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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성탄절을 어떻게 지키시렵니까? (마 02: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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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다 성탄절을 맞이하지만 성탄절을 맞을 때마다 가슴이 설렙니다. 마치 우리가 예수를 믿고 처음 맞이했던 성탄절처럼 새롭고 거룩함을 느낍니다. 벌써부터 TV에서는 "고요한 밤 거룩한 밤" "기쁘다 구주 오셨네" "그 어리신 예수 눌 자리 없어" 등 성탄절의 찬송들이 들 려 오고 있습니다. 아마 다른 노래를 이처럼 많이 들었다면 실증이 났을지 모르겠습니다. 그 런데 성탄절 찬송은 아무리 들어도 실증이 나지 않습니다. 일본 사람인 우찌무라 간조 선생 은 "하나님은 감정에 사로잡힌 사상가가 아닙니다. 인간들이 죄에 빠져 있는 것을 보고 혼 자 흐느껴 울고 계시는 분이 아닙니다. 그는 실천가로서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예수 그 리스도를 보내셨습니다. 그러므로 성탄절은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 하사 예수를 보내신 실천 기념일입니다."라고 성탄절을 설명했습니다. 예수께서 처음에 세상에 탄생하셨을 때 여러 부 류의 사람들이 아기 예수가 나셨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또 아기 예수가 나셨다는 소식을 들은 사람들은 여러 가지 반응을 보였습니다. 오늘은 이들이 보여준 모습과 반응을 보면서 오늘 우리들은 예수 그리스도가 탄생하신 성탄절을 어떻게 지켜야 할지 생각해 보는 기회가 되기 바랍니다.

⑴.동방의 박사들 본문에서 말하는 동방의 박사들은 박사라고 언급된 점으로 미루어 보아서 아마 바벨론이나 파사에 살면서 별을 보고 별자리를 연구하는 천문학자들이었거나 아니면 점성술에 익숙한 사람들이었을 것으로 추측됩니다. 이 동방 박사들은 평소에 늘 별을 관측하든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어느 날 이상하고 큰 별이 나타남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그 별을 따라서 먼 길을 고생스럽게 찾아왔습니다. 예수 님이 탄생하시던 2천년 전에는 교통이 불편했던 때이 기에 지금처럼 빠르고 좋은 비행기나 아늑하고 쿳숀이 좋은 자동차가 없었을 때입니다. 그 래서 그들은 약대를 타고 머나먼 사막 길을 걸어서 별을 따라 예수 님께 경배하려고 찾아 왔습니다. 그들이 예수 님께 오기까지는 엄청난 많은 고생을 했을 것입니다. 우선 그들이 오 던 길은 평탄한 길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높은 산도 있었을 것이고 거친 광야도 있었을 것 이며 강과 바다도 있었을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강도의 위험이 있었을 것이고 맹수의 위협 이 있어서 생명의 위험을 느꼈을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여러 가지 위험을 무릅쓰고 예수 님 께 경배하려고 베들레헴까지 찾아왔습니다. 그들은 그냥 온 것이 아니고 귀중한 황금과 유 향과 몰약을 예물로 준비해 가지고 왔습니다. 찾으려고 애쓰고 고생한 끝에 찾던 분을 만난 그들의 기쁨은 세상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이 컷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그렇게 찾고 고대하던 그분 예수 님이 말구유에 계시는 것을 본 그들은 황송하고 당황하고 어쩔 줄 몰랐 을 것입니다. 그러나 정성스럽게 마련한 예물을 드리는 그들은 아마도 모든 감정이 북받쳤 을 것입니다. 그들은 그토록 사모하고 기다리던 예수가 나셨다는 소식을 듣고 달려와서 예 수 님께 경배했습니다. 오늘 성탄을 맞이하는 우리들에게도 이와 같은 기다림과 사모함이 있어야 하겠습니다. 젖먹이 어린아이가 어머니의 젖을 먹고 싶어서 간절히 기다리는 것 같 이 주님의 오심을 반가이 맞이하기 위해서 간절한 마음으로 기다려야 할 것입니다.

⑵.헤롯 왕과 예루살렘 사람들 예수 님이 탄생하시던 때 유대 나라는 로마의 속국이었고 유대 나라는 헤롯이 분봉 왕으로 있을 때 였습니다. 역사가 요세푸스에 의하면 헤롯은 원래 에돔 사람이었는데 후에 유대 왕 이 되어 37 년간 왕 노릇 하다가 여리고에서 죽은 사람으로서 자신의 정권을 보존하기 위해 서 친자식까지 죽인 잔인 무도한 사람이라고 합니다. 이와 같이 정권 수호에 혈안이 되어 있는 헤롯 왕은 유대의 진정한 통치자는 자신밖에 다른 사람이 있을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 다. 그런 생각을 갖고 있는 헤롯 왕에게 자신이 아닌 새로운 왕이 탄생했다는 소식은 대단 한 도전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헤롯을 새로 태어난 왕인 아기 예수를 죽여 버리려 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헤롯과 온 예루살렘이 듣고 소동 한지라' 라고 했는데 이 말은 헤 롯을 추종하던 추종 세력들이 새로운 왕이 태어났다는 소식을 듣고 소동했다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그들이 벌인 소동은 새 왕으로 태어나신 예수 님을 경배하기 위한 소동이 아니라, 예수 님을 미워하고 경계하고 죽이기로 생각하는 소동 이였습니다. 헤롯은 자기 외에 왕이 태어났다고 했을 때 얼마나 살기가 등등했겠습니까 누구를 위한 소동입니까 자신의 정권 보존을 위한 극히 이기적인 소동이었습니다.

오늘날 성탄절이 되면 교회들마다 소동을 칩니다. 야단법석입니다. 성탄 트리를 만들고 선 물을 교환하고 맛있는 음식을 장만하느라 소동을 일으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성탄의 주인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경배하기 위한 소동이어야지 예수를 죽이고 예수의 마음을 아프 게 하는 소동이라면 헤롯이 벌린 소동과 다를 바가 없지 않겠는가 우리는 이들같이 소동하 는 성탄절을 맞이해서 안되겠습니다.

예수 님 당시의 예루살렘에는 예수 님을 경배하기 위하여 소동이 난 것이 아니라, 예수를 죽이기 위한 소동이 났기에 문제인 것입니다. 오늘 많은 사람들이 맞이하는 성탄절은 도대 체 어떤 내용의 성탄절일까 오늘의 성탄절을 색깔로 표현해 보면 흰색 크리스마스:눈 내린 들판처럼 거룩하고 깨끗하게 지키는 성탄절을 의미합니 다.

검은색 크리스마스:흑심의 욕망을 채우려고 지키는 어두운 크리스마스를 의미합 니다.

분홍색 크리스마스:도색의 음탕한 밤으로 먹고 마시며 죄짓는 크리스마스를 의미 합니다.

노란색 크리스마스:본문에 나오는 동방 박사들처럼 귀중한 것을 바치기보다는 노 랭이처럼 하나님께 바치지 않고 인색하게 보내는 크리스마스 를 의미합니다.

회색 크리스마스:술 취한 무리들이 길거리를 배회하는 크리스마스를 의미한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들의 성탄절은 어떤 색깔의 성탄절이겠습니까 혹 우리는 동방 박사들 처럼 우리들이 가지고 있는 것 중 귀중한 것을 바치지 못하고 노랭이처럼 인색하게 크리스 마스를 보내지 않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⑶.대 제사장과 서기관들 예수 님 탄생 당시 예루살렘이 있던 대 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은 일찍이 율법을 통해서 그리 스도의 나실 곳을 척척 알아맞히면서도 정작 그리스도가 탄생하셨을 때에는 찾아와 경배하 지 아니했습니다. 그들은 예수를 지식으로는 잘 알면서도 믿음으로 받아 드리지 못했기 때 문입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박사들은 별을 보고 그 별이 가는 방향으로 길을 떠났고 그 리스도를 찾아서 경배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진리를 찾아 발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를 따르는 것은 더욱 중요한 일입니다. 주님은 비유로 말씀하셨습니다. 좋은 진주를 구하는 장 사가 극히 값진 진주 하나를 발견하면 즉시 집에 가서 모든 가산을 다 팔아서 그 진주를 사 지 않으면 그 진주는 내 것이 될 수 없다고 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기독교를 아는 지식으로는 구원을 얻을 수 없음을 알아야 합니다. 기독 교는 이론의 종교가 아니고 믿음의 종교입니다. 기독교는 말이 아닙니다. 기독교는 예수를 나의 주로 믿어야 하는 종교입니다. 우리는 역사 속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상식으로 아 는 것이 아니라, 그를 구주로 믿으면서 성탄절을 뜻깊게 지켜야 합니다. 예수는 인류를 구원 하시려고 육신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오늘 성탄절을 맞으면서 우리 모두는 예수를 책에서 배운 역사의 인물이 아닌 바로 나의 구세주이심을 믿는 성탄절 이 되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⑷.들에서 양을 치던 목자들 목자들은 복음을 듣고 사모하였습니다.(15절) 천사들의 찬송을 통해 복음을 들었을 때 목자 들은 그 사실을 믿었습니다. 믿지 아니하는 자들은 주님이 직접 복음을 전했어도 믿지 않았 습니다. 목자들은 은혜를 입은 자들이기에 믿어진 것입니다.(엡2:8) 한 걸음 더 나아가 목자 들은 보기를 사모하여 즉시로 보고자 하였던 것입니다. 사모하는 자들의 특징은 기회가 있 을 때에 지체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은혜를 얼마나 사모하고 있습니까! 목자들은 빨리 가서 주님을 보았습니다.(16절) 복음을 듣고 이들은 지체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어떤 것보다도 주님을 보는데 그 우선 순위를 두었습니다. 양들을 지키는 것보다 아 기 예수 님을 먼저 보고자 했습니다. 그래서 16절에는 "빨리 가서 마리아와 요셉과 구유에 누인 아기를 찾아서"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현대인들의 신앙적 태도는 신앙을 인생의 한 악세사리로 생각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시간이 남으면 예배나 드리고, 돈이 남으면 감사나 하고, 자녀의 시험이 눈앞에 닥치면 기도하고, 다 죽게 되어서야 주님께 이 몸을 드리겠다고 하지들 않습니까

목자들은 보고들은 것을 전하였습니다.(17절) "보고 천사가 자기들에게 이 아기에 대하여 말한 것을 고하니" 이들은 받은 은혜를 전하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이 말을 듣고 기이히 여기는 자도 있었고 (18절) 은혜를 받았던 마리아는 마음에 지키어 생각하기도 했습니다.(19절) 복음을 듣고 다 믿고 생활이 달라지지는 않습니다. 은혜 받은 자만 기뻐하 고 감사하고 삶에 변화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 결과야 어찌하던 은혜 받은 자는 복음을 전하고 싶어하고, 그 일에서 보람을 찾고, 열심을 냅니다.

목자들은 찬양으로 주께 영광을 돌렸습니다.(20절) 인간이 하나님께 드릴 수 있는 최대의 감사는 찬양인 것입니다. 찬양은 곡조 달린 기도요, 하나님 자녀의 특권이요, 피조물의 의무 인 것입니다. 찬양을 통해서 하나님은 영광을 받으시기 때문에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찬양 중에 거하신다고 말씀하십니다."(시22:3) 양을 치던 순진한 목자들에게 아기 예수가 나셨다 는 소식이 전해졌을 때 그들은 "빨리" 뛰어 갔습니다. 그들은 기다렸던 처라 빨리 뛰어갔습 니다. 마음이 없는 발걸음은 느린 것입니다. 빨리 달려가는 마음, 주님 곁으로 가고 싶은 마 음, 그를 사랑하는 마음, 경배하고 싶은 마음, 시간과 물질을 바치고 싶은 마음을 가진 사람 은 빨리 예수 님을 향해 뛰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 님을 경배하며 기쁘게 해 드리려고 뛰어 갔습니다. 생일에는 주인공이 기뻐해야 합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주인공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기뻐하기보다는 축하를 해야 할 우리가 더 기뻐하고 있습니다. 주객이 전도된 크리스마스를 보내고 있지 않는지 모르겠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 하사 독생자를 주셨 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 하사 가장 사랑하는 아들을 주셨습니다. 그러기에 금년 성탄 절은 날 위해 독생자를 보내 주신 하나님을 기쁘게 해 드리는 성탄절이 되도록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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