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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모세의 기도 (민 14: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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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나와서 가나안 땅을 가는 도중에 일어났던 많은 일들은 오늘 우리들에게 많은 교훈을 줍니다. 하나님께서 사람들에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그 요구에 대한 사람의 응답은 어떤 것인지를 말씀하시고, 사람이 하나님께 바라는 것이 무엇이 였으며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소원에 대해 어떤 응답을 하시는지도 가르쳐 줍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인간에 대한 요구는 쉽고 가벼운 반면에 사람이 바라는 하나님께 대한 요구는 끝이 없고 변덕이 심하고 욕심으로 가득 차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사람의 욕망은 끝이 없는 것이어서 이것을 채우기 위해서 일평생 온갖 수단과 노력을 경주합니다. 사람들은 저마다 이 욕망을 채움으로써 행복해 진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러나 이 욕망이 채워지지 못하고 실패하게 되면 삶은 허망하고 곤고하게 되며 낙심하고 좌절합니다.

본문에 나타난 이스라엘 백성이 바로 이러하였습니다. 그들 중에 영적인 사람은 아직 어린아이와 같았고, 대부분의 백성들은 생리적이고 육적인 욕망만이 가득하였습니다. 애굽에서 해방이 되고 홍해를 건넜을 때에는 기쁨이 있었고 하나님께 찬송을 드렸지만, 어려움에 직면하게 되니까 곧 원망이 터졌습니다. 본래 원망은 전염성이 있어서 이러한 원망과 불평은 온 백성에게 퍼져 나갔습니다.

1.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행한 2가지의 부끄러운 사건
그래서 이들의 원망과 불평으로 인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이 40년 광야 생활을 하면서 씻을 수 없는 두 가지 사건을 낳게 된 것입니다..
첫째는, 애굽에서 나온지 2년만에 가데스바네아에서 있었던 일인데, 가나안을 정탐한 10명의 사람 가운데 2명의 사람은 긍정적인 보고를 하고, 8명의 사람들은 부정적인 보고를 하게 된데서 비롯됩니다. 이에 대한 백성들의 반응은 부정적인 보고만 믿고 “차라리 애굽에서 죽게 하지 왜 우리를 가나안까지 가서 죽게 하느냐.... ” 하면서 원망하고 불평하며 울부짖었습니다.
두 번째는, 그후 38년이 지난 뒤에 가나안에 들어가기 전, 모세의 사촌 동생인 ‘고라’가 주도되어 다단과 아비람이라는 사람과 결탁하여 250명의 저명 인사들을 포섭하고 쿠데타를 일으킨 사건입니다. 모세가 하는 일을 볼 때 별로 특별난 것도 없으면서 지도자로 있는 것에 대해 불만을 품은 것입니다. “모세만 하나님의 종인가 우리도 할 수 있다. 지금 이스라엘에게는 새로운 지도자가 필요하다.”는 등으로 모세의 권위에 대해 정면으로 도전한 것입니다. 이들의 선동에 의해 이스라엘 백성의 온 회중들은 원망과 불평을 서슴지 않았으며 모세를 불 신앙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원망하고 불평하는 것을 묵과하시지 않으셨습니다.
민14:2절에 “이스라엘 자손이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며....” 했고, 민14:11절에서는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이 백성이 어느 때까지 나를 멸시하겠느냐”했습니다. 즉, 하나님이 세우신 자를 대항하고 도전하는 것은 하나님의 권위에 도전하는 것이어서 하나님은 그냥 지나치지 않으신 다는 것입니다.

2. 창조주 하나님은 피조물의 항변이나 반역을 용납치 않으셨습니다.
세상의 삼라만상을 살펴보아도 동물계나 식물계는 하나님께 원망하지 않습니다. 오직 사람만이 하나님께 원망하는 것은 왜일까.... 원망은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하고 믿지 못하는 불신에서 비롯됩니다. 민14:27절에서 “하나님은 인간이 하는 원망의 소리를 다 들으신다”고 했습니다.
원망은 원망하는 사람들끼리 뭉치게 마련입니다. 그 원망은 점점 부풀어져서 개인적인 것이 전염성이 있어서 집단화가 되고, 객관적인 것이 주관적이 되어서 체질화되어 버리는 무서운 것입니다.
결국 고라와 다단과 아비람의 사건으로 인해서 땅이 갈라져 고라에게 속한 모든 사람들과 물건들을 삼키었고, 여호와께 로서 불이 나와서 분향하던 250명을 소멸시켰습니다. 그런데 이튿날이 되자 백성들은 또다시 이 모든 재앙이 모세의 탓이라고 원망하며 모세와 아론을 돌로 치려 하였고, 여호와의 영광이 나타나 염병으로 진노하셔서 14,700명이 죽게 되었습니다(민16:31-50).

사람의 심성이 변화되려면 참으로 오랜 세월을 필요로 하는가 봅니다. 문화를 연구하는 사람들에 의하면, 한 국가의 문화를 이루는 민족성은 대체로 40년이 걸린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 민족성을 바꾸려면 한 세대를 지내야만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집단적으로 원망과 불평을 일삼았는데, 이것은 하루아침에 고칠 수 없는 병이 였습니다. 인간의 마음속에 있는 원망이나 불평의 심성도 40년이 지나야만 변화되는 것입니까 실제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 대한 원망과 불평으로 인한 죄의 대가로 광야에서 40년씩이나 방황해야만 했습니다(민14:34).

모세를 원망한 것은 하나님을 원망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민14:11절에서 “이 백성이 어느 때까지 나를 멸시하겠느냐”고 했습니다. 모세를 향한 원망이나 불평, 그리고 모세를 향해 항거하는 것은 바로 하나님을 향한 것이라는 것입니다. 민14:27절에서 보면, “나를 원망하는 이 악한 회중을 내가 어느 때까지 참으랴”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들을 심판하신 것입니다.
사실 이스라엘 백성을 인도한 것은 모세 개인적으로 한 것이 아니다. 모세는 단지 하나님의 뜻을 따른 것입니다. 그러므로, 모세를 거역하고 반역하는 것은 하나님께 거역하고 반역하는 것이 됩니다.

3. 이것은 사건 앞에서 모세는 어떠한 자세를 취했는가
우리는 여기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잘못을 지적하고 수치를 드러내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본문의 내용을 배경으로 하고, 이와 같은 사건 앞에서 과연 모세가 어떻게 했는가에 초점을 두기로 합시다.
5절에 보면, 모세는 ‘회중 앞에서 엎드렸다’고 했습니다. 엎드렸다는 말은 ‘하나님 앞에 자신을 낮추고 하나님을 높였습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이라면, “복종하겠습니다. 순종하겠습니다. 기다리겠습니다”라는 의미입니다.

주인 앞에 엎드린 종은 주인의 명령이 떨어지기를 기다립니다. 왕 앞에 엎드린 신하도 역시 왕의 명령이 떨어지기를 기다립니다. 그래서 엎드려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엎드린다’는 말은 무슨 명령이든지 복종하고 따르겠다는 자세로 겸손히 기다리는 것입니다. 모세는 바로 이러한 자세로 “복종하겠습니다. 순종하겠습니다. 기다리겠습니다. 주님이 해결해 주십시오!....”하고 엎드린 것입니다. 모세는 중대한 문제가 있을 때마다 이처럼 하나님 앞에 엎드린 사람입니다.

오늘날 우리 성도들도 여러 가지 문제를 만날 때마다 하나님 앞에 엎드릴 줄 아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답답한 문제를 만났을 때, 실패의 쓰라린 잔을 마실 때, 위태하고 어려운 문제들을 만났을 때, 낙담하고 원망이 솟구쳐 나올 때....... 이럴 때 우리는 겸손히 엎드려야 합니다.

멜랑 코턴은 “환난과 곤고는 나를 골방으로 넣어 기도하게 하신다”고 고백했습니다. 엎드려 기도할 때 하나님은 해결해 주십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엎드려 기도하면서 기다릴 줄 알아야 합니다. 성도가 주님 앞에 엎드리면 주님은 결코 외면하지 않습니다.

고아의 아버지 죠지 뮐러는 5만 번의 기도 응답을 받은 사람이 였습니다. 어느 날 아침에는 고아원에 먹을 것이 떨어졌는데 믿음을 가지고 고아들에게 빈 접시를 나눠주고 기도를 했습니다. 그런데 기도를 마친 직후에밖에 차가 와서 빵빵거려서 나가 보니 빵 공장에서 빵을 가득 싣고 와서 있더라는 것입니다. 성령께서 빵 공장의 주인에게 역사 하셔서 오게 된 것입니다.

기도는 삶의 어려운 장벽들을 뛰어 넘어가게 하는 능력이 됩니다. 그러므로, 기도의 응답은 자연을 통해서 든지, 환경을 통해서 든지, 물질계를 통해서 든지, 인간을 통해서 든지 간에 반드시 역사 하신다는 사실을 믿어야 합니다. 어떤 경우에는 마음만 먹어도 주님이 함께 하시는 것을 경험하게 되는데, 기도의 응답은 때로 즉시 들어주시기도 하고, 기다렸다가 들어주시기도 합니다.

한국의 6,25전쟁 당시 부산만 남고 위기에 처해 있을 때, 이승만 대통령은 주의 종들에게 기도할 것을 부탁했습니다. 그런데, 기도했더니 이상할 정도로 역사 하셔서 거부권을 행사할 소련이 UN에 불참케 되어 한국전에 UN의 지원을 받게 되었습니다. 이 사건 역시 하나님께서 사람과 자연계를 통해서 놀랍게 역사 하신 실례입니다.

모세는 급한 성격이었고 문무를 겸한 사람이 였습니다. 그에게는 거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러한 그에게 많은 사람들이 항거하고 대적하고 원망할 때 얼마나 참기가 힘들고, 얼마나 스트레스를 받았겠습니까 그러나 이럴 때 모세는 엎드려 기도했습니다. 시18:1-2절에서 “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 여호와는 나의 반석이 시요 나의 요새 시요 나를 건지시는 자시요 나의 하나님이 시요 나의 피할 바위 시요 나의 방패 시요 나의 구원의 뿔이 시요 나의 산성이 시로다”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주님을 신뢰하는 사람이라면 주님 앞에 엎드려야 합니다. 주님 앞에 엎드린 사람은 주께서 친히 방패가 되시고, 요새가 되시고, 산성이 되셔서 어렵고 곤고할 때마다 힘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육체와 영혼, 이 두 가지로 구성되어 있어서 영혼이 건강해야 육체를 지배하여 참다운 건강의 삶을 살수가 있습니다. 영이 병들면 정신과 육체가 병들게 마련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무엇보다도 영적인 건강을 위해서 노력을 해야 합니다.

그러면 영적인 병은 어떻게 오는가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면 병이 들게 되고, 마음이 편치 않으며, 기쁨이 없고, 말씀에 깨달음이 없을 뿐만 아니라, 말씀을 들으면 거부감이 생깁니다. 그래서 마음에 불평과 원망이 생기게 되고 이것이 곧 영적인 병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엎드릴 때 긍휼의 은혜를 주셔서 주님은 들으시고 응답하십니다.
그러므로 영혼의 건강을 위해서라도, 내 형편과 사정을 하나님께 아뢰고 응답 받기 위해서, 민족적 구원을 위해서..... 우리는 모세와 같이 엎드리는 사람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낙심하고 좌절할 문제를 만났는가 어떤 문제 앞에 직면하여 어찌할 바를 몰라 당황하고 있는가 원망과 불평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났는가 사람들에게 섭섭한 일을 만났는가 집단적인 배신을 당했는가 가까운 사람, 믿었던 사람에게 불신을 당했는가 어떤 경우에서도 하나님께 엎드린다는 것은 우리들의 문제를 해결함 받고 살아 갈 수 있는 가장 최선의 방법이 되는 것입니다.
소원이 있어도 엎드리고 감사한 일이 있어도 엎드려야 합니다. 꿈과 이상이 있을 때 엎드려야 합니다. 난관이 있을 때 엎드리고 가난할 때도 부자가 되었을 때도 엎드려야 합니다.
모세처럼 하나님 앞에 엎드립시다. 하나님 앞에 엎드릴 때, 주님이 친히 나의 방패가 되시고 구원자가 되셔서 역사 하시고 도우실 것입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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