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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이 사람을 보라 (눅 23:4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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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은 일생을 베들레헴 말구유에서 시작하여 골고다의 십자가 위에서 끝을 맺으셨습니다. 예수님의 생애는 시작부터 신비한 생애였 습니다. 또한 그의 생애 최후는 우리의 심금을 울리는 장엄한 생애로 끝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오전 9시에 십자가에 못박히셨습니다. 12시가 되자 해가 및을 잃고 온 땅에 어두움이 임하였습니다. 오후 S시가 가까이 되자 성소의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로 나뉘었습니다. 주님은 .아버지여 내 영흔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 이 말씀을 하시고 운명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최후는 십자가 위였고 그의 최후의 말씀은 아버지의 손에 영혼을 부탁하는 것이었습니다.

첫째. 예수님은 자신을 맨 나중에 생각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 상에서 다른 사람을 위하여 기도하시고 당신 자신 을 위한 기도는 최후에 한 마디 하셨을 뿐입니다. 그는 십자가 상에서 남을 위하여 할 일을 끝까지 다 하셨습니다. '내가 세상에 온 것은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요, 섬기러 왔고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하신 말씀대로 이루셨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까지 가는 곳마다 자비를 베푸셨고 손이 닿는 곳마다 하나님의 일을 하셨습니다. 그러나 십자가에 손과 발이 못박히심으로 더이상 몸으로 일할 수 없게 되셨습니다. 그러나 그때도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려서 기도하심으로써 최후까지 우리에게 모범이 되셨습니다. 우리의 몸이 노쇠하여져 더이상 활동할 수 없게 될 때 우리는 기도 로 주의 일을 끝까지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병들어도 기도할 수 있습니다 옥에 들어가도 기도는 할 수 있습니다. 가난해져도 기도는 할 수 있습니다. 주님은 두 손으로 더이상 병자들을 위해 일할 수 없게 되었습니 다. 두 손이 십자가에 못박혔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두 발은 이제 더이상 불쌍한 자들에게 자비와 긍을 베푸시도록 움직일 수 없게 되었습니다. 주님의 두 발이 잔인하게 나무에 못박혀 버렸기 때문입 니다. 예수님은 이제는 더이상 제자들을 가르칠 수 없게 되었습니 다 제자들이 다 도망쳐 버렸기 때문입니다. 바로 이때도 주님은 할 일이 있음을 아셨고 기회를 놓치지 않으시고 선한 일을 하셨습니다. 그것은 곁에 있는 사람들을 위하여 기도로 봉사하는 일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의 그 고통으로 처절한 순간에도 원수를 먼저 생각 하셨습니다. 저들을 불쌍히 여기시고 저들에게 임할 심판을 염려하셨 습니다.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라고 기도하셨습니다. 그리고 함께 십자가에 달린 강도 중 하나가 주님을 비방했지만 거기에 대답하지 않으시고 회개하여 구원의 요청을 하는 강도에게 즉시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고 구원을 허락하셨습니다,그리고 아들의 최후를 지켜보며 애통하는 어머니를 요한에게부탁하여 아들 된 도리를 다합니다. 목말 랐으나 입에 물을 대지 않았고 하나님으로부터 버림을 당하나 살려달 라고 호소하지 않았습니다. 모든 죄인을 대표하여 당하실 고난이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남을 위해 살았고 남을 위해 기도했고, 최후의 한 마디는 자기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위대한 성도요, 신앙인의 모범을 보여 주었던 스데반 집사는 최후 의 순간에 자기 자신을 생각하고 다음으로 원수들을 위해서 기도한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t저희가 돌로 스데반을 치니 스데반이 부르짖어 가로되 주 예수여 내 영흔을 받으시옵소서 하고 무릎을 고 크게 불러 가로되 주여 이 죄를 저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이 말을 하고 자니라'(행 7:5 9_6o)고 했습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께서는 먼저 그의 수들을 생각하고 마지막으로 자기 자신을 생각하셨습니다 어느 때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며 어느 때 가리워집니까 나 자신 을 맨 나중에 둘 때 하나님의 영광은 나타납니다. 예수님은 최후의 순간에야 비로소 자기를 생각하고 있습니다. 참으로 주님은 살아서도 모범을 보이셨고 죽는 최후의 순간에까지 모범을 보이셨습니다.

둘째, 예수님은 살아서 제믈로 바쳐졌습니다.
예수님은 일생을 하나님의 뜻을 따르고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기 위하여 산 제물로 살았습니다. 진정한 죽음은 생명의 종식이 아니 요 하나님께 드려지는 마지막 제물이 되는 것이어야 합니다. 예수님 은 십자가 상에서 하나님의 뜻을 다 이루시기 위해 그의 몸을 하나 님께 드리셨습니다. 믿는 사람은 죽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교통사고를 당하거나 병들어 죽는다고 말하지만 사람이 죽는 것을 하나님이 불러가신 것이 라고 믿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신앙고백입니다. 그러므로 살고 죽는 것이 다 하나님의 손에 있음을 믿어야 합니다. 어느 때이든 내가 죽는 것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고 죽는다는 확신을 가져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 상에서 '다 이루었다'는 기도를 드리고 그 후에 그의 영혼을 아버지 손에 맡기신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죽을 때는 어떻게 죽든 우리의 할 일이 끝난 것이며 살아 있는 것은 아직도 할 일이 있기 때문임을 믿고 살아야 합니다. 지금 우리는 할 일이 있기 때문에 살아야지 살기 위해서 살려고 하면 죽음은 두렵 고 괴로운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살아도 주를 위해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주의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로마의 옥중에서 그의 최후의 순간이 가까이 왔을 때 '관제와 같이 벌써 내가 부음이 되고 나의 떠날 기약이 가까왔도다'(딤후 4:6)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은 이미 하나님께 제물로 드려진 내가 세상을 떠날 때가 가까왔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사명을 다하고 하나님께서 나를 통해서 이루고자 하시는 뜻을 이루었다고 믿어질 때 비로소 우리의 영혼을 아버지 손에 맡길 수 있는 것입니다.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맡긴다 는 말은 병상에서 드리는 최후의 기도가 아닙니다. 이는 이 몸을 하나님께 산 제물로 드리는 순간이요, 모든 영광을 주께 드리면서 바쳐지는 최후의 고백입니다.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처럼 살고 그리스도처럼 죽어야 합니다. 참 그리스도인의 죽음은 할 수 없이 죽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하나님 께서 부르심을 알고 앞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끝까지 살아보겠다고 발버등치면서 죽는 것은 순가 아닙니다. 순교자는 자기 스스로 죽응을 택하는 것입니다. 얼마든지 죽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위하여 자기 스스로 죽음을 택할 때 이것이 순입니다. 그리스도의 죽음을 알아야 그리스도처럼 살 수 있는 것입니다. 진정한 순진는 예수 믿기 때문에 죽는 것이 아닙니다. 순교자의 이름을 가진 사람 중에 예수 믿기 때문에 죽어 순교자의 영광을 누리 고 있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아십니다. 하늘나라에 가면 생명의 면류관. 영과 의의 면류관을 받지 못한 순교자들이 많이 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스스로 죽음을 택하지 않고 예수 믿기 때문에 죽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이란 그리스도를 본받아 사는 사람들이기에 우리는 이미 하나님을 위해 목숨을 내놓고 살아가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진정한 순교자는 실제적인 순교의 순간이 오기 전에 미리 자기 목숨 을 하나님을 위해 드리며 살다가 순교하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기에 목숨까지라도 기쁘게 하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6 . 26사변 때 이북 한 교회에서 있었던 일입니다.목사님은 공산군 에 체포되어 구속되었고 장로님과 교인들은 몰래 숨어서 예배를 드리 곤 하였습니다. 한국 국군이 이북 땅에 진주했을 때 태극기를 손에 들고 환영하며 감격의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런데 후퇴하던 패잔병 인민군 몇이 교인들을 교회당 안에 가두고 밖에서 문을 못질하고 교회당에 불을 질러 모든 교인들을 불태워 죽였습니다. 나증에 제단 앞으로 가카이 나가 보니 불타 죽은 사람은 장로님 가족뿐이었습니 다. 나머지 사람들은 모두 살아 보려고 창가에서 몸부림치다가 죽어 갔다는 것입니다.
장로님의 가족들은 이미 그들의 목숨이 끊어지기 전에 지 손에 그 영혼을 맡긴 것입니다. 진정한 그리스도인은 있는 동안에 주께 산 제물로 자신을 드린 사람들입니다. 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그리스도인의 니다.
지난 2월 18일 중공기 한 대가 자유를 찾아 예고없이 이 땅에 날아들었습니다. 민방위 본부는 비상경보를 울리고 전쟁이 발발된 듯이 서울 장안이 소란했습니다. 강북 어느 교회 금요일 구역 예배시 간이었습니다. 교인들은 예배드리다가 일어나 자기 집으로 달려갔습 하나님 아버 목숨이 살아 순교는 마음 열매인 것입 니다. 구역장이 예배를 드리고 가자고 하니까 예배고 뭐고 전쟁이 났는데 피난준비해야 한다면서 자기 성경도 팽개치고 뛰더랍니다 그날 구역장은 흩어진 구역 식구들의 성경 찬송을 바라보며 이런 기도를 드렸다고 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의 믿음 없는 것을 긍히 여기소서. 저들이 달려가는 도중에라도 사나 죽으나 주의 것임을 알게 하시고 우리의 영혼을 아버지 손에 맡길 수 있는 믿음을 주소서.'

셋째, 예수님은 십자가상에서 하나님께 영흔을 맡겼습니다.
예수님은 병들어 죽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물에서도 죽지 않고 교통사고로도 죽지 않았습니다. 전쟁에 나가 전사한 것도 아닙니다. 예수님은 십자가 위에서 죽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우리 죄를 대속하기 위하여 죽으셨기에 이제 우리는 누구든지 영흔을 아버지 손에 부탁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처럼 십자가에 달려 죽을 필요가 없습니 다. 그리스도가 우리를 위해 죽으셨기에 십자가의 진리를 믿는 사람 은 누구든지 죽은 후의 모든 운명 전체를 맡길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친히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 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요 l4:I-3). 예수님은 우리의 거할 곳을 예비하러 가셨습니다. 우리가 죄로 말미암아 잃어버린 아버지 집을 다시 찾게 하셨고 닫혔던 문을 열어 주셨습니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 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고 했습니다. 구원은 십자가에서 이루신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십자가의 죽음이 없이는 아무도 구원받을 길이 없고 그 영혼을 맡길 수도 없는 것입니다.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어리석은 것이지만 구원을 얻은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우리를 위해 그의 영흔을 부탁하셨기에 이제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도를 믿는 사람은 아무리 극악한 죄인일지라도 그 영혼을 아버지 손에 맡길 수 있는 특권을 누리게 된 것입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축복입니까 이제 우리에게는 최후에 부탁할 수 있는 길이 있기에 우리의 소망 은 살아 있고 우리는 영원한 미래를 보장받은 사람들이 된 것입니 다. 십자가의 도를 믿지 않는 사람은 최후에 부탁할 곳이 없기 때문 에 절망이요 멸망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다 빼앗겨도 이 영혼을 부탁할 곳이 있기에 최후의 소망이 있고 영생이 있고 안식이 있고 영광이 있는 것입니다. 올리버 크롬웰이 프튼 궁전에서 임종의 병상에 누워 있을 때 밤낮을 가리지 않고 측근 목사를 불러 '나와 같은 죄인도 구원을 받을까H 하고 물었을 때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어떤 죄인도 구원 받을 수 있습니다.'라는 대답을 듣고,그렇다면 안심이라고 하며 눈을 감았다고 합니다 우리는 죽음을 맞이할 때 영혼을 아버지 손에 안심하고 부탁할 수 있어야 합니다. 살아서 자기의 생을 맡기지 못하는 사람은 죽음도 맡길 수 없는 것입니다. 자기의 물질도 하나님께 맡기지 못하면서 가장 귀증한 영혼을 어찌 맡길 수 있겠습니까 이제 죽게 되었으니 영흔이나 하나님께 맡겨보자. 그럴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께 영혼을 맡긴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자기의 영혼을 맡긴다는 것은 인생 최대의 모험이며 인생 최고의 신뢰가 되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9장 2절에 말씀하시기를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라고 하였습니다. 우리에 게는 죽음이 있고 반드시 심판이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우리가 담대하여 원하는 바는 차라리 몸을 떠나 주와 함께 거하는 그것이라 그런즉 우리는 거하든지 떠나든지 주를 기쁘시게 하는 자가 되기를 힙쓰노라 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드러나 각각 선악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고 했습니 다 이제 우리는 우리의 영혼을 하나님께 맡길 수 있도록 날마다 하나 님을 기쁘게 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내 영혼을 아버지께 부탁하나 이다.' 하는 절대적인 믿음으로 살아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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