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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주님이 가르쳐 준 기도 (눅 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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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시간에는 마르다와 마리아가 우리 주님을 섬김에 있어서 보다 더 나은 편을 택해 신앙생활을 함에 대하여 말씀을 드렸습니다.
오늘은 예수님께서 그 제자들에게 기도를 가르쳐 주신 사건입니다. 기도를 할 때 무엇을 위해서, 어떤 자세로 기도해야 하는가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말씀을 통해서 기도의 내용과 기도의 자세가 어떠해야 하는가를 배우고 기도 생활의 축복을 감당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당시 유대 랍비들은 자기 제자들에게 흔히 기도하는 법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또, 세례 요한이 그 제자들에게 기도문을 가르쳐 준 것이 분명합니다만, 현재 문서적으로 남아 있는 것은 없습니다. 이런 것을 본 예수님의 제자들도 기도를 유창하게 잘 하고 싶었던 모양입니다.
그래서 “제자 중 하나가 말하기를 요한이 자기 제자들에게 기도를 가르쳐 준 것과 같이 우리에게도 가르쳐 주옵소서”하므로 그 때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신 것이 주기도문이겠습니다. 그러므로 이 기도가 주님의 기도가 아니고 우리들이 하여야 할 기도인데, 그 기도의 내용과 정신을 생각하지 않고 무의미하게 반복적으로 외운다던가 주문을 외우듯이 외우는 것은 기도가 아닙니다.
마태 복음(마6:9-13)에 보면 너희는 저희를 본받지 말며 외식하는 자와 같이되지 말라 하시며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하시고 주기도문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기도의 내용과 그 의미를 따라 우리의 기도를 드려야 하고 삶에 연결이 되어져야 하겠습니다.

예수님의 어느 제자와 같이 우리가 기도하려고 막상 기도하면 무엇을 위해 어떤 자세로 어떻게 기도해야 하는지 앞이 캄캄해지고 등골에 식은땀이 나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래서 어떤 이는 기도 당번이 되면 아예 교회에 출석하지 않습니다. 뿐만 아니라 기도 순서가 돌아오면 밥맛이 없대요. 신경이 쓰여서 말입니다. 그래서 어떤 집사님은 기도를 시키지 말아 달라고 계란도 사오셨습니다.

어느 목사님이 낭랑한 목소리로 유창하게 기도를 하니까 참 은혜가 되기도 할 뿐만 아니라 모든 교인들이 좋아하니까 저도 기도 좀 잘 하게 해 달라고 몇 달을 하나님께 기도한 적이 있습니다. 사람에게 보이려고, 사람들이 들으라고 기도하지 말라 하셨는데도 기도를 유창하게 잘 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잘 되지 않습니다. 이런 저와 여러분을 위해서 우리 예수님께서는 기도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십계명이 두 부분으로 되어 있듯이 주기도문도 두 부분으로 나뉘어져 있습니다. 먼저는 하나님을 위한 기도이고(1-2) 다음은 우리를 위한 기도(3-4)로 되어 있습니다.

Ⅰ. 하나님을 위한 기도(1-2)

1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한 곳에서 기도하시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와 죽음이 기다리는 예루살렘 입성을 앞두고 간절히 기도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기도에 항상 힘쓰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세례를 받으실 때에도 기도하셨습니다.(3:21,22)
이른 새벽 미명에 일어나셔서 한적한 곳으로 가셔서 기도하셨습니다.(4:42, 막1:35) 또, 12제자를 택하시기 전날에는 산에서 밤이 맞도록 기도하셨습니다.(6:12,13)
또, 제자들에게 신앙고백을 요구하실 때에도 기도하셨습니다.(9;18)
변화산에서 기도하시다 영광스런 모습으로 변형되셨습니다.(9:29)
또, 겟세마네 동산에서는 제자들이 시험에 들지 않도록 간절히 기도하셨습니다.(22:32)
또, 십자가를 앞에 두고 땀방울이 핏방울이 되어 땅에 떨어지도록까지 피맺힌 기도를 드렸습니다.(22;44)
십자가에 달려 운명하실 때에도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고 기도하셨습니다.(23:34)
이상을 볼 때, 예수님의 생애는 한마디로 기도의 생애였습니다.
그러므로 누가는 누가 복음을 기도의 복음으로 예수님께서 기도하신 것을 특기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도 예수께서 한 곳에서 기도하시고 마치시매 제자 중 하나가 나와서 “주여! 요한이 자기 제자들에게 기도를 가르친 것과 같이 우리에게도 기도를 가르쳐 주옵소서”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들으시고 “너희는 기도 할 때 이렇게 하라” 하셨습니다.
바알 신을 섬기는 사람들처럼 ‘바알이여! 바알이여!’, 불교인들처럼 ‘남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형식적인 반복이 아니라 주기도문의 정신을 터득하고 그 정신에서 기도하라는 것이겠습니다. 본문은 마태 복음(6:9-13)보다 짧지만 우리가 어떻게 기도해야 하며 무엇을 위해 기도해야 할 것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먼저는 기도의 대상을 불러야 할 것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아버지여! 하며 기도를 시작하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은 아버지와 같이 깊이 신뢰하므로 기도를 시작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는 우리의 모든 필요를 아십니다. 또, 우리의 필요를 채워 주시기를 심히 기뻐하시고 우리의 필요를 채워 주시기를 즐겨 하시는 아버지십니다.
아버지는 자식에게 줌으로서 좋고 아들은 받아서 좋은 것입니다.(마7:7-11) 요한 복음에 예수님은 베드로의 발을 씻어 주시고 씻김을 받는 관계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나와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하셨습니다.(요13:4-8) “내가 너를 씻기지 아니하면 네가 나와 상관이 없느니라”(요13:8) 하시며 기쁘게 씻어 주시고 씻김 받는 것을 보게 됩니다.
얼마 전에 어느 집사님이 딸을 시집 보내면서 이것저것 해주니까 재미가 나더래요. 돈이 없어서 못해 줘서 그렇지 해주는 재미가 보통이 넘더랍니다. 이처럼 하나님 아버지는 우리의 기도와 우리의 필요를 채워 주시기를 기뻐하시는 아버지십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내어 주신 이가 무엇을 주시지 않겠느냐(롬8:32) 했습니다. 이처럼 우리가 기도를 드릴 때, 아버지에 대한 신뢰가 바탕이 될 때 우리는 간절한 기도를 드릴 수 있습니다. 이 하나님의 사랑과 하나님의 전능에 대한 신뢰가 없으면 올바른 기도가 되지를 않습니다. 그러므로 입으로만 “하나님 아버지”라 부를 것이 아니라 깊은 신뢰가 담겨진 마음으로 불러야 합니다.
특히, 마태는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라고 기도하라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나, 나의 아버지, 나의 것이라 쓰지 않고 우리, 우리의 아버지, 우리 것이라 써라 하셨습니다. 이는 신앙적 독선주의를 경계하시는 동시에 이기적인 관념에서 자기 부정을 나타낸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가 될 때만이 횡적 관계가 아름다워지며 우리 모두 형제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1)하나님을 위한 첫번째 기도입니다.
2절을 보십시오.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입니다.
유대인들은 이름을 중요시했습니다. 이름이란 다른 사람과 구별하기 위한 단순한 명칭의 이름도 있습니다만, 희랍어 하기오스(hagios)는 다른 것과 같지 않은 것으로 구별된 거룩을 말합니다.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름이 그 사람의 인격과 성품 및 전존재를 가르친다는 사실입니다. 이르므로 하나님의 이름이란 것은 하나님의 성품과 하나님의 전능과 하나님의 본질을 가리킵니다. 하나님은 본래 거룩한 분이시며 모든 피조물과 구별되시는 거룩한 창조주이십니다. 그러므로 모든 피조물과 인간들의 경배와 찬양을 받으시기에 가장 합당하신 분이십니다
그러나 인간의 타락으로 인해 하나님의 거룩한 이름이 땅에 떨어지게 되었습니다. 우리의 잘못된 삶 때문에 하나님의 거룩한 이름이 욕되게 되고, 하나님의 이름이 더렵혀졌습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지를 않고,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하고, 오히려 자기 이름을 나타내고 자기 이름이 빛나기를 원합니다. 이런 세상에서 하나님의 자녀들은 하나님의 이름을 나타내고, 하나님의 이름이 영광 받으시도록,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도록 기도해야 하고 그렇게 살아가 지도록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삶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도록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도록 기도하고 삶을 살아야 합니다. 무엇을 하든지 그 일을 통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자 하는 간절한 자세로 살아가 지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특히, 학생 같으면 공부를 열심히 해서, 직장인 같으면 그 직장 생활에서, 사업인은 그 사업을 통해서, 군인 같으면 군대 생활에서 자기에게 주어진 그 달란트나 직업 속에서 하나님의 영광, 하나님의 이름이 찬송 받도록 하나님의 이름이 영광을 받도록 살아지게 기도를 하라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자기에게 주어진 달란트나 직업 속에서 자기 이름을 나타내고 자기 얼굴을 드러내는 욕구가 강합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기도를 가르칠 때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되도록 하라 했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도록 삶을 살면 자연히 우리의 이름도 빛나며 어디서든지 인정을 받고 주님의 은총을 받게 되어져 있습니다. 이러므로 내 광(光)을 내고자 하는 죄악된 생각을 부인하고 어떻게 하면 하나님을 기쁘게 할까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날까 어떻게 하면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실까 하루하루 생활을 적극적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이는 하나님 당신 스스로 거룩하게 하심이 아니고 기도 드리는 우리가 거룩히 해 드리오니 받으시라는 뜻입니다. 이는 청원이라기 보다 기도하는 자가 이렇게 살겠습니다 하는 서원의 기도이겠습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히 되게 하려 하나니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라”(빌1:20,21)했습니다.

2) 두번째 하나님을 위한 기도입니다.
2절 하반 절을 보십시오. “나라이 임하옵시며”라고 기도하라 하셨습니다. 여기에서 “나라”는 통치권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이 통치하는 나라입니다. 하나님께서 다스리는 나라입니다. 인간은 타락함으로서 사단의 통치를 받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이 기도는 사단의 통치 아래 있는 인생들의 마음속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도록 기도하는 것입니다.(11:20)
예수님께서 복음 역사를 시작 할 때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고 하셨습니다.(막1:15) 누구든지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면 그 마음속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힘써 하나님의 나라의 복음을 전파하셨습니다.(4:43, 6:20, 8:1, 9:2, 10:9) 하나님의 나라는 복음 전파를 통해서 임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의 복음 전파를 위해서 간절히 기도해야 합니다.

요사이 교회를 짓고 난 뒤라서 그런지 성경 가르치는 일에 게으르고 전도하는 일에 나태해졌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복음전판를 통해 사단이 물러가고 죄악과 어두움의 세력들이 물러서므로 하나님의 말씀이 양 떼들의 마음속에 심겨지도록 기도하고 복음을 가르치는 일에 최선을 다하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또, 이 일을 위해 구체적으로 말씀을 섬기는 일들을 위해서도 기도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도록 기도하라고 하셨습니다.

Ⅱ. 우리를 위한 기도(3-4)

우리는 먼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기도하고 다음으로는 우리 자신을 위하여 기도를 하여야 합니다. 우리 자신을 위한 기도에는 세 부분으로 나뉘어져 있습니다.
1) 먼저는 우리에게 날마다 일용할 양식을 달라(3)고 기도하라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여기에 일용할 양식이란 음식 뿐만 아니라 건강한 몸, 물질 문제, 집과 가정, 남편, 아내, 자녀,직장 문제, 장래 문제, 형제간의 문제, 좋은 이웃과 평화로운 국가 하여튼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데 있어서 필요한 모든 것을 일컬어 일용할 양식이라 하겠습니다. 우리는 이런 문제를 해결해 나갈 지혜도 능력도 부족합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아버지께 구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고정적인 수입도 없으신 예수님을 따르면서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불안한 마음을 버릴 수 없었습니다.(12:22) 하나님이 도와주시지 않으면 굶을 수 밖에 없는 상황 속에서 제자들은 매일의 양식을 위해 기도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우리는 일용할 양식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매일의 필요한 양식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출애굽 시키신 후 40년 동안 일용할 양식을 먹는 훈련을 주셨습니다. 한번에 이틀 양식이나 한달 양식이나 일년 분의 양식을 주시지 않았습니다. 그날 하루하루의 양식만을 주셨습니다. 다만, 그날에 주신 것만 열심히 배부르게 잘 먹으면 되겠습니다. 그날그날 충실히 해 두면 학생 같으면 공부를 잘 할 것입니다. 틀림없이 내일은 염려 될 것이 없습니다. 오늘 충실히 쌓아 둘 것에 기도하라 하셨습니다.
또, 일용할 양식은 “내일의 양식”하는 뜻으로 (마태6:11, 난하참조) 내일에 하나님의 일을 하기 위해서 먼저 기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아버지여 내일 먼 훗날 제가 자라서 훌륭한 주의 일군이 되겠사오니 현재 공부하는데 제주와 지혜를 주시옵소서. 아버지여 제가 이 다음에 물질로 봉사하겠사오니 물질을 주시옵소서. 하나님의 자녀는 장래, 내일을 위해서 기도해야 한다고 주님이 가르쳐 주셨습니다. 현재 가난하고 몸에 질병을 가지신 분도 물질을 축복해 주세요. 건강을 주세요. 건강해야 일하겠사오니 주세요. 우리 아들,딸,손자,손녀 키워서 주의 일을 하겠사오니 축복해 주시옵소서 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기도하라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2)우리를 위한 두번째 기도는 죄사함을 위한 기도이겠습니다.

4절 상반 절을 보십시오.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모든 사람을 용서하오니 우리 죄도 사하여 주옵시고...”했습니다.
일용할 양식이 건강을 위한 기도라면 죄사함은 영혼을 위한 기도요, 영혼의 건강을 위한 기도이겠습니다.
일용할 양식이 육신의 건강과 안전을 위한 기도라면 죄사함은 영혼의 건강과 축복을 위한 기도이겠습니다.
일용할 양식이 미래를 위하여 드리는 기도라면 죄사함은 과거를 뒤돌아보며 회개하고 하나님의 긍휼을 구하는 기도이겠습니다.

죄는 우리 영혼을 병들게 하는 암과 같은 존재입니다.
죄(sin)란
하나님의 말씀을 불순종하므로 하나님의 법을 어기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법을 어길 때, 하나님과의 관계성이 단절됩니다. 사람들과의 관계성도 파괴됩니다. 자신은 죄의 종이 됩니다.(요8:34) 물론,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될 때, 예수님을 영접하므로 모두 죄사함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끊임없이 몸과 마음으로 죄를 짓습니다. 예수님은 마음에 음욕을 품는 자마다 간음한 자라고 했습니다.(마5:28) 사실 마음으로 짓는 죄가 몸으로 짓는 죄보다 훨씬 더 많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구원을 받았다 하더라도 타락한 본성이 남아 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습니다.(막7:21,22) 그러므로 우리는 날마다 우리 죄를 자백하고 죄 용서를 구해야 합니다.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고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께 하십니다.”(요1:9)
그런데 한가지 조건이 있습니다.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모든 자를 용서해야”한다는 것입니다. 마가 복음 11:25절 “서서 기도할 때에 아무에게나 혐의가 있거든 용서하라 그리하여야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도 너희 허물을 사하여 주시리라”했습니다.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형제를 판단하고 용서하지 않는다면 하나님께 나아가 용서를 빌 자격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도하기 전에 먼저 자신을 살피고 형제를 무조건 용서해 주어야 합니다. 용서에는 조건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도 예수님을 통하여 우리의 죄를 무조건 용서하여 주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일만 달란트 탕감 받은 자입니다. 우리에게 죄 지은 자들은 우리에게 백 데나리온 빚진 자에 불과합니다. 이 백 데나리온 빚진 동관 하나를 용서 못하면 우리의 빚도 탕감 받을 수 없습니다.(마18:28)

마태 복음 18:21-22절을 보면 베드로가 ‘주여 형제가 나에게 범죄 하면 몇 번이나 용서하여야 합니까 일곱 번까지 할까요’ 했을 때, 예수님은 일곱 번 뿐만 아니라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하라고 하셨습니다. 이는 무한정으로 형제를 용서해야 할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렇게 형제의 죄를 용서해야 할 것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3)우리를 위한 세번째 기도는 시험에 들지 않게 해 달라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시험(試驗)이란 유혹(Temptation)을 말합니다. 이는 사단으로 부터 오는 것으로 성도를 미혹해서 하나님으로 부터 멀어지게 하는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를 꾀어 죄에 빠지게 한 사단은 지금도 우리를 유혹하므로 때로는 보암직하고, 먹음직하고, 탐스럽기도 하고, 지혜 줄만 하고 어떻게 좋아 보이고 좋은지... 그래서 결국 넘어가므로 우리의 힘으로는 도저히 이길 수 없으므로 기도하되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라고 기도하라 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로 살고자 할 때, 반드시 마귀의 시험이 따릅니다. 우리가 왜 마귀의 시험에 빠져 들게 됩니까 야고보는 대답하기를 자기 욕심에 이끌려 미혹된다고 했습니다.(약1:14) 인간은 지혜로운 것 같지만 마귀의 시험에는 아주 약합니다. 그래서 언제 시험에 들지 모릅니다. 그러므로 자기의 연약함을 깨닫고 시험에 들지 않도록 해 달라고 간절히 기도해야 합니다.
“시험에 들게 마옵시고” 이는 범죄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한 기도입니다. 시험(temptation)에 들지 않게 주관적인 욕심에 끌리지 않도록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또, 시험에 끌리기 시작한 사람은 시험에 빠져나갈 길을 열어 주시도록 간절히 기도할 것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하나님 아버지는 우리에게 피할 길을 주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고전10:13)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시험에 들지 않도록 기도하라고 했습니다.(22:40) 그러나 베드로는 자기 자신을 믿고 있었기 때문에 기도하지 않았습니다.(22:33) 결국 그는 큰 시험에 들어 그날 밤에 예수님을 3번이나 모른다고 부인을 하고 심히 통곡을 했습니다.(22:11) 베드로는 후에 기도하지 않았던 죄악을 깊이 회개하고 기도의 삶이 되었습니다.(행3:1, 10:9)
그리고 그는 그의 서신에서 이렇게 권면합니다.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너희는 믿음을 굳게하여 저를 대적하라”(벧전5:8,9)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님 이런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신 기도들을 함으로 여러분이 승리하여 하나님께 영광 돌리고 여러분 자신에게도 큰 축복이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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