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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주의 십자가와 무리들 (눅 23:2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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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일에는 예수님께서 빌라도에게 사형 선고를 받으심에 대해서 말씀을 들었습니다. 오늘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사건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죽으시면서도 자기를 죽이는 사람들의 죄를 사해 주시도록 기도하셨습니다. 그리고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강도를 구원해 주시고 낙원으로 인도해 주셨습니다. 본문을 통해서 예수님의 고난과 십자가의 죽으심의 의미를 깨닫고 구속의 은혜를 깊이 덧입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Ⅰ.형장으로 끌려가는 예수님(26-32)

오늘 본문에는 3부류의 십자가가 나옵니다.
우리 주님께서 지신 십자가가 나오고, 구레네 시몬이 진 십자가와 또 다른 두 행악자가 진 십자가가 있습니다.(32)
우리 모두는 어떤 면에서 십자가를 지고 가는 인생들인데 어떤 십자가를 지느냐가 중요합니다.
십자가 사형수는 보통 자신이 달려 죽을 십자가나 횡대를 처형장까지 짊어지고 가서 처형을 당했습니다. 죄수가 사형 선고를 받으면 먼저 채찍으로 맞습니다. 채찍은 6가닥의 가죽 끈으로 되어 있는데 채찍 끝에는 뼈나, 쇠붙이가 붙어 있어서 사람을 치면 피가 나고 살점이 떨어져 나가고 배를 맞으면 창자가 흘러나오기도 했다고 합니다.
예수님은 이런 매를 120대를 맞으시고 당신이 처형당해야 할 70kg이나 되는 무거운 십자가를 지고 사형장으로 끌고 가셨습니다. 또, 가능한 한 먼 길을 돌아서 형장까지 행진을 하는데 마을 한 바퀴를 돌고 팻말에 죄목을 써서 행진을 합니다. 이렇게 행하는 것은 누구든지 이러한 범죄를 계획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에게 무서운 경고가 되게끔 하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밤늦도록 겟세마네 동산에서 땀이 피로 변하여 떨어지기까지 기도로 사투하시고 체포되어 빌라도에게 심문을 받고 헤롯에게 갔다가 또 빌라도에게로, 여러 차례 끌려 다니며 희롱과 고문을 받고 120대의 채찍을 맞았으며, 가시면류관에 찔려 피를 많이 흘리셨습니다. 또, 70kg이라는 무거운 십자가를 지고 형장까지 끌고 가야만 했습니다. 예수님은 밤새 철야 심문과 고문으로 기력이 쇠하여서 자주 자주 쓰러지셨습니다. 그때마다 군병들은 발길로 차고 채찍으로 무자비하게 때렸습니다. 그러나 이제 예수님은 더 이상 일어설 수 없을 만큼 기진 하셨습니다.

이것을 본 군병들이 구레네 사람 시몬을 붙잡아 십자가를 지워 예수를 쫓게 했습니다.
구레네는 아프리카 동북 편에 있는 유명한 도시로 현재는 리비아의 트리폴리(Tripoli)로 당시에 유대인들이 많이 살고 있었습니다.(행2:10, 6:9, 13:1) 이 때가 유월절이므로 시몬도 유월절을 지키기 위해서 예루살렘에 올라왔다가 예수의 십자가를 진 것이겠습니다.
구레네 시몬이 주님의 십자가를 대신 진 경위는 성경에 잘 밝혀지지 않으나 그가 바로 길가에서 동정적인 시선을 예수께 쏟고 있는 것을 병사가 발견하고 십자가를 지운 것이 아닌가 합니다.

시몬은 마가에 의하면 “알렉산더와 루포의 아비” 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막15;21) 또한, 바울은 로마서 16:13절에서 루포의 어머니는 곧 내 어머니라고 하였고, 시몬이 예수의 십자가를 지고 그의 일가족은 전부 예수를 믿고 그리스도인이 되었습니다.
주를 위해 지는 십자가, 억지로라도 지면 큰 축복인 것입니다.

마가복음에 알렉산더와 루포의 아비인 구레네 시몬이라고 돌연히 성경에 소개된 것으로 보아 두 아들들은 신자였으며 시몬 자신은 주의 제자였다고 믿어지며 두 아들 중 알렉산더는 행 19:33절, 딤전 1:20절, 딤후 4:14절에 자주 나오고 루포는 로마서 16:13절에 나타나며 로마에서 저명한 인사였고 마가와 친교가 두터운 분이었습니다. 그 아내는 바울의 어머니 격으로 선교에 큰 힘이 되었습니다.
이것은 억지로라도 진 십자가의 열매라 할 수 있겠습니다.

지금도 성지에 가면 예수께서 십자가를 지신 빌라도의 재판 석에서 십자가에 달리신 골고다 언덕까지의 고난의 길을 “비아돌롯사”(via dolorossa)라 부르고, 그 길을 예수께서 가시다가 멈추신 지점을 따라 14정유소로 나누었는데 구레네 시몬을 만난 곳은 제 5정유소에서 였습니다. 제 5정유소에서 부터 구레네 시몬은 예수의 십자가를 지고 갔습니다.
구레네 시몬이 제 5정유소에서 그리스도의 남은 십자가의 고난을 잘 지고 갔다면 현재 우리는 그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지고 가야 하겠습니다. 사도 바울은 골로새서 1:24절에 “내가 이제 너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 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님, 우리는 구레네 시몬과 같이, 사도 바울과 같이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여러 가지 아픔과 수고로움과 십자가를 내 육체에 채우는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로마서 15:1-3절에
“우리 강한 자가 마땅히 연약한 자의 약점을 담당하고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아니할 것이라 우리 각 사람이 이웃을 기쁘게 하되 선을 이루고 덕을 세우도록 할지니라 그리스도께서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아니하셨나니” 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부르실 때 “누구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쫓을 것이니라” 했습니다.
가롯 유다는 예수의 십자가를 지고 쫓을 수 있는 기회를 얻었으나 그것을 저버렸습니다.
그러나 구레네 시몬은 제 5정유소에서부터 예수의 남은 십자가를 지고 예수를 쫓았습니다.
우리는 정초에 모두 십자가를 지겠다고 다짐을 하고 잘 출발을 했는데 어느 정유소에서 벗어 두었습니까 이제 7월이라는 제 7정유소에서라도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된 교회를 위해서 내 육체에 채울 줄 아는 그리스도인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골고다를 향하여 예수님이 앞서고 그 뒤에는 구레네 시몬이 예수님의 십자가를 지고 따르며, 그 주위에는 많은 백성들이 따랐습니다.
또, 예수님을 위해 가슴을 치며 슬피 우는 여자의 큰 무리가 따랐습니다. 예수님께서 당하시는 고난을 보고 가슴 아파하며 동정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그들을 돌이켜 보시며 “예루살렘의 딸들아 나를 위하여 울지 말고 너희와 너희 자녀를 위하여 울라”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끔찍한 죽음 직전에 계시면서도 자신을 생각지 아니하시고 하나님의 아들을 십자가에 못박아 죽임으로서 심판을 자처한 예루살렘 운명을 바라다보시며 회개를 촉구한 말씀이겠습니다. 앞으로 40 여 년 뒤에 겪게 될 무시무시한 재난을 보시며 나를 위해 울지 말고 너와 너희 자녀를 위해 울라-회개하라는 것입니다.

29-31절은 주후 70년 로마 명장 티투스에 의해서 예루살렘이 함락될 때를 내다보시며 예언한 말씀입니다.
“보라 날이 이르면 사람이 말하기를 수태 못하는 이와 해산하지 못한 배와 먹이지 못한 젖이 복이 있다 하리라 그 때 사람들이 산들을 대하여 우리 위에 무너지라 하며 작은 산들을 대하여 우리를 덮으라 하리라 푸른 나무에도 이와 같이하거든 마른 나무에는 어떻게 하리요”
여기 푸른 나무란 죄 없으신 예수님을 가리킵니다. 마른 나무란 회개치 않는 사람들을 가리킵니다. 그래서 푸른 나무와 같은 나도 이런 일을 당하는데 마른 나무와 같은 너희 유대인들이야 무슨 일인들 당하지 않겠느냐 그러므로 나를 위해 가슴을 치며 탄식할 것이 아니라 너와 너희 자녀를 위해 가슴을 치며 회개하며 울라고 하셨습니다.
이런 이 예수님의 십자가 행렬이 있고,

32절을 보십시오.
다른 십자가의 행렬이 있습니다.
누가는 이들을 행악자(行惡者)라고 했으나 마태(마27:38)와 마가(막15:27)는 그들을 강도라고 기록했습니다.
이들의 죄목이 무엇인지는 뚜렷이 나타나지 않으나 당시 사회의 범법자들로서 극형을 받게 된 것입니다. 이들이 지고 간 십자가는 자기들이 저지른 죄의 대가로 지고 간 십자가입니다. 자기들의 행한 일에 보응을 받는 십자가입니다. 이는 구레네 시몬이진 십자가와는 같지 않습니다. 예수님이진 십자가와는 더욱더 거리가 먼 십자가입니다.
우리는 다 십자가를 지고 가는 사람들인데 어느 십자가를 지고 가고 있는가 묵묵히 생각해 보는 시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Ⅱ.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33-34)

십자가의 행렬은 해골이란 곳에 이르렀습니다.
이 해골이란 사람의 머리 모양같이 생겼다고 해서 해골이라고 불리게 되었고 히브리 말로는 “골고다”요, 라틴어로는 “갈보리”라 합니다.
이 해골이란 곳에 이르러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았습니다.
두 행악자들도 십자가에 못박아 예수님의 좌우 편에 있게 되었습니다. 군병들은 예수님을 십자가 위에 눕혀 놓고 두 팔을 벌리게 하여 예수님의 양손에 못을 박았습니다. 또 두발을 모으게 한 후 큰 못을 박았습니다. 그리고 십자가를 세워 놓았습니다.
십자가 사형 제도는 고대 페니키아에서 반란을 일으킨 노예들을 처형하기 위한 방법이었습니다. 이 제도는 인류 역사상 가장 잔인한 사형 제도입니다. 그래서 로마 시민에게는 금지되었고, 식민지 백성들 중에도 반역자들이나 흉악범들에게만 십자가 처형을 실행했습니다. 십자가의 고통이 얼마나 큰지 시편 기자는 시편 22:14-17절에 “나는 물 같이 쏟아졌으며 내 모든 뼈는 어그러졌으며 내 마음은 초밀 같아서 내 속에서 녹았으며 내 힘이 말라 질 그릇 조각 같고, 내 혀는 이틀에 붙었나이다 주께서 또 나를 사망의 진토에 두셨나이다” 했습니다.
그럼 왜 예수님께서 이런 고통스런 십자가를 지셔야 했습니까
이사야 53:10절 “여호와께서 그도 상함을 받게 하시기를 원하사 질고를 당케 하셨은 즉” 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는 것, 하나님의 원하시는 뜻이었습니다.
히브리서 9:22절 “피 흘림이 없은 즉 사함이 없느니라”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피를 흘리심으로 우리 죄가 사해지므로 피를 흘리셔야 하셨습니다.
그래서 이사야는 이사야 53:4-6절에,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서 하나님에게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예수님이 지신 십자가는 성경에 예언된 것을 실현시키기 위해서 진 십자가요, 하나님의 뜻을 성취시키는 십자가였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원이요, 하나님의 뜻이요, 성경에 예언을 이루기 위해 이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또 이 십자가를 지시기 위해서 큰 결단을 내리기 위해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땀이 핏방울이 되어 떨어지기까지 사투의 기도를 하시고 하나님의 뜻을 받아 드려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이사야 53:12절에 예언된 말씀대로 예수님께서는 “범죄자 중의 하나로 헤아림을 입었음이라 그러나 실상은 그가 많은 사람의 죄를 지며 범죄자를 위하여 기도하셨느니라” 한 예언대로 예수님은 범죄자 가운데 십자가에 달리시고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시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라고 기도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자기를 십자가에 못박는 사람들의 죄를 사해 달라고 기도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죄를 용서해 주시기 위해 십자가에 달리셨습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영접하기만 하면 죄사함을 받습니다.
당장에 한 강도는 당신의 나라에 임할 때 나를 기억하소서 하니 예수님은 십자가 상에서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하셨습니다.(43)
죄가 있어도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구원을 얻습니다.
하나님의 나라 낙원에 들어갑니다.

Ⅲ.십자가 주위의 무리들(34b-43)
1)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던 무리들-저희들은 예수님의 옷을 나눠 가지기 위해 제비를 뽑았습니다. 유대인들은 5가지의 복장을 하고 있었습니다. 속옷, 겉옷, 허리띠, 샌들 그리고 머리의 터번입니다. 4 사람의 군병이 4가지를 나누고 겉옷이 남았습니다. 이것은 홋이라고 통으로 짠 것이었습니다.(요19:23-24) 그러므로 그것을 4등분하면 쓸모 없는 것이 되므로 십자가 아래에서 겉옷을 놓고 제비를 뽑은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까지도 시편 22:18절 “저희가 내 옷을 나누고 제비 뽑나이다” 하는 예언을 성취한 것이겠습니다.
2) 백성들-서서 구경을 하고
3) 관원들-비웃으며 저가 남을 구원하였으니 만일 하나님의 택하신 자 그리스도여든 자기도 구원할지어다 하고 십자가에 달린 예수님을 조롱했습니다.
4) 군병들-희롱하면서 나와서 포도주를 주며 네가 만일 유대인의 왕이어든 네가 너를 구원하라 조롱하며
5) 십자가 상에 달린 행악자 중 하나는-예수를 비방하며 네가 그리스도가 아니냐 그렇다면 너와 우리를 구원하라고 조롱하며 악을 썼습니다.
외경 빌라도의 행전에 회개한 행악자는 디스마였고, 다른 한 편은 케스다였다고 합니다. 이대로 라면 게스다는 예수님을 조롱하고 네가 그리스도가 아니냐 그렇다면 너와 우리를 구하라고 욕을 하며 악을 썼습니다.
6) 그러나 반면 디스마는 욕하고 악을 쓰는 게스다에게 꾸짖어 네가 동일한 정죄를 받고서도 하나님을 두려워 아니하느냐 우리는 우리의 행한 일에 상당한 보응을 받는 것이니 이에 당연하거니와 이 사람이 행한 것은 옳지 않는 것이 없느니라 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향하여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생각하소서 하니” 예수님은 즉시 대답하시기를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예수님 당신을 영접하고, 낙원으로 인도할 자인 줄 알고 그 분을 의뢰하면 우리를 영원히 하늘 나라로 인도하실 주님이십니다.

무서운 죄를 지었어도 예수님은 십자가 상에서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시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하시고 십자가에 내 죄를 대신 짊어 지시고 죽으셨기에, 피를 흘리셨기에 그 예수님을 영접하면 구원을 얻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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