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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영적 지도력(5) (마 05:1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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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지금 몇 주일에 걸쳐서 영적 지도력에 대한 말씀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의 희망은 경제의 발전과 정치와 사회의 안정에 달려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크리스챤들의 영적 지도력 발휘입니다. 이 세상의 희망은 크리스챤들이 영적인 리더쉽을가지고 세상 사람들을 하나님과 진리이신 하나님의 말씀으로 이끄는 데 있습니다.
오늘날 이 세상의 가장 큰 문제는 크리스챤들이 영적인 지도력을 상실하고 오히려 세상 사람들에게 끌려 다니고 있다는 데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크리스챤들이 영적인 지도력을 갖는다는 것은 우리와 우리의 후손 뿐만 아니라 이 사회를 위하여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모릅니다. 저는 사랑하는 우리 동안 교회의 교우 여러분들이 영적인 지도력을 갖는데 대하여 관심을 가지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세상의 그 어느것 보다도 더 욕심을 가지고 그것을 얻기 위하여 기도하실 수 있으시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지난 주일 소금의 역할과 빛의 역할이 훌륭한 영적인 지도자가 갖추어야 할 영적 리더쉽이라는 말씀을 생각했습니다. 소금의 역할은 자기를 부인하고 겸손하여 자기를 드러내지 아니하고 감추는 역할이요, 빛의 역할은 신앙 생활과 사회 생활에 있어서 그 어느것 하나 감출 것 없이 다 드러낼 수 있는 깨끗함과 진실을 드러낼 때 일차적으로 받아야 하는 손해와 불이익 앞에서도 그것을 감추지 아니하고 당당하게 드러내는 용기와 같은 것이라는 말씀을 생각했습니다.
여러분 이 말씀을 귀히 여기시고 사모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코스타에서 만나서 알게 된 청년 하나가 있습니다. 지금 미국에서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청년인데 여름 방학 때 마다 한국에 나오곤 합니다. 한국에 나오면 꼭 저희 교회에 출석을 합니다. 집이 마침 우리 교회에서 멀지 않기 때문에 그는 거의 새벽 기도회도 빠지지 않고 나오곤 합니다.
이번 여름 방학 동안에도 한국에 나와 있었는데 지난 주에 미국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는 미국으로 들어가면서 저에게 부탁을 하나 하고 들어 갔습니다. 소금과 빛의 역할을 설교한 지난 주 설교 테잎과 설교 책자를 미국으로 우송해 달라고 주소를 적어 놓고 갔습니다.
똑같은 말씀을 듣고도 별 큰 감동과 깨달음이 없이 흘려 버리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 청년은 그 말씀을 귀히 여기고 마음에 새기려고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옥토와 같은 마음 밭을 가진 사람의 모습이요 자세인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시기를 바랍니다. 귀히 여기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그것을 흘려 보내지 마시고 기도로 가두어 두시기를 바랍니다. 가능하면 설교 테잎을 사셔서라도 주일 중에 몇번 정도 반복해 들으시면서 은혜와 깨달음을 넓혀 가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그 말씀의 열매를 맺기 위하여 노력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세상의 모든 지도자가 반드시 가져야 할 가장 중요한 리더쉽은 정견 (正見) 과 선견(先見)입니다. 다시말해서 '바로 볼 줄 앎'과 '먼저 미리 볼 줄 앎'입니다.
바로 볼 줄을 모르고 먼저 미리 볼 줄 모른다면 그는 아무리 나이가 들고 지위가 높다고 하여도 지도자가 될 수는 없습니다. 지도자의 능력은 나이에 있는것도 아니요 지위에 있는 것도 아니요 바로 이 정견과 선견의 능력에 있는 것입니다. 그래야만 저를 믿고 따르는 사람들은 옳고 바른 곳으로 인도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자신과 이 세상을 위하여 정견과 선견을 욕심 내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정견과 선견의 축복을 받는다면 여러분은 이 세상에서 실패하지 않고 성공하게 될 것입니다. 이 세상의 사람들이 실수하고 실패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가 무엇인지 여러분은 아시지 않으십니까 그것은 바로 오판입니다. 판단이 잘못될 때 우리는 평생의 수고를 다 망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정견과 선견은 우리의 삶에 있어서 가장 중요하고 근본적인 하나님의 축복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은 이 놀라운 하나님의 축복을 사모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욕심 내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정견과 선견의 축복을 받게 되면 여러분들은 여러분의 자녀와 세상 사람들은 옳고 바른 곳으로 이끌 수 있는 영적인 지도력을 가진 영적인지도자가 되는 복을 겸하여 받게 될 것입니다.
정견과 선견의 축복은 무엇을 통해서 얻을 수 있을까요 물질이 때로는 제법 힘도 능력도 있지만 그것은 절대로 물질로는 얻을 수 없습니다.세상의 권력도 때로는 힘이 있지만 정견과 선견의 축복을 세상의 권력으로 장악할 수는 없습니다. 오히려 그러한 것들은 정견과 선견을 방해하는 요소가 될 수도 있습니다.
오히려 물질과 권력에 눈이 어두워 앞을 내다보지 못했음으로 잠시 권력을 누리다가 큰 수치를 당하는 사람들이 우리 주위에는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정견과 선견의 축복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습니다.
정견은 곧 진리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정견은 진리를 통해서만 얻어질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정견을 가질 수 있게 해 주는 진리는 하나님의 말씀 뿐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셔서 우리에게 주신 것이 많지만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가장 귀하고 놀라운 축복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정견 뿐만 아니라 선견의 축복도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습니다. 전에도 설교를 통하여 말씀을 드린바가 있습니다만 미래는 운명처럼 결정되어져 있는 것이 아닙니다. 미래는 하나님에 의해 약속되어져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와 말씀을 가지고 우리의 미래를 약속하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지 아니하고 지켜 순종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미래를 축복해 주시겠다는 약속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언약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성경을 신약(新約) 또는 구약(舊約)이라고 부른 것입니다.
구약 시대에 보면 선지자가 있었습니다. 우리는 저들을 선견자라고도 부르고 예언자라고도 부릅니다. 저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것으로 예언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속에 저들의 미래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깊이 묵상하면 우리의 미래가 보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면 하나님으로 부터 우리의 미래를 약속받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이 아니시기 때문에 식언(食言)하시는 법이 없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만 하나님과의 약속을 지켜 말씀대로 순종하여 산다면 미래는 결정된 것이나 진배 없습니다.
지난 주 기도원에서는 우리 교회 12 여전도회의 산상수련회가 1차와 2차에 걸쳐서 열렸습니다. 2차 수련회의 강사는 바로 일산 동안 교회의 김해수 목사님이었습니다. 기도원에 올라가 김 목사님과 함께 식사를 하면서 들었는데 얼마전에 40평 짜리 교육관을 임대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로서 벌써 일산 동안 교회는 그만한 크기의 교육관을 세개나 갖게 되었습니다.
일산 동안 교회는 여러분들이 잘 아시는 바와 같이 주일날 장년이 약 600명 그리고 주일학교와 중고등부 학생이 약 400여명 정도가 모이는 큰 교회가 되었습니다. 불과 창립한지 일년 반만에 그와같은 놀라운 성장을 하게 된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와같은 이야기를 들으면 놀랍니다. 그러나 저는 전혀 놀라지 않습니다. 일산 동안 교회의 이야기를 들으면 기쁘고 신이 나지만 놀랍지는 않습니다. 저는 새벽시도회 시간에 마태복음 6장 33절과 34절의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 하시리라'는 말씀을 읽고 우리 동안교회를 건축하기 전에 먼저 개척 교회를 건립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며 그렇게 하면 하나님께서 우리 동안 교회를 쉽게 그리고 아주 잘 지어 주실 것이라는 생각을 하였을 때 저는 이미 오늘의 일산 동안 교회의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 하나님의 말씀 속에 오늘의 일산 동안 교회가 있었습니다. 때문에 그와 같은 일에 과감히 투자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성공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여러분도 여러분의 삶 속에서 일산 동안 교회와 같은 성공과 승리를 맛 보고 싶으십니까 그렇다면 하나님의 말씀을 보시기를 바랍니다. 그 말씀 속에서 하나님의 약속을 찾아 내시고 그 하나님의 약속과 언약을 맺으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그 언약을 실천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반드시 여러분의 삶을 그와 같이 축복해 주실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속에 여러분의 축복된 미래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시고 사랑하셔서 정견과 선견의 축복을 다 받으시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같은 말씀이 되겠지만 정견과 선견의 복을 받을 수 있는 또 하나의 길이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 속에 있는 욕심을 버리는 것입니다. 우리 속에 있는 욕심이 우리의 눈을 어둡게 하여 우리에게서 정견과 선견의 축복을 빼앗아 가는 것입니다.
바둑과 장기를 둘 때 남의 바둑과 장기를 훈수하면 꼭 자신의 장기나 바둑을 둘 때 보다 수가 더 잘 보입니다. 여러분 그 이유가 어디에 있는지 아십니까 그 이유가 바로 승부욕에 있는 것입니다. 내 바둑을 둘 때에는 이겨야겠다는 승부욕이 생기게 마련입니다. 그 승리에 대한 욕심이 우리의 눈을 어둡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남의 바둑을 훈수할 때 우리에게는 승부욕이 생기지 않습니다. 남의 바둑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눈이 밝아지게 되고 수를 더 읽을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산상보훈에서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가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마음이 깨끗하여 욕심의 문제를 해결하면 앞이 보입니다. 미래가 보입니다. 하나님까지 보이게 되는 것입니다.
지난 8월 초 우리 이웃에 있는 청량리 중앙교회에서는 임택진 목사님 팔순 잔치가 있었습니다. 저도 그 잔치에 참여하였었는데 교회가 목사님에게 생신 선물로 금반지를 드렸습니다. 저는 교회가 그 선물을 드리는 순간 선물을 잘못하셨구나 하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저는 목사님께서 그 반지를 끼지 않으실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꼭 20년전 목사님의 60 생신 때 여전도회에서 선물로 금반지를 해드렸었습니다. 그 다음 주일 목사님은 강단에 그 반지를 들고 올라 오셨습니다. 그리고 여전도회원들에게 감사하셨습니다. 그러나 당신은 그 반지를 낄 수가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아직도 교회에는 한 달에 쌀 한말이도 드려야만 사시는 가정이 50 가정이나 되는데 그와같은 교인들이 있는 교회의 목사가 손에 반지를 끼고 어떻게 목회를 하겠느냐는 것이었습니다.
목사님은 그 때 그 이야기를 하시면서 우셨습니다. 그때 저는 참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나도 반지를 끼지 않고 목회를 하여야겠다는 결심을 하였습니다.
역시 목사님은 그 반지를 받으시고는 그 말씀을 하셨습니다. 감사는 하지만 끼지는 못할 터이니 섭섭하게 생각지 말라는 것이었습니다.
목사님 생각을 하면 잊을 수 없는 이야기가 또 하나 있습니다. 이미 여러분들중에 많은 분들이 들으셔서 아시는 이야기이지만 귀한 이야기이기 때문에 오늘 또 반복하려고 합니다.
청량리 중앙 교회가 약 200명 정도 출석할 때 상도동에 있는 800명 가까이 모이는 큰 교회에서 임 목사님을 청빙하였습니다. 아마도 목사님의 마음이 어느정도 움직이셨던 것 같은데 그 낌새를 장로님들이 아시고는 목사님이 움직이지 못하시도록 붙잡았습니다. 그때 선임 장로님이셨던 장로님이 목사님을 만나 '목사님 큰 교회에 가시면 생활비를 더 많이 받게 되셔서 그러십니까 우리 교회도 다음달 부터 생활비를 올려 드릴 터이니 목사님 가지 마십시요'라고 말씀을 드렸다고 합니다.
그때 임 목사님에게서 부터 평생을 잊을 수 없는 근사하고도 귀한 말씀이 나왔습니다.
'소 시장의 묶어 놓은 소는 부르는 사람에 따라 값이 올라도 가고 내려도 가지만 나는 소 시장의 소는 아닙니다'
그 이야기를 듣게 되었을 때에도 저는 깊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마음에 굳게 '나도 소 시장의 소 노릇은 하지 말아야지'하는 생각을 새겨 놓았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생각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교회 장로님 중에 큰 섬유 공장을 운영하시는 분이 계셨습니다. 매주 목요일 마다 직장 예배를 드리곤 하였는데 어느날 저를 강사로 청하여 주셨습니다. 설교를 마치고 돌아오려고 할 때 교통비라고 봉투 하나를 주셨습니다. 집에 돌아와 보니 그 봉투에는 7천원이 들어있었습니다. 그때가 77년도 이었는데 그 당시 7천원은 가난한 신학생의 한달 용돈이 되는 그러한 돈이었습니다. 그 달로 부터 매월 한번 내지 두번씩 장로님 공장에서 예배를 인도하게 되었습니다. 덕분에 별로 돈에 쪼들리지 않는 신학생 생활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어느날 주일 예배를 드리기 위하여 본당을 올라가려고 하는데 장로님 부인 되시는 권사님께서 공장의 직원들이 전도사님의 설교를 좋아한다면서 이번달은 네번을 계속해서 올 수 있겠느냐고 물으셨습니다. 저는 갈 수 있다고 대답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대답을 할 때 제 머리 속에 떠오른 생각 하나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사칠은 이십 팔'이라는 생각
이었습니다.
'나는 소 시장의 소가 아니요'라고 하는 것과 '사칠은 이십 팔'이라고 하는 것의 차이가 바로 영적 지도력의 차이입니다. '사칠은 이십 팔'의 생각을 떨쳐 버리지 못하고 거기에 얽매여 사는 사람에게는 영적인 지도력이 생기지 않습니다. 영적인 지도력은 '나는 소 시장의 소가 아니요'라고 하는 수준에 이르러야만 비로서 남을 지도할 수 있는 영적인 지도력을 갖추게 되는 것입니다.
목사라고 하여서 돈이 필요 없기를 하겠습니까 좋지 않기를 하겠습니까 그러나 돈이 필요하기도 하고 좋기도 하지만 목사가 돈 위에 있어야지 목사가 돈 밑에 있게 된다면 그는 훌륭한 영적인 스승이 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단지 목사만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누구도 이 물질에 대한 욕심을 해결하지 못한다면 그는 훌륭한 영적인 스승이 될 수 없습니다. 물질에 대한 욕심을 버리 수 있을 때에 하나님의 말씀이 바로 보이게 되는 것이며 그러할 때에만 정견과 선견의 능력을 갖출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물질은 그 자체로서 악한 것은 아닙니다. 다만 사람이 물질위에 서느냐 아니면 물질이 사람위에 서느냐에 따라 선해 지기도 하고 악해 지기도 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물질에 얽매어서 물질의 지배를 받게 되면 한이 없이 어리석어 집니다. 정견과 선견의 능력을 상실하게 됩니다. 그러한 사람은 절대로 훌륭한 지도자가 될 수 없는 것입니다.
물질과 명예에 대한 욕심으로 부터 자유할 수 있기를 위하여 기도하시고 노력하시기를 바랍니다. 세상에 대한 욕심을 버리고 하나님과 하나님의 나라 그리고 그의 말씀에 대하여 주리고 목마른 마음을 가지실 수 있도록 노력하시고 기도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정견과 선견의 능력을 가지고 자신의 삶을 복되게 할 뿐 아니라 후손과 후배들을 복되게 하는 훌륭한 영적인 지도자들이 다 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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