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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그리스도 안에서 아멘 (고후 01:1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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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모든 종교들은 자신들이 만들어 놓은 부정적인 계율 때문에 인간의 자유를 구속하고 있다. 이러한 세속적인 종교들에 비하여 기독교는 긍정적인 종교라고 말할 수 있다.
불교에서는 인간의 가장 큰 문제를 고통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때문에 인생에 찿아오는 고통의 문제를 해결하려면 존재를 부정할 수밖에 없다고 하여 추구하는 것이 無我地境(자기의 존재를 부정)이다.
힌두교에선 사람이 굶어 죽어가는데도 절대로 소를 잡지 못하게 한다. 자기의 죄를 용서받기 위해 소의 오줌을 받아먹을 만큼 미개한 종교이다. 인도의 간디수상이 주인없는 소를 외국에 수출하면 1년에 4억불을 벌어들일 수 있으며 그 돈으로 400만명의 굶주린 백성을 살릴 수 있다고 호소했지만 인도사람들은 수상에게 돌을 던지며 반대했다. 그러다가 마침내 정적들에 의해 간디는 피살당했다.
본문은 사도바울을 통하여 부정적인 생각으로 가득찬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믿음의 사람은 주님앞에서 ‘예’해야하고 말씀 앞에서 언제나 ‘아멘’만 있을 뿐 ‘아니요’가 없다고 잘못된 믿음을 책망하는 주님의 말씀이다.
주변에 보면 믿음의 사람들 중에도 ‘아니요’라는 부정적인 사상을 가진 사람들을 볼 수 있다. 만일 여러분이 이렇게 부정적인 신앙을 가졌다면 말씀을 통하여 고침받고 치료받아 긍정적인 믿음으로 변화되는 시간이 되길 축원한다.
18-하나님은 미쁘시니=신실하다는 뜻
왜 삶이 자신이 없고 능력이 없이 불확실한 생활을 하는가
신실하신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안전제일’-어디서 많이 볼 수 있나-인간의 마음속에는 본능적으로 안전을 찾고자 하는 심리적인 욕구가 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안정을 찾지못하고 매사가 불안한 것은 하나님을 불신하고 믿지 못하기 때문이다.
대부분 이러한 사람은 자기자신 외에는 아무도 믿지 않는다. 결국 자기자신도 믿지 못해 불안한 생활을 하다가 회의에 빠지게 되고 결국 목숨을 끊는 비극적인 종말로 인생을 마치게 되는 원인이 여기에 있다.
반대로 하나님을 바르게 믿는 사람은 매사가 긍정적이고 하나님을 의지하는 확신속에 기쁨과 소망이 넘치는 생명력있는 삶을 산다.
불신자들이 자유로운 것 같지만 사실은 일평생 자유를 잃어버린 채 세상과 물질의 종노릇하다가 인생을 마치게 되는 것이다.
성경은 한마디로 신자와 불신자의 인생의 결과를 기록한 책이라고 할 수 있다.
20-하나님의 약속은 얼마든지 그리스도안에서 예가 되느니라
하나님의 약속의 핵심은 무엇인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심을 믿는다.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이 약속하신 응답인줄 믿는다.
그러므로 믿음의 사람들은 어떤 일을 만나도 걱정하고 염려할 것이 아니라 그 일속에 숨겨진 하나님의 뜻을 찾아서 감사하고 “예”라고 할 수 있어야 한다.
 아브라함-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바치라는 어려운 명령에 고민하거나 염려하지 않았다. 다시 말하면 ‘아니오’라고 하지않고 자신있게 ‘예’하고 순종하므로 축복의 근원이 되는 복을 받게 된 것을 믿는다.
때때로 감당키 어려운 시련과 문제앞에서 “하나님이 정말 살아계시다면 어떻게 나에게 이러한 일이 있을 수 있는가”하며 하나님을 원망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하나님을 원망하다가 젖과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하고 거친광야에서 멸망당한 것을 잊지말자.
만약 그들이 어려운 모든 환경과 역경을 하나님을 신뢰하고 감사하고 찬양했다면 이스라엘의 역사는 분명히 달라졌을 것이다.
하나님이 살아계시니 이러한 일도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하고 찬양하는 긍정적인 믿음이 복된 줄 믿는다.
오늘 이 자리에 참석한 여러분들의 인생이 소망으로 빛나며 기쁨과 행복이 넘치는 복된 삶이 되길 진심으로 축원한다.
하나님은 이미 우리들에게 이러한 축복을 주신 것을 믿는다.
그런데 왜 우리는 불안한가 만족함이 없는가
가정,사업과 직장의 문제가 있어 하나님앞에 나왔지만 기쁨과 감격이 없는가
해결방법이 있다. 아브라함은 걱정하거나 근심하지 않았다. 적극적으로 ‘아멘’하며 주님께 순종했다. 그리고 야훼 이레의 축복으로 승리했다.
우리도 원망할 수밖에 없고 걱정하고 근심할 수밖에 없는 그 문제를 하나님앞에 내놓고 감사하고 찬양의 조건을 삼길 바란다.
우리가 신뢰하는 살아계신 하나님이 계시므로 그러한 일들이 나에게 왔음을 인하여 감사하자.
근심하고 걱정하며 원망하는 것은 ‘아니요’라는 부정적인 신앙이다.
이제는 우리에게 닥친 모든 문제를 하나님앞에서 ‘아멘’으로 받아 아브라함이 체험했던 하나님의 응답과 야훼 이레의 축복을 체험하는 성도들이 되길 축원한다.
본문을 통해 하나님을 증거한 사도바울도 주님을 만나기 전의 삶은 ‘아니요’의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가 다메섹 도상에서 주님을 체험한 뒤 그의 삶은 ‘아멘’의 삶으로 변화되어 기쁨과 감격이 있는 생명의 삶으로 변화되었다.
 한번은 그리스도를 증거하다가 붙들려 억울하게 잡혀 심하게 매를 맞고 빌립보감옥 깊숙히 갇혔을 때 하나님을 향해 ‘아니요’라고 하지 않고 기도와 찬양을 통하여 “예”라고 자신있게 고백했을 때 사도바울을 꽁꽁 얽어맨 쇠사슬과 착고가 풀려지고 굳게닫힌 감옥문이 활짝 열린 것을 믿는다.
원망과 불평할 수밖에 없는 문제를 예수안에서 “예”라고 고백했을 때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와 참된 자유를 체험하게 된 줄 믿는다.
그는 빌립보 감옥안에서 이렇게 승리의 외침을 외쳤다.
빌4:13-내게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쉽게 말하면 능력주시는 주님 안에서라면 그 어떤 일도 ‘예’라고 할 수 있다는 고백이다.
이시간 우리도 바울처럼 가지고 있는 문제를 예수안에서 “예”라고 고백하므로 응답받고 승리하는 삶으로 변화되길 축원한다.
진정 예수님을 마음속에 영접했는가 그렇다면 나의 모든 생활속에 주님이 함께 동행하는 것을 믿고 모든 일에 찬양과 감사로 하나님께 영광돌리자.
원망과 불평은 사단이 틈탄다.
요10:10-도적이 오는 것은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 명을 얻게하고 풍성케 하려는 것이다. (도적=사탄)
원망과 불평은 사단을 초청하는 일이요 멸망을 자초하는 것이다.
원망과 불평의 삶을 청산하고 예수안에서 기도하며 찬양하는 삶을 통하여 풍성한 생명의 삶으로 변화되길 축원한다.
 아름다운 국화꽃-향기와 아름다움을 보는 사람/ 쑥냄새가 난다고 불평.
아름다운 장미꽃-향기와 아름다움을 보는 사람/ 가시를 보고 불평.
엘리야는 손바닥 만한 구름을 보고 ‘아멘’하므로 3년 6개월의 가뭄을 그치게 한 것을 믿는다.
예수님은 보리떡 다섯과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아멘하여 5000명의 굶주린 생명을 살린 것을 믿는다.
예수안에 있는 성도는 9가지 좋은 것을 보고 “예”하고 감사하고 예수가 없는 사람은 한가지 나쁜것을 보고 불평하고 원망한다.
여러분은 어떤 쪽인가 예수안에 감사하는 삶인가 아니면 불신앙으로 불평하는 삶인가
하나님은 우리의 좋으신 아버지 되심을 믿는다.
오늘도 변함없이 약속된 말씀을 믿고 기도하며 아멘하는 자에게 생명의 풍성한 것으로 채워주심을 믿는다.
그동안 믿는다고 하면서 ‘아니요’라고 원망 불평했던 것들을 회개하라.
이제는 예수안에 있는 믿음으로 ‘예’라고 자신있게 고백하므로 풍성한 은혜를 회복하고 능력있게 승리하는 삶으로 변화되길 축원한다.
“아멘!” 이것은 하나님의 능력과 축복을 내가 소유할 수 있는 보증수표다.
내 심령이 살고, 우리 가정이 살수 있는 길은 예수 안에서 아멘임을 믿는다.
이제 후로는 마음속에 살아계신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어떤 일에도 ‘아멘’하므로 능력있는 성도, 기쁨과 감격이 넘치는 가정이 되길 축원한다. 그러면 교회도 생명력있게 부흥하는 교회될 줄 믿는다. “아멘은 순종이요 믿음이다”
다시한번 ‘아멘’의 삶을 회복하여 축복된 승리의 삶의 주인공들이 되시길 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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