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그리스도인의 긍지 (딤전 01:1-2)

첨부 1


바울 사도는 로마서에서 빌레몬서에 이르는 13권의 신약성경을 집필했다. 이 중에서 디모데전, 후, 디도서를 목회서신이라고 부른다. 이렇게 부르는 까닭은 이 서신들이 개인적인 서신으로서 교회의 조직과 감독, 이단에 대한 경계, 교인들의 윤리적인 권면 등 구체적인 목회지침을 시달하고 있기 때문이다.
바울은 아직도 나이가 어린데다 성격이 소심한 디모데가 에베소 교회를 목회하는데 여러 가지 어려움에 당면하고 있는 현실을 직시하면서 이 글을 쓰고 있다. 제일 먼저 바울은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지녀야 할 영적인 긍지를 말씀하고 있다. 사람은 "내가 누구인가"라는 사실을 바로 알면 그렇게 처신할 수있기 때문이다. 바울은 자신에 대한 대단한 긍지를 가지고 자신을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라고 말한다.
"사도"는 파견된 자라는 의미를 지니는데 희랍어 원어로는 아포스틀로스로서 사절 혹은 대사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이는 한 국가의 국왕을 대신해서 파견된 자를 뜻한다. 바울은 자신을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파견을 받은 자"라고 생각했다. 이 말 속에 오늘의 크리스천들이 가져야 할 신앙인으로서의 긍지가 있다.
첫째, 이것은 하나님의 나라로부터 파견을 받았다는 사실을 나타낸다.
"대사"의 임무는, 파견된 나라와 자국과의 긴밀한 연락관계를 유지해야 한다. 즉 연결의 관계를 원활히 유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첫번째 임무이다. 세상 속에 파견되었지만, 세상 속의 하나님의 나라를 예수님은 가루 서말 속의 한 줌 누룩으로 표현했다. 그런데 크리스천들은 단순히 세상에 파견되어 연결의 역할을 하는 데에 머물 수는 없다. 하나님의 나라의 영역을 넓혀가야 한다. 세상을 전면적으로 부인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우리가 발판을 두어야 할 곳이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세상을 그대로 수용할 수는 없다. 하나님의 뜻의 실현을 사명으로 받았기 때문이다.
둘째, 명령을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받는다는 사실을 나타낸다.
그리스도의 대사는 철저하게 그 명령을 그리스도로부터 받는다. 삶의 모든 원칙은 주께로부터 온다. 초대교회 사도들의 고백을 보자.
베드로와 요한은 "하나님 앞에서 너희 말을 듣는 것이 하나님 말씀을 듣는 것보다 옳은가 판단하라"(행 4:19)고 우리들에게 말하여 준다.
베드로와 사도들은 "사람보다 하나님을 순종하는 것이 마땅하니라"(행 5:29)고 말한다. 디모데후서 2장 3-4절에서 바울은 "네가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군사로 나와 함께 고난을 받을지니 군사로 다니는 자는 자기 생활에 얽매이는 자가 하나도 없나니 이는 군사로 무장한 자를 기쁘시게 하려 함이라"하고 힘주어 디모데와 우리들에게 말한다.
우리는 누구의 사도인가 혹은 군사인가 또한 누구로부터 명령을 받느냐가 중요한 문제이다.
셋째, 파견받은 나라의 위신과 체면을 우리가 지켜야 한다는 사실을 나타낸다.
대사가 보내신 자의 위신과 체면을 지켜야 한다는 것은 당연한 명제이다. 보내진 개인의 자격과 인품으로 간 것이 아니다. 대사는 자기가 서야 할 자리, 처신해야 할 방법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사람답게 처신해야 한다. 예수님은 우리들을 세상의 빛과 소금 그리고 산 위의 동네라고 말했다. 그 의미는 우리가 세상 속에 있지만 결코 세상과 동화될 수 없다는 것이다.
에베소서 5장 9절에서는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다라고 말한다. 마태복음 5장 16절은 "이 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저희로 너의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고 우리들에게 알려 준다.
그리스도의 사람은 높은 긍지를 가지고 사는 사람들이다. 이것은 교만하게 산다는 것과는 다르다. 이러한 예의 대표적인 사람으로 요셉과 다니엘이 있다. 요셉은 비록 신분은 제상적인 노예요, 가정총무였으나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신실하게 살았다. 안방마님의 생활 가치관 정도로 살지는 않았다.
다니엘은 이방나라(우상 숭배의 나라)에 포로로 잡혀간 사람 중에 한 사람이었으나, 생활방식은 달리했다. 그는 뜻을 정하여, 자기를 더럽히지 않았다. 이방인들이 먹는대로 먹지 않았고, 이방인들처럼 우상숭배하지 않았고, 이방인들처럼 미신에 사로잡혀 살려고 하지 않았다. 그는 때를 정하여 또한 정기적으로 하나님께 무릎 꿇어 기도했다.
이러한 신앙의 선조들의 삶과 대비하여 우리들의 삶은 어떠한가 이 시간 조용히 묵상하고 기도하면서 반성하여 보자.
넷째, 바울은 사도로서 언제나 하나님을 높이는 삶을 살았다.
그는 하나님을 "우리 구주"라고 표현했다. 신명기 32장 15절에서는 "여수룬이 자기를 지으신 하나님을 버리며, 자기를 구원하신 반석을 경홀히 여겼다"고 우리에게 전하여 준다.
시편 24편 5절은 "선 자가 구원의 하나님으로부터 의를 얻는다"고 전한다.
누가복음 1장 46절-47절의 마리아 찬가에서 마리아는 "내 영혼이 주를 찬양하며 내 마음이 하나님 내 구주를 기쁘게 한다"고 노래하고 있다.
나를 구원하신 하나님 !
나를 하나님의 자녀로 인정하시고 세상에 보내신 하나님 !
그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자.
바울은 "나를 나되게 하신 그리스도" "나를 나되게 하신 하나님"이라고 하였고 또 빌립보서 4장 13절에서는 "내게 능력주시는 자"라고 자기 믿음의 대상이 되신 하나님을 부른다.
그러므로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히 되게 하려 하나니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니라"(빌 1:20-21).
갈라디아서 2장 20절에서 사도 바울은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고 하나님을 찬양하고 있다.
다섯째, 바울은 사도로서 그리스도 예수께 소망을 두고 살았다.
우리의 소망이신 그리스도를 고백하는 신앙인이 되기를 간절히 축원한다.
골로새서 1장 27절에서 바울은 "너희 안에 계신 그리스도시니 영광의 소망이니라"고 말하고 있다.
폴리캅(에베소 교회의 감독)은 "우리들의 소망이시고, 우리들의 의를 보증하시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참고 견디자"고 또한 말한다.

1.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승리이시다.
사탄적인 죄와 유혹이 많은 세상에서 예수 그리스도께 소망을 둔다는 것은 그가 승리한 것처럼 우리도 승리하며 살아가야 한다는 뜻이 있다.
"너희가 세상에서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요 16:33)라고 요한복음의 기자는 우리들에게 전해 주고 있다. 사탄은 끊임없이 우리를 유혹하며 공격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 그리스도께 소망을 두는 자는 결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는다.

2.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응답이시다.
소망을 하나님께 두고 사는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소망으로 기도하는 사람이다. 기도한다는 것은 소망을 가졌다는 증거이다. 소망이 없는 사람은 기도를 중단한 사람이다. 그는 믿음을 포기한 사람이다.
바울은 그 어떠한 상황에 처해도 기도하기를 게을리하지 않았다. 사도행전 26장에서 바울은 로마행 배 안에서 풍랑을 만나 죽음의 위협을 당했지만 그는 기도하는 중에 주님을 만나고 그 배 속에 기진해 있던 276명의 죄수들에게 삶의 소망을 주었다.
사도행전 16장에 바울은 빌립보 감옥에서 하나님께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미했던 그 밤에 하늘문이 열리고, 환경의 문이 열리고, 전도의 문이 열렸던 경험을 하였다. 우리의 소망이신 예수,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시는 예수를 찬양하자.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시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을 인하여 영광을 얻으시게 하려 함이라.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시행하리라"(요 14:13-14)

3.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영원한 유업이다.
"찬송하리로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이 그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의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기업을 잇게 하시나니 곧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간직하실 것이라"(벧전 1:3-4).
예수 그리스도의 사람들은 현실에 의하여 좌우되지 않는다. 풍족한 삶 속에서는 겸손히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아가고, 하나님의 은혜를 찬양하며, 삶을 연속하여 나가자. 어려운 조건 하에서는 부단히 기도하면서, 우리의 인격을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성숙시키는 데 그 목적을 두고 살아가자.
오늘의 모든 현실과 충성은 영원한 유업으로 연결됨을 믿자.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내게 주리라.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예할지어다"(마 25:21).
오늘의 삶의 의미는 본국으로 돌아가는 날을 위한 충성에 있다. 대사는 반드시 본국으로 돌아간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우리는 세상에 보냄을 받은 그리스도의 대사이다.
첫번째로, 그리스도의 대사는 하나님으로부터 파견받은 자이다.
두번째로, 그리스도의 대사는 명령을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받는 자이다.
세번째로, 그리스도의 대사는 보내신 분의 위신과 체면을 지켜야 한다.
네번째로, 그리스도의 대사는 보내신 분을 높이며 사는 자이다.
다섯번째로, 그리스도의 대사는 그리스도께 소망을 두고 사는 자이다.
하나님께로부터 받을 영원한 유업을 소망하는 나와 성도 여러분이 그리스도 안에서의 승리를 응답으로 받을 수 있기를 간절히 축원한다. 그리스도인은 이러한 높은 긍지와 자부심으로 살아야 한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