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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사망에서 생명으로 (요 05:1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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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삽화는 확실한 증언에 따른 것으로 실제로 있었던 일입니다.

1979년 8월.

그 때 캄보디아와 라오스 난민들이 대거 몰리는 태국 국경은 아직 정식으로 열려있지 않았습니다.두달 뒤인 그 해 10월에 이르 러서야 제대로 열리게 됩니다.

그 때,드물게는 3년간의 정글 속 도피행,짧아야 반 년에서 1년 몇개월에 걸쳐 고생 고생 끝에 용케 국경지대까지 이른 사람들은 때마침 한창 장마철이어서 곳곳에서 가슴까지 차오르는 물 속을 건 너지 않으면 안되었습니다.여기 저기 황토색의 벌건 흙탕물 속에는 굶어죽은 시체들,썩은 시체들이 널려져 둥둥 떠다녔고,구렁이와 갖 가지 독충들이 우글거리고 있었습니다.

아직 정식으로 열려있지 않은 태국측 국경에서는 이들을 향해 쉼없이 총을 쏘아댔습니다.폴포트 게릴라들도 뒤쫓아오며 총을 난 사했습니다.

이렇게 앞에서 가로막고 뒤에서도 쫓아와 총화 속에 갇힌 난 민 한 사람은,그때 물웅덩이 속에서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었습니 다.이미 몇 발의 총알을 몸에 맞은 그는 마지막 안간힘을 써 총 맞 아 뚫려있는 가슴 속에다 한 손을 집어넣어 자신의 내장을 뜯어내 어 그 지경이 되기까지도 자신의 몸뚱이로 감싸고 있던 너무 오랫 동안 굶어 앙상한 뼈 뿐인 어린 자식에게 '이걸 먹어라.먹고 기운 차려서 이곳을 벗어나거라'하며 건네 주었습니다.아이가 피로 엉겨 있는 그 내장을 받아드는 동안에 벌써 아범은 기진 맥진 물 속으로 가라앉아 갔습니다.아직 철부지 어린애였지만 그 아이는 모든 것을, 아버지의 바램까지를 이해했습니다.이제 공포나 슬픔같은 것에서도 훨씬 넘어선 허탈지경 속의 그 아이는 내장을 움켜잡고 피를 빨아 핥았습니다.몇 달만에야 입 안에 제대로 닿은 비릿한 먹이였습니다.

이 일은 뒤에 카오이단 난민촌이라고 불린 지점 근처에서 실 제로 있었던 일이었습니다.총에맞아 '사망'에 이르게 된 아버지가 자신의 몸을 자식의 '생명'을 위해 바친 것입니다.

오늘 말씀의 제목은 "사망(死亡)에서 생명(生命)으로"입니다.

범죄한 인간이 사는 세상은 사망의 세력이 지배하고 있습니다.

"(히9:27)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벧전1:24) 그러므로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이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 (벧전1:25) 오직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도다..." 연속 사극에 나오는 이조 500년의 역대 임금들을 보면,각양 좋 은 보약을 다 먹었지만 눈 깜짝할 사이에 다 죽어 버렸고,피바람을 일으키며 정권을 탈취했지만,전광석화(電光石火)와 같이 지나가 버 리고 지금은 무덤에 비석 몇개만 남았습니다. 모든 육체는 이와같 이 곧 시들고 말라지는 풀과 같은 인생입니다.또한 흙에서 돋아난 풀은 밟혀도 죽고 토끼나 병아리 같은 짐승이 뜯어 먹어도 죽어 없 어지고 마는 것입니다.

이와같이 인간의 육체는 '티코' 같은 차에 치어도 죽고,병이 나 서도 죽고, 물에 빠져서도 죽습니다.어떤 사람은 면도하다가 코털하 나 뽑았는데,파상풍으로 그 이튿날 죽고 말았습니다.인간의 육체는 이렇게 약한 존재인데 몇 천년이나 살 것처럼,욕심을 내고,육신의 생활에 소망을 두고 삽니다.인간이 60층,100층 고층 빌딩을 짓고,달 나라에 가고,세계를 정복한다고 해도 풀과 같이 낮고 볼품없는 존 재입니다.비행기를 타고 하늘에 올라가 보면 고층 빌딩도 성냥곽을 세워놓은 것같고,벤스,케딜락 고급 승용차도 개미 기어다니는 것 같 습니다.대통령을 한다 해도 장관을 한다 해도 천상의 성도가 내려 다 볼 때는 도토리 키재기 하는 것 같은 것입니다.개가 교통사고로 죽으면 보신탕 해 먹으려고 끌어가는 사람이 있지만,사람이 죽으면 가까이 가기도 싫어합니다.

이와같이 흙에서 난 인간이 풀과 같고,그 영화도 풀의 꽃과 같 이 짧지만 하나님께로부터 온 영혼은 영원한 생명을 지니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것은, 들의 풀과 같이 사망에 이르 게 되는 인간에게 영원한 생명을 부어주시기 위해 오신 것입니다.

사망이 지배하는 세상에 참 '생명'을 주시기 위해 하나님께서 인간 의 몸을 입고 세상에 오셨습니다.그 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히2:14) 자녀들은 혈육에 함께 속하였으매 그도 또한 한 모 양으로 혈육에 함께 속하심은 사망으로 말미암아 사망의 세력을 잡 은 자 곧 마귀를 없이 하시며 (히2:15) 또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일 생에 매여 종노릇하는 모든 자들을 놓아주려 하심이니" "(요1:1)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 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요1:2)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요1:3)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요1:4)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예수님은 생명을 주시는 분이십니다.이제 누구든지 예수님을 자신의 구세주로 입술로 시인하고 마음으로 영접하여 믿으면 사망 의 세력이 떠나고 영원한 생명이 그의 생애를 지배하게 됩니다.

"(요14:6)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내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그리스도 가 내 안에 거하게 될 때 비로소 인간은 완전한 삶을 영위할 수 있 게 되는 것입니다.예수 그리스도가 생활 속에 들어 왔을 때 사람은 삶이 새롭게 되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그 자신이 변화되고 그의 개인적인 인간 관계가 변화되고 노동과 의무와 즐거움에 대한 그의 개념이 변화되고 하나님에 대한 그의 관계가 변화됩니다.생활은 기 쁨과 축복된 방향으로 전환되고 개조되며 창조적 생명력을 가지게 됩니다.그야말로 삶의 참된 활력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요5: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 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 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본문에서 예수께서는 자기를 영접하는 것은 생명이고,자기를 배척하는 것은 곧 사망이라고 아주 간단히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을 영접하는 것은 생명을 발견하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은 어떤 의미로는 살아있다고 말할 수 있을지 모르 나 참된 의미에서 생명을 알고 있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별로 없습니다.대개의 사람들은 존재(存在,exist)는 하고 있지만, 살고 (live) 있지는 않습니다.

브라우닝(Browning)은 서로 깊이 사랑하는 두 연인의 만남을 다음과 기술하고 있습니다.

"여자는 남자를 쳐다 보았다.그 남자는 사랑하는 자가 할 수 있는 눈빛으로 그녀를 보았다.그리고 '돌연히 생명이 눈을 떴다고" 어떤 현대 소설가는 한 등장 인물로 하여금 상대방에게 다음 과 같이 말하게 하고 있습니다.

"나는 그대의 눈빛 속에서 인생을 발견하기 전까지는 결코 인 생이 무엇인지 몰랐습니다."라고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그의 삶의 길을 받아들인 사람은 이미 사망을 넘어서 생명에 이른 것입니다.즉 이 세상에서는 생명이 새 롭고 감격적인 것이 되고 오는 세상에서는 하나님과 함께 영원한 생명이 보증되는 것입니다.

생명이신 예수님을 영접하고 사랑하게 되면 삶의 질(質)과 내 용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박해자였던 사울이 사도 바울로 변화되었습니다.

세리 마태,삭개오가 그랬습니다.

어부 베드로가 그랬습니다.

창녀 막달라 마리아가 그랬습니다.

사랑은 듣는 마음이요, 믿는 마음입니다.흔히 세상에서는 사랑 이라는 이름으로 많은 사람들을 괴롭히고 있는데, 참으로 사랑하는 것은 첫째가 듣는 것이며, 둘째가 믿는 것입니다.사랑에는 의심은 있을 수 없습니다.가끔 부모들은 자식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자식들 의 말을 믿어 주지 않습니다.아흔 아홉 번을 속았더라도 마지막 한 번에 다시 기대를 갖고 믿어 주어야 합니다.속지않아야 똑똑한 어 머니인양 착각하기도 하지만,어머니만은 끝까지 아들을 믿어 줘야 합니다.사랑하기 때문에 믿는 것이며 믿는 것은 곧 영접하는 것입 니다.

"(요5: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 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 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우리가 그리스도의 말씀을 듣고 믿으면 영생을 얻는다는 것은, 말씀을 들음으로 그 말씀이 우리의 생활을 지배하게 되고 믿음으로 그 믿는 내용이 나를 다스리게 되어 순종하게 하며,순종하게 한 성 령이 곧 나의 인격의 주인이 되는 것을 말합니다.이를 가리켜 사망 에서 생명으로 옮겨졌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사망이란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마음이 없는 두려운 관계로써, 느낌이 없고 감격이 없습니다.그 가운데서도 가장 무서운 것은 생 각이 없어 회개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고집의 노예,거짓의 노예,사 탄의 노예가 되어서 죄를 지을 뿐만 아니라 죄에 대한 변명만 하게 됩니다.죄를 짓고도 교만하며 당당하여 회개할 마음은 도무지 없는 것입니다.사실 변명하는 마음은 우리의 조상 아담과 하와 때부터였 습니다.선악과를 따먹은 변명을 아담은 하와에게,하와는 뱀에게 돌 리느라고 회개하지 못했습니다.그 결과 죽은 것입니다.그 이후 인간 에게 사망의 세력이 지배하게 된것입니다.영적으로 죽은 자는 회개 가 없습니다.인간은 얼마나 죄를 지었느냐 아니냐 보다는 예수믿고 회개가 있느냐 없느냐가 결정적인 문제인 것입니다.

"(마4:17) 이 때부터 예수께서 비로소 전파하여 가라사대 회개 하라 천국이 가까왔느니라 하시더라." 죽었느냐 살았느냐 하는 문제는 의인이냐 악인이냐에 있는 것 이 아니라 교만하냐 겸손하냐,회개하느냐 안하느냐에 있는 것입니다.

미국의 헨리 누엔 박사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학자이자 교수였 습니다.어느 날 갑자기 그는 명문 하버드 대학의 교수직을 사임하 고 매사추세츠에 있는 작은 정신 박약자 수용소인 데이 레이크 학 원의 직원으로 자청해 가서 봉사했습니다.명문 하버드 대학의 교수 라는 명예와 많은 보수를 사양하고 정신 박약자들에게 용변보는 법 을 가르치고,식사와 세수를 돕고 옷을 갈아 입히는 일을 하며 지냈 던 것입니다.이에 많은 사람들이 그에게 관심을 가지고 그가 왜 그 런 일을 하는지 궁금해할 때,그는 '예수 이름으로'라는 책을 썼습니 다.그 책의 요지는 '예수를 진정으로 알려면 내리막길을 체험해보 아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주님이 말씀하고 몸소 행했던 복음의 교훈은 내리막길에서만 체험된다는 것입니다.

그는 어려서부터 공부를 잘해서 신동이란 별명을 들었던 사람 이고,하버드 대학교수가 된 후 책도 20여권을 집필했으며,그 책 모 두가 베스트셀러가 되어 누구나 그의 얼굴을 한번 보기를 원할만큼 존경받는 인물이었습니다.그러나 한창 인기와 명성이 치솟던 그때 그가 느낀 것은, 더욱 거만해지고 교만해져 가는 자신의 타락한 몰 골이었습니다.'꼭대기를 향하여 오르막길로만 전진하다 보니 예수 는 안보이더라'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는 어디로 향하고 있습니까 여러분은 지금 기어이 높은 곳에 올라야만 큰 것을 얻을 수 있다고 여기고 있지는 않습니 까 만약 아직도 바라던 것을 얻지 못했다고 생각한다면 이젠 눈을 낮은 곳으로 돌려 보시기 바랍니다.거기서 그 동안 간과해왔던 전 혀 새로운 의미를 발견할 것입니다.겸손한 가운데 예수님을 영접하 시기를 축원합니다.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다"는 것은 회개하지 않은 심정,즉 완 악하고 교만하고 변명하여 하나님과의 진노의 관계에서,회개하고 돌아섬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고 자기를 소중히 여 기는 영생의 관계로 바꾸어 놓았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요5:25)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죽은 자들이 하나 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듣는 자는 살아 나리라." 이제 아들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는데, 곧 이 때라는 것은 예 수께서 오셨음을 의미하는 것이요 말씀이 전파되고 성령이 감동하 는 것을 말합니다.성령이 감화 감동을 주실 바로 이 때 지금,들어야 만 한다는 것입니다.지금 기회를 놓쳐서는 안됩니다.그것은 곧 죽음 이기 때문입니다.만약 들리지 않는다면 죽었기 때문입니다.가장 무 서운 심판은 말씀이 들리지 않고 믿어지지 않으며 사랑이 식어지는 것입니다.

성령의 감화 감동하심이 여러분들에 충만하시고,그래서 성령의 감화 감동으로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이 사랑의 음성으로 들려지시 기를 축원합니다.

"(계2:7)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 지어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의 과 실을 주어 먹게 하리라." "(계2:11)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 을찌어다 이기는 자는 둘째 사망의 해를 받지 아니하리라." "(계2:17)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 을찌어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감추었던 만나를 주고 또 흰 돌을 줄 터인데 그 돌 위에 새 이름을 기록한 것이 있나니 받는자 밖에 는 그 이름을 알 사람이 없느니라." 역사상에 많은 중요한 일들이 일어났지만 1492년에 콜럼버스 가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한 것은 큰 사건입니다.그때까지만 해도 스페인이 세계를 지배할 만큼 대국이었으므로 스페인의 동전 위에 영어로 번역하면 "저 너머에는 더 이상 아무것도 없다."라는 말이 라틴어로 기록되어 있었습니다.그들이 당시 알고 있는 우주라고 하 는 것은 지중해 끝이 우주의 끝이고 지브랄타를 땅 끝으로 보았기 때문에 더 이상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자기들이 마치 우주의 중심인 것처럼 착각을 했던 것입니다.

그러다가 콜럼버스가 미대륙을 발견한 이후에 스페인 사람들 이 놀래서 앞에 있는 단어 'No' 를 지워버렸습니다.그래서 "저 너 머에는 다른 것이 더 많이 있다."라는 뜻이 되어 버렸습니다.이 말 이 후일에 스페인 왕가의 가훈이 되어 오랜 동안 사용되었습니다.

"저 너머에는 또 다른 큰 많은 것이 있다.그러니 왕들아 이 세상이 전부인 줄 알고 교만하지 말고 조심해서 하라."는 뜻으로 후손들에 게 교훈이 되었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인하여 우리들에 게 죽음 저 너머의 영원한 생명의 세계가 있다는 것을 확실하게 알 려 주셨습니다.

진리가 되시는 예수님의 말씀을 지금 들으시고, '나를 따르라' 는 예수님의 말씀에 그물과 배를 버려두고 예수님을 따라갔던 베드 로처럼, 인생의 참 길이 되시는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결단과 생활 로 사망의 어둠이 완전히 사라지고 빛과 생명이 넘치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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