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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일하는 천국 (마 20: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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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사람은 놀고 먹으며 사는 사람을 유복한 사람으로 생각합 니다. 그리하여 '노세 노세 젊어서 노세 늙어지면 못 노나니'라는 노래를 부릅니다. 그러나 축복받은 사람들이란 일을 많이 하는 사람 들입니다. 사회적으로 좋은 자리는 일 많이 하라고 주어진 자리입니 다. 오늘날 복받은 사람으로 선망의 대상이 되는 분들은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종교 등 모든 분야에서 일을 이 하는 사람들입니다. 인생에는 쉼터, 배움터, 일터의 3대 터전이 있어야 합니다. 쉼터는 가정이요, 배움터는 학교요, 일터는 직장입니다. 3대 터전이 잘 갖추 어진 사람은 축복받은 사람입니다 인생의 성장과정에서, 어린 시절에 는 터에서 잘 자라고 그 후에는 학교에서 모든 과정을 배우게 됩니 다. 그리고 일터에서 일하면서 생애를 보람있게 살아갑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가장 중요한 3대 터전을 위하여 초청하십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쉽을 얻으리니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우니라.
예수님은 우리를 안식에 초대하십니다. 배움에 초대하십니다. 일하 라고 초대하십니다. 이는 인생 최대의 초대이며 은총입니다 인생 최대의 과제는 멍에를 메는 일입니다. 어떤 사람이 죽은 후에 천당에 가면 땀도 흘리지 않고 먹고싶은 것 다 먹고 입고싶은 것 다 입고 아무 일도 안 하고 편안히 놀고 먹는 곳에서 살게 된다고 생각했습니 다 그러다가 그가 막상 천당에 갔는데, 과연 자기가 생각한 대로 아무 괴로움도 없고 할 일도 없는 생활이 며칠 계속되자 편하고 좋았 습니다. 그러나 얼마 지나고 나니 견딜 수 없이 지루하여 그 권태를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는 차라리 지옥에 가서 쉬지 않고 일하는 것이 더 나은 생활일 것 같아 하나님께 제발 지옥으로 보내달라고 요청했을 때 하나님께서 '네가 있는 그곳이 바로 지옥이다.,라고 하 여 깜짝 놀라 캐어보니 꿈이었다고 합니다 이 세상에 태어나 자기 할 일을 찾지 못한 것처럼 고통스러운 것은 었습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 태어나서 먹고 살기 위하여 일하다가 죽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영적으로 태어나 하나님께 소명을 받고 자기 일을 시작할 때 비로소 천국의 생활이 시작되는 것입니 다. 예수님은 천국을 일하는 곳으로 비유하고 있습니다.예수님 당시에 팔레스틴에 많은 영세 농민들이 일거리를 구하기 위하여 이른 아침부 터 장터에 나가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한 포도원 주인이 이른 아침 에 일꾼을 구하러 장터에 나갔습니다. 하루에 한 데나리온의 품삯을
약속하고 포도원에 사람들을 들여보냈습니다. 그런데 아침 9시경에 다시 장터에 나와 보았더니 아직도 일거리를 찾지 못하고 서성거리는 사람들이 있어서 그들도 모두 불러 포도원에서 일올 시켰습니다. 오후 3시 5시에도 일을 찾지 못하는 사람들을 불러서 일을 시켰습니 다. 이윽고 해가 저물었습니다. 포도원 주인은 자기 청지기를 시켜 맨 나중에 포도원에 들어온 노동자로부터 시작하여 이른 아침에 들어온 노동자에 이르기까지 균등하게 한 데나리온씩 품삯을 나누어 주었습니다 먼저 온 일꾼들은 자기들이 늦게 포도원에 들어온 자들보다 품삯을 더 많이받을 줄 알았는데 똑같이받게 된 것 때문에 주인에게 원망하 고 불평했습니다. 이때 주인은 '친구여, 내가 당신에게 잘못한 것이 없노라. 내가 당신을 장터에서 부를 때 약속한 대로 한 데나리온을 당신에게 주었소. 그리고 나중에 온 사람에게 한 데나리온의 품삯을 주는 것도 내 뜻이오.'라고 하였습니다. 이런 비유를 들려주신 예수님께서는 결론을 내리시기를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되고 먼저 된 자로서 나증 되리라.'고 하셨습니다. 이 비유에 등장하는 포도원 주인은 하나님을, 포도원은 그의 교회를, 청지기는 예수님을, 이른 아침에 온 품꾼은 유대인과 바리새인들, 늦게 온 품꾼은 이방인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첫째, 천국은 일하는 곳입니다.
하나님은 천국에서 일할 고용인을 찾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일꾼을 찾으러 장터로 나가십니다. 그리고 우리를 일꾼으로 부르십니다. 하나 님은 일하라고 천국으로 부르시는 것입니다. 문 l절에 u천국은 마치 품꾼을 얻어 포도원에 들여보내려고'라고 했고, 2절에는 ,들여보내고N, 4절에는 '포도원에 들어가라'라고 했으 며, 7절에도 '포도원에 들어가라'고 하였습니다. 인간의 고통 가운데 가장 큰 고통은 할 일이 없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제일 고독한 사람은 할 일 없는 사람들입니다. 가장 복된 사람은 평생 할 일이 있고 일할 수 있는 건강을 보장받은 사람들입니 다 오늘날 사회적으로 가장 큰 문제 중의 하나는 실업자가 늘어가고 일자리가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일거리가 많아져야 하고 일꾼을 필요 로 하는 일터가 많아져야 그 사회의 노동 가치가 상승하고 경기가 회복됩니다. 지금 우리나라는 인구는 많고 일자리는 적습니다. 그러나 무제한으로 고용할 수 있는 일터가 천국이요 곧 교회입니 다. 천국은 차별없이 누구든지 일할 수 있는 세계요, 무제한으로 일터 가 보장된 곳입니다. 이른 아침부터 9시, 12시, 3시, 5시라는 시간 제한 없이 고용을 하는 곳이 천국입니다. 이 말은 천국이 일꾼을 필요로 하는 곳이요, 또 다른 의미는 누구든지 구별없이 필요로 한다 는 것입니다. 이른 아침에 불러온 일꾼은 유아 때에 부름받은 자들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오전 9시에 일과가 시작되면서부터 일한 사람들도 있습니 다. 이들은 소년 시절부터 교회에서 일한 사람들입니다. 정오(12시) 에 초청된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들은 인생의 반을 헤매이다가 중년 기에 주 앞에 부름받은 사람들입니다. 오후 3시에 초청된 사람들은 인생의 장년기가 넘어서서 부름받은 사람들입니다. 오후 5시에 초청 된 사람들은 인생의 황혼기에 부름받은 사람들입니다. 예수님 오른편 십자가에 달렸던 강도와 같이 최후에 부름받아 간, 한 시간 일한 품꾼과 같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일꾼으로 부르실 때 나이를 묻지 않으십니다. 일할 시간도 묻지 않으십니다. 건강이나 재능도 묻지 않으십니다. 포도원 주인은 '어찌하여 종일토록 놀고 여기에 있느뇨'라고 했고 그때 그들은 답답한 마음으로 '우리를 품꾼으로 상는 이가 없기 때문입니 다.'라고 했습니다.그리스도인의 최대 축복은 자기가 할 일을 발견하 는 것입니다.
프랑스의 문호 루소는 '인생은 두 번 태어난다.'고 했습니다. 한 번은 살기 위해 태어나는 것이요, 또 한 번은 일하기 위하여 태어난 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의 일은 때가 늦으면 할 수 없고 항상 기회가 오는 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일에는 늦을 수 있습니다. 지금 곧 하면 됩니다. 기회가 항상 있습니다. 자기가 하는 일이 하나님이 명하신 일이라고 생각할 때 소명이 됩니다. 마틴 루터는 신부든, 수녀든, 왕이든, 노동자든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하는 일은 다 거룩한 일이라고 하였습니다. 인간이 하는 일의 가치는 그가 하는 일의 종류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그가 일할 때 거룩한 목적을 가지고 일하느냐 아니냐 하는 데 있습니다. 일을 평가할 때 '무엇(what) 을 하느냐.'에서 떠나 '왜 (Why), 어떻게 ( How) 하느냐.' 하는 생각으로 바뀌어야 합니다. 빅터 프랭클은 말하기를 '자신의 소명(슴)받은 일생의 사업( Life Work)을 발견해낸 사람들은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다. 그리고 그것을 아직도 찾지 못한 사람은 가장 불행한 사람이다.'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통하여 하시려는 일을 발견하여야 합니다. 나이가 많든 적든 일꾼으로 부르셔서 사명을 맡기시는 것이 하늘나라의 질서 입니다. 왜냐하면 하늘나라 일꾼이 모자라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추수할 것은 많은데 일꾼은 적다고 말씀하십니다.

둘째, 천국은 보람된 일을 하는 곳입니다.
천국은 보상을 기대하지 않고 보람된 일을 하는 곳입니다 보람은 남을 섬기는 희생의 대가로 얻어지는 정신적 보상입니다. 공허는 자기 안일과 정욕을 위하여 치른 삶의 낭비에서 생기는 마음의 부채 입니다. 보람은 섬기는 데서 오는 정신적 만족감입니다. 공허는 자기 안일과 육체적 쾌락의 후유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일함 으로 보람을 얻는 사람은 삯을 묻지 않습니다.
보람은 인격이 가산된 고귀한 가치요, 인내와 사랑과 희생을 치르 고 얻은 결실입니다. 가장 고귀한 일은 섬기고 보상을 기대하지 않는 마음입니다. 보상을 받고 하는 일은 고귀한 일이 아닙니다. 선한 일은 돈을 받고 하는 일이 아닙니다. 선한 일은 하늘이 주는 은혜로 알고 일할 뿐입니다. 아이를 기르는 어머니는 월급을 받지 않습니다.만일 아이를 기르 는 어머니가 보육비를 받는다면 얼마나 받아야 할까요 돈을 받고 돌보아 주면 보모가 됩니다. 남편을 섬기는 아내는 월급을 받지 않습 니다. 월급을 받고 일하면 가정부가 됩니다. 음식을 만들고 진종일 세탁을 했다고 월급을 받는 아내가 있습니까 이는 아내가 아니라 파출부입니다. 어떤 남편은 자기 아를 가정부 정도로 취급하여 월급을 주면서 살아가는 분들도 있습니다. 주님의 일을 하는 분들은 월급을 받지 않습니다. 만약에 월급 때문 에 일한다면 그 순간 삯꾼이 껍니다. 목사나 전도사는 생활비로 받을 뿐입니다 그러므로 교역자는 어느 교회에 가든지 생활비에 대하여 묻지 않습니다. 받는 대로 살면 됩니다. 전혀 보상을 기대하지 않고 보람으로 하는 일이 천국의 일입니다. 예수님은 오늘 비유의 말씀을 통해서 보상 없는 일에 대한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어느날 예수님께 나왔던 한 젊은 부자는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가난한 자를 주고 예수님을 따르면 하늘의 보화가 있으리라는 권고를 거절하고 예수님을 떠났습니다. 이 부자 청년은 자기의 재물을 버리 지 못하고 예수님을 따르지 못했습니다. 베드로와 다른 제자들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따랐으니 그런즉 우리가 무엇을 얻으리이 까'라고 물었습니다.여기에 대하여 주님께서는 대답하시기를 N하나 님께서는 그들의 봉사에 대하여 백 배나 갚으실 것이며 세상이 새롭 게 되어 인자가 영광의 보좌에 앉을 때에 그들도 열두 보좌에 앉으리 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베드로가 봉사정신에 대한 그릇된 생각이 있음을 아시고 오늘 이 비유를 말씀하신 것입니다. 오늘 이 비유에는 두 종류의 품꾼들이 있습니다. 주인으로부터 품삯을 약속받고 일하러 간 사람들이 있고 전혀 품삯을 기대하지 않고 열심히 일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u너희도 포도원에 들어가라 내가 너희에게 상당하게 주리 라H(마 20 . 4)고 했습니다. 보상을 기대하고 따르는 제자들에게 큰 교훈을 준 것입니다. 우리는 무익한 종으로 일을 할 뿐이요, 상은 주의 뜻대로 주실 것입니다. 유명한 건축가 크리스토퍼 렌( Chrrstopher Wren) 이 장엄한 예배당 을 건축하는데 일하는 세 사람의 석공에게 이렇게 물어보았습니다. u그대들이 하는 일이 무엇이냐'라고 묻자 한 사람은 '나는 4시 반까지 일합니다.n라고 대답했고,두 번째 사람은 '나는 돈벌기 위하 여 일합니다.,라고 대답하였고, 세 번째 사람은 '나는 렌 경을 도와 한 장엄한 성전을 건축합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이제 우리는 자기 하는 일에 소명감을 갖고 보람을 느껴야 합니 다 보람없는 일은 에덴에서 추방당한 저주받은 노동일 뿐입니다. 그러나 보람된 일은 처음 포도인 에덴에서 일하는 아담에게 주신 은총의 놀이였습니다. 우리는 금년 일 년 동안 보수 없이 주를 위해 할 일이 무엇인가를 찾아서 열심히 하여야겠습니다. 일생을 아프리카의 선교사로 생애를 마쳤던 리빙스턴 (LiVing stone ) 은 .그리스도의 왕국에 관계된 바 없이는 내게 있는 것 그 어떤 것에도 아무 가치를 두지 않는다.'라고 하였습니다. '사람들은 내가 아프리카에서 나의 생을 희생했다고 말한다. 그러나 나는 한 번도 희생한 일이 없다. 건강한 몸으로 좋은 일을 하게 하셨고 마음 에 평화를 얻고 이후에 올 영광스런 운명의 밝은 소망 가운데 일하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할 뿐이요, 나를 불러 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격 할 뿐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솔제니친은 ,강제수용소에서 남은 죽그릇이나 는 사람은 남보다 먼저 죽는다. 또 일하기 싫어서 꾀병을 으며 의무실에 눕는 자는 남보다 먼저 죽는다.'라고 하였습니다. 사람이 어떤 상황에 있든지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하고 일하지 않는 자는 자신의 죽음을 재촉하여 일찍 죽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주의 일에 꾀병을 는 사람은 하나 님이 일찍 데려가십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고칠 수 없는 병은 꾀 병입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너무도 많은 꾀병을 아 왔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일어서야 답니다. 오스트리아 의사요 심리학자였던 빅터 프랭클은 히틀러의 반유대인 정책의 희생물이 되어 고독과 질병에 시달리며 포로수용소에서 숱한 사람들의 죽음을 경험하였습니다. 그가 창시한 학문 '의미요법 ( Logotherapy ) '은 삶의 의미를 찾는 자는 생명을 연장시킬 수 있다 고 말합니다. 무서운 질병 속에서도 삶의 의미를 찾고 힘을 내어 일할 수 있다고 믿고 행동하는 사람과 현실적인 문제로 고민하지 않고 종교적인 문제에 관심을 가졌던 사람들은 살아남는다는 것입니 다. 인생에 대한 강한 의미를 갖는 것이 장수의 비결이라고 합니다. 독일의 위대한 시인 괴테는 그의 걸작 [파우스트]의 후반부를 끝내고 나서 두 달 후에 83세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프랭클은 그에 관해저 이렇게 말합니다. '필경 그의 일생 최후의 7년 동안은 생물학적으로 보아서 예정을 넘긴 것이었다.' 그의 죽음은 연기되고 있었는데 그는 자신의 작품이 완성되어 의미가 실현되는 순간까지 살았다는 것입니 다. 최근 의학계의 통계에 의하면 종교인들이 장수하는 것으로 나타 납니다. 늙어도 교회에서 주의 일을 하면서 보람(의미 )을 느끼고 있기 때문입니다.

셋째. 천국은 오직 하나님을 위하여 일하는 곳입니다.
천국의 일은 누가 시켜서 하는 것도 아니요, 비교의식으로 경쟁삼 아 하는 일도 아닙니다. 현대인들은 비교와 경쟁의식에서 싸우다가 죽는다고 합니다.
인간에게는 두 개의 눈이 있습니다. 하나는 겉사람의 눈인데 이 눈은 다른 사람을 봅니다. 그리하여 타인과 비교하고 경쟁심을 일으 키며 시기하고 또 원망하고 현실을 불평합니다. 또 하나의 눈은 자기 를 보는 속사람의 눈입니다. 이 눈은 소망을 봅니다. 자기 할 일을 보게 됩니다. 그리스도인은 은혜를 받으면 받을수록 속사람의 눈이 열리므로 자기 일을 알고 충성하며 행복을 맛보게 됩니다. 그러나 은혜를 받지 못하면 다른 사람과 비교하고 현실을 불평하다가 더욱 비참하게 됩니 다. 베드로는 젊은 부자가 예수님을 떠나가는 것을 지켜보았습니다. 그리고 자신을 그 불행한 사람과 비교하였습니다. 그는 부자였고 자기는 가난했습니다. 베드로는 성공적인 어부였으나 모든 것을 버리 고 예수님을 따르기로 했습니다. 그 부자는 아무것도 포기하지 않았 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따르기 위해 희생을 감수한 것에 대한 대가를 바라며 마음속으로 부자와 자신을 비교하고 있었습니다. 이 비유는 이런 제자들에게 큰 교훈을 준 것입니다. 제자들은 가끔 다른 사람들과 비교하여 그릇된 결론을 내리는 죄를 범하고 있었습니 다. 어떤 사람이 귀신을 쫓아내는 것을 보았습니다.제자들은 그 사람 이 자기들 중의 한 사람이 아님을 인하여 그를 꾸짖었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꾸짖어 '금하지 말라 너희를 반대하지 않는 자는 너희를 위하는 자니라.H고 하셨습니다. 제자들 자신은 귀신을 쫓아낼 수 없었습니다. 따라서 귀신을 쫓아낼 수 있는 성도들을 비난 하려고 했습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의 성공을 상대적으로 자신의 실패처럼 생각하고 상대를 비난하게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자기 하는 일이 하나님이 주신 소명받은 일이라면 그 어떤 것과도 비교될 수가 없는 것입니 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갈릴리 바닷가에서 베드로에게 말씀하셨습니 다. '네가 젊어서는 스스로 띠 띠고 원하는 곳으로 다녔거니와 늙어 서는 네 팔을 벌리리니 남이 네게 띠 띠우고 원치 않는 곳으로 데려 가리라.' 이때 베드로는 예수님께서 사랑하시는 제자를 보았습니다. '주여 이 사람은 어떻게 되겠습니까' 예수님은 '내가 올 때까지 그를 머물게 하고자 할지라도 네게 무슨 상관이냐 너는 나를 따르 라.'고 하셨습니다. 오늘 이 비유에서 오후 5시에 고용된 사람이 한 데나리온을 받는 것을 보고 아침 6시에 고용된 품꾼은 품값을 그보다 많이 받으리라고 기대했습니다. 그러나 모두 각각 한 데나리온씩 지급받은 것입니다. 그때 이들은 주인에게 망하면서 '나중 온 이 사람들은 한 시간밖에 일하지 않았거늘 저희를 종일 수고와 더위를 견딘 우리와 같게 하였 나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이때 주인은 '친구여, 내가 네게 잘못한 것이 없노라. 네가 나와 한 데나리온의 약속을 하지 아니하였느냐!' 라고 하였습니다. 이 사람은 다른 사람과 비교하면서 망한 것입니 다. 예수님과 우리와의 관계는 일 대 일입니다.그러므로 우리는 주의 일을 자랑할 수 없고 남을 경멸할 수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때가 이르기 전 곧 주께서 오시기까지 아무것도 판단치 말라 그가 어두움 에 감추인 것들을 드러내고 마음의 뜻을 나타내시리니 그때에 각 사람에게 하나님께로부터 칭찬이 있으리라'(고전 4:5)고 했습니다. 주님은 외적인 일의 양을 보시지 않습니다. 주님께서는 우리 하는 일의 중심을 보시며 그 동기를 보십니다. 오직 모든 일이 주님을 위해 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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