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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새 생명 얻은 삶 (겔 37: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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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7절에서 문제되는 것은 육신의 생각을 가진 자는 아예 하나님의 법에 굴복할 수 없다는 사실인데, 칼빈주의 자들은 인간의 전적 타락 내지는 전적 무능의 교리를 설명하는 데 이 구절을 사용해 왔습니다. 즉 인간으로서는 더이상 하나님의 법에 복종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에 있어 육신이란 표현은 육신의 상태에 속해 있는 경우를 가리키는 것으로 어떤 도덕적인 측면이나 의지적인 측면에서 말한 것이지 하나님의 법에 복종하려는 의식 그 자체까지를 포함하는 것은 아닙니다.

복음서의 말씀 요한복음11:1-45
예수님의 행하신 수많은 표적 중에서 사도 요한이 선택한 일곱 가지의 표적은 모두 예수님께서 그리스도시요(구주성). 하나님의 아들(신성)이신 것을 표시합니다. 그 중에서 나사로의 부활은 본서만이 기록하는 것으로 최후의 표적인 동시에 최대의 표적으로 불린다. 병 고치신 것보다는 죽은 자를 살리신 것이 더 크고, 죽은 자의 부활 중에 죽은 후 즉시 살리신 야이로의 딸이나, 죽은 당일 살리신 나인성 과부의 독자보다, 죽은 지 나흘이나 되는 나사로의 부활이 더 큰 표적입니다. (나사로의 이야기)

1. 어둡고 슬픈 세상으로 오신 예수님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간 자들이나 유다에 잔류한 자들이나 다같이 민족적 소망도 국가적 장래도 없다는 절망감에 빠져 있을 때 하나님께서 에스겔을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의 회복을 선포하심같이 예수님께서는 친히 죽은 지 나흘이나 되는, 회한과(뉘우치고 한탄한다), 무력감에(힘이 부치거나 없는 데서 오는 허탈하고 맥빠진 느낌) 빠져 있는 나사로의 집으로 오셨습니다. 나사로의 집인 초상집의 분위기, 이것이 바로 영생하신 하나님과 단절된 우리 인생의 실상입니다. 하나님의 생명과 사랑을 등진 우리 인생들에게는 무덤에 있은 지 나흘이나 되는 시신처럼 참된 생명도 희망도 능력도 찾아볼 수 없는 어두움뿐임을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희망이 있는 것은 예수님께서 친히 오셨다는 사실입니다. 우리 머리 위의 푸른 하늘 저 너머에 계신 하나님이 팔짱만 끼고 우리를 방관하며 앉아 계신 것이 아니라, 아수라장 같은 우리 세계로 인간이 되어 찾아 오셨다는 사실이 바로 인생의 희망이며 행복입니다. 그리스도는 이미 부패해 버린 나사로의 육체에 삶과 희망을 부활시키셨듯 하나님께 대한 우리 인류의 영생의 소망을 부활시키려고 이 땅에 오신 분입니다. 우리는 나 자신의 꿈도, 이웃의 사랑도 믿을 수 없는 시대 속에서 살고 있지만 오직 부활이요 생명이신 그리스도만은 믿을 수 있어야 합니다.

2.부활과 영생의 그리스도
부활과 영생에는 믿음으로만 참여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께 아무리 풍부한 부활과 영생의 능력이 있어도 소용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께서 아무리 우리 가까이에 계셔도 소용이 없습니다. ‘믿어야 합니다’ 그리스도를 주로 고백해야 합니다. 믿고 영접하는 자만이 부활을 경험할 수 있고 영생을 소유할 수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할례를 받고 율법을 지키면 구원에 이를 수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러나 참된 구원은 율법으로도 영적 지식으로도 불가능합니다. 율법은 거룩한 것이지만 근본적으로 인간에게 그것을 지킬 만한 능력이 없기 때문이며, 인간의 영육은 결코 분리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모든 인간은 예수님께 나와야 합니다. 그리고 모든 성도는 누구에게든, 어떤 일을 하든지 그리스도를 전해 주어야 합니다. 부활과 영생은 그리스도를 고백하고 그를 믿는 믿음 안에서만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3. 해방자 그리스도
사도 바울은 로마서를 통해서, 인간들은 율법을 신령한 것으로 알지만 자신은 육신에 속하여 죄 아래 팔렸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실 이 고백은 사도 바울만의 고백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고백입니다. 화인 맞은 양심의 소유자가 아니라면 인간은 모두 이 고백을 자기의 고백으로 인정할 것입니다. 문제는 그러면 죄에서 누가 해방할 것이냐 하는 것입니다. 인간은 이미 죄에 팔려 죄의 권세 아래 들어갔기 때문에 스스로 자 유할 능력이 없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누군가 죄의 권세 밖에 있는, 죄의 권세보다 더 능력 있는 권세자가 해방시켜 주어야만 합니다. 사도 바울은 그분을 그리스도라 고백합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우리를 해방 시키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해방은 죄에서 자유를 얻게 하시고 생명을 얻게 하신 해방이요, 육적인 질병의 질곡과(몹시 속박하여 자유를 가질 수 없게 하는 일)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서 해 매는 병자들을 고쳐주신 해방이요, 죽음과 사망의 권세에서 생명으로 옮기셔서 부활을 선물로 주시는 해방입니다.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라고 하신 말씀처럼 죽은 자나 산 자나 모두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만 참 행방을 누릴 수 있습니다.

절망의 곳을 희망의 땅으로 바꾸신 주님, 그 안에서 생명을 얻은 인생들이 살아가고 있나이다. 우리의 삶을 소망으로 가득 차게 하여 주옵소서. 새 생명 이 되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합니다.-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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