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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지휘자를 따라 부른 다윗의 노래 (시 1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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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윗은 하늘에 나타난 하나님의 신적인 영광(자연계시)과 율법에 나타난 하나님의 영광(특별계시)에 대해서 노래하고 있다. 그리고 이 계시를 묵상하다가 자기의 죄성을 깨닫게 되어 자기의 삶이 하나님 앞에 열납 될 수 있게 되기를 기도하고 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두 권의 귀중한 책을 주셨다. 하나는 자연(일반계시)이며, 또 하나는 성경(특별계시)이다. 다윗은 이 계시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린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을 감사하게 여기고 그것을 귀중하게 생각한다. 그리고 이러한 하나님께 대한 감사는 성도들을 더 높은 신앙으로 이끌어 준다. 우리는 하나님이 주신 자연을 통해서 하나님의 무궁하신 지혜와 성품을 알 수 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을 깨닫게 된다. 이러한 자연과 말씀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주신 특별한 선물이다. 그러나 은혜를 받지 못한 사람은 이러한 두 권의 책을 받고서도 하나님을 발견하지 못한다.
구약 성경은 종종 여호와를 창조주이신 동시에 율법을 주신 분이라고 묘사한다. (시 10편)에서도 첫 번째 부분에서 다윗은 하나님을 “엘”(창조주 하나님)이라고 부르고 있으며(1절), 두 번째 부분에서는 “야훼”(여호와)라고 부르고 있다. 이 곳에서 “야훼”는 이스라엘을 선택하고 그들과 언약을 맺으신 하나님을 의미한다. 이 시편은 또한 이단적 신앙을 공격하고 있다. 다신론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태양을 신으로 받아들인다. 그러나 이 시편은 태양을 포함한 모든 우주가 다 하나님에 의해 창조되었다고 말하고 있다.

1. 만물을 찬양함(자연계시)(1-6)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궁창이(무한한 우주 공간) 그 손으로 하신 일을 나타내는 도다(1). 날은 날에게 말하고 밤은 밤에게 지식을 전하니(2), 언어가 없고 들리는 소리도 없으나(3), 그 소리가 온 땅에 통하고 그 말씀이 세계 끝까지 이르도다(4(상)).”
다윗은 무한하면서도 질서 정연하고 아름다운 우주의 하늘을 바라본다. 그는 그것이 우연히 형성된 것이 아니라 최고의 예술가(건축가)이신 하나님이 창조하신 것임을 알고 있었다. 그는 하늘이 말없이 자기를 만드신 하나님의 무한한 지혜와 솜씨를 선포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하늘은 낮에 볼 수 있는 우주를 말하고, 궁창은 밤에 볼 수 있는 우주를 말한다고 하면, 하늘과 궁창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모든 우주가 밤과 낮으로 하나님의 지혜와 솜씨를 나타내고 있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선포하고'나, 또는 '나타낸다'는 말은 모두 분사형으로 되어 있는데, 이는 만물이 계속해서 하나님의 솜씨를 나타내고 있다는 것을 말한다. 하늘의 선포 활동은 창조 이래로 쉬지 않고 계속되어 왔다. 낮은 낮대로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고 밤은 밤대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낸다. 계속되는 낮과 밤의 하늘은 창조 때에 만들어진 작품을 그대로 보존해 왔다. 이러한 의미는 '말하고', '전하니'라는 표현에 함축되어 있다.
여기서 '지식'은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의미한다. 하늘은 하나님의 놀라우신 지혜와 지식을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점에서 하늘은 탁월한 계시이다(Craigie). 따라서 인간은 하늘을 바라보고 연구하며 묵상할 때에 하나님에 대한 지식의 실마리를 잡을 수 있다(8:1,3; 33:6; 95:5). 하늘의 선포나 언어는 인간이 들을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무언으로 전해지는 계시이며 선포라고 할 수 있다(롬 1:19). 하나님께서 만드신 만물들은 언어는 없지만 온 우주 구석구석까지 가서 계시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과학자들은 현미경을 통해서 별을 보면서 하나님의 솜씨에 감탄해 왔다. 옛날에는 물질 세계는 유한하고 정신 세계는 유한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지금은 끝없이 넓은 우주를 발견하면서 물질 세계도 무한하다고 말하고 있다. 우리가 하늘을 바라보면 우리가 사는 태양계와 같은 은하계가 수도 없이 퍼져있다. 그 뿐 아니라 아주 작은 세계에도 끝없이 나누어진다. 분자와 원자, 전자....와 같이 작은 세계도 무한하게 나누어진다. 지구의 자전, 공전을 보면 너무나 오묘한 질서를 따르고 있다. 우리가 듣지는 못해도 온 우주에 온갖 소리(전파, 지구 돌아가는 소리...)로 가득 차 있다. 우주는 벙어리가 아니다. 우주는 하나님의 심성과 지혜에 대한 메시지를 가지고 있다.
“하나님이 해를 위하여 하늘에 장막을 베푸셨도다(4(하)). 해는 그 방에서 나오는 신랑과 같고(기쁘고 반가움) 그 길을 달리기 기뻐하는 장사 같아서(매우 힘차다)(5), 하늘 이 끝에서 나와서 하늘 저 끝까지 운행함이여 그 온기에서 피하여 숨은 자 없도다(6).”
해는 하나님의 손으로 지어진 것들 중에 면류관이라고 할 수 있다. 애굽은 해를 최고의 신(神)으로 여겼고, 바로 왕을 해가 성육신한 것으로 생각했다. 또한 바벨론에서도 해의 신('솨마쉬')을 숭배하였다(Kraus). 하지만 다윗은 해가 신적 존재가 아니라 하나님에 의해 창조되고 운행되는 피조물에 불과하다고 말한다(창 1:17). 하나님은 해를 위해 장막을 베푸셨다. 여기서 장막은 태양이 운행하는 장소를 말하나, 본문에서는 밤중에 해가 거하는 장소로 해석하는 것이 더 적합하다. 왜냐하면 다음절에서 해가 다음 날 아침에 집에서 나오는 신랑으로 묘사되어 있기 때문이다(합 3:11).
해는 그 방에서 나오는 신랑과 같다. 이는 아침마다 힘있게 떠오르는 태양에 대한 시적 묘사이다. 아침해는 인간에게 항상 신선함과 기쁨과 기운을 불어 넣어준다. 그러므로 해는 신방에서 하룻밤을 지내고 환한 얼굴로 나오는 신랑과 같다. 해는 그 길을 달리기 기뻐하는 장사와 같다. 이는 해가 끊임없이 자기의 길을 운행하는 모습을 시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해는 지칠 줄 모르고 힘있게 운행하기 때문에 장사로 비유된 것 같다. “하늘 이 끝에서 나와서 하늘 저 끝까지”란 말은 동쪽 끝에서 떠서 서쪽으로 지는 해의 운동을 말한다. “그 온기에서 피하여 숨은 자 없도다”는 말은 해가 모든 자연 세계를 구석구석까지 비추어 주고 있다는 것을 말한다. 하나님에 대한 자연 만물을 통해서 온 세계의 구석구석까지 에 미치고 있다. 여기서 해는 계시를 말하고, 율법은 특별 게시를 의미한다.

2. 율법을 찬양함(특별계시)(7-11)
“여호와의 율법은 완전하여 영혼을 소성케 하고, 여호와의 증거는 확실하여 우둔한 자로 지혜롭게 하며(7), 여호와의 교훈은 정직하여 마음을 기쁘게 하고, 여호와의 계명은 순결하여 눈을 밝게 하도다(8). 여호와를 경외하는 도는 정결하여 영원까지 이르고, 여호와의 규례는 확실하여 다 의로우니(9), 금 곧 많은 정금보다 더 사모할 것이며, 꿀 보다 더 달도다(10). 또 주의 종이 이로 경계를 받고 이를 지킴으로 상이 크니이다(11).”
여호와의 율법은 완전 (타밈:perfect)하여 영혼을 소성(회복)케 하고
다윗은 7절에 와서 하나님의 이름을 '여호와'로 바꾸어 부르고 있다. 1절에서 언급된 '엘'(하나님)은 “창조주 하나님”을 나타내고, 7절에서 언급된 '여호와'는 이스라엘을 자기 백성을 선택하신 “언약의 하나님”을 나타내는 이름이다. 율법(특별계시)은 언약의 백성인 이스라엘에게만 주어진 것이기 때문에 다윗은 하나님의 이름을 의도적으로 ‘여호와“로 바꾸어 부르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완전하여 영혼을 소생시켜 주고....
’완전하다‘는 말은 흠 없는 제물을 가리킬 때 사용된 말이다. 하나님의 율법은 완전하여 사람들이 살아가는 데에 필요한 모든 원리를 가르쳐 주고 있다. 그러므로 율법은 지치고 낙심한 영혼들에게 새 힘을 주고 다시 일어설 수 있는(회복) 힘을 제공해 준다.
여호와의 증거(에두트)는 확실하여(sure) 우둔한 자로 지헤롭게 하며...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에게 증거가 된다. 하나님의 말씀은 순종하는 자에게 상급을 주는 증거가 되지만, 거역하는 자에게는 심판을 내리는 증거가 된다. ‘확실하다’는 것은 해야 할 일과 해서는 안된 일을 분명하게 가르쳐 준다는 말이다. ‘우둔(미련)한 자’는 순진해서 남의 말을 쉽게 받아들여서 말씀의 인도를 받지 못하면 쉽게 그릇된 길을 간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이러한 미련한 사람들에게도 마땅히 가야할 길과 피해야 할 길(지혜)을 깨닫게 해준다.
여호와의 교훈(피쿠딤)은 정직(upright)하여 마음을 기쁘게 하고(rejoice):
교훈은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에게 요구하시는 의무를 말한다. 정직하다(야살)는 말은 “옳고 바르다”는 것을 말한다. 하나님의 말씀은 올바르신 하나님으로부터 나왔고, 그 말씀이 우리를 옳은 길로 인도해 주기 때문에 올바르다. 이러한 교훈은 우리의 심령에 기쁨을 준다.
여호와의 계명은 순결(clearcut)하여 눈을 밝게 하도다:
‘계명’(미츠와)은 “명령하다(차와)의 명사형이다. ‘순결하다’(바라)는 말은 ‘깨끗하다’는 의미이지만 본문에서는 ‘빛나게 한다’란 의미로 사용되었다. 하나님의 명령은 우리의 눈(판단력)에 빛을 주어 우리의 눈을 밝게 해준다(판단력을 준다). ‘눈을 밝게 한다’는 말은 진리를 깨닫고, 선악을 분별하는 것을 말한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도는 정결하여(clear) 영원까지 이르고(standing forever):
원문에는 ‘여호와를 경외하는 도’가 아니라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라고 되어 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은 율법의 목적인 동시에 율법의 기초가 된다. ‘정결하다’(타호르)는 말은 불순물이 섞이지 않았다는 말이다. 이 말은 세속적인 것과 반대되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하나님의 말씀은 세상의 것과 달리 거룩하고 순수하여 영원히 없어지지 않고 지속된다.
여호와의 규례는 확실하여(true) 다 의로우니:
'확실하다'('에메트')는 말은 '진리'로도 번역된다. 율법은 다른 법과는 달리 영원히 변하지 않는 유일한 진리의 표준이다(Lange, Delitzsch). 확실하다('에메트')는 말은 '신뢰할 수 있다'(신실하다)는 의미도 내포하고 있는 말이다. 하나님의 규례는 진리이기 때문에 우리가 신뢰할 수 있다. 하나님의 말씀이 다 의롭다는 것은 율법에 대한 결론이라고 할 수 있다. 율법은 질적인 면과 양적인 면에서 모두 의롭다. 율법은 하나님으로부터 나왔기 때문에 의로울 수밖에 없고, 또 우리를 의의 길로 인도해 주기 때문에 모든 율법 조항들이 다 의롭다(Barnes).
금, 곧 많은 정금보다 더 사모할 것이며, 꿀과 송이 꿀보다 더 달도다:
다윗은 하나님의 말씀이 이 세상에 있는 어떤 보화(정금)보다 더 귀중하고, 이 세상에 있는 어떤 것(송이 꿀)보다 더 우리 마음을 기쁘게 해준다고 말한다.
또 주의 종이 이로 경계를 받고 이를 지킴으로 상이 크니이다:
'경계를 받는다'는 말('니즈하르')는 '권고함을 받는다', '가르침을 받는다'는 말로서, 이는 율법의 교훈적 기능을 의미한다.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과의 언약 관계를 계속 유지할 수 있는 길을 가르쳐준다. 하나님의 말씀은 심판에 대해 경고함으로써 성도들을 근신하게 만들어 준다. 하나님은 율법을 지킨 자(의를 행한 자)에게 큰 상급으로 갚아주신다.

3. 정결함을 구하는 기도(12-14)
“자기 허물을 능히 깨달을 자 누구리요, 나를 숨은 허물(무의식적으로 지은 죄)에서 벗어나게 하소서(12). 또 주의 종으로 고범죄(고의적으로 지은 죄)를 짓지 말게 하사 그 죄가 나를 주장(주관하지)치 못하게 하소서. 그리하시면 내가 정직하여 큰 죄과에서 벗나겠나이다(13).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구속자이신 여호와여 내 입의 말과 마음의 묵상이 주의 앞에 열납되기를 원하나이다(14).”
다윗은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다가 성령을 통해서 자기의 허물을 깨닫게 되었다. '허물'('쉐기아')은 '길을 잃다', '잘못하다', '바른 길에서 벗어난다'는 뜻을 가진 말이다. 그러나 본문에서 이 말은 부지중에 범한 무의식적인 죄를 의미하고 있다(레 4:13; 욥 6:24; 19:4). 흔히 이러한 죄는 미묘해서 쉽게 발견하기 어렵다. 그러나 성령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이러한 순은 죄까지도 밝히 드러내신다. 다윗은 말씀을 통해서 이러한 ‘숨은 허물’을 깨닫고 이 허물에서 벗어나게 해 달라고 기도하고 있다. '벗어나게 해달라'는 말(나카)은 '깨끗하게 하다', '무죄가 되게 하다'는 뜻으로서 모든 허물을 씻어 용서해 달라는 말이다(Calvin, Briggs).
고범죄('제딤')는 '끓음', '완고하게(건방지게) 행동함'을 의미하며, '교만이나'나 '완악함으로 짓는 죄'를 말한다(Calvin). 허물이 비고의적인 죄라면 고범죄는 고의적인 죄를 말한다. 하나님은 이러한 고의적인 범죄에 대해서는 엄하게 처벌하신다(민 15:27-31). 다윗은 고범죄가 자기를 주장하지 못하게 해 달라고 기도한다. “주장하지 못하게 해 달라”는 말은 죄의 노예(습관적으로 죄를 짓는 사람)가 되지 않게 해 달라는 말이다.
다윗은 하나님께서 고범죄가 자기를 주장하지 못하게 해 주시면 자기는 정직하게 되어 죄과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정직하다”는 말은 흠 없는 제물과 같이 하나님이 열납할 수 있는 온전한 것을 말한다. 그리고 “죄과”('페솨')는 '반역죄'를 의미하며 여기서는 하나님의 율법과 언약을 불순종하는 것을 말한다. 이러한 반역죄는 하나님과 인간 사이를 분리시키며 인간을 심히 부패하게 만든다(Delitzsch). 다윗은 하나님께서 자기를 숨은 허물과 고범죄에서 깨끗하게 해주시면 자신이 이러한 죄악의 심연에 빠지지 않게 될 것이라고 고백한다.
다윗은 하나님을 ‘나의 반석’. ‘나의 구속자’라고 부른다. '반석'('추르')은 거대한 산을 의미하며, '힘'을 상징한다. 다윗은 죄를 이길 수 있는 힘이 여호와께로부터 온다고 고백하고 있는 것이다. '구속자'는 죄 값을 대신 지불하고 자유롭게 해 줄 사람을 말한다. 다윗은 자신의 무수한 죄를 씻어주실 분은 오직 여호와 하나님밖에 없다고 고백하고 있다.
다윗은 마지막으로 자기의 묵상과 기도가 하나님께 열납 되기를 기도한다. “내 입의 말과 마음의 묵상”은 다윗이 드린 묵상과 기도를 말한다. '말'과 '묵상'은 서로 깊은 연관이 있는 말이다. 왜냐하면 마음에 묵상한 것은 입을 통해 나오게 되기 때문이다. 다윗은 지금 자기가 하는 기도와 묵상을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로 인식하고 있다. 그는 이 제사가 하나님 앞에 열납 될 만한 온전한 제사가 되게 해달라고 성령님께 기도한다.
<적용 질문>

1. 만물이 어떻게 하나님의 영광과 신성을 나타내고 있는지 예를 들어 말해보자.

2. 다윗이 말한 하나님의 말씀의 특성은 무엇이며 이 특성이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3. 성경을 읽으면서 자기의 죄를 깨닫고 엎드려 하나님께 기도한 경험을 말해보자.

4. 우리의 마음의 생각과 찬송, 그리고 기도가 하나님께 열납 될만한 온전한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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