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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슬픈 마음 있는 사람 (마 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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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자 하이데거는 이 시대를 사는 사람들의 타락성을 ‘지껄임’, ‘쏠림’ 등의 용어로 지적합니다. 이 용어들이 내포하는 공통적인 특징은 ‘신중함’이 결여되었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끊임없이 신중한 생각없이 ‘지껄이고’ 천박한 유행적 사조에 ‘쏠려 다니는’ 것입니다. 그 결과는 ‘자기’를 잃어버리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진정한 자기를 발견하기보다는 다른 사람이나 제도, 혹은 유행 등에 자기를 숨기고 살아갑니다. 그들은 자신를 대면하는 것을 두려워합니다.
하나님은 우리 각자에게 달란트를 맡기셨습니다. 어떤 이에게는 다섯을 , 어떤 이에게는 하나를 주셨습니다. 이 달란트는 다름 아닌 우리의 ‘자아’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받은 우리의 고유한 형상입니다. 그 달란트가 몇 개이던 간에 하나님이 주신 달란트는 소중히 가꾸고 더욱 발전시켜야 합니다. 이렇게할 때 하나님은 우리를 향해 착하고 충성된 종이라 말씀하시고 축복하십니다. 반대로 우리의 자아를 상실하고 세상의 종이 되었을 때 하나님은 우리를 악하고 게으른 종으로 평가하실 것이고 영원한 형벌에 처할 것입니다.
본문은 진정한 자아! 이것을 회복하는 길을 열어보입니다. 진정한 자아의 발견은 자신을 가장 솔직하게 대면하는 데서부터 시작됩니다. 성경은 자신을 대면하는 자의 공통적 심리를 ‘애통’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자기의 모습을 깊이들여다보는 사람은 자신의 한계를 인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는 자신의 삶을 영적인 시선으로 응시합니다. 그는 삶 가운데서 우리의 자아를 끊임없이 파괴하는 죄의 현실을 봅니다. 그리하여 그는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라고 절규합니다. 그는 자신의 한계와 비참함을 보고 시편 기자의 고백처럼 “나의 죄로 인하여 내 살에 성한 곳이 없사오며 나의 죄로 인하여 내 뼈에 평안함이 없나이다…내가 피곤하고 심히 상하였으매 마음이 불안하여 신음하나이다”(시38:4-8)
이토록 애통해 하는 자는 복이 있습니다. 그는 위로를 바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는 자신에게 주어질 위로가 세상의 것이 아닌 하늘의 것임을 깨닫게 됩니다. 하나님은 자기의 진실한 모습을 직시하고 위로를 구하는 자에게 하늘의 것으로 위로하실 것입니다.
그는 주님을 만날 것입니다. 자신의 문제를 직시하면서, 추악하고 더러운 죄를 깊이 애통해하는 자는 구원자를 찾을 수밖에 없습니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롬 7:24)고 외칠 것입니다. 그의 외침은 마침내 받아들여져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나를 해방하였음이라”(롬 8:2)고 고백하게 될 것입니다. 그는 자신의 문제를 깊이 애통해하면할수록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이미 말할 수 없는 애통한 삶을 사셨음을 발견할 것이며, 그로 인해 더 이상 우리는 애통의 삶이 아닌 기쁨의 삶을 살아갈 수 있음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스도로부터 오는 위로는 세상의 것과 같지 않습니다. 그것은 생명의 위로입니다. 세상의 것은 시들고 말 것이지만 그리스도의 것은 영원합니다. 그는 바로 영원히 목마르지 않을 위로의 ‘생수’이기 때문입니다.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나니”(롬 5:20) 그리스도의 위로는 ‘애통’의 깊이에 비례합니다. 우리가 우리의 문제를 깊고 철저하게 애통해하는 한, 그리스도로부터 주어지는 위로의 깊이는 커질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애통’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자신의 문제를 깊이 느끼고 슬퍼하는 자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주님은 그런 당신을 기뻐하시고 위로하실 것입니다. “애통하는 자…그는 위로를 받을 것이라”-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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