물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라고 말합니다. 자기가 전도한 그 영혼을 위해 눈물을 흘리고, 교회를 세워놓고 그 교회를 생각하며 밤잠을 자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교회입니다. 여러분, 교회때문에 밤잠을 자지 못하고 교회 때문에 눈물 흘려본 적이 있습니까
너무나 사랑하기 때문에 죽고 싶은 것입니다. 다 주고 싶은 정도가 아니라 죽고 싶은 것이 사랑입니다.
나를 죽이려는 자 위해 기도하십시오
스데반이나 바울과 같은 모든 믿음의 선배들의 고난의 절정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였습니다. 그들은 한번도 변명하지 않고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공통점은 자기 잘못도 실수도 아닌 단지 예수를 사랑한다는 이유때문에 굶고, 배고프고, 억울한 일을 당하고, 매맞고, 기절하고, 쫓겨나면서도 원망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바울과 실라는 감옥에서 많은 매를 맞고나서도 찬송하였습니다. 나는 여러분에게 이런 축복이 있기를 바랍니다. 자기를 죽이려는 사람을 위해 기도해 주는 사람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의 믿음과 헌신이 여기까지 이르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너무나 시시하고 별것도 아닌 일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저희 가족이 웩(WEC)이라는 선교단체에서 훈련을 받은 적이 있는데 그 선교단체의 창설자인 시티스터드는 당신을 위해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돌아가신 것이 사실이라면 당신의 헌신은 헌신이 아니다.라고 말했습니다. 헌신이라고 말하기에는 너무나 부끄럽다는 것입니다. 사랑하기 때문에 헌신은 너무나 당연한 것입니다. 내 몸을 몇번을 죽여서라도 그를 사랑하고 싶은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얼마나 많은 고난을 당하였습니까 바울은 로마서 9장에서 하나님 아버지 성령이 증거하고 내 양심이 증거합니다. 내게 간절한 소원이 있는데 나를 핍박하는 내 동족 유대인들이 구원받기를 원합니다. 그들이 구원받는다면 나는 저주를 받아도 좋겠습니다. 생명책에서 내 이름을 제하여 주어도 좋겠습니다.라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행여 다른 사람이 예수 믿고 천국갈까봐 전도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오늘 우리에게 하나님은 너를 핍박하는 자를 축복하라 너를 힘들게 하고 너를 괴롭히는 자를 축복하라.라고 말씀하십니다.
14절을 보시겠습니다.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축복하라 축복하고 저주하지 말라 여러분을 괴롭히는 사람을 위해 기도하시고 축복하시고 용서하십시오. 15절을 읽겠습니다.즐거워하는 자들로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로 함께 울라 방관자가 되지 말라는 말입니다. 비판자가 되지 말고 동참하는 자가 되십시오. 상대방이 기뻐하면 함께 기뻐하고 울면 함께 울고 병든 사람과 함께 고난을 나누는 자가 되라는 말입니다. 16절을 읽어주십시오.
서로 마음을 같이 하며 높은데 마음을 두지 말고 도리어 낮은 데 처하며 스스로 지혜있는체 말라 하나됨의 비밀은 놀라운 것입니다. 요한복음 17장에서 예수님의 기도의 절정은 아버지와 나와 하나인 것처럼 나와 저들이 하나되게 하시고 저들이 다른 사람과 하나되게 해 주옵소서라는 것이었습니다.
어떻게 하나될 수 있을까요 겸손하면 하나가 됩니다. 자기것을 주장하면 하나가 될 수 없습니다. 자기 주장을 포기하십시오. 자기 생각을 포기하십시오. 그저 순종하기로 결정하십시오. 여기서 무슨일을 하라고 하면 그냥 순종하십시오.
그 일을 열심히 하고 있는데 또 그일은 그만 하고 이것을 하세요라고 하면 또 그것을 열심히 하십시오. 하루에 다섯번 바꾸어도 날 뭘로 알고 이래라는 소리하지 마십시오. 그냥 하십시오. 그것이 축복입니다. 말도 안되는 소리를 해도 하십시오. 왜냐하면 말도 안되는 소리라는 것을 시키는 사람도 아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가끔 경배와찬양의 형제,자매를 보고 많은 은혜를 받습니다. 추운날 운동장에서 비가 오는데 일미터간격으로 서 있으라고 합니다. 그래도 그 말에순종해서 고독하고 외롭지만 서 있습니다. 저는 그 모습을 보고 하나님이 얼마나 예뻐할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여러분, 하나되십시오. 하나되기 위해서는 낮아져야 되고 지혜가 있어야 됩니다. 17절을 읽어주십시오.아무에게도 악으로 악을 갚지말고 모든 사람앞에서 선한일을 도모하라
하나님은 악인에게도, 선한 사람에게도 햇빛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악한 사람이라고 해서 햇빛과 비를 안 주시지 않으십니다. 오늘날 기독교가 잃어버린 것은 사랑입니다. 건물도 있고 돈도 있고 똑똑한 사람도 있지우리가 잃은 것은 사랑입니다. 원수까지도 사랑하라는 것이 주님의 명령입니다.
18절을 읽어주십시오.
할 수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평화하라
원수맺지 말고 모두 친구를 만들고 화해자가 되라 이런 부탁을 하나님은 우리에게 성경의 여러곳에서 말씀하고 계십니다.
19절을 읽어주십시오.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
악역은 하나님께 맡기십시오
오늘 여기에 우리에게 놀라운 소식이 있습니다. 그것은 원수가 생겼을때 우리가 직접 원수를 갚지 말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원수는 하나님이 갚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세상에서 제일 피곤한 일이 원수갚는 일입니다. 원수를 갚으려면 집에서부터 연습을 해야 합니다. 난 착해서 모질어야 돼.하며 얼마나 자신을 설득해야 하는지 모릅니다. 그렇게 마음을 먹는 순간부터 눈은 살기등등해집니다. 공격적이 됩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이 내게 다섯개를 잘못했다고 합시다. 참지 못한 내가 복수를 할때는 다섯개만 하는 것이 아니라 일곱개를 하게 되고 상대적으로 그 상대는 더 많이 나에게 복수를 하게 됩니다. 복수는 끝이 없는 것입니다. 갈수록 커지고 광범위 해집니다. 결국 모두 죽고 마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복수는 내가 하겠다라고 하십니다. 혹시 여러분옆에 미운사람이 있으면 하나님께 맡기십시오. 그리고 여러분은 사랑하십시오. 그 사람을 위해서 기도해 주십시오. 오리를 가자고 하면 십리를 가주고 오른쪽 뺨을 치면 왼뺨을 내주십시오. 속옷을 달라고 하면 겉옷까지 주십시오. 예수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진노는 하나님이 하시는 것입니다.
시편 23편 5절에 제가 좋아하는 말씀이 있습니다. 원수의 목전에서 상을 베푸시고입니다. 하나님께서 원수를 망하게 하는 방법중 하나는 나를 높이는 것입니다. 전에는 같은 수준이었다가 갑자기 높아지면 원수들은 분하고 억울해서 어쩔줄을 몰라합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 모두를 높여주실 줄 믿습니다. 내게 상주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시편 3편 7절을 보면 재미있는 말이 나옵니다.
여호와여 일어나소서 나의 하나님이여 나를 구원하소서 주께서 나의 모든 원수의 뺨을 치시며 악인의 이를 꺾으셨나이다
하나님이 뺨을 때리고 이를 뽑아 버린답니다. 만일 내가 때리려고 하거나 이를 뽑으려면 얼마나 힘들겠습니가 그러나 하나님이 하시면 간단합니다.
시편 37편 1절-3절을 보면 행악자를 인하여 불평하지 말며 불의를 행하는 자를 투기하지 말지어다 저희는 풀과 같이 속히 베임을 볼 것이며 푸른 채소같이 쇠잔할 것임이로다 여호와를 의뢰하여 선을 행하라 땅에 거하여 그의 성실로 식물을 삼을 지어다
악한자 때문에 손해보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여러분이 심판하다보면 여러분이 하나님되기가 쉽습니다.여러분이 욕을 해야 하고 채찍을 들어야 합니다. 이런 모든 일들이 다 고통스러운 일들입니다. 하나님이 여러분을 그렇게 하게 하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단지 사랑하라고만 하는 것입니다. 너는 좋은 말을 하라.
악역을 맡지 말라는 것입니다. 시편 37편 7-8편을 보십시오.
여호와 앞에 잠잠히 참아 기다리라 자기 길이 형통하며 악한 꾀를 이루는 자를 인하여 불평하여 말지어다 분을 그치고 노를 버리라 불평하여 말라 행악에 치우칠 뿐이니라
얼마나 답답합니까 바보같고 무능한 것 같고 무식한 것 같아서 견디기 힘듭니다.
여러분, 우리가 언제 예수님을 만날 수 있는지 아십니까 용서할 때 하나님을 느낄 수 있습니다. 내가 누군가를 용서할 수 없었지만 그래! 사랑하고 축복하자하고 포기를 하면 그 순간에 하늘에서 기쁨이 옵니다. 왜냐하면 그때 하나님이 나를 만져주시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낮은 자리에 가면 예수님을 만날 수 있지만 높은 자리에 가면 보이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고난을 겪으면 주님이 거기에 계십니다. 억울한 일 당할 때 거기에 계십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억울한 일을 당하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셨기 때문에 여러분이 십자가를 지면 예수님이 보입니다. 이익을 얻으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박수를 받고 칭찬을 받고 팡파레를 울리며 화려하게 등장하면 예수님은 온데간데 없어집니다. 온누리교회는 예수님이 없어질 확률이 많은 교회입니다. 왜냐하면 가진것이 많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악을 행하는 자는 끊어질 것이니 염려하지 말라고 합니다. 잠시후에 네가 악인을 살필지라도 눈을 씻고 보아도 악인은 사라질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20-21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우라 그리함으로 네가 숯불을 그 머리에 쌓아 놓으리라 악에게 지지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
우리의 갈길은 이것입니다.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선으로 악을 이기십시오.
기도합시다
우리는 연약한 존재입니다.
사랑할 능력이 없습니다.
용서할 능력도 없습니다.
우리가 익숙한 것은 분노입니다.
우리가 잘할수 있는 것은
미움입니다.
하나님 도와주십시오.
용서하기를 원합니다.
사랑하기를 원합니다.
축복하기를 원합니다.
이시간에
성령을 부어주셔서
우리가 그렇게 할수 있도록
도와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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