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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함께 사는 길 (시 13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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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년 열두달 가운데 신록이 가장 우거진다는 6월달은 우리 민족에 있어서는 6.25사변이 일어났던 비극적인 달이라 할 수 있습니다. 6월을 맞이하여 저와 여러분들은 이 나라와 민족을 생각하면서 하나님 앞에 예배드려야 겠습니다.
오늘 시편 133편에 있는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함께 사는 길'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보며 은혜 받는 시간이 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최초로 인간을 창조하실 때 아담 한 사람을 창조했습니다. 그런데 아담 혼자 있는 것이 안 좋아 보여서 돕는 사람, 협조하는 사람 하와를 만들어 부부로 살아가도록 하셨습니다. 부부가 서로 연합해서 같이 더불어 살아가라고 하는 것이 창조의 질서입니다. 인간은 서로 돕고 사는 관계입니다. 옛날 우리 조상들은 가난하게 살았지만 이웃간에 사랑이 넘치는 삶을 살았습니다. 농경문화에서는 혼자서는 살 수 없기에 서로 도와주며 살았습니다. 모내기, 밭갈이 등 힘든 일은 서로 돌아가면서 일을 해주고 어느 한 집에서 잔치를 하면 동네 사람들이 함께 도와주고 만약 어떤 집에서 불이 나면 온 동네 사람들이 소방관 역할을 해 주었습니다.
결혼을 해서 분가하지 않고 온 식구가 한데 어우러져 살았습니다. 이것이 옛날 우리 조상들의 삶이었습니다. 그런데 현대에 살고 있는 우리들의 모습은 어떻습니까 산업 사회의 발달로 인하여 공장문화는 인구 이동이라는 사회의 변동을 가져왔으며 이는 다시 도시화를 동반하였습니다. 또한 산업사회에서 공업사회로 발달하면서 치열한 경쟁이 시작되었습니다. 회사와 회사가 경쟁하고 제품과 제품이 경쟁하고 학교와 학교가 경쟁하게 되어 한 기업이 망해야 다른 기업이 살고, 다른 아이가 대학에 떨어져야 내 아이가 합격하는 경쟁사회에서 불신주의, 개인주의, 집단주의, 이기주의가 자리잡고 말았습니다.
너 보다는 내가 먼저여야 하고 내가 항상 우위여야 한다는 각박한 의식들이 자리잡기 시작했습니다. 내 가정만 나 한사람만 안전하면 된다는 생각들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하지만 나 혼자 산다고 과연 사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까 한 배를 타고 가는데 그 배가 풍랑을 만나 파선되면 거기 탔던 사람들은 다 죽게 되는 것입니다. '나' 개인이 잘 되는 것도 중요하지만 '우리'가 먼저 잘 되어야 합니다. 혼자 돈 벌어서 잘 살겠다고 부정식품을 만들어 팔고, 공장폐수를 함부로 버리고 농작물에 농약을 과다하게 뿌려서 국민의 건강은 아랑곳하지도 않는 사람들이 많은 돈을 벌었다고 한들 잘 살 것으로 생각합니까 그들도 망하고 그 자손들까지도 다 망합니다.
같이 더불어 잘 살겠다고 한 사람들에게 하나님은 축복을 내리십니다. 시편 133편을 보면 "형제가 서로 연합하여 모인 것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고 저 헬몬산에 내린 이슬이 온 땅에 덮힘 같이 여호와께서 그곳에 복을 내려 주셨더라"라는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함께 동거하고 서로를 사랑하고 아끼는 곳에 사는 길이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 모두는 이기주의로 인해 함께 살아가는 법을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다 함께 살수 있는 길은 무엇입니까

1. 서로 용서해 주는 것입니다.
해방이후 우리 민족은 엄청난 비극적인 사건들을 많이 겪었습니다. 그로인해 우리 민족의 한은 어느 민족과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골이 깊어 졌습니다. 6.25전쟁을 겪으며 사랑하는 부모, 형제, 남편, 자녀를 잃어버린 수많은 사람들의 한,

4.19학생운동때 총 맞아 죽은 많은 학생들의 어머니의 한,

5.18 광주사태때 군인들에게 무참한 죽음을 당한 광주시민의 한 이러한 원인들이 가슴속 깊이 응어리져 있어 이 사회는 너무도 살벌합니다.
그러나 우리 가족이 죽었으니 그 원수를 반드시 갚고야 말겠다는 식의 한은 우리 모두를 망하게 합니다. 비극의 악순환이 계속되면 이 나라는 잘 될 수 없습니다. 이 나라가 잘 살수 있는 길은 더 이상의 비극이 일어나지 않도록 서로를 용서하는 길밖에 없습니다. 용서하고 사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다 갚아 주십니다. 내가 소중하면 남도 역시 소중한 것입니다.

2. 극단적인 이기주의를 버려야만 우리 모두가 삽니다.
오늘날 우리는 나만 잘되고 내 가정만 편하면 된다는 극단적인 이기주의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다른 사람보다 내가 잘 되어야 하고 남의 자녀보다 내 자식이 잘 되어야 되고 남의 의견보다는 내 의견이 중요하다는 생각들을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남북이 대립하고 노사간에 대립하고, 학생과 교수, 학생과 경찰이 서로 대치하고 있습니다. 한치의 양보도 없이 각자의 목소리만 옳다고 주장합니다. 남이야 어떻게 되든 말든 나만 편하고 나만 잘 살면 된다고 하는 극단적인 이기주의를 버려야만 나라가 잘 되고 내가 잘 되는 것입니다.
나라 정책이 어떻게 되는지 상관없고 내가 사는 곳, 내 가정, 우리 식구만 피해 입지 않으면 된다고 생각하는 집단 이기주의가 만연하고 있는 것이 현재 실정입니다. 예수님은 자기가 죽고 모든 인생을 살리려는 희생정신으로 십자가를 주셨습니다. 우리가 주님처럼 할 수 없지만 너도 살고 나도 살자는 생각을 갖고 살아야만 합니다.

3. 내가 있는 곳에서 최선을 다해야 겠습니다.
직장에 다니는 사람은 자기 직장에서 최선을 다해 일을 해야 합니다. 학생이면 최선을 다해 공부하는 것입니다. 21세기 대한민국을 우리가 잘 이끌고 나가야 겠다는 생각으로 열심히 공부해야 합니다.
우리 모두는 각자 처해있는 곳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이 나라를 살리고 또한 애국하는 길입니다. 공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한 제품을 만들 때 그 제품이 외국에 수출되면 대한민국의 얼굴이 된다는 생각으로 온갖 정성을 다해 만들어야 합니다. 창세기에 보면 요셉이란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애굽으로 팔려가서 보디발의 집 노예가 되었는데 그 집에 들어가서 소, 돼지처럼 일만 했습니다. 사람 취급도 못 받아가면서 일만 했지만 요셉은 원망, 불평하지 않았습니다. 요셉은 노예라는 신분에 맞게 최선을 다해 그 집에서 일을 하였고 오히려 하나님께 그 주인의 집이 잘되게 해 달라고 날마다 기도했습니다. 그 결과 그는 고난 속의 역경을 딛고 일어나 애굽의 총리대신의 자리까지 오르는 놀라운 하나님의 축복을 받게 된 것입니다. 지금 내가 남의 밑에서 일하고 있지만 그 회사, 직장, 사업체가 잘 되도록 하나님께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그 민족을 세우고, 회사를 세우고, 가정을 세워 주십니다.
오늘날 하나님을 믿는 우리 성도들은 대내외적으로 어려움에 처해 있는 우리나라를 위해서는 물론이고 북한의 불쌍한 동포들을 위해서 간절히 기도해야 합니다. 북한에 있는 우리 형제들에게 그리스도의 복음이 전파되어 함께 구원의 자리에 이르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호국의 달 6월을 맞이하여 민족을 위하여 목숨을 바친 호국 영령들을 생각하면서 우리는 기독교인으로서 어떻게 사는 것이 애국하는 길인지 깊이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을 믿는 우리 성도들은 먼저 용서하고 사랑하며, 이기심을 버리고 이웃을 생각할 줄 알고 나라와 민족을 위해 작은 일에도 최선을 다하며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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