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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범사에 감사하자 (시 116: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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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기자는 하나님께서 주신 모든 은혜를 무엇으로도 보답할 수 없다는 감사의 고백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시편 116편은 은혜를 받았다기 보다는 환난과 고통, 질병과 사망의 줄에서 헤어날 수 없는 처지인데도 이 시편 기자는 하나님의 은혜를 찬양하고 있습니다. 범사에 감사하고 있음을 봅니다.
사도 바울은 "너희는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살전5:18)라고 했습니다. 감사 가운데 최고의 감사는 범사에 감사하는 것으로 이를 전천후 감사라 합니다. 사도 바울은 부유하거나 비천한 생활이거나 어떤 경우에서도 하나님께서 그에게 주신 기쁨과 은혜를 무엇으로도 보답할 수 없다는 범사에 감사하는 생활을 하였습니다.

1. 세상에는 세 종류의 사람들이 살고 있습니다.1) 범사에 불평하는 사람입니다.
이런 종류의 사람들은 우리의 주위에서 많이 볼 수 있습니다. 이들은 매사에 불평하니 모든 일에 불만이고 긍정적인 생활을 못합니다. 아무리 좋은 조건 속에서도 이유가 많고 불평을 합니다. 이러한 사람들이 단체에 소속되면 그 단체가 어려운 상태에 빠지게 됨을 우리는 자주 볼 수 있습니다.
미국에 살고 있는 우리 교포 중에는 긍정적인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도 있지만 걔중에는 남의 나라에 와서까지 금방이라도 조국이 망할 듯 이런 저런 불평을 늘어놓으며 생활하고 있는 사람도 있어서 서글픈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런 사람들에게는 행복을 찾아볼 수 없습니다. 얼굴이 늘 어둡습니다. 불행한 사람인 것입니다.
2) 감사할 일에는 감사를, 불평할 일에는 불평하는 사람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 부류에 속합니다. 감사의 조건과 불평의 조건이 반복되니 이것도 좋은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인생을 살아가노라면 감사의 조건만 생기지는 않습니다.
10여 년전 KAL 여객기가 사할린 상공에서 격추되어 탑승객 전원이 사망하였습니다. 그 당시 그 비행기표를 구입하지 못해 20여명이 발을 동동 구르면서 자신의 불행을 잠시 한탄하였습니다. 다행히 비행기에 탑승할 수 있었던 사람들은 안도감에 빠졌을 것입니다. 그러나 누가 감사할 수 있었습니까 이륙한 지 몇 시간 못되어 비행기가 격추되어 전원 사망하였다는 소식에 접한 탑승하지 못했던 20여명의 사람들은 그들의 행운에 감사하였을 것입니다.
이를 보면서 "이것은 감사의 조건입니다. 저것은 불평의 조건이다"라고 인간 스스로가 정하지 못하는 것임을 깨닫게 됩니다.
3) 범사에 감사하는 사람들입니다.
"범사에 감사하라" 이 말씀은 귀에 못이 박힐 정도로 들어왔습니다. 이는 전천후 감사요, 사계절 감사하라는 뜻입니다. 감사의 조건이기에 감사하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환경과 조건 속에서도 기쁨과 소망이 넘쳐 감사하는 생활을 하는 삶인 것입니다.
갑이라는 사람이 어느 집 담 밑에 지나다가 갑자가 구정물 세례를 받자 그 집에 대고 심하게 욕을 했습니다. 한편 을이라는 사람도 그 집 담 밑을 지나다가 같은 봉변을 당했는데 그는 그 물을 털어내며 "하나님 감사합니다. 참으로 감사합니다" 하면서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는 구정물 세례만 받고 그 구정물 통에 맞지 않은 것을 감사하였다 합니다.
이와같이 같은 사건이라도 어떤 이에게는 감사의 조건으로, 또 다른 이에게는 불행한 일로 여겨지고 있지만 범사에 감사하는 자에게는 모든 사건이 감사의 조건으로 여겨지게 됩니다. 범사에 감사하는 전천후 감사는 쉬운 일이 아닙니다.

2. 범사에 감사할 줄 아는 생활을 하기 위해서 몇 가지 조건이 필요합니다.1) 감사를 생활화하여야 합니다.
모든 일에는 훈련이 필요합니다. 미국의 어린이들에게 제일 먼저 가르치는 말이 "Thank you"입니다. 이들에게는 이 말이 생활화되어 하루에 100번 이상 "Thank you"를 연발하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극히 작은 일에도 감사하는 생활을 합니다. 우리의 감사 생활은 어떠합니까
모든 감사의 조건들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있습니까 사실 모든 일에 당연한 것은 없습니다. 태양이 떠오르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생명을 연장시키기 위해 새로운 창조를 하시는 것이며 공기를 주심은 우리를 살아가게 하시는 하나님의 역사시며 비를 내리고 햇빛을 주심은 곡식을 익게 하시는 하나님의 섭리인 것입니다. 우리도 감사가 생활화 되어야겠습니다.
2) 모든 것을 무에서 시작하고 무에서 생각하여야 합니다.
우리가 짜증이 나고 원망이 생기는 것은 남보다 적게 갖고 있다는 것에서 나옵니다. 나보다 큰집을 소유한 사람, 더 좋은 차를 소유한 사람, 더 많은 월급을 받는 사람을 볼 때 불평이 생깁니다.
그러나 우리는 무에서 시작하였으니 무에서 생각해야 합니다. 욥을 보면 그는 하루 아침에 그 많은 재산과 아들, 딸을 다 잃었습니다. 빈손이 된 욥이 "내가 모태에서 적신이 나왔사온즉 또한 적신이 그리로 돌아가올지라 주신 자도 여호와요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욥1:21)고 고백하였습니다.
욥이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었던 것은 무에서 시작했음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이 땅에 아무것도 가지고 오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옷과 집과 아내와 자식, 이웃 등 많은 것이 생겼습니다. 가진 것이 많은 사람이 되었습니다. 지금 내가 가진 것이 한가지밖에 없다 할지라도 그 한가지로 감사하는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3) 지난날의 고난을 생각해야 합니다.
조강지처를 버리면 벌을 받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 말의 유래를 보면 어렵게 공부하던 한 선비가 과거에 급제하여 높은 벼슬에 오르게 되었습니다. 그의 주위에서 그 선비에게 당신의 지위에 맞는 새 아내를 취하라고 권하는 사람들이 생겼습니다. 그러나 그 선비는 "평생을 조와 강냉이 밥을 먹으며 고생해온 아내가 나에게는 참 귀중한 사람이다"며 그 청을 물리쳤다 합니다.
우리는 지난날의 고난을 잊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지난날의 고난을 다시 돌이켜 보면 지금의 생활에서 감사의 조건이 넘치고 있음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불평과 원망은 하나님께 범죄하는 것입니다.
4) 고난을 축복의 지름길로 생각해야 합니다.
고난의 학교를 졸업하지 않는 사람은 세상의 승리자가 될 수 없습니다. 고난의 학교가 인생의 최고 학부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고난의 학교에 입학시켜 더 강한 사람으로 만드셔서 크게 쓰시려는 섭리와 뜻을 가지고 계십니다. 온상 속에서 자라던 나무는 성전의 대들보가 될 수 없었지만 험한 날씨와 비바람 속에서 자란 백향목은 성전의 기둥으로 쓰여졌습니다. 여러분들도 고난의 학교를 졸업하게 될 때에 레바논의 백향목같이 성전의 아름다운 재목으로 쓰임 받게 됩니다.
우리는 이 땅에서 천국과 지옥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아무리 대궐같은 집에 산다고 할지라도 감사가 없다면 그곳이 지옥이요, 초가삼간에 살지라도 감사가 넘친다면 그곳이 천국이니 천국과 지옥은 우리 마음에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에 늘 감사하면서 생활하면 우리의 생은 복된 생이 되고 이 땅이 천국으로 바뀌며 가정에 기쁨과 영광이 떠나지 않을 것입니다. 범사에 감사하는 성도가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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