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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그때 그 무리들이 (마 21: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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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주님의 공생애 마지막 한 주간은 예루살렘 입성과 더불어 시작되었습니다. 그날 예수님이 입성하자 온 성이 소동하였습니다. 당시 유월절을 기해 전국에서 모여든 이들이 적어도 250만 명은 되었을 것으로 추측해 본다면(William Barclay) 엄청난 환영식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무리의 대부분은 자기들의 겉옷을 벗어 길에 깔았고 또 어떤 이들은 나뭇잎을 베어 길에 펴기도 하였습니다. 그리고는 우리 주님의 행로를 앞뒤로 감싼 채 ‘호산나’를 외쳤습니다. 짧은 3년의 생활 동안 그분이 나타내신 기적들 그리고 그 심오한 가르침, 그분이 바로 메시아임에 틀림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호산나! 지금, 구하소서!’. 마침내 정치적, 사회적 그리고 종교적 메시아를 기다리던 유대인의 오랜 기대가 이루어 질 것 같은 순간이었습니다. 그러나 일 주일이 채 못되어 그들의 외침은 변하고 맙니다.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아라!’ 이렇게 외치던 이들은 바로 그때 그 무리들이었습니다.
과연 그들은 어떤 사람들이었기에 그리고 무슨 이유로 우리 주님을 십자가에 못박았을까요 오늘 본문을 통해 함께 생각해 보겠습니다.
첫째, 그들은 이기적인 기대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를 통해 그들이 가지고 있었던 세상 적인 욕망을 이루기를 원했습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의 관심은 세상에 있지 않았고 하나님의 나라 건설에 있었으니 얼마나 크게 실망을 하였겠습니까 이러한 이기심이 그들로 하여금 우리 주님을 십자가에 못박게 하였습니다. 오늘날에도 이러한 무리들은 존재 합니다. 자기 욕심대로 ‘주님께 달라고만 하는 이들’ ‘그렇지 않으면 교회를 떠나느니, 혹은 예수를 믿지 않겠느니’ 하는 사람들이 바로 그 사람들입니다. 그렇지 않아도 어련히 알아서 가장 좋은 때에 가장 좋은 것으로 주실까봐, 미리 욕심내고 뜻대로 않되면 그만 두겠다는 식의 신앙인들이 오늘도 우리 주님을 골고다로 향하게 하고 있으니 얼마나 안타까운 일 입니까!
둘째, 그들 중에는 아무것도 알지 못하고 부하내동 하는 이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아무 생각 없이 남이 ‘환영하니 나도 환영한다’는 식으로 예수님을 맞았고 이기적인 무리들이 주님을 반대하고 십자가로 보낼 때도 그렇게 함께 떠들며 외쳐 댔던 것입니다. 알고 믿는 것은 참 중요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언제 우리도 잘못된 무리 중에 휩싸여 주님을 배반하게 될지 모르니 말입니다.
셋째, 그들 중에는 예수님을 죽이려고 음모했던 종교 지도자들이 있었습니다.
자신들의 권위를 유지하고 이익을 수호하기 위해 참 진리이신 예수님을 죽이지 않으면 안되었던 그들은 오늘 자신의 배를 위해 예수님을 파는 비양심적인 종교 지도자들의 모습 그 자체입니다.
넷째, 그들 중에는 불리할 때 도망하고 방관했던 제자들도 있었습니다.
이해는 할 수 있어도 도저히 용납 할 수 없는 비겁자들이었습니다. 어떠한 위험도 그리고 어떠한 책임도 지지 않겠다고 하는 방관자적인 제3의 교인들, 영광의 면류관을 위해선 무엇이든 하지만 주님의 고난은 회피하는 이들이 바로 그들이 아니겠습니까!
다섯째, 그러나 그들 중에는 우리 주님을 죽음의 마지막 골짜기까지 따르던 이들이 있었습니다.
사도 요한과 여인들, 그들이야말로 끝까지 사랑했던 이들 이었습니다. 다른 어떤 사람들과는 달리 진리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며 ‘무엇을 얻기보다는 무엇을 드릴까’를 생각했던 참 그리스도인의 모습입니다.
사랑하는 벧엘 가족 여러분! 오늘 우리는 어떤 이들 속에 섞여 우리 주님을 맞이하고 있습니까
그때 그 무리들이 예수님 못 박았네
녹슨 세 개의 그 못으로
망치 소리 내 맘을 울리면서 들렸네
그 피로 내 죄 씻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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