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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감사와 축복 (신 16: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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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년 중 5월은 감사의 달입니다. 어버이날이 그렇고 스승의 날이 그렇습니다. 천지 만물 중 감사할 줄 아는 피조물은 인간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사람은 감사의 날을 지키며 예를 다하는 것입니다.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이 세상에서 가장 귀한 이유도 이 때문인 듯 싶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인간 관계 때문에 상처를 입고 마음의 고통을 느낍니다. 그런데 이 인간관계라는 것이 모르는 사람과의 사이에서는 갈등이 일어나질 않습니다. 가까운 사이. 친한 사이, 당연한 사이에 보이지 않는 벽이 생겨서 반목하고 질시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 중 가 장 쉽게 금이 가고 고통을 느끼는 사이가 두 가지 있다면 부부 사이와 부모 자식 간의 사이 일 것입니다. 그 다음 동지와 동지 사이 선배와 후배의 사이가 아닐까 합니다. 부부 사이의 갈등이 왜 생깁니까 그거야 당연히 두 부부가 서로에게 감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아내는 아내대로 자신의 남편을 다른 남편과 비교하여 원망하고 남편은 남편대로 다른 여자와 비교하여 무시해 버리는 데서부터 불행과 고통은 싹이 트는 것입니다. 다투는 자마다 망하고 서로 싸우는 나라마다 서지 못한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물론 사랑은 받을 것을 바라지 아니하고 베푸는 것이지만 사랑과 은혜와 도움을 입은 자가 감사하고 고마워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은 결코 아닙니다.
사람의 아름다움과 고귀함은 자신을 낳아 준 부모의 그 큰 은혜와 자신을 믿고 살아 주는 남편과 아내에 대하여 고마움을 느끼고 그 사랑을 구체적으로 보답하는 그것입니다. 즉 감사할 줄 아는 마음과 구체적인 행동이지요. 그런데 말입니다. 유독 지상에서 인간만이 베푼 은혜를 망각 하고 배반하며 신의와 의지를 져 버리는 존재입니다. 배반을 경험할 때 사람은 인격적으로 얼마나 큰 상처를 입는지 모릅니다. 그래서 그 상처가 큰 사람 일수록 다시 남들에게 은혜를 베풀지 않는 사람이 되어 가 버리는 것입니다.
참, 이제 와서 제가 말씀 드리는 것입니다 만 목회 현장에서 목회자가 느끼는 가장 큰 고민과 갈등이 있다면 그것은 너무 쉽게 은혜를 원수로, 사랑을 악의로 갚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수많은 목회자들의 사역이 폐쇄적으로 변해 버리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들은 무엇보다도 지극히 조그마한 은혜와 사랑과 베풂에 대하여서도 Thank You!하는 분들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1. 감사는 큰 은혜를 받은 자라야 할 수 있습니다.
참된 성도의 표시가 무엇입니까 예, 그렇습니다. 감사를 아는 자 입니다. 하나님께서 베푸신 은혜에 대하여 나의 영적 성장에 대하여 돕는 목회자들에 대하여 나아가서 가정의 아내와 남편, 자녀들에 대하여 그저 그렇게 감사할 줄 아는 성도가 진실로 참 성도임을 저는 믿습니다. 또한 가장 육적인 성도가 누구입니까 끊임없이 원망하고 불신하고 투정부리는 신자야 말로 하나님의 구원을 무시하는 성도가 아니고 누구이겠습니까 오늘 이 맥추 감사절을 맞으면서 우리 교회 모든 성도들은 감사의 영으로 충만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러면 어떤 자가 감사를 할 수 있습니까
첫째, 무엇보다 구속을 기억해야 합니다.
먼저 본문 12절을 보겠습니다.
“너는 애굽에서 종 되었던 것을 기억하고 이 규례를 지켜 행할지니라”
오늘 우리가 읽은 신명기 납‘신(申)’자에 말씀‘명(命)’자를 써서 그 뜻이 “다시 말하노니”로 해석되어 집니다. 이는 모세가 가나안 땅을 바라보는 자리에서 지나온 광야 40년의 여정을 돌아보면서 다시 한 번 이스라엘에게 부흥회를 가지는 장면입니다. 오늘 우리가 보는 이 신명기에서 가장 반복적으로 나오는 문장이 무엇입니까 “기억하라”입니다.
여러분! 여러분은 기억하고 있습니까 우리가 방자해 지고 나태해 지고 열심이 식어지고 충성이 변하여 배반이 되는 이유가 기억이 점점 사라져 가고 있기 때문인 것을 알고 계십니까 기억이 지워지면 안됩니다. 기억이 사라지면 망합니다. 기억이 쇠약해지면 실패하고 넘어집니다. 기억 상실증은 교만하게 만듭니다. 교만하면 하나님이 대적하십니다. 오늘 반복하여 나타나는 문장을 주의해서 보십시오. “기억하라”입니다.
자, 그러면 무엇을 기억해야 합니까
첫째로 우리는 우리의 옛날 죄 속에서 방탕하며 진노의 자식으로 살았던, 그래서 에베소서 2장 1절이 밝히는 대로 “죽었던”시절을 기억해야 합니다.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행하며 이 세상 풍속과 사탄을 쫓아 살아”날마다 실패하여 형벌 속에 들어갈 수 밖에 없었던 “종 되었던 때”를 기억해야 합니다.
둘째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기억해야 합니다. 찬송 중에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예수 떠나가면 내 생명 헛되네.....”그렇습니다. 예수를 잃어버린 성도! 이보다 더 비참한 성도가 있을까요 그러나 우리는 때때로 예수를 잃어버리고 다닙니다. 예수의 부모들이 사람들 속에서 어울리다 예수를 잃어버리고 사흘 길을 찾아 다녔던 것처럼 오늘날에도 예수를, 십자가를, 골고다를 잃어버린 사람들이 많습니다. 예수 십자가의 은혜를 잊어버리고 설교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예수 보혈을 빼 버리고 봉사하는 분이 많습니다. 도대체 이스라엘이 어떻게 애굽을 탈출하여 홍해를 건넜고 어떻게 농사와 길쌈을 매지 않은 채 40년 간을 광야에서 먹고살며 견딜 수 있었을까요 누구의 공로입니까 누구의 은혜입니까 유월절 양, 하나님의 어린 양 되신 예수님 때문이 아니고 무엇입니까
성도 여러분 예수를 기억하고 잊어버리지 않고 있습니까 십자가와 골고다와 그 보혈의 공로를 기억하고 있습니까 기억하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셋째로 날마다 돕는 은혜를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자녀로서 끊임없는 보호와 도우심을 하나님은 약속하셨습니다. 그래서 시편 기자들은 천만인이 나를 둘러 진친다 할 지라도 내가 두려워하지 아니 한다고 노래하였습니다. 돕는 은혜를 기억하는 성도는 이 축복이 임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 중 첫 세대는 광야에서 모두 죽었습니다. 광야 40년 방황만 하다가 모두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죽었던 것입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날마다 도우시는 은혜를 의심했기 때문입니다. 기억하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은혜를 깨닫게 됩니다. 여러분 삶의 뒤를 한 번만 돌아보십시오. 그 분이 하나님이 아니십니까 하나님이 날마다 도우시는 은혜를 깨닫게 됩니다.
여러분 삶의 뒤를 한 번만 돌아보십시오. 그 분이 도우시지 않았습니까 시시때때로 나를 도우신 하나님이 아니십니까 날마다 돕는 은혜를 기억해야 할 줄로 믿습니다.

2. 감사는 은혜를 더욱 깨닫게 합니다.
우리의 신앙은 하나님과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안에서의 사랑입니다. 이것은 인격적 관계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극진하신 은혜와 사랑에 감격하여 더욱더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게 되듯이 우리가 아버지 하나님을 향하여 감사하고 찬양하게 될 때 하나님도 감동하시고 기뻐하시며 즐거워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상호 관계가 깊어지는 것입니다. 은혜를 베푸시는 분이 있고 그 혜택을 받는 자가 있으며 그 혜택을 받은자가 배반하여 잊어버리지 않고 감사와 영광을 돌리게 될 때 신앙의 깊이는 더해 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첫째,우리는 때를 따라 감사해야 합니다.
“칠주를 계수 할찌니 곡식에 낫을 대는 첫날부터 칠주를 계수하여”라고 되어 있습니다.이 칠주를 계산하여 칠칠절(The Feast of Weeks)을 지키는데 이 칠칠절은 이스라엘의 3대 절기 가운데 두번째 절기입니다. 즉 유월절로부터 50일째 되는 날로 다른 말로는 맥추절(출 23:6) 또는 오순절(행 2:1)이라고 불렀습니다. 헬라어를 쓰는 유대인들은 오순절이라고 부르기를 좋아했는데 이날은 구약에서 구원의 완성을 기뻐하는 날 이었습니다. 즉 유월절 장자의 재앙에서 구원받은 이스라엘이 홍해의 세례 사건을 경험하고 광야에 이르러 완전한 구속 가운데 광야에서 즉 새로운 땅에서 얻은 첫 소출로 하나님께 감사를 드렸던 날 입니다. 유월절이 구원의 씨앗 뿌림이었다면 유월절은 그 첫 열매가 익은 날입니다. 그런데 신약에 이르러서는 바로 이 오순절 날에 성령이 강림 하신 것 이었습니다. 갈보리 십자가 위에서 예수 께서 첫 구원의 문을 여셨다면 오순절 성령 강림 사건은 그 첫 구원의 열매가 땅에 떨어져 제 이, 제 삼의 구원의 문이 열려지는 날 이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 중에 구원을 확신하는 성도가 있습니까 여러분 중에 “이제 나에게 심판이 없다‘는 사실을 믿고 계시는 분 있습니까 바로 여러분이 깨달아야 할 사실은 감사를 잊지 말라는 것입니다.
나의 때가 어디인지 나의 여정이 어디인지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둘째, 성령 주셨음을 감사하고 더욱 사모해야 합니다.
어떤 농부가 있었습니다. 그는 읍내에서 한 자동톱을 사게 되었습니다. 그는 그 농기구 가계에 붙어 있는 포스터를 보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 포스터에는 “이 자동톱은 2시간에 5자루의 참나무를 벨 수 있습니다”라는 선전 문구가 적혀 있었습니다. 그 농부는 그 톱을 사서 집으로 갔습니다. 그러나 그는 참나무다섯 그루를 베는데 하루 종일이 걸렸습니다. 화가 난 농부는 그 자동톱을 가지고 그 가게 주인에게 따집니다. 그러자 그 주인은 그 자동톱에 엔진을 겁니다. 고막을 찢는 요란한 소리가 사방을 울리며 나무에 갖다 대자마자 나무들이 도막이 나 버리는 것입니다. 엔진을 걸 줄 모르고 그냥 나무를 잘랐던 농부는 깜짝 놀라게 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의 힘과 능력이 어디에서 나옵니까 아무리 톱이 모양이 좋고 이빨이 날카롭다 하더라도 엔진이 걸리지 않은 채로는 그냥 손톱보다도 못한 것입니다. 성령께서 우리의 영원한 능력이 되십니다. 죄에 대하여 이기고, 사탄과 연약한 세력에 대하여 이기는 힘은 다름 아닌 성령으로부터 나오는 것입니다. 칠칠절, 아니 맥추절인 오늘은 오순절 성령 강림을 기념하는 날로써 우리에게 아버지의 약속이요 예수 그리스도의 승천선물인 성령이 이 땅에 강림 하셨음을 기뻐하는 날이요 또 우리가 성령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을 고백하는 날이요 그러기에 더욱더 성령 충만을 간구하는 날인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이 오순절의 뜻깊은 예배에 여러분 삶과 가정과 사업 속에 성령이 충만히 임하시기를 이전보다 아니, 작년 보다 더욱더 충만하게 임하시기를 축원합니다.

3. 자 그러면 이제 어떤 모습으로 감사해야 할까요
사람과 사람 사이의 감사에도 당연지사로 선물이 따릅니다. 왜 그렇습니까 사람의 마음은 물질 속에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감사의 마음은 항상 물질로 표현되어 지는 것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물질을 부정한다고 할지라도 인간의 모든 노력은 물질과 연관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욕심도, 꿈도 모두 물질과 맞물려 있는 것입니다. 싸움, 시기, 질투가 왜 생기며 왜 이웃을 사랑하지 못합니까 물질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모세는 가나안을 바라보는 곳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다시 명령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있는 힘을 다하여 예물을 드리라고 말입니다. 이것을 좀 더 생각해 봅시다.
첫째, 힘을 헤아려 예물을 드려야 합니다.
하나님은 힘에 겨운 예물을 하라고 하지 않습니다. 우리 하나님이 베풀지 않은 것을 요구하시는 분이십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그분은 자신이 베푸신 은혜만큼 감사와 예물을 받으시는 것입니다. 우리를 위하여 큰 감사와 예물을 받으시는 것입니다. 우리를 위하여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내어 주신 분이라고 믿는다면 우리는 우리의 가진 것 전부를 드려도 마땅한 일 일 것입니다.그러나 하나님을 은혜를 체험한 대로 감사하라고 하셨습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 칠칠절을 지키되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복을 주신대로 네 힘을 헤아려”라고 10절에서 말씀하셨습니다.
복을 주신대로 은혜를 주신대로 드리십시오. 그 옛날을 기억하시는 분은 그 옛날의 은혜를 아직도 잊지 않고 있다면 그분께 마땅히 영광과 감사를 드려야 합니다.
둘째, 자원하는 예물을 드려야 합니다.
즐거워서 드리지 않는 예물은 하나님이 기뻐 받지 아니 하십니다. 그리고 나에게 복이 되지 않습니다. 자원하는 마음과 함께 하나님 앞에 더 큰 능력과 더 큰 은혜와 더 큰 축복을 성령을 통하여 주실 것을 사모해야 합니다. 입을 벌려야 합니다. 믿음은 항상 어제보다 오늘 한 발 더 진보되어야 합니다. 한 발 나아가 표현되어야 합니다. 그렇게 할 때 이 땅에서 더 큰 하나님의 일군이 되도록 나를 사용하시는 것입니다. 이 복을 받지 않으시겠습니까
셋째, 즐거워하는 구체적인 표현이 있어야 합니다.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자라고 했습니다. 감사는 더 큰 감사 거리를 은혜는 더 큰 은혜를 우리에게 안겨다 줍니다. 그러므로 오늘 하나님의 자녀요 백성된 우리는 어제보다 오늘, 오늘보다 내일 더욱 더 감사하고 기뻐하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의 삶과 신앙 속에서 이것이 끊어지면 안됩니다. 그동안 나태했고 망각했고 소극적이었던 우리의 신앙 습관을 오순절을 맞이하여 더욱더 성령 충만해져서 이 세상을 능히 이겨야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저는 오늘 이 예배에 감사의 예물로 즐거워하는 마음으로 자원하는 심령과 사모하는 열정으로 나아 오신 여러분들 머리 위에 삼위 하나님의 더 큰 은혜와 축복의 역사가 임하여 용기와 신앙이 어제보다 더 백배하여 살아갈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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