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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고후 05:1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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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를 맞이하여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이 여러분과 여러분의 가정에 함께 하시기를 기원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새것을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 새 옷, 새 신발, 새 집, 새 전자제품 등등 새것이라면 무조건 좋아합니다. 심지어 어떤 사람은 새 것을 너무나 좋아한 나머지 부인까지도 새 것을 좋아해서 무려 5번이나 결혼했다 이혼했다 했는데 나중에는 늙고 병들어서 쫓겨나서 혼자 살게 되었고 자식들은 그 아버지를 외면해서 결국은 양로원으로 들어가고 말았다고 합니다.
사람은 왜 옛 것을 싫어하고 새 것을 좋아할까요 그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겠으나 그 중에서 특별한 이유는,
①이 세상의 모든 것이 불변하는 것이 아니라 변하고 퇴색 되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옷도 처음에 입을 때는 좋았는데 얼마동안 입고 다니다 보면 구겨지고 찢어지고 색깔이 변합니다. 그러므로 싫어지는 것입니다. 차도 그렇고 신발도 그렇고 집도 그렇습니다.
어떤 면에서 보면 이 세상에는 새 것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금방 변하기 때문입니다. 전도서1:9-10에 보면 지혜의 왕 솔로몬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미 있던 것이 후에 다시 있겠고 이미 한 일을 후에 다시 할지라 해 이때는 새 것이 없나니 무엇을 가리켜 이르기를 보라 이것이 새것이라 할 것이 있으랴 우리 오래 전 세대에도 이미 있었느니라]
②사람의 마음이 변덕스럽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뭘 좋아하다가도 잠시 뿐이지 얼마 안 있으면 싫어하고 또 다른 것을 찾습니다. 그러므로 전도서1:8에 보면 [만물의 피곤함을 사람이 말로 다 할 수 없나니 눈은 보아도 족함이 없고 귀는 들어도 차지 아니하는도다]라고 했습니다.
이 두가지 이유를 생각해 보면 우리가 아무리 새 것을 좋아한다고 해도 결국에는 만족을 얻기는 틀렸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해만 되면 무엇인가 새로운 일이 있기를 바라고 또 새로운 축복을 기대하는 마음을 누구나 가지게 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본문의 말씀은 우리에게 중요한 해답을 주고 있습니다. 저는 오늘 본문을 통해서 여러분과 함께 큰 은혜를 나누기를 원합니다.
그런데 무엇보다도 먼저 깨달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이 다 변하고 아무리 새해가 찾아온다고 해도 내가 변하여 새 삶이 되지 않으면 아무 것도 기대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달라진 것이 없는데 새 옷을 입으면 무엇이고 새 신을 신으면 무엇하겠습니까 새 차를 타고 새 집에서 살고 새 부인과 함께 살면 무엇합니까
더구나 새해가 왔다고 해서 무엇이 달라지겠습니까 중요한 것은 내가 변하는 것입니다. 내가 변하지 않으면 금년 한 해도 결코 새해가 될 수가 없습니다. 금년도 역시 예년과 같은 묵은 해가 될 것입니다.
그러나 이와 반대로 우리가 변하여 새 사람이 되고 새 마음을 가져봅시다. 하늘이 옛날의 하늘이 아닙니다. 만물도 옛날의 만물이 아닙니다. 저 하늘의 태양도 옛날의 태양이 아닙니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새 삶이 되는 것]입니다. 사람이 새로와지는 것입니다. 에베소서5장에 보면 우리가 하나님을 믿기 이전에는 어두움의 자녀였으나 하나님의 자녀가 된 후에는 우리 모두가 다 빛의 자녀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빛의 자녀가 되었음을 보여주는 증거는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의 열매를 맺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마음이 악했던 사람이 마음이 착해지고 마음이 비뚤어졌던 사람이 바르게 되고 정직하지 못했던 사람이 진실하고 정직한 사람이 되었다면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자녀가 된 증거라는 것입니다.
사람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마음입니다. 아무리 모든 좋은 조건을 다 갖추고 있는 사람이라고 해도 마음 하나만 비뚤어지면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습니다.
아무리 좋은 조건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고 해도 마음이 비뚤어진 고약한 사람과 살면서 행복하다고 말하는 사람을 본적이 있습니까 결혼 상대자를 찾을 때도 가장 중요하게 보아야 하는 것이 바로 믿음과 성품인 것입니다.
어느 서울대 출신 청년과 결혼한 여인이 있었습니다. 이 청년은 가난했지만 장래성을 보고 결혼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청년은 마음이 비뚤어져 있는 청년이었습니다. 서울대를 나올 정도가 되었으면 얼마든지 자기 힘으로 살 수 있을 것인데 밤낮 처가 덕만 보려고 하고 자기 힘으로 노력하여 살려고 하지를 않습니다. 지금도 그 부인의 얼굴은 수심이 떠나지 않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마음을 바로 가지시기 바랍니다. 마음 하나만 비뚤어지면 신앙도 비뚤어지게 되고 비뚤어진 인간이 됩니다. 그러므로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와 반대로 모든 조건이 불리한 사람이라고 해도 마음 하나만 바르게 가지고 있으면 하나님도 축복하시지만 사람들도 인정하고 얼마든지 성공 자가 될 수 있고 행복 자가 될 수 있습니다.
오늘 이 자리에 계신 여러분은 모두 다 새 사람이 되어 새로운 축복을 받는 새해를 맞이하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이렇게 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1)그리스도의 사랑에 대하여 깨닫게 되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에 대하여 깨달음을 가지게 되는 것은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도다 우리가 생각건대 한 사람이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었은 즉 모든 사람이 죽은 것이라]고 했습니다.
사도바울은 그리스도의 신앙을 깨달은 사람입니다. 그런데 바울은 그리스도의 사랑을 [깨닫게 되면 깨닫게 될수록] 그리스도의 사랑이 얼마나 크고 강한지 그 사랑의 노예가 되어서 그리스도의 사랑에 이끌리어 살게 되었던 것입니다.
우리가 효도하는 자녀와 불효하는 자녀를 여러가지로 구분할 수 있겠지만 그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이것입니다.
부모님의 은혜와 사랑을 깨닫고 늘 감사하는 마음으로 사는 자녀가 효도하게 되고 이와 반대로 부모님의 은혜와 사랑을 깨닫지 못하고 늘 원망불평하면서 사는 자녀가 불효하게 되는 것입니다. 문제는 부모님의 은혜와 사랑을 깨닫느냐. 깨닫지 못하느냐에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은 그리스도의 사랑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셨습니까 우리를 위해서 대신 죽어 주시기까지 사랑하셨습니다. 요한복음15:13에 뭐라고 했습니까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에서 더 큰 사랑이 없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 뿐 아니라 로마서5:6-8에 보면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기약대로 그리스도께서 경건치 않은 자를 위하여 죽으셨도다 의인을 위하여 죽는 자가 쉽지 않고 선인을 위하여 용감히 죽는 자가 혹 있거니와 우리가 아직 죄인되었을 때에 용감히 죽는 자가 혹 있거니와 우리가 아직 죄인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고 했습니다.
우리도 사도바울처럼 하나님의 크신 사랑을 깨달아야 하겠습니다.
고린도후서5:13에 보면 [우리가 만일 미쳤어도 하나님을 위한 것이요 만일 정신이 온전하여도 너희를 위한 것이니]라고 했는데 어떻게 보면 이 세상 사람들은 모두 다 미쳤다고 볼 수 있습니다. 누구에게 미쳤든지, 무엇에 미쳤든지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모두 다 미쳐 있는 것입니다.
①하나님을 몰라서 세상에 미친 사람과
②그리스도의 사랑을 깨닫게 되어서 그리스도를 위해 미친 사람입니다.
여러분은 이 둘 중에 어디에 속해 있습니까 아무쪼록 저와 여러분은 그리스도의 사랑을 깨달아 새로운 축복을 받는 새사람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2)그리스도의 죽으심의 목적을 똑 바로 알아야 합니다.
오늘 본문 15절에 보면 [저가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심은 산 자들로 하여금 다시는 저희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오직 저희를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사신 자를 위하여 살게 하려 함이니라]고 했습니다.
예수께서 우리를 죄에서 구속하려고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은 사실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심으로 우리의 모든 죄는 대속함을 받게 되었습니다.
갈라디아서3:13의 말씀대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심으로 우리를 율법의 저주에서 속량해 주셨고 아브라함의 복을 받게 하여 주셨습니다. 그런데 이렇게까지 하신 목적은 바로 우리로 하여금 다시는 우리 자신을 위해 살지 않고 오직 우리를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사신 주님을 위해서 살게 하기 위해서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행복의 절정이 어디에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생명을 내어줄 정도로 사랑하고 또 그런 사랑을 받으면서 사는데 있는 것이 아닐까요 우리를 위해 죽기까지 하신 주님은 전지전능하신 분이시요, 절대주권을 가지신 분이시요. 언제나 믿고 신뢰할 수 있는 신실하신 분이십니다.
하늘과 땅의모든 권세를 다 가지고 계시는 분이십니다.
그런데 이러하신 주님은 저와 여러분이 모두 다 삶의 목적을 주님께 두고 주님을 위해서 살고자 하는 마음을 가지고 사는 모습을 보고 싶어하시는 것입니다.
주님이 요구하시는 것은 역시 우리의 마음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지금까지 무엇을 위해서 살았고 무슨 목적으로 살았습니까
이 시간 삶의 목적을 바꿔보지 않으시겠습니까 주님이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죽으셨던 것처럼 우리도 주님을 위해서 살려고 하는 삶의 목적을 가지고 살아보지 아니하시겠습니까
(3) 주님이 걸어가신 발자취를 따라가는데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에베소서2:12-18에 보면 [그 때에 너희는 그리스도 밖에 있었고 이스라엘 나라 밖의 사람이라 약속의 언약들에 대하여 외인이요 세상에서 소망이 없고 하나님도 없는 자이더니 이제는 전에 멀리 있던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와졌느니라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중간에 막힌 담을 허시고 원수 된 것 곧 의문에 속한 계명의 율법을 자기 육체로 폐하셨으니 이는 이 둘로 자기의 안에서 한 새 사람을 지어 화평하게 하시고 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 원수 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 또 오셔서 먼데 있는 너희에게 평안을 전하고 가까운데 있는 자들에게 평안을 전하셨으니 이는 저로 말미암아 우리 둘이 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감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고 하셨고, 또 골로새서1:19-22에도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의 십자가의 피로 우리들을 화목하게 하고 거룩하게 하려고 하신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오늘 본문17:19절에 보면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된 우리들에게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실 뿐만 아니라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책을 주셨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만큼 하나님과 우리 인간 사이에 또 우리 인간과 인간 사이에 화목이 이뤄지기를 원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로마서12:17-21에 보면 [아무에게도 악으로 악을 갚지 말고 모든 사람 앞에서 선한 일을 도모하라 할 수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평화하라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 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우라 그리함으로 네가 숯불을 그 머리에 쌓아 놓으리라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고 했습니다.
저 자신이 이렇게 말로 하고 설교도 하지만 이 말씀대로 온전히 살지 못하고 있음을 생각할 때마다 얼마나 마음이 아프고 괴로운지 모릅니다. 이렇게 되는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아직 마음이 덜 변했기 때문인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3년동안 예수님을 따라 다니면서 많은 은혜를 받았고 많은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그러나 막상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실 때는 모두 다 도망을 갔고 베드로는 주님을 모른다고 세번씩이나 부인을 했습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했을 때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이는 혈륙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고 하시는 예수님의 칭찬까지 들었던 베드로였지만 왜 이렇게 될 수 밖에 없었을까요 아직 덜 변했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도행전1:4에 보면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성령의 세례를 받기 전까지는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왜 그러셨을까요 또 쓰러지고 넘어지고 실패할 것이 뻔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성령이 임하시게 되면 권능을 받게 될 것인데 그때에는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될 것이라고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저와 여러분은 분명히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된 사람들입이니다. 그러나 왜 우리는 주님처럼 살지를 못할까요 아직 덜 변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제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아 권능을 가지게 되면 진정한 그리스도의 증인으로서의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아무쪼록 금년 새해는 저와 여러분이 모두 다 그리스도의 사랑과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죽으신 목적을 깨닫고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 성령의 권능을 힘입어 주님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자가 될 뿐만 아니라 그야말로 새로운 축복을 받는 새해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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